413화
제80장 아무 데도 못 가(3)
스승이 말한 대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쉽게 말해서 인공 신경 이식술이었다.
최근 스승은 인공 신경 개발 프로젝트를 마쳤다고 한다.
아직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고 동물에게서만 사용 가능했지만.
1) 실험쥐의 신경을 일부 손상시킨다.
2) 그 신경을 인공 신경으로 봉합한다.
3) 더 빠르고 정확하게 봉합한 쪽이 승자다.
대결 룰은 간단했으며.
서전의 실력을 평가하기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의문이었다.
굳이 스승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지.
“스승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부스트 업 프로그램을 마친 제 실력이 궁금하신 거겠죠?”
“암. 그렇고말고.”
“그럼 저 혼자 신경 이식술을 해보겠습니다. 굳이 스승님과 제가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준후가 부담스러워하며 말했다.
준후의 상대는 스승이 아니었다.
환자의 목숨과 건강을 위협하는 신경외과 질환이었다.
더군다나 조금 전 마음 아픈 장면을 봤다.
바로 스승이 약을 복용한 것이었다.
분명 손목 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였을 것이다.
스승도 세월은 피하지 못했다.
“왜 내게 질까봐 겁이 나니?”
스승이 준후를 보며 피식 웃었다.
1차원적인 도발을 준후는 태연하게 넘겼다.
“져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이기는 게 문제겠구나. 내 말이 맞지?”
“…….”
준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승이 원래 눈치가 빠른 걸까.
아니면 그동안 함께한 시절 덕분에 스승이 자신을 손금 보듯 훤히 내려다보게 된 걸까.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몰랐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스승의 말이 정답이라는 점이었다.
준후는 스승을 이길까봐 겁났다.
자신에게 패배하면 스승이 상처를 받을 게 거북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솔직한 건 여전해.”
스승이 껄껄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시죠? 제가 곤란한 게 좋으십니까?”
“재미있고말고. 이 세상에 널 골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몇 명이나 되겠니.”
“저는 재미없습니다.”
“준후야.”
스승의 목소리가 저음으로 낮게 깔렸다.
“네. 스승님.”
“넌 인공 신경으로 실험쥐의 신경을 봉합한 적이 없지만 난 지난 2년 동안 이 짓거리만 해왔단다.”
“…….”
“우리 둘의 격차는 생각보다 크다는 뜻이지. 분명 네 예상보다 흥미로운 대결이 될 거란다. 그리고.”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번 대결에는 내 나름의 상징성이 있단다. 그러니 네가 내 뜻에 따라줬으면 좋겠구나.”
말을 마친 스승이 준후와 눈을 마주쳤다.
따뜻하고 그윽하고 절실한 눈빛.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준후의 가슴에 와닿았다.
그건 그렇고.
신경 봉합 이식술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신 거지?
거창하게 상징성 같은 단어를 꺼내는 분이 아닌데?
준후는 생각에 잠겼다.
스승이 대놓고 부탁했으니 대결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실력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스승에게 진다.
스승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스승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다.
준후에게는 총 3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중 무엇을 택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도 불편하겠니?”
스승이 한 번 더 물었다.
3분과 같았던 3초가 지난 후에야 준후가 입을 뗐다.
“아뇨. 스승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바로 대결하시죠.”
* * *
10분 뒤.
준후와 재현이 간이 수술대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수술대 위에는 두개골이 절제되고 뇌가 드러난 실험쥐가 대자로 뻗어 있었다.
실험쥐의 뇌는 꼭 호두 조각 같았다.
작았으며 자잘한 주름이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주름 사이로 이랑(불쑥 튀어나온 부분)과 고랑(움푹 들어간 곳)이 파도처럼 이어졌다.
“실험쥐로 수술 연습한 적은 있니?”
재현이 준후에게 물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메이유에서는 환자 치료하기에 바빠서요.”
“그럼 봉합은 어떨 것 같니?”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준후의 자신만만한 대답이 재현은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인 서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겁을 집어먹을 것이다.
사람 뇌도 감당하기 힘든데.
쥐의 뇌를 감당하라고?
심지어 뇌나 혈관을 봉합하는 게 아니라 신경을 봉합하라고?
하지만 메이유에서 7년을 수련하고 돌아온 준후는 처음 해보는 수술 앞에서도 무덤덤했다.
그만큼 본인의 실력과 경험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거다.
아직 말은 안 했지만 재현은 준후가 자랑스러웠다.
타국에서 7년을 수련한다는 것.
그것도 하나의 전공과목이 아닌 7개의 전공을 과목을 수련한다는 것.
이는 경이로운 집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승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지금까지 한국에 신경외과 서전 중 부스트 업 프로그램에 지원한 사람은 없었다.
생지옥과 다름없었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그보다 더 지옥 같은 곳에서 또 수련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 아니겠는가.
“스승님. 인공 신경 개발에 차도는 있었습니까?”
“쥐를 대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는 아직이란다.”
“갈 길이 멀군요.”
“그런 셈이지. 인공 신경도 그렇고 인공 혈관도 그렇고…….”
재현의 목소리에 푸념이 섞였다.
유독 뇌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인공 기술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뇌가 그만큼 중요하고 섬세한 부위라서 그랬다.
“준비는 다 됐니?”
“물론입니다.”
“그럼 내가 미리 작업을 해놓으마.”
재현의 손에 메스가 들렸다.
재현이 준후 쪽으로 다가가 디지털 현미경에 눈을 가까이 했다.
연구실에 거대한 수술용 미세 현미경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반 실험용 현미경으로 대결을 진행 중이었다.
스으으윽.
메스의 궤적이 번뜩였다.
재현은 실험쥐의 전두엽과 두정엽에 분포한 신경들을 의도적으로 잘라냈다.
해당 신경은 운동신경이었다.
“봉합이 성공한다면 마취에서 풀린 쥐가 자유롭게 움직일 거란다. 아니라면…… 굳이 설명은 필요 없겠지?”
“네. 스승님.”
재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준후의 실험쥐에게 했던 작업을 자신의 실험쥐에게도 반복했다.
이로서 대결 준비 끝!
현 신경외과 끝판왕 재현과 떠오르는 혜성 준후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미리 홍보하고 티켓을 뿌렸다면 수많은 신경외과 서전들이 이 자리를 찾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승님. 잠깐 인공 신경을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공평해질 테니까.”
“감사합니다.”
준후가 포셉으로 인공 신경을 건드려 보기 시작했다.
신경의 강도와 탄력성 등등을 살피는 듯했다.
“이거 잘 끊어지겠네요. 스승님도 고생 좀 하셨겠습니다.”
“말도 마렴. 심지어 지금 버전이 그나마 덜 끊어지는 편에 속하는 거야. 예전에 개발한 신경들은 어휴~”
재현이 설명 대신 한숨으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퍼뜩 깨달았다.
준후가 인공 신경을 고작 몇 번 만져보고도 그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을.
감각이 이렇게 섬세해졌단 말인가.
재현은 새삼 긴장했다.
솔직히 자신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준후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고 경험치 때문이었다.
준후가 처음 하는 인공 신경 봉합술을 재현은 2년 동안 해오지 않았던가.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조금 치사한 그림이 됐지만.
어쨌거나 이번 대결에서 재현이 원하는 건 준후가 겸손해지는 것이었다.
부스트업 프로그램을 마쳤어도 서전으로서 갈고 닦을 것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봐라.
오늘 대결에서 네가 지지지 않았느냐.
이런 느낌을 재현은 원했다.
“저는 준비 됐습니다. 스승님은 준비되셨습니까?”
“어? 벌써? 좀 더 연습을 안 해봐도 되겠니?”
“할 만큼 했습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좋다. 셋을 세면 동시에 시작하자꾸나. 3, 2, 1. 시작!”
초읽기가 끝나기 무섭게.
재현이 오른손에 니들홀더를 쥐었다.
거즈 위에 놓여 있는 인공 신경을 니들홀더로 쥐고 조임쇠로 고정했다.
끼기긱!
조임쇠 아귀가 맞으면서 쇳소리가 퍼져 나갔다.
재현의 왼손에는 어느새 포셉이 들려 있었다.
신경 봉합술은 혈관 봉합술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출혈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는 부담이 없었지만 반대로 신경을 손상 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존재했다.
재현은 손상된 뇌신경에 인공 혈관을 갖다 대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실을 묶어주듯 뇌신경과 인공 신경을 연결해 주었다.
예전부터 해온 작업인데도 만만치가 않았다.
손이 허공해서 헛돌았다.
인공 신경이 뇌신경이 아니라 허공에서 매듭을 만들어냈다.
좁아지는 미간.
주름이 잡히는 이마.
재현은 수술용 가위를 이용해 쓸모없어진 매듭을 제거했다.
찰칵!
가위소리가 경쾌했다.
그러면서 아닌 척 준후가 봉합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폈다.
녀석, 너도 별 수 없구나.
확실히 혈관 문합하고 신경 문합은 차원이 다르긴 하지.
재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준후도 재현과 똑같이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첫 봉합에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슬슬 속도를 올려볼까?’
재현의 눈동자가 의욕으로 반짝거렸다.
아까 먹었던 진통제의 효과가 지금에서야 발휘되었다. 칼로 쑤시는 듯했던 손목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인공 신경을 쥐고서 두 번째 봉합에 나섰다.
휘리리릭.
봉합사가 현란한 궤적을 그렸다.
가벼워진 손만큼 처치도 정교해졌다. 인공 신경의 끝과 뇌신경의 끝이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둘이 평행을 이루었을 때.
재현은 꼬임 매듭(twist knot)을 펼쳤다. 인공신경이 꽈배기처럼 신경을 돌돌 감싸면서 매듭이 완성되었다.
포셉으로 최대한 섬세하게.
이음새를 당겨보았는데 매듭이 견고했다.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좋았어. 이 느낌 그대로 간다.’
재현은 같은 방식으로 반대편 뇌신경도 인공 신경으로 문합을 했다.
성공했을 때의 감각이 손에 남으니 처치에 가속도가 붙었다.
재현은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졌다.
준후가 곁에 있다는 것.
사제 간의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어버렸다.
끊어놓은 5개의 신경이 눈부신 속도로 문합되고 있었다.
문합은 빨랐으며 정확했다.
심지어 재현이 평소 연습할 때보다 성과가 좋았다.
찰칵!
마지막 가위질 소리가 경쾌했다. 신경 이식술을 마친 재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 가운 소매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뒤늦게 피로가 몰려왔다.
‘역시 내 실력도 녹슬지 않았단 말이지.’
재현은 디지털 현미경으로 자신이 문합한 신경을 확인했다.
입가에 띤 미소가 짙어졌다.
이만한 완성도라면 마취가 풀렸을 때 쥐의 운동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재현은 뒤늦게 고개를 돌려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여전히 신경 이식술을 펼치고 있었다.
최소한 속도에서는 재현이 준후를 압도한 것이다.
그렇다고 완성도에서도 준후에게 딱히 뒤쳐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끝나셨습니까?”
준후가 신경 이식술을 계속하면서 재현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지극히 무덤덤했다.
내심 자신에게 진 게 아쉬워서 감정을 숨기는 듯 했다.
“준후, 넌 아직이니?”
“아뇨. 전 5분 전에 끝났습니다.”
“5분 전에? 그럼 지금 문합하고 있는 건 뭐니?”
재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시간 때울 겸 전두엽 쪽 신경을 문합하고 있었습니다.”
“아…….”
재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뒷목을 잡았다.
이거 한 방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