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7화 (7/357)

#7. <사문의 명예를 지키는 삼류무사>

철검문과 태을문이 원한을 진 이유를 찾자면 별것 없다.

같은 합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

사실 이것도 태을문에 입장에서 보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태을문은 무려 오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고인물이고, 철검문은 끽해야 백오십 년이 조금 안 되는 파릇파릇한 새싹이었다.

태을문 입장에서 보면 아직 건물 기둥에 진액도 안 마른 놈들이 깝죽대는 꼬라지였지만.

백오십 년 전 나타난 귀검선옹 성현백이란 걸출한 인물이 기틀은 탄탄하게 잡아놓은 바람에, 이제 와선 그 새파랗게 어린놈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였다.

덩치가 커지면 백 칸의 대궐도 좁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철검문은 언제나 세를 확장하고 싶어 했고, 우리 태을문은 그런 철검문의 걸림돌이었다.

‘백팔봉’이라는 직위를 가졌다는 건 무림맹이라는 큰 형님을 뒤에 둔 격으로, 상대가 아무리 비리비리하더라도 쉽사리 손대선 안 되었기에, 철검문은 언제나 태을문을 빼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들어가고 싶어했다.

“특히 ‘특별전형’을 받지 못한다는 게 더럽게 아니꼬웠겠지.”

가뜩이나 무림학관에 들어갈 때 봐야 하는 정시가 어려운 만큼, 특별전형이라는 혜택은 철검문 같은 떠오르는 신성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특권 중 하나로 느껴졌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백팔봉들이 무림학관이 열리는 기간 동안 ‘속가제자’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외부인을 받아들이던가.

가뜩이나 눈엣가시인 태을문이 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을 때마다 철검문의 속이 뒤집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임에도 우린 철검문주의 초청으로 환갑잔치에 참석했고, 아버지는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의문이긴 하지.”

사실 생각해 보면 큰일은 아니었다.

나와 홍사련, 계철영은 밤에 또래들끼리 모이는 다과상에 참석했는데, 현 문주의 손자인 혈랑철검의 급발진에 다음 날 비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질 것을 알면서도 분한 마음을 풀고자 비무에 나서려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잔치에 참석한 만인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그냥 내가 뚜들겨 맞는 걸로 끝났으면 됐을 텐데.”

이 사건으로 태을문의 이름은 다시 한번 바닥에 처박히고, 무림맹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의무복무 인원’을 배정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그날 저녁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력으로 발기해서 궁신탄영의 기세로 달려드는 놈을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소정대 새끼들이랑 너무 오래 지내서 그런가, 표현이 날이 갈수록 저렴해지네.’

문득 길거리 하오문도 수준으로 전락한 말투를 깨닫고는 정신을 차려 다시금 생각을 이어나갔다.

놈들에겐 그저 태을문을 한번 밟아줄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날 참았으면 다음 날 또 다른 것으로 시비를 걸었을 것이고, 그것도 참아내면 나중에 챙겨간 선물을 가지고 뭐라 했겠지.

‘제일 좋은 방법은 참석하지 않는 것인데.’

방법을 생각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소천검법의 상승식을 가지고 태을문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다음, 무공을 재정립하도록 정신없게 몰아붙이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돈 벌 궁리를 가지고 돌아가 태을문의 당주들의 정신이 그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걸 자존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면 철검문에 가서 며칠간 드잡이 짓을 하고 그 뒤에 발생하는 일을 수습하느라 시간을 보내느니, 그 시간에 영약 하나, 마물 한 마리 더 잡는 것이 내게 훨씬 더 건설적인 방향이었지만.

“근데 이 육씨럴놈들을 그냥 두면 한동안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단 말이지.”

일단 나는 생각을 유예해 두곤 정원의 송악산으로 향했다.

강호영약서에 독각화망이 나타나는 지점으로 표기되어 있었기에 본래라면 취하지 않으려 했지만, 청룡환 덕분에 독기 가득한 내단도 후처리 없이 흡수할 수 있었기에 놈을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사아악!

별다르게 사냥할 필요도 없었다.

놈이 그 커다란 몸으로 내 몸을 둘둘 말고 한입에 나를 삼키려는 순간.

청룡환을 발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키아아악!

놈이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쪼그라들기 시작했고, 종국에 가선 말라비틀어진 뿌리처럼 초라하게 변했다.

난 다시금 청룡환의 무자비한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걸 사용하는 걸 걸렸다간 무림 공적은 따 놓은 당상이구나.”

난 독각화망의 금색 뿔을 가볍게 꺾어 품에 넣었다.

놈의 뿔은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장식 재료다.

팔아도 좋고 솜씨 좋은 대장장이를 만나면 내 무기에 장식으로 써도 좋을 테니까.

‘대략 사십 년.’

미미한 양이지만 또다시 내공이 늘어났다.

이제부턴 슬슬 내공을 숨기기 시작해야 했다.

“태을문의 제자 따위가 약관의 나이에 일갑자의 내공을 가졌다간 의심 사기 딱 좋을 테니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던 것이, 다행히 소정대의 대원 중의 하나가 이쪽 방면으론 천하제일에 가까운 잡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놈은 지금쯤 살수로 활동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송악산에서 내려온 나는 마을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한 보따리 산 후 태을문으로 향했다.

“진 사형!”

“사형!”

“사형!”

병아리 같은 어린 사제들이 부생당을 나오다 나를 발견하곤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사형! 대체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사형! 저 소천검법 다시 배우고 있어요!”

“사형! 식사는 하셨어요?”

짹짹 재잘대는 녀석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줄 때쯤.

계철영과 홍사련이 나타났다.

“대체 네놈은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들어오는 것이냐?”

계철영은 뭔가 심기가 불편한 듯 잔뜩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 계 사형. 뭔가 달라 보이십니다. 확실히 설매단의 효능이 대단한가 봅니다. 척 봐도 고수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것이 감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군요. 영단은 다 소화하셨습니까?”

내 말에 계철영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네놈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그렇게 일갈하곤 어린 사제들을 밀치며 가버리는 계철영.

“왜 심기를 건드려요. 설매단 탈취당한 이야기 못 들었어요?”

“들었지. 그래서 얘기한 건데.”

홍사련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그동안 뭐 하고 다녔어요?”

“그냥 여기저기 다니면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구경하고 그랬지.”

“……돈이 어디서 나서요?”

“사냥도 하고 일도 하고.”

솔직히 말했다간 태을문이 발칵 뒤집히겠지만 어쨌든 솔직하게 말했다.

“……문주님도 더 이상 계룡상단 눈치 볼 필요 없다고 하시니까. 인제 그만 돌아와요.”

“응?”

“이번에 철검문주의 환갑잔치에 참석하기로 했대요. 그리고…… 알다시피 계룡상단도 설매단 일로 바빠서 태을문에 잘 오지도 않고요.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어……. 그건 내가 곤란한데.

사련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차피 난 계속 밖으로 싸돌아다녀야 하는데. 어쨌든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철검문주의 환갑잔치에 참석하기로 벌써 결정됐다고?”

“네. 계룡상단주가 간절히 빌었나 봐요. 자길 봐서라도 꼭 참석해달라고.”

“련매도 참석해?”

“…….”

“응? 참석 안 해?”

“그 자꾸 련매라고 하는데 간지러우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요.”

“어때서. 난 이게 좋은데.”

“……하지 말라고. 어쨌든 전 참석해요. 철영 사형도 참석할 거고.”

본래 전생에서도 나의 참석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쌍랑철검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졸랐던 거지.

“근데 그 짐은 뭐예요?”

“아…… 이거.”

난 머리를 쓰다듬던 사제들을 불러 모아 보따리를 열었다.

“우와!”

“우와! 당과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지친 기색이 만연하던 녀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자자, 사이 좋게 나눠 먹어. 혼자 많이 먹는 녀석은 치도곤을 낼 줄 알아!”

“““네! 사형.”””

사제들은 짹짹거리며 보따리를 가지고 우르르 물려가 서로 하나씩 나누기 시작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더 먹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웬 당과예요?”

“응? 시장에 나갔는데 생각이 나길래.”

“……무슨 돈이 있다고.”

어쩐지 사련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사형, 사형. 진 사형.”

그때, 사제인 동룡이가 내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왜? 녀석들이 넌 당과 안 줘?”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이거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녀석이 품안에서 종이로 몇 번이나 접은 뭉치를 내밀었다.

“응?”

“사형은 이 맛있는 걸 드셔보시지 못했잖아요.”

종이를 펼치자 그 안에선 며칠이나 지난 건지 딱딱한 떡이 나왔다.

“다른 사형들이 정말 맛있는 떡이라고 했어요.”

옆에 섰던 사련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거 계 사형이 돌린 거예요.”

“……넌 먹지 않고?”

“전, 괜찮아요. 그날 고기를 많이 먹었거든요.”

이 나이 때의 풍족하지 않은 집안의 아이들이 먹을 걸 참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동룡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영약을 먹을 때처럼 기대되는 마음으로 딱딱한 떡을 입에 넣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사형?”

“응. 너무 맛있네. 이건 너무 맛있어서 내가 다 먹어야겠다. 동룡이 넌 가서 당과를 먹으렴.”

“네. 전 당과만 먹어도 괜찮아요.”

동룡이가 만족한 듯 당과 쪽으로 달려갔다.

“……그거 오래 되어서 딱딱하지 않아요?”

“돌멩이 같네……. 근데 맛있어.”

“……으휴.”

“역시 이런 훌륭한 무문이 양아치들에게 욕보이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그렇지?”

“……무슨 소리예요?”

“그런 게 있어. 철검문 나도 가도 되지?”

“……거길 가고 싶어요?”

“쌍랑철검도 보고, 남궁세가에서도 사람이 올 거 아냐?”

전생과 똑같은 이유를 대자, 홍사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외당주님도 참석하시니까.”

#

철검문으로 향하는 계룡상단의 마차 행렬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계철영이 무공을 입문하는 시기, 철검문은 계철영에게 속가제자의 자리를 권했지만, ‘특별전형’이 없는 속가제자의 자리란 계철영이나 계연석에게 그리 달콤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합비를 거점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철검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고, 그 대가가 이 화려한 황금마차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철검문이 가까워지자 쾌화당의 당주인 강채석이 흉악한 얼굴을 들이 대었다.

그래도 태을문의 가장 강자인 강채석이 동행으로 따라온 건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한 문주님의 배려.

“철검문에 가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뭡니까?”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전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만.”

“씁. 벌써 경거망동하는구나.”

강채석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않더냐.”

“전 참고 싶은데, 자꾸 주변에서 건들면 어찌합니까.”

“그걸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더냐!”

평소 같았으면 이런 잔소리는 아버지인 진태산의 몫이었을 텐데. 어째선지 진태산은 계속 무거운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자꾸자꾸 시비를 걸면 어찌합니까?”

“이놈이?!”

“아, 알겠습니다. 그럼 사문을 욕하고 조사님에께서 모욕을 받더라도 꼭 참고 넘기겠습니다.”

“……이 자식이 너 반항기냐?”

“그럼 어쩌라는 말입니까?”

어차피 철검문에 가는 이상, 태을문이 모욕받는 건 정해진 일이다.

각 잡고 꼬투리 잡으려는 선임 아래서 완전무결한 부하란 없는 법이지 않은가.

“최대한 군자처럼 행동하고, 굳이 똥을 밟지 말란 말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

철검문 입구에는 이미 거대한 인파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짐이 없는 사람들의 줄은 다양했기에 그리 길지 않았으나 마차 행렬은 줄이 하나였기에 길었다.

우리는 마차 행렬 쪽으로 줄을 섰고, 한참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철검문의 위세가 대단하다더니 정말 그렇군.”

진태산의 말엔 뭔가 씁쓸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게 어디 철검문의 위세인가? 다 무림맹의 총군사와 원로가 참석한다니 그들에게 얼굴도장이나 찍을까 하고 온 자들이겠지.”

“후후, 우리 문주님의 환갑에도 초대할 수 있으려나?”

“클클. 외당 당주로서 이 인파가 감당이 되겠나?”

“감당 못하더라도 한번 겪어봤으면 좋겠군.”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저 먼 곳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다른 마차와 행렬이 달려왔다.

“이보시오. 우리가 낄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시오.”

뜬금없는 말에 계룡상단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소리 말고 뒤로 가서 줄이나 서라. 우리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그대들의 앞에 서 있는 그 친구가 우리 자청상단의 표사요. 자꾸 이리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재미없을 것이오.”

자청상단의 대표로 보이는 자 옆으로 청색 무복을 맞춰 입은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기세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평범한 표사는 아니었다.

그중 대표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쥐었다.

“저는 남경에서 온 청죽보 혈죽대주 유문충이라 하오. 먼 길에서 온 탓에 피로가 쌓여 미리 사람을 보냈소. 부디 이해해 주시구려.”

청죽보라는 말이 나오자 계연석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청죽보는 강소성 남경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문파 중 하나였다.

대충 비교하자면 남경의 철검문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

“…….”

계연석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청죽보 대주를 제치고 젊은이가 나와 껄렁하게 나와 시비조로 말했다.

“어이! 거 보니 작은 상단 같은데, 옆에 쟁자수들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썩 비켜 나와.”

놈의 시선이 홍사련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입가에 지어지는 득의만만한 비웃음.

‘저 새끼 알고 있네.’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분명 우리가 누군지 어디 문파인지 알고 있다.

우리 앞에 선 자 중에 우리보다 못한 문파가 없는 건 우연이 아닐 것.

이걸 단순히 우연이라고 친다면 이 모략이 판치는 강호 판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법보다 칼이 먼저 나가는 무림에서 누울 자리도 보지 않고 발을 뻗는다? 발목 잘리기 딱 좋은 상황이다.

과거와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여기서부터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철검문 안에 들어가선 죽도 밥도 안 된다.

더불어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이미 내가 아는 놈이고.

내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강채석이 말렸다.

“내가 경거망동 말라 하지 않았더냐.”

“아니, 지금 저희 태을문을 모욕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나서야죠.”

“아니, 애초에 네놈이 상대할 수 있더…….”

난 강채석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나아갔다.

청죽보의 죽염공자 구양사.

지금이야 그저 똥오줌 못 가리는 애새끼지만, 나중에 무림맹에 가선 그 안하무인 성격이 계철영이랑 딱 들어맞아 의형제처럼 쏘다니는 개망나니가 되는 놈이다.

당연히 태을문의 사제들을 제 부하인 척 부려 먹은 게 한두 번도 아니었고.

현재 무공 수준은 계철영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계룡상단이 보잘것없는 거지 같은 상단은 맞는데. 우린 어디 이름도 없는 자죽보? 출신이 무시할 사람은 아니야.”

“허, 이놈이 감히!”

구양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짱을 풀고 지체 없이 검을 뽑아 들려 했다.

난 구양사보다 한발 먼저 다가가 유운문의 이화접목술인 연화(蓮花)를 시전 해 놈의 검을 집어넣고 놈을 한 바퀴 돌려 반대편에 세웠다.

“우와!”

“호! 저 청년은 어디 문파지?”

지루하게 기다리던 이들은 구경 거라도 생긴 듯 탄성을 내질렀고, 그에 비례해 구양사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구양사가 다시금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내가 말했다.

“남의 잔치에서 피를 보려고 하나? 역시 근본 없는 문파 소속이 맞나 보군.”

“……네놈, 감히…….”

검을 뽑다 만 구양사가, 박투술이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듯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멈추세요.”

인파를 가르며 나타나는 홍안의 미녀.

화려한 예복을 입고 화장을 한 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쌍랑철검 중 동생인 성모란이었다.

“미랑철검이다!”

“혈랑철검도 함께인가?”

장내를 돌아보던 미랑철검 성모란이 구양사에게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 생신에 피를 보기 위해 오신 건가요?”

“……아, 그, 그게.”

조금 전까지 날티 가득하던 녀석은 어디 가고, 얼굴이 붉어진 녀석이 버벅거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철검문은 미리 줄을 맡아놓는다는 규칙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뒤로 돌아가서 차례를 기다리세요.”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소녀의 말이었건만, 그 말의 무게가 무거웠다.

자청상단과 청죽보는 큰 혼이라도 맞은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줄의 뒤로 가버렸다.

“태을문과 계룡상단에서 오신 분들이라 들었습니다.”

미랑철검 성모란의 시선이 지긋이 주변을 쓸었다.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선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제가 모셔도 될까요?”

길게 줄을 늘어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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