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424화 (424/424)

424화

제82장 응급(5)

“그래요. 그렇게 해요.”

소파에 앉아 있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를 끊었다.

사내는 뿔테 안경을 낀 지적인 외모의 중년 남성이었다.

남성의 이름은 이동원.

한국 도수 병원의 병원장이었다.

그는 집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걸려온, 뜻밖의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부병원장 김명진이었다.

동원과 병원 운영에 관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우연치 않게 통화 내용까지 엿듣고 말았다.

“자네가 뭘 들었는지 모르겠군.”

동원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방금 이상한 수술을 허락하신 것 아닙니까? 외부 의사가 우리 병원에서 집도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자네 초능력자야? 그걸 어떻게 엿 들었지?”

“중간에 혼잣말을 하셨잖습니까.”

“내가 그랬나?”

본인의 버릇을 떠올리고 동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외부 의사는 아니고 군의관이지.”

“아무리 군의관이라도 저희 병원 소속은 아니지 않습니까? 환자에게 문제가 터지면 우리가 독박을 쓸 겁니다.”

명진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강경한 주장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취소하셔야 해요. 한 달 전에 일어난 사건을 잊으셨습니까?”

“그거야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지.”

동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블랙커피가 사약보다 씁쓸했다.

고작 한 달 전.

한국 도수 병원에서 대형 사건이 터졌다.

간호사가 주사제 투약 실수를 하는 바람에 입원 중이던 환자가 반신불수가 됐던 것이다.

그 사건으로 동원은 국회에도 불려갔다.

그때 동원은 쥐 잡히듯이 국회의원들에게 잡혔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이번 사건까지 터지면 병원장님이라도 감당 못합니다.”

“쯧쯧쯧.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제가요?”

“그래. 수술을 허락한 건 나를 위해서야.”

예상치 못한 답변에 명진이 한 번 더 놀랐다.

명진이 보기에 동원은 병살타를 때린 것처럼 보였다.

상황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귀 열고 잘 들어봐.”

동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응급실 환자 중에 원 스타가 있다.

허혈성 뇌경색으로 혈전 용해제를 투여 받던 도중 치료가 꼬인 덕분에 환자에게 당장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닥쳤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당장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서전이 없어서 환자를 후송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당연히 후송을 보내야죠.”

“그럼 당연히 우리가 또 욕을 먹겠지.”

동원이 검지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당연한 일을 해도 욕을 먹는다고요?

“그래. 우리 처지가 지금 그래.”

이어지는 동원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후송을 한다는 건 말이야…… 우리가 환자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무능력을 광고하는 꼴밖에 안 돼.”

“…….”

“게다가 헬기가 못 뜨는 상황이야. 환자가 대학병원까지 이동하는 중에 신경학적 결손이 생길 위험이 크지.”

“…….”

“그럼 책임 소재가 또 우리 쪽에 넘어오지 않겠나?”

“하…… 그건 곤란하네요.”

명진도 더 반박을 못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니 동원의 판단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그 사건이 아직 뜨거운 시점.

원 스타 장교의 치료가 다시 이슈로 점화된다면 큰 타격으로 돌아올 게 분명했다.

“그래도 문제의 군의관이 수술에 실패하면 말 그대로 최악 아닙니까?”

“그럴 염려는 없어. 분명.”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집도의가 서준후 선생이거든.”

“서준후면 메이유에서 그랜드 마스터 자격증을 땄다는 그 전설의 신경외과 서전 맞습니까?”

“그래. 하늘이 우릴 도운게지.”

말을 마친 동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고. 그 전설의 집도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자고.”

* * *

그 시각.

준후는 빠른 걸음으로 수술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장과의 통화는 의외로 싱겁게 해결됐다.

사정을 설명하자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던 것이다.

변수는 의외로 다른 곳에서 터졌으니 바로 환자와 보호자 쪽이었다.

그들은 군 병원에서는 죽어도 수술을 안 받겠다고 버텼다.

한시라도 빨리!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해달라고 밀어붙였다.

준후는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써야만 했다.

필살기를 보여주자마자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을 승낙했다.

필살기가 무엇이었냐 하면.

국내 최고의 포털 사이트에 준후의 이름을 검색해서 뉴스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카페를 습격했던 자동차 사고의 응급처치를 했던 일.

메이유에서 그랜드 마스터 칭호를 받은 일 등등.

뉴스란에는 그동안 준후가 이룬 성취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사를 다 스크롤 하려면 엄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환자분이 후송을 가고 싶어 하는 그 어떤 대학병원의 서전보다 제가 더 잘났습니다.”

“…….”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후송을 가실 겁니까?”

그 한마디로 게임 종료였다.

환자는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제 손으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그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환자는 수술실로 이동했고 준후도 민석과 함께 수술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평판이 중요하긴 하단 말이지.’

준후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평판과 명성이 없었다면 준후는 결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자는 타 병원으로 이송을 갔을 테고, 뇌신경에 후유증이 남았을 위험이 컸다.

“와. 이게 정말 되네요.”

조금 뒤처져서 걷던 민석이 한 마디 했다.

“서 선생님이라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병원장님도 모자라서 환자랑 보호자까지 단숨에 설득하다니.”

“그동안 열심히 의사 노릇한 게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준후가 슬쩍 민석을 돌아보았다.

“수술 같이 들어가게요?”

“네. 믿을 만한 퍼스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직은 누구에게 맡기고요?”

“레지던트에게 연락했습니다. 설마 수술 환자가 또 오지는 않겠죠?”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3층 수술실에 도착해서 곧바로 소독실로 향했다.

벅. 벅. 벅.

소독솔에 소독액을 묻히고 손가락과 손등, 팔뚝을 힘차게 문질렀다.

빨간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모처럼 하는 스크럽이 반가웠다.

메이유를 떠난 후 자그마치 2개월 만에 하는 스크럽이었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상상수련을 했으므로 수술 감각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컨디션은 오히려 최상이었다.

준후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의사 가운, 수술모, 수술 마스크, 수술 장갑들을 차례대로 착용했다.

그제야 집도를 하게 됐다는 사실이 한층 더 실감났다.

“선생님. 이번 수술 정말 괜찮을까요?”

“왜요? 일이 잘못될까봐 걱정됩니까?”

“……네. 서 선생님이야 백퍼센트 믿지만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잖아요. GCS(의식 점수)도 4점대로 주저앉았고요.”

“별일 없을 겁니다.”

준후가 침착한 목소리로 민석을 안심시켰다.

환자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출혈 부위가 하필이면 중대 뇌동맥이었다. 출혈이 파열로 진행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술의 핵심 포인트는 ‘속도’였다.

얼마나 빨리 수술 부위에 접근할 수 있느냐.

지이이잉.

수술방 문이 열렸다.

천장에서 새하얀 소독액 연기가 쏟아져 내렸다.

에어 샤워를 마친 후 입장한 수술방의 구조는 익숙했다.

정면에 수술대가 놓였고, 천장에 미세 현미경이 달려 있었으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이 휘황찬란한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수술대 옆으로는 환자 감시 장치를 비롯해 제세동기, 산소 호흡기 등등의 기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수술방에는 이미 2명이 먼저 와서 대기 중이었다.

수술방 간호사와 세컨드 어시스트를 맡은 레지던트로 보였다.

그 두 사람은 수술 준비도 미리 다 해놓았다.

준후가 자연스럽게 집도의 위치에 섰다.

“이번 수술을 맡게 된 서준후라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수술이 끝나고 나서 드리죠. 전신 마취는 끝났습니까?”

“네. 선생님.”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준후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무영등 아래 환자의 민머리가 반질반질 윤기가 났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밀었기 때문이다.

준후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옮겨졌다.

항고혈압제와 지혈제, 이뇨제를 제 때 투여한 덕분인지 혈압과 맥박이 정상 수치로 돌아와 있었다.

심전도 리듬과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편히 놓을 순 없었다.

수술 진행도에 따라서.

병의 악화여부에 따라서.

춤을 추는 것이 저 수치들이니까.

“지금부터 중대뇌동맥 출혈환자에 관한 두개 감압술과 혈종 제거술을 펼치겠습니다.”

준후의 말에 퍼스트를 맡은 민석이 환자의 머리를 소독하고 그 위에 방포를 덮었다.

“잠깐만요. 선 그을 필요 없어요.”

“네?”

환자의 머리 위에 선을 그으려던 민석을 준후가 만류했다.

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치만 매직으로 절개창을 표시하는 건 루틴 아닙니까? 혹시라도 두피 절개를 잘못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민석의 목소리에 걱정이 섞였다.

“저는 그런 거 없어도 됩니다. 수술 시간을 최대한 단축할 필요도 있고. 10번 주세요.”

“네. 선생님.”

딸칵!

소독 간호사가 칼대에 칼날을 꽂아 건넸다.

준후는 절개 표시선이 없음에도 환자의 두피를 깔끔하게 절개해 나갔다.

지름 4센티미터 정도 되는 원.

절개 깊이는 4센티미터.

꼭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처럼 완벽한 절개창이 만들어졌다.

“와…… 신기하네.”

“수학 선생님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이를 지켜보던 민석과 레지던트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감탄할 시간 없어요. 피 닦고 리트랙터(견인기) 준비해요.”

“네. 알겠습니다.”

“네. 선생님.”

준후의 지시를 받은 민석과 레지던트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준후의 계획대로였다.

최고의 리더십이 무엇인가.

준후는 단연코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수술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수술 중에 환자가 죽지 않겠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좋아야만 어시스트들이 믿고 따를 것이다.

항해술이 어설픈 선장을 선원들은 결코 따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목표는 한 시간 안에 중대뇌동맥에 도달하는 겁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세요.”

“하…… 한 시간이요? 보…… 보통 3시간은 걸리지 않나요?”

놀란 민석이 말까지 더듬었다.

민석은 준후의 말이 어쩐지 위험하게 들렸다.

뭐랄까.

수술을 대충 날리겠다는 의미로 들린다고 할까.

환자가 아무리 위독하다고 해도 수술 과정은 항상 완벽하고 정확해야만 했다.

“제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죠.”

준후의 눈이 초승달 모양을 그리며 웃었다.

준후는 모처럼 만화공을 펼쳤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공이 무럭무럭 준후의 몸 주변에서 발산되었다.

동시에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각의 감각을 하나하나 선명하게 구별해서 느낄 수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드릴 주세요. 2개.”

“2개를요?”

이번에는 소독 간호사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준후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잖아요? 양손을 쓸 거니까.”

준후의 선언에 수술방이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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