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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15화 (415/424)

415화

제81장 의무중대장(1)

삐삐.

간부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준후는 운전석 옆에 섰다.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군복을 입고 전투모를 쓴 모습이 어색했다.

준후의 전투모에는 3개의 마름모 문양이 박혀 있었다. 대위라는 뜻이었다.

군대에서 중대장 계급은 대부분 대위였다.

-군 복무 한다고 해서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왕진하러 왔다는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인수인계를 해주었던 군의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전투모는 안 써도 된다.

높은 계급의 간부를 만나더라도 기죽지 마라.

건방진 느낌만 주지 말고 적당히 예의를 차려라.

휴가 왔다고 생각하고 푹 쉬어라 등등.

이미 군의관 생활을 마친 동료나 선후배도 인수인계자와 비슷한 말을 했다.

군의관 생활?

별거 없다!

적당히 시간만 잘 때우다가 전역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준후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군복무 기간은 무려 3년이었다.

3년을 낭비하듯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가지 않으면 안됐다.

터벅. 터벅.

준후가 걷기 시작했다.

까만 전투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단결!”

“단결!”

병영으로 이동하는 도중.

마주친 병사들이 거수 경계를 붙였다.

“고생 많다.”

준후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때 준후는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병사들은 조카처럼 아껴주자고.

군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군대에서 다치는 것이었다.

군의관의 무성의한 진료.

군의관의 늑장 진료.

이로 인해서 작은 병으로 끝날 것이 큰 병으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다.

반대로 큰 병을 작은 병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부주의로 병사들이 군대에서 고통을 받았다.

준후는 그런 병사들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군대에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큰 병을 얻거나 다쳐서 전역하게 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또 준후는 병사들이나 다른 간부들에게 돌팔이 취급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군의관도 정성껏 병사를 진료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활약하기 딱 좋은 장소지.’

준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 내 진료 및 치료 환경은 열약하기 그지없었다.

피검사, 소변 검사, 흉부 엑스레이, 심전도.

기본 검사는 꿈도 못 꾸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내과치료가 가능한 몇 가지 의약품. 붕대, 거즈, 소독약. 수액과 주사제 등등만을 활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경증 환자 위주로 치료하다가 중증 환자가 나타나면 사단 의무대나 한국 수도 병원으로 환자를 외진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준후는 걸어 다니는 CT이자 MRI였다.

내공으로 각종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으며 몇몇 질환은 직접 치료도 가능했다.

이는 오로지 무림인 출신인 준후만이 해낼 수 있는 재주였다.

잡념을 떠도는 사이.

저 멀리에 있던 막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착각인지 몰라도.

군대가 현대판 무림맹 같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막사에 들어선 준후가 의무중대 치료실로 들어섰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 여러 차례 와봤기에 장소를 헤매는 일은 없었다.

“단결!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단결!”

치료실을 청소하던 의무병 두 명이 준후를 발견하고 번개같이 경례를 붙였다.

준후가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의 경례는 적응이 안 됐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대니 인사를 받아주는 것도 중노동이었다.

준후는 입구 앞에 서서 치료실의 풍경을 살폈다.

치료실은 크게 3개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하나는 치료실 우측에 위치한 작은 방인데 ‘중대장실’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준후의 집무실이었다.

치료실 좌측에 있는 작은 방에는 진료 및 치료에 필요한 창고였다.

준후가 서 있는 곳은 치료실 그 자체였다.

의무병이 진료를 볼 수 있는 책상.

진료를 보러온 병사들이 앉을 소파.

약들이 진열된 약함, 간단한 소독이 가능한 소모품들이 올려 져 있는 드레싱 카트, 기타 냉장고와 책장 등등.

각종 물건들과 가구들이 산만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환자는 없니?”

“네, 없습니다. 아침부터 의무대를 찾는 병사는 많지 않습니다.”

일병 김정민이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다나까’ 말투였다.

말끝에 ‘다나까’를 붙여서 상급자에게 예의를 표시하는 군대 특유의 말투 말이다.

“어제 저녁에 진료 보러온 환자 중에서 특이한 환자는 없었고?”

“네. 없습니다.”

“입원 환자들은?”

“입원 환자들도 얌전하게 잘 잤습니다. 역시 이상 없습니다.”

정민의 말에 준후가 턱을 쓸어내렸다. 환자가 없다는 건 분명 좋은 징조였다.

다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눈앞에 의무병은 당연하게도 의사가 아니었다.

물론 척 보기에도 응급한 환자가 있다면 준후에게 연락을 하겠지만 중증과 경증을 구분하기 애매한 환자들은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의무병의 말은 적당히 걸러 들어야 했다.

“의무병은 어떻게 되는 거니?”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저는 그냥 의무병으로 뽑혔습니다.”

“그냥?”

“네. 무작위로 차출되어서 후방에서 의무 교육을 받고 의무병이 되었습니다.”

“의무 교육은 뭔데?”

“국군 의무 사관학교에서 CPR도 배우고 수액 놓는 법도 배우고 지혈법도 배우고 그랬습니다.”

“의무병 중에 의료 계통 전공자는 없지?”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이태원 상병만 보건 의료 행정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알았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의무병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될 듯했다.

의무병들 특별한 기술을 배운 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도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초 간호 술기들이었다.

준후는 치료실을 나와 의무중대 복도를 거닐었다.

의무병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을 슬쩍 훑어보고.

병원에 입원하기에는 애매한 경증 환자들이 거주하는 입원실도 살폈다.

의무중대에 입원 중인 환자는 총 3명이었다.

심한 발목 염좌 환자 1명.

고열 독감 환자 2명.

어제 두 번째 인수인계를 받으러 왔을 때 준후가 치료를 했으므로 병세가 악화될 일은 없었다.

준후는 발길을 돌려 치료실로 복귀했다.

치료실 안쪽에 의무중대장실에 들어갔다.

의무중대장실은 이름만 번지르르 했다.

딱딱한 나무침대 위에 국방색 거친 담요가 깔려 있었고 그 맞은편에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과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남향이라서 햇살만큼은 끝내주게 잘 들어왔다.

촤르르륵.

커튼을 치고서 준후는 책상에 챙겨온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군대에 보급된 컴퓨터는 인트라넷이라고 자체 통신망이 깔려 있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의 제약이 많았다.

보통 군의관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노트북을 가져와 게임을 한다고 하던데 준후는 그럴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타다다닥.

준후는 의학 논문 사이트에 접속해서 첫 번째 검색어를 입력했다.

검색어는 ‘뇌사’였다.

앞으로 3년 간 준후는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의 치료법을 연구해 볼 작정이었다.

* * *

의무중대의 실세인 치료계 의무병 이태원이 치료실로 들어왔다.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약제계 의무병 정민에게 다가갔다.

“뭐 하냐?”

“처방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사단 의무대에 약품 청구를 해야 해서요.”

정민이 책상 위에 놓인 처방전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쁜 척 오지네. 이번 달에 쓴 약도 별로 없던데. 작업 빠지려고 일하는 척하는 거 아니야?”

태원이 정곡을 찌르자 정민이 애매하게 웃었다.

“이태원 상병님.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됩니까?”

“지금도 널 보고 있는데?”

“그런 말씀이 아니라…….”

“됐다. 그냥 하는 소리야. 본부 중대 작업에 껴서 좋을 게 없지. 또 네가 있어야 내 할 일도 줄고.”

태원이 정민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그리고 환자 전용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놀랍게도 일과가 시작되었는데 태원은 할 일이 없었다.

다른 병과의 병사들이 자기 업무를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를 테면 통신병이라면.

통신 장비를 정비하거나 통신 교환을 하거나 통신선을 연결하거나 하는 등의 업무를 하겠지만.

의무병의 업무는 수동적이었다.

치료할 사람이 없으면 지금처럼 하루 종일 농땡이를 피우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많은 병사가 의무병을 부러워했다.

PX병과 의무병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새로 오신 중대장님은 어떤 것 같아?”

이태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의무중대장실과 치료실이 붙어 있었다.

입조심 할 필요가 있었다.

“뭔가 환자를 많이 신경 쓰셨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환자에 대한 것부터 잔뜩 물어보셨습니다.”

“…….”

“입원실도 직접 가보셨습니다.”

정민도 중대장실을 힐끔거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 정도야? 저번 중대장님하고는 정반대네?”

“네. 저번 중대장님은 환자를 거의 저희 손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레전드 오브 리그 다이아 찍었다고 자랑도 하셨고.”

태원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이번 중대장님도 그런 태도가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군의관이 다 그렇지 뭐. 그 사람들은 여기 잠깐 쉬러 온 거야. 부대에서 열심히 진료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번 중대장님은 다를 것 같습니다.”

“너야말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환자 이야기 할 때 눈빛이 엄청 진지하셨습니다.”

“별 같지도 않은 소리…….”

정민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똑. 똑. 똑.

노크소리가 불청객으로 찾아왔다.

들어오라고 말하자 익숙한 얼굴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포병대 상병 성환과 일병 민기였다.

“일과 시작했는데 소파에 앉아서 꿀 빠는 거 보소. 완전 인간 벌꿀이네.”

성환이 태원을 보며 혀를 찼다.

“꼬우면 의무병하든가.”

“하고 싶다고 시켜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왜 왔는데?”

태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같은 부대에 있더라도 소속이 다르면 말을 편하게 했다. 특히 계급까지 같으면 친구를 먹기도 했다.

“민기, 허리 아프대.”

“허리가 어떻게 아픈데?”

“어제 훈련 받다가 허리를 삐끗한 것 같아요.”

민기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많이 아파요?”

“아뇨. 조금 욱신거리는 정도?”

“정민아.”

“네. 이태원 상병님.”

“민기 아저씨한테 맨소래덤 파스 좀 발라줘라.”

“알겠습니다.”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약함으로 이동했다. 바르는 맨소래덤 파스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꺼냈다.

“소화제랑 빨간약이랑 파스만 있으면 나도 의무대 차릴 수 있는 거 아니냐? 인정하는 부분?”

성환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물었다.

태원은 무시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사이 환자가 등받이 없는 진료용 의자에 앉았다. 전투복 상의를 걷어 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익.

열릴 것 같지 않았던.

하루에 서너 번 열릴까 말까하는 중대장실의 문이 열렸다.

준후가 치료실로 나온 것이다.

의무중대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병사들이 잔뜩 긴장했다.

“단결!”

“단결!”

통신병들이 서둘러 경례를 붙였다. 준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 했다.

“태원아, 정민아.”

“네. 중대장님.”

“앞으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환자가 오더라도 너희끼리 진료보지 마. 무조건 나한테 보내. 알겠니?”

준후의 명령은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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