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제81장 의무중대장(2)
“거기 앉아봐.”
“네. 중대장님.”
준후가 지시를 내리자 환자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환자는 꽤 얼어 있었다. 얼굴이 굳어 있었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왜?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아?”
“아닙니다.”
“그럼 왜 그렇게 긴장했어?”
“그래도 장교님이시지 않습니까?”
환자가 대답했다.
군의관이 군대를 가볍게 보는 것과 달리 병사들은 군의관을 마냥 가볍게 보지만은 않은 듯했다.
꼬투리를 잡히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준후는 진료에 앞서 환자를 살폈다.
군복에 적힌 이름은 강민기.
계급은 일병이었다.
“나이는 어떻게 되니?”
“21살입니다.”
“대학교 다니다가 휴학하고 군대 왔고?”
“네.”
21살이면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였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텐데.
군대에 끌려왔으니 그 기분이 오죽할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민기에게 더 잘해주고 싶었다.
군대에 있는 것도 서럽거늘.
군대에서 아프기까지 한다?
그럼 심리적 고통에 육체적 고통이 곱하기가 되어버릴 테니까.
“허리는 언제부터 안 좋았어?”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작업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습니다. 크게 다친 건 아니고 가끔 욱신거리는 정도입니다.”
“예전에 허리를 다친 적은 있고?”
“아뇨. 없습니다. 예전부터 공부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런지 가끔 아플 때가 있지만 심하지는 않습니다.”
민기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파스만 바르고 가도 될 것 같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혼자서 환자도 하고 의사도 하는 것 같아서.”
준후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했다.
하지만 민기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병사와 간부의 간극인가.
“됐다. 못 들은 걸로 하고 일단 침대에 누워봐.”
“네. 중대장님.”
민기가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준후가 곧바로 SLR 테스트에 들어갔다.
SLR 테스트는 하지직거상 테스트라고도 불렸다.
환자의 다리를 올리고 다리가 올라가는 각도로 디스크 여부를 판별하는 검사였다.
“지금은 어때? 엉덩이나 허리가 아프지는 않니?”
준후가 민기의 왼쪽 다리를 70도 정도 올렸다.
디스크라면 이쯤에서 통증을 느껴야 했다.
다리가 올라가면 허리와 다리의 긴장도가 높아져서 디스크도 덩달아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이번에도 괜찮습니다.”
양발을 다 테스트했음에도 민기는 정상 소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정말 단순 염좌일까.
준후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민기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진료를 과하게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점은 남아 있었다.
민기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공부 자세가 안 좋아서.
가끔씩 허리가 아팠다고.
요즘 세상에 허리 통증을 안 달고 사는 사람이 드물기는 했다.
그렇다고 의심이 가는 점을 모른 척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전투복 상의 벗고 엎드려 누워볼래?”
“정말 파스만 발라도 괜찮습니다.”
“자꾸 진찰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러닝셔츠 차림의 민기가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척!
준후가 민기의 허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드디어 무림 출신 의사의 장기를 써먹을 때가 왔다.
준후가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끌어올린 내공을 손바닥에 담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공이 셔츠와 피부를 통과했다.
동그란 파장을 그리며 허리뼈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척추 뼈와 척추관.
척추의 마디 사이.
디스크 등등.
내공이 보내오는 정보를 재구성해서 준후는 머릿속으로 민기의 허리뼈를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역시…….’
요추 4번과 5번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디스크가 돌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가 워낙 미약해서 하지직거상 테스트로도 디스크 여부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고.
만약 허리를 방치해 계속적인 작업으로 허리에 무리가 갔다면.
민기의 디스크는 돌출되었을 테고 최악의 경우 수술을 받았어야 했을 수도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치료까지 해버리지 뭐.’
준후가 결심을 굳혔다.
디스크가 심하지 않다면 준후는 셀프로 디스크 치료까지 가능했다.
그게 준후가 일반 정형외과의와 신경외과의와 차별되는 점이었다.
준후의 손바닥에서 다시 한번 내공이 발산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와는 그 형태가 달랐다.
원을 그리며 넓게 퍼져 나갔던 내공이 한 점으로 단단하게 뭉쳐 나아갔다.
내공이 척추와 신경을 통과해 디스크를 향해 전진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였다.
내공을 섬세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디스크를 밀어 넣는 힘이 너무 강하다면 디스크가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서 터져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준후는 정신을 집중했다.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듯.
내공으로 디스크를 토닥이며 전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 와중에 디스크를 감싸고 있는 섬유륜이 찢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
준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휴~’
준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민기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디스크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민기의 허리를 아프게 만들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제거된 것이다.
“주…… 중대장님.”
“왜? 말을 더듬고 난리야?”
“허리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허리 통증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민기가 부엉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전투복 상의를 다시 입고 허리를 새우처럼 뒤로 꺾었다.
“와! 너무 시원합니다.”
“그렇게 좋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민기의 모습을 보니 준후도 기뻤다.
준후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민기는 까맣게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준후는 명예나 평판을 얻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환자를 지켜봐야만 하는 무기력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민기의 웃는 모습 자체가 준후에게 크나큰 보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손만 대셨는데 제 허리가 나아졌습니까?”
민기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내공에 대해 언급할 수 없어서.
준후가 잠시 머뭇거렸다.
“중대장님은 혹시 엄청난 약손이십니까?”
“뭐, 그런 걸로 치자.”
준후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통증이 가신 덕분인지 민기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기가 중대장실을 나가면서 준후 혼자 방에 남게 되었다.
어쩌면 군의관 생활도 병원 생활만큼이나 보람찰 수 있겠구나 하고 준후는 문득 생각했다.
* * *
“진료는 잘 받았어요?”
중대장실을 나오는 민기에게 약제계 일병 정민이 물었다.
“와! 새로운 중대장님 진짜 레전드인데요? 진료도 엄청 꼼꼼하게 봐주고 허리에 손만 얹었는데도 통증이 싹 가셨어요.”
민기가 흥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말이 돼? 허리에 손만 얹었는데 치료가 된다고?”
동행했던 성환이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네 허리가 멀쩡했던 건 아니고?”
“아닙니다. 저 진짜 허리 아팠습니다. 저 꾀병 부리는 스타일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작업을 허투루 빠진 적이 없긴 하지.”
“약 처방은 받았어요?”
정민이 묻자 민기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허리가 멀쩡해졌는데 약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민기 아저씨. 중대장님한테 완전 빠졌나 보네요.”
“안 빠지고 배겨요? 치료를 이렇게 맛깔나게 해주셨는데? 그럼 고생하세요.”
민기가 경쾌한 걸음으로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성환도 그 뒤를 따랐다.
정민은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맨소래덤 파스와 일회용 장갑을 약장에 넣었다.
“이태원 상병님.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번 중대장님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정민이 소파에 앉은 태원을 보며 말했다.
태원은 어느새 군인들의 워너비 잡지 맥시멈을 훑고 있었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사람 덥석 덥석 믿다가 큰 코 다친다?”
“그래도 저희 직속상관 아닙니까? 믿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나 많이 믿으세요.”
태원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그 일 때문인가…….’
정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민이 김현철 병장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태원은 이전 중대장에게 크게 실망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과거 부대에 심한 복통 환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전 중대장은 환자에게 진통제 계속 처방했고.
병사는 계속 보통을 호소하다가 기절했다.
그리고 뒤늦게 실려간 한국 수도 병원에서 환자는 복막염 판정을 받았다.
충수돌기가 터졌는데도 진통제로 통증을 누르다가 염증이 복부 전체로 퍼진 것이다.
다행히 병사는 죽지 않았다.
후유증으로 하지 않아도 될 개고생을 했지만.
-난 충수돌기염인 줄 몰랐지. 배 눌러봤는데도 그렇게 아프다고도 안 하던데.
이전 중대장의 ‘그 발언’에 태원은 오만정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군의관이라고 하면 치를 떨었다고 한다.
‘하긴 군의관 이미지가 워낙 개판이긴 하니까.’
정민이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왜일까.
정민은 새로운 중대장은 다른 중대장들과 다를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모든 병사를 직접 진료하겠다는 지시를 내리지 않나.
(보통은 의무병이 환자를 1차적으로 거르고 그다음 중대장에게 진료를 보게 한다. 왜냐고? 군의관은 환자 보는 걸 귀찮아하니까. 군의관을 귀찮게 하면 그 불똥이 의무병에게 튈 수 있으니까.)
민기가 호들갑을 떨 정도로 진료를 잘해주지를 않나.
정민의 기대치가 높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호기심에 중대장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봤다.
뉴스 기사란에는 중대장의 이름이 한 가득 도배되어 있었다.
미국에 엄청난 병원에서 수련을 했으며,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켰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도왔으며, 심지어 뉴튜버로도 활동 중이었다.
중대장의 명성을 감안하면 정민의 기대치는 오히려 낮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태원 상병님.”
한 병사가 치료실로 들어와 이태원 앞에 섰다.
이등병이 다 끝나가는 의무병 승범이었다. 승범은 태원과 같은 치료계로 태원의 부사수였다.
“왜?”
“입원실로 잠깐 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왜?”
“고열로 입원한 성인호 환자 있지 않습니까? 수액줄이 빠져서 수액을 다시 놓아야 하는데…….”
“네가 다시 놓으면 되잖아?”
“그게 제가 5번 정도 시도를 했는데 다 실패해서…….”
승범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으이구, 이 화상아. 일병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수액 하나 제대로 못 놔?”
“죄송합니다.”
“가자.”
태원이 신경질을 내며 보고 있던 잡지를 소파에 내팽개쳤다.
치료실을 벗어나 입원실로 들어갔다.
그 뒤를 죄인처럼 승범이 따랐다.
“애무! 네 부사수가 내 팔 벌집으로 만들어 놨어!”
성인호가 태원을 보자마자 하소연했다.
태원이 보니 과연 인호의 왼쪽 팔뚝이 엉망이었다. 혈관이 푸르딩딩하게 부어 있었다.
태원이 승범을 째려보았다.
승범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환자 체온은?”
“37.7도입니다.”
“그럼 수액은 계속 맞아야겠네. 그건 그렇고 애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애무를 애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불러?”
인호가 맞받아쳤다.
애무는 의무병을 비하하는 호칭이었다.
치료를 할 줄 모르는 주제에 환자를 대충 만져주기만 한다고 해서 붙은 호칭이었다.
“오른쪽 팔뚝도 벌집 되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을걸?”
태원이 침상에 올라갔다.
고무줄로 인호의 오른쪽 팔뚝을 묶었다.
앙상하게 마른 팔뚝에 좀처럼 혈관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X. 저번에도 힘들게 놨는데 하필 수액줄이 빠질 게 뭐람?’
태원이 투덜거렸다.
그리고 소독 솜으로 그나마 도드라진 혈관을 문질렀다.
엄지로 혈관을 고정한 뒤.
주삿바늘로 과감하게 혈관을 찔렀다.
푹!
아…….
빗나가 버렸다. 바늘 끝에 피가 맺히지 않았다.
상병 짬이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