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영약을 모으는 삼류무사(3)>
근래에 들어 기분이 썩 좋았던 홍사련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다시금 새겨졌다.
계연승이 쫓겨나고 부생당에 새로운 당주가 들어오면서 조용히 지냈던 계철영이,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허세를 부리기 시작한 것.
“설매단이 무엇이냐? 화산 내에서도 자소단 다음으로 내공 증진에 효과가 좋고, 특히나 몸의 기틀을 닦아주는 효용성으로는 소림의 소환단을 훨씬 웃도는 영약이란 말이지. 화산 내에서도 진신 제자나 되어야 한 알 겨우 얻어먹을 수 있는 귀한 영단이란 말이다.”
‘그 귀한 영약을 우리 아버지와 화산파 제자이신 삼촌께서 나를 위해 구해주셨다.’라는 말이 뒤따라 오겠지.
홍사련은 다음 말을 듣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똑같은 말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하고 있어서, 마치 외우지도 않은 무공 구결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네.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지? 그래서 말야…….”
생각 같아선 ‘어쩌라고 등신아!’라고 한껏 내질러 주고 싶지만, 상대는 후원금 내주는 귀한 집 아들.
홍사련이라고 계철영이 부럽지 않은 것 아니다.
그녀도 천생이 무림인인지라 영단에 대한 갈망만큼은 남들 못지않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우울감에 빠져 있기엔 그녀는 문주의 외동딸로서 짊어진 것이 너무 많았다.
“사저! 사저! 진 사형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저! 혹시 소운 사형 탈문하는 건 아니겠죠?”
“사저! 제가 두 끼만 먹으면…… 사형이 돌아올까요?”
병아리 같은 사제들은 집 나간 사형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막냇동생 같은 진 사형은 당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외당주에게 물어봐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망할 인간.’
사련도 계철영과 계연승의 패악질에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던 참이었다.
어차피 진 사형이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이 나서려 했었던 일.
아니, 본래라면 사형이 아닌 자신이 해야 했었던 일이었다.
결국 차기 태을문은 자신이 짊어져야 했으니까.
계철영은 무림학관만을 목적으로 들어온 기회주의자일 뿐이고, 어린 사제들 중 절반은 결국 가업을 잇거나 운이 좋아 표사직을 구하면 잘 풀린 것이리라.
진소운 사형이 있지만 태을문의 암울한 미래를 알고도 이 짐을 떠 넘길 정도로 사련은 뻔뻔하지 않았다.
사련은 그런 무거운 마음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계연승의 무공이 두려워, 계연석의 보복이 두려워 제때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던 중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긴 건지.’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어떻게 이긴 건가 하는 의문은 제쳐 두고서라도, 그날 사건 이후로 매일같이 태을문에 바짓단을 휘날리는 계연석의 눈에 띄지 않게 태을문을 나가버린 건, 아마도 사형의 배려였을 것이다.
계연석이 얼마나 옹졸하고 끈질긴 인간인진 누구나 잘 아니까.
그걸 위해 진소운은 일부러 문밖으로 나간 것이다.
“사저! 사저! 이것 좀 드셔보세요!”
“사저! 이 고기 정말 맛이 좋아요!”
떡과 고기를 들고 눈앞에 내미는 강아지 같은 어린 사제들의 모습에, 홍사련은 자신이 고심 속에 빠져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룡상단에 화산파의 고수들이 온 기념으로 태을문에서도 작게 잔치가 열렸다.
물론 계연석과 계연승은 화산파의 고수들을 접대하느라 태을문에 들를 여유까진 없었고, 덕분에 태을문의 사람들은 저들끼리 편하게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근데, 진 사형은 진짜 어디 간 걸까요? 진 사형이 이 떡 정말 좋아했는데.”
“사저! 이 고기 진 사형을 위해서 남겨 놓아도 될까요?”
초롱한 눈으로 연신 침을 삼키던 사제가 한껏 인내심을 발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 녀석도 얼마 만에 보는 고기인데 그걸 양보할까.
홍사련은 어쩐지 쓰린 마음에 녀석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아마 그때가 되면 고기가 다 상해서 못 먹을 거야. 그러니 아끼지 말고 먹으렴.”
“그럼 진 사형은 언제 오나요?”
“금방 올 거야.”
홍사련은 별일 아닌 척 어린 사제들의 고기와 떡을 하나씩 뺏어 먹었다.
‘진짜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이 화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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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열 냥 쳐 줍세.”
전생 내내 이 기억력을 저주하기만 했으나 아주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령, 지금과 같이 변화하는 시세를 빌미로 가격을 후려치려는 몰염치한 상인의 뒤통수를 때릴 때 아주 좋았다.
“허, 무슨 소립니까. 요즘 절강성에선 이 호피 가죽을 못 구해서 안달이라고 하는데. 그쪽에선 시작가가 은화 삼십 냥입니다.”
항주로 대표되는 절강성은 물자가 많이 모이는 만큼 주변 성들에 시세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그래도 성 하나 넘는 데 은화 이십 냥이나 차이 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야 멀쩡한 호랑이 가죽일 때야 그런 값을 받는 거지.”
“이걸 보십쇼. 호랑이 가죽에 그 흔한 화살 자국 하나 없지 않습니까. 이런 물건을 은화 열 냥밖에 안 쳐준다는 건 관청에 끌려가도 할 말 없는 이야깁니다.”
“이 젊은 친구가. 눈이 멀었나. 이게 멀쩡한 가죽이야?”
사내는 호랑이 가죽을 쫙쫙 펴 보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가죽이 이렇게 말라비틀어졌어. 나 정도나 되니까 10냥이나 쳐주는 거야. 다른 데 가면 그 절반도 못 받아!”
“…….”
머릿속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말라비틀어져 버린 가죽을 되돌리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난 호쾌하게 인정하고 은화 10냥을 받았다.
애초에 호랑이 가죽을 얻은 것도 계획에는 없던 일이니까.
인면지주의 내단을 흡수한 뒤로, 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잘못하다간 여지없이 마인인데.”
무림맹이 선정한 십(十)대 금공 중 하나가 흡성대법.
흡성대법은 십(十)대 금공 중에서도 사(四)대 악공으로 따로 분류할 만큼, 무림맹에선 치를 떠는 마공이다.
이 청룡환이 내단을 흡수하는 과정을 보자면 여지없이 흡성대법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무엇보다 이걸 처리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역시 그 흡혈괴마놈 유품이 멀쩡할 리 없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무턱대고 모든 걸 흡수하진 않는다.
식물이나 바위 등의 것에선 아무런 기운도 흡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슴이나 토끼 같은 짐승에게선 기운을 흡수했다.
그냥 흡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생명체의 생기를 변환하여 진기로 흡수하였다.
이는 흡혈괴마와 같은 수준으로, 얄짤 없이 무림맹의 척살 대상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호가 발견된 산의 깊숙한 곳까지 찾아가 목숨을 걸고 청룡환을 시험해 봤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흡성공자 진소운 탄생.
장하다 진소운 기껏 회귀해서 얻은게 마공이라니.
특히나 이 청룡환의 흡수 능력은 상상을 완전히 초월했는데.
대호가 사납게 달려드는 탓에 힘 조절을 못 하고 청룡환을 발동시키자, 대호의 모든 수분기를 날려버려 바삭바삭한 건조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장하다! 진소운. 기껏 회귀해서 얻은 게 마공이라니. 장하다 장해.”
당장 걱정해야 할 것은 내 목숨뿐만이 아니다. 이 사실이 무림맹에 전해지는 순간.
나는 물론이고 아버지, 문주님, 당주님들을 포함해 태을문의 모두가 무림맹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것이다.
무림맹 지하실은, 저지르지 않은 죄도 만들어 자백하게 할 정도로 모진 고문을 하는 곳이다.
어린 사제들은 삼 일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따라 흡성대공을 익혔다 자백하겠지.
“이번에도 죽으면 다음 기회도 있으려나.”
막연한 일에 희망을 거는 대신 청룡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청룡환이 내 의지를 잘 따라주긴 한다.
지난번처럼 뜬금없이 갑작스레 빛을 발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사선 절대 안 되니까.
그것도 믿지 못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포목점에 들어가자 어두운 천으로 손목을 돌돌 둘러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멀쩡한 왼손을 자르지 않은 연유는, 생기든 내기든 흡수하여 내공으로 만드는 대신 그 기운 자체는 내가 가진 태을심법과 똑같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선 좀 더 순수한 형태로 흡수되어 태을심법과 금방 합쳐진다.
흡성대법의 특징 중 하나인 흡수한 내기의 분리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눈앞에서 상대의 기를 흡수하는 장면을 들키지 않는 이상, 단전을 살피는 것만으론 흡성대법을 익혔다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들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건 엄청난 비장의 무기를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사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림맹의 지하실에 끌려가는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니까.
“혹시 덫도 취급합니까?”
“응? 애초에 알고 이곳으로 온 거 아닌가? 우리가 합비 최고의 엽사 품목점 아닌가.”
“그럼 범용이랑 곰용 덫 좀 주십시오.”
“으잉? 덫으로 사냥을 하려고? 그럼 가죽이 많이 상해서 제값 못 받을 텐데. 차라리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게 낫지.”
“가죽을 벗기려는 게 아닙니다.”
“흠. 하긴 요즘은 웅담이 좋은 가격을 받으니까. 몇 개나 줄까?”
“한…… 서른 개 정도 주십쇼.”
“으잉?”
“사냥해야 할 놈들이 여간 영악한 게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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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상단은 근래 다시 없을 정도로 떠들썩하게 주연을 베풀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화산파 고수의 방문은 계룡상단과 화산파의 관계를 소문낼 수 있는 좋은 기회.
사방 십 리에 방까지 붙이며 손님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술과 안주를 베풀었다.
평소 그와 거래하던 상대들은 자신들에게 그렇게 인색하던 이가 통 크게 주연을 베푸는 모습에 빈정이 상해 참석하지 않았지만, 근방에 술꾼들은 서로를 챙겨가며 주연에 참석했고, 계룡상단에선 밤이 새도록 불이 꺼지지도 음악이 멈추지도 않았다.
주연의 절정은 합비 최고의 기녀인 월향의 가무였다.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리에 버티고 앉았던 술꾼들도, 그 보기 어렵다는 월향의 얼굴을 한번 보기 위해 계룡상단의 중앙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사드리거라. 화산파 최고의 무사님들이시다.”
계연석이 거들먹거리며 두 화산파 고수를 띄워주자, 월향이 면사를 스르르 내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월향이라 하옵니다.”
계연석의 옆에 앉은 계철영은 물론이고, 화산파의 고수들까지. 안면 근육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특히나 춤을 추는 순간순간 슬쩍슬쩍 치마 사이로 하얀 살결이 보일 때마다, 장내에는 알 수 없는 신음이 진하게 깔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신경이 온통 월향에게 쏠려 있는 순간, 추혼객이 등불과 등불 사이로 몸을 숨겨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계룡상단의 담장을 넘었다.
‘성공이다!’
추혼객은 생각했다.
이것만 있으면 이제 지긋지긋한 도둑질 생활도 끝이다.
약관의 나이에 강호에 던져져 마땅한 가르침도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구르며 곁다리로 배운 몇 가지 재능.
그중 투술이 가장 뛰어나 도둑질을 하게 되었지만, 이는 결코 추혼객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광천신장의 비급서.
후인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고 알려진 광천신군의 최종절기였다.
그렇게 광천신장의 비급서를 얻었지만 비급서에는 중요한 내공심법은 있지 않고 장법만 존재했다.
한데 이 광천신장이란 장법이 전설로 내려오는 파괴력답게 엄청난 양의 내공을 필요로 했기에, 추혼객에겐 개발의 편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강호는 이제 광천신군의 재림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품 안의 설매단, 그리고 광천신장.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이제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흐흐흐.”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 순간.
“거봐. 여기로 올 거라 그랬지.”
“허허. 진짜 훔쳐 왔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추혼객은 쿵 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
추혼객은 재빨리 신법을 전개해 도망치려 했지만, 두 사람이 퍼트리고 있는 살기의 범위가 너무 넓어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통상 이럴 땐, ‘누구냐?’라고 하지 않나?”
“그러게, 꽤 입이 무거운 놈인가 보네. 우리 무림맹에서 일하면 좋겠는데.”
긴장감이 하나도 없는 말들을 나누며 나타나는 두 사람.
한 자루의 검과 함께 도포에 그려진 구름무늬.
추혼객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점창파’
추혼객은 순식간에 머리를 굴렸다.
영단을 나누자고 할까?
무림맹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으니, 살인은 하지 않을 터.
얼른 먹고 째볼까.
“저 녀석 머리 굴리는 거 봐.”
“어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순간 바로 목을 자를 테니 그리 알아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추혼객은 곧장 모든 걸 포기했다.
‘그래,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낫다.’
추혼객은 얼른 무릎을 꿇었다.
“이놈이 재물에 눈이 멀어 헛짓거리를 했습니다요. 살려만 주십시오.”
추혼객은 품 안에 작은 목갑을 꺼내어 납작 엎드렸다.
설매단을 회수하고 나면 무림맹에 갇히겠지만, 최소한 이들 두 사람이 설매단에 욕심을 낸다면 무림맹에서 옥살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게 그 설매단인가?”
“내용물 확인해 봐. 도둑놈은 영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디.”
설매단을 가져간 사내가 목갑을 열었다.
퐁.
공기가 들어차는 소리와 함께 엎드려 있는 추혼객의 코로도 상쾌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진짜가 맞네.”
“그래?”
“저 대협들께 소인이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응?”
“전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뭐라는 거지?”
“계룡상단의 상단주는 평소 욕심이 많고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방자한 인간이라 알고 있습니다. 대협들께서 설매단을 찾아다 주신다 한들. 그자가 보답이나 하겠습니까. 차라리 설매단을 대협들께서…….”
“하하, 이놈 보게.”
“참나. 우릴 뭐로 보고.”
말은 그러했지만 두 사람의 오가는 눈빛을 보고 추혼객은 확신했다.
여기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겠다고.
“그럼 소인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추혼객은 어쩐지 두 발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느꼈다.
“녀석아. 우리가 증인을 남겨두리라 생각했느냐?”
“흑도 놈치고도 꽤 순진하구나. 대체 추혼객이란 이름은 어찌 날린 것이지?”
추혼객은 ‘빌어먹을’이란 말을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얼른 처리하고 가지.”
“잠깐. 이런 녀석들은 가장 귀한 보물은 항시 품 안에 넣고 다니는 경우가 있거든. 이거 봐.”
사내가 추혼객의 품속에서 비급 하나를 꺼내었다.
“확인은 나중에 하지. 아마 곧 설매단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겠지.”
퍽.
사내가 바닥에 장력을 쏘아내자,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발로 추혼객의 시체를 구멍에 넣은 사내들은 대충 시체를 덮고 자리를 뜨려 했다.
바스락.
그 순간 두 사람의 귓가에 두 사람이 내지 않은 소음이 울렸다.
“누구냐.”
“나오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이윽고 숲속에서 나온 인영은 약관이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
“누, 누구십니까?”
“네놈이야말로 간밤에 이곳까진 무슨 일이지?”
혹시 본 것일까?
시간의 차이가 나는데?
사내들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히는 가운데.
“계룡상단에서 주연을 벌여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단 소릴 듣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근데 그만 길을 잃어…….”
“혹시 봤느냐?”
“무얼 말씀이십니까?”
“…….”
질문했던 사내가 동료를 바라보자, 동료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리 오거라. 내 계룡상단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마.”
“……저, 죄송하지만 수상해서 그러니 그냥 가시던 길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
“…….”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었다. 놈은 분명 보았다.
그렇게 시선이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내가 바닥을 박차고 청년 앞에 나타났다.
“운이 좋지 않았다. 우릴 원망 마라.”
단매에 검을 날리려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했다.
“시벌롬들이 개뻔뻔하네. 점창에선 그런 식으로 가르치더냐?”
“헙!”
단숨에 베어 내기 위해 점창의 검술을 숨기지 않고 휘둘렀건만, 어이없게도 검이 가로막혔다.
검을 맞부딪친 순간, 관절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는데.
콱.
“끄아아악!”
발목을 끊어낼 듯 날카로운 이빨의 감각.
은밀함이 생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창오검 구일무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넌 누구냐!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발목을 파고드는 덫을 막아내기 위해 온몸의 내기를 끌어당기고 있지만, 이미 파고들기 시작한 덫의 이빨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순진한 얼굴과 음성을 내뱉던 청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누구긴 누구야. 점창파의 도둑놈들이지.”
“……네놈 정체는 무엇이냐.”
“설매단의 새로운 주인.”
진소운이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