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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19화 (419/424)

419화

제81장 의무중대장(5)

“으으으…….”

또 그 통증이었다.

얼음송곳이 광대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

고통은 날카로우면서도 차가웠다.

철순은 이를 앙 다물면서 왼쪽 뺨에 한 손을 얹었다.

그런다고 통증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철순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대대원들을 통제하는 것처럼 괴로움을 통제하는 느낌이 들었다.

감히 나랑 기 싸움 하려고 겁주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명의인 거야?

철순이 준후가 앉았던 소파를 응시했다.

무언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정보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철순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조금 유치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준후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뭐…… 뭐야?”

부엉이 눈처럼 휘둥그레지는 철순의 눈.

기사란에 준후 소식이 도배가 되어 있었다.

1주 전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소식도 있었고 그 뒤로도 미국에서 수련을 했네.

어려운 수술을 성공시켰네.

병원 바깥에서 위독한 환자를 살렸네.

경제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도왔네 등등.

준후와 관련된 기사는 끝이 없었다. 이렇게 스크롤을 계속 내리다간 엄지가 지칠 것 같았다.

검색을 끝낸 후.

철순은 준후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거창한 병에 걸렸을까 싶기는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정상이면 정상이라서 좋고.

환자라면 빨리 치료를 받아서 좋은 것 아닌가.

어쩌면 철순이 준후를 의심한 건.

단순하게…….

자신이 곤란한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었다.

“네. 예약 취소해 주세요.”

철순은 곧바로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잡힌 진료 예약을 취소했다.

치아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면.

굳이 치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부우우웅.

퇴근 시간에 맞춰서 철순은 간부 주차장에 있던 승용차를 끌고 군부대를 벗어났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응급의학의를 만나 증상을 설명했다.

응급의학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역시 준후와 마찬가지로 ‘그 질병’을 의심했다.

“일단 신경과 의사에게 연락했습니다. 자세한 건 신경과 의사랑 이야기 해보시고요.”

응급의학의가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MRI 촬영도 해보시죠.”

“MRI씩이나요?”

“확진을 하려면 MRI가 필요합니다. 문진으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응급의학의에 설명에 철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준후는 어떻게 자신이 ‘그 질병’에 걸렸다고 확신했을까.

오늘 중으로 꼭 신경과가 있는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진료를 받으라고 했을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혹시 삼차 신경통이 아닐 확률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검사 없이 질환을 확진하는 케이스는 드뭅니다.”

“그렇군요.”

철순은 응급의학의의 권유에 따라 MRI 촬영을 했다.

좁고 답답한 촬영 기계 안.

눈을 감아 새까만 어둠.

우우우웅 하는 기계의 진동.

검사를 받는 동안 뭐랄까, 우주에 버려진 우주비행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독을 물리치기 위해.

철순은 삼차 신경통이라는 질환을 속으로 되뇌었다.

삼차 신경통.

얼굴과 머리에 관련된 신경을 삼차 신경이라고 한다.

삼차 신경에 외상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적인 변화가 생기면 삼차 신경통이 발생한다고 한다.

검색해 본 바에 따르면 심할 경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

준후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본인 진단에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건지.

단순히 철순을 안심 시키려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검사가 끝난 후 돌아 온 응급실.

30분이 지난 후.

철순은 문제의 신경과 의사와 마주했다.

“환자분이 앓고 있는 질환은 삼차 신경통이 맞습니다.”

신경과 의사가 마우스 포인터로 MRI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정맥의 한 분지가 삼차 신경을 짓누르고 있어요. 이래서 얼굴이 시렸던 겁니다.”

무슨 말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설명이었다.

몸에 큰일이 난 듯싶었다.

부대원 앞에서는 늘 근엄한 철순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수술을 받아야 합니까?”

이어지는 신경과 의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

분명 어디서 누군가에게 들어본 말이었다.

* * *

그날 저녁.

준후는 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신원대 병원과 가까운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허전하네.’

주차장을 나오는 준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군의관으로서 군복무 중인 대한민국 청년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것은 분명 보람찬 일이었다.

오늘만 해도 10명 가까운 환자를 보았고, 개중에는 허리 디스크 초기인 환자도 있었다.

준후가 내공으로 환자의 척수를 밀어 넣지 않았다면 환자는 분명 전역쯤에 디스크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바로 ‘집도’라는 갈증 말이다.

의무중대장이라고는 해도 준후가 집도를 할 수는 없었다.

군 병원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 동안 집도를 하지 못 한다니!

이는 메이유에서 7년간 갈고닦은 솜씨를 하수구에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준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녁 6시 이후는 퇴근 시간이니까 알바라도 해볼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했다.

외과 계열 페이 닥터는 없어서 못 구하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법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군대는 군의관의 겸직을 허용하지 않았다.

법의 그물을 피해간다고 해서 만사형통인 것도 아니었다.

몰래 병원 근무를 하던 도중.

또는 수술을 하던 도중.

부대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술하던 환자를 내팽개칠 수도 없고 부대에 안 가볼 수도 없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역시 방법은 하나뿐인가.

준후는 문득 해결책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집도를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존재하긴 했다.

이 역시 대한민국에서 오직 준후만 가능한 일이었다.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담당님.”

준후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선생님. 오랜만에 연락드렸네요. 요즘은 별일 없으세요?

“말하자면 끝도 없죠. 담당님은 어떠세요?”

준후의 통화 상대는 MCN 업체의 담당자 영은이었다.

-저도 큰일은 없는데. 요새 목이 쑤시더라고요. 거북목에 라운드 숄더가 있는 것 같아요.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는 보통 짝꿍이었다.

모니터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목을 앞으로 빼면서 어깨도 같이 앞으로 말려 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의 고질병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사실 웃고 계신 거 아니에요?

영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렸다.

“무슨 뜻이죠?”

-동영상 촬영해달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니까요.

“잔소리라니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리였는데.”

준후가 피식 웃었다.

입대하면서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겼다.

겸직 조항 원칙이 또 발목을 붙잡았다.

뉴튜브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 하는 것 또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즉 준후의 뉴튜브는 앞으로 3년 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일단 채널은 최대한 살려볼게요. 기존에 찍었던 영상을 편집하거나, 총집합편을 만들거나, 아니면 업로드 안 했던 영상을 올려볼게요. 그럼 뉴튜브 수익이 계속 나오긴 할 거예요.

“그래도 되나요?”

-제가 알아봤는데 상관없대요. 영상을 새로 찍어서 올리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편집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고마워요. 영은 씨.”

준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솔직히 영은이 이렇게까지 준후를 챙겨줄 이유는 없었다.

영상을 6개월 동안 안 올려서 수익 창출이 막히면 막히는가 보다 하고 넘어갈 문제였다.

다른 담당이었으면 분명 할 일이 줄었다며 쌍수를 들고 반겼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주말에 시간 어때요? 내가 근사하게 한 끼 살게요.”

-정말요? 전 이런 거 거절 안 해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리 생각해둬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또 연락드릴게요.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이 기회에 거북목하고 라운드 숄더를 치료할 수 있는 지 확인해 봐야겠어.’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준후가 중얼거렸다.

무공 중에는 뼈를 움직이는 무공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역용술과 축골공이었다.

역용술이라 하면 뼈와 근육을 조작해서 외모를 감촉 같이 바꾸는 기공술이었고.

축골공도 역용술과 비슷하지만 좀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뼈를 탈골시킨다거나 등등.

역용술과 축골공의 이치를 잘 살린다면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도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세한 건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도착한 신원대 병원.

현재 시간은 저녁 6시 40분이었다.

외래 진료 시간이 지난 탓에 병원을 출입하는 사람이 적었다.

본관으로 향하는 보도가 평소보다 휑했다.

병원이 코앞에 있는데 수술을 못한다니……!

이보다 원통할 수가 있을까.

본관 건물 앞을 서성거리며 준후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8시가 되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었는데도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괜히 불안한 마음에 준후는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공허하게 울릴 뿐 수신은 없었다.

사실 준후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영이었다.

오늘 저녁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후는 흉부외과 당직실에도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응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 뿐.

아영이 응급 수술에 들어갔으리라.

경황이 없어서 자신에게는 연락을 못할 것일 테고.

언제 수술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앞으로 1-2시간은 더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듯했다.

터벅. 터벅.

준후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역 근처 모텔에 대실비를 치르고 방 안에 들어갔다.

쉬려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수술을 안 했으니 쉬어야 할 만큼 에너지를 쏟은 일도 없었다.

단전에 저장된 내공.

6서클 마나 서클로 인해 피로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덕분도 있었다.

오히려 준후는 에너지를 쏟기 위해 모텔을 찾았다.

준후는 방 한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팟! 팟! 팟!

내공을 담은 검지로 후두부에 위치한 시신경을 자극했다.

순간적으로 시력이 좋아졌다.

사물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정밀하게 보였다.

내공으로 시력을 높인 것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두 눈을 감고.

까만 어둠을 도화지 삼아 준후는 그림을 그렸다.

점혈법으로 자극된 시신경이 미친 듯이 준후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준후의 머릿속에 수술방이 펼쳐졌다.

차가운 수술대와 환한 무영등.

삐이이 삐이이, 기계음을 토해내는 환자감시 장치.

수술 도구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드레싱 카트 등등.

수술대 위에는 예전에 큰 고생을 하며 분리 수술을 했던 샴쌍둥이가 누워 있었다.

준후는 예전의 수술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시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실제와 똑같이 재현할 수 있었다.

한 번 더 집중하자 과거를 함께 했던 영광의 동료들.

오스틴, 헥터, 레이먼드까지 창조해낼 수 있었다.

그것도 실감나게!

이것이 바로 준후가 아까 떠올린 묘수.

상상 집도였다.

머릿속에서 수술을 하면 누가 준후를 잡아갈 수 있겠는가.

‘슬슬 시작해 볼까?’

준후는 오스틴에게 눈짓을 하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과거와 달리 상상 속에서는 준후가 집도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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