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전설을 찾는 이류무사(7)>
목적지는 지도 끝에 있는 미확인 지역.
동굴을 돌아다녔던 자는 이 미확인 지역 너머에서 미타성수를 보고 돌아왔다 말했다.
동굴은 각양각색의 크기의 방들이 연결된 형태로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했다.
특히나 방안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후퇴한 이후에 방을 잘못 돌아다니다 다시 좀전의 적을 만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앞에서 싸움이 벌어졌군요. 돌아가겠습니다.”
난 최대한 전투를 피해 돌고 돌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이걸 벌써 들었다고요?”
어느샌가 내 옆에 바짝 붙어있던 성모란은 잠시 귀를 기울인 뒤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내공이 얼마나 되는 거죠?”
오감 능력은 내공에 영향을 받기에 확장된 오감은 광대한 내공의 증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모두 말할 수 없기에 대충 둘러대는 말을 건넸다.
“아마 내공이 정순한 덕에 그럴 겁니다. 태을심법은 정순함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주신 것도 도움이 됐고요.”
“아…….”
‘다행이네요.’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더 이상 군말 없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동굴 전체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간 결과, 싸움의 양상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오천 명이 죽었다는 것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산발적인 싸움은 계속 일어나지만 다친 이를 살인 멸구 할 정도의 처절함은 아니며, 싸움이 과잉될수록 자신의 피해도 작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적당한 신경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양갈래 길에서 멈춰 섰다.
난감해하는 나의 모습에 무사들이 하나같이 검을 다잡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죠?”
“한 곳은 한참 싸움을 벌이고 있고, 한 곳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군요.”
“그런데요?”
“대기하는 쪽이 혈향이 꽤 진득합니다.”
“……!”
“어쩔까요?”
“계속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
남궁선화가 검을 뽑아 들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거친 기세를 내뿜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이들을 데려 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내가 앞장설게요.”
성모란을 비롯한 철검문이 뒤쪽을 맡고, 남궁세가가 앞으로 나섰다.
“왼쪽으로 가야 하는 거죠?”
“네.”
방 안에 들어서자, 동굴 내부에는 세 명의 화복의 사내와 붉은 무복을 입은 십여 명의 사내들이 시산혈해의 가운데 서 있었다.
‘구지신검 마고산, 금각동인 사무인, 극락동자 서현재.’
악양의 거리에서 봤던 흑도들 중에도 특히 경계해서 봐야 했던 고수들이 떡하니 동굴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남궁세가의 영애께서 험한 곳까지 다 오셨군요.”
음마(陰魔)로 알려진 극락동자 서현재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미타성수를 찾으러 들어온 것 아닌가요? 아무리 흑도라 한들 이런 무의미한 살상을 저질러도 되는 건가요?”
“사실 저희도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희도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요.”
“그게 뭐죠?”
“지도가 전투 중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게 아니겠죠.”
분명 상대와 싸우다 잃어버렸거나, 훼손된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지도가 있어야 미타성수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이대로라면 미타성수를 얻지 못하는 것에 너무 실망하여…… 계속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겠군요.”
희번뜩 눈을 뜨며, 입맛을 다시는 서현재.
“남궁세가가 우습나 보군요.”
세 사람 모두 귀주성 귀양에 기반을 가진 거대 흑도 세력인 혈사방 소속이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무림맹의 주축인 남궁세가를 상대할 수는 없을 텐데. 대관절 그들이 어떤 자신감을 가지고 이리 행동하는지 사뭇 궁금하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저희는 강로에서 꽤 많은 인원을 잃은 탓에 이렇게 초라하답니다. 때문에 따로 준비한 것이 있지요.”
녀석은 품에서 사람 주먹 두 개만 한 구체를 꺼냈다.
무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신음하듯 물건의 정체를 내뱉었다.
“벽력탄……!”
“!”
“!”
남궁선화와 성모란의 두 눈도 동그랗게 떠지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벽력탄은 군부의 물건인지라 암시장에서도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하물며 흑도들 손에 들어가선 더더욱 안 되는 물건이었고.
“그걸 썼다간 그대들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요.”
“저희가 미타성수를 구해나가지 못하면 이곳에서 죽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남궁세가가 협박에 굴할 것 같던가요?”
난 벽력탄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력탄이 처음 등장했을 땐 꽤 놀랐고, 그것이 오천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물건인가 싶었지만, 실상 안력을 돋우어 그 크기를 보고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벽력탄의 파괴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저 정도 크기로 동굴 전체를 무너뜨릴 순 없었으니까.
정마대전 막판엔 정말 이판사판이 된 소정대는 군부의 창고를 털어 벽력탄으로 놈들을 상대하기도 했었던지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마령고원의 동굴 석질은 꽤 단단해서 한곳의 붕괴가 다른 곳으로 이어질 일은 없어 보였다.
“검진을 준비하세요.”
남궁선화의 서늘한 말에 서현재가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이곳까지 지도를 보고 온 것 맞소?”
서현재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네놈은 누구냐?”
놈은 역시나 근본 없는 흑도답게 사람을 가려가며 예의를 지켰다.
“이들 일행이요. 지도를 관리하는 사람이고.”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지도를 보고 왔다면 여기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소.”
“……흠, 그랬나? 놈이 죽으면서 지도를 태워버리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군.”
“혹시 배반하는 과정에서 지도를 잃어버린 것이오? 그 바람에 지도에서 본 길을 잃어버리고?”
“……!”
녀석들은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맞나 보구려.”
“닥쳐라. 네놈도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 품에 가지고 있는 지도를 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소.”
뜨악하는 시선은 성모란과 남궁선화일행에서 날아왔다.
나는 그걸 무시하고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어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목적지까지 표시된 지도요. 이곳이 어딘지는 묻지 마시오.”
“흥! 우리도 어디가 어디쯤인지는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한 서현재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핥으며 품에 다시 벽력탄을 넣었다.
“아쉽군요. 아가씨. 그렇다고 해도 저희를 바짝 붙어 따라오시진 않았으면 합니다. 벽력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 말입니다.”
서현재와 그의 일당들이 천천히 경계 태세를 취하며 세 갈래 중에 맨 왼쪽 갈래로 들어갔다.
“진 공자, 대체 어쩌자고!”
남궁선화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다가왔다.
“아, 걱정하지 마시죠. 어차피 저들이 미타성수에 접근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저들이 가져간 지도는 가짜 지도입니다.”
“네?”
“동굴 안에선 분명 지도로 싸움이 날 게 분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런 곳에 벽력탄까지 가져온 미친놈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만, 어쨌든 그를 위해 일부러 몇 개 지도를 더 만들어 두었죠.”
나는 짐 속에서 몇 개의 족자를 보여주며 말했고, 남궁선화와 성모란, 유지량은 자신의 품에 숨겨져 있던 족자를 못 믿을 눈으로 바라봤다.
“아, 그것들은 진짜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가죠.”
다시 이동을 시작하자 이번엔 성모란 대신 남궁선화가 옆에 바짝 붙어왔다.
“진 공자, 혹시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부탁…… 말입니까?”
“네. 이야기를 듣고 원치 않으신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들어나 보죠.”
“혹시나 진 공자가 미타성수를 얻게 된다면 진 공자 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제게 파실 수 있을까요?”
“함께 움직인다면 가능성은 소저가 더 높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건지?”
“왠지 진 공자가 미타성수를 얻을 것 같아서요.”
내가 미타성수를 담을 수통을 따로 준비하긴 했지만, 난 전생에 이 미타성수의 결말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오천 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에서 미타성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남궁선화는 내 수통을 가리켰다.
“미타성수는 극음의 성질을 띠기 때문에 절대 인간의 신체로 잡아선 안 돼요. 주변의 모든 걸 얼려버리기 때문에 함부로 어딘가에 담아서도 안 되고요.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 수통을 준비한 사람은 열 사람을 채 못 봤어요.”
오는 내내 나를 계속 힐끔거렸던 것이 이 수통의 용도를 짐작하느라 그랬던가 보다.
“거절하겠습니다.”
“네? 어째서?”
“사문의 아이들 중에 적당한 아이에게 줄 생각입니다.”
“아…….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무림학관 정시를 볼 생각입니다.”
“태을문에서요?!”
“…….”
남궁선화는 탄식을 내지른 후에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태을문이 시험 볼 거냐는 말은 상대를 얕잡아 본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아…… 죄, 죄송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뒤에 두어 걸음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응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몇 개의 동굴을 지나자 한쪽 길에서 굉장한 기운을 가진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난 일행을 잠시 멈춰 세운 뒤 앞서 나갔다.
이곳만 지나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이상, 상대를 살피고 먼저 지나가게 할 속셈이었다.
쌔액, 퍽.
그때 내 얼굴 바로 옆면에 지풍이 쏘아졌고, 지붕에서 박살 난 돌멩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용소아와 무당파의 도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다가왔다.
용소아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고, 도사들의 복장에도 큰 싸움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그들을 따랐던 하민중, 악무흔, 양인수의 일행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 더구나 그들의 상태도 썩 온전치 않아 보였다.
“잔재주를 가지고 있더니, 혼자 살아남은 건가?”
용소아가 나를 쓱 둘러보더니 그리 말했고, 동시에 하민중 일행이 뒤쪽에서 뭐가 그리 고소한지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난 용소아를 무시하고 뒤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나오시죠.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남궁선화와 성모란 일행이 뒤쪽 동굴에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자, 용소아의 얼굴에도 미미한 금이 갔고 하민중 일행의 얼굴은 똥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역시 그쪽을 쫓지 않아 다행이군요.”
“…….”
내 말에 용소아가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끝까지 지켜보겠다.”
하민중과 그의 일행은 도살장의 끌려가는 소들처럼 남궁세가의 일행을 바라본 후, 용소아를 뒤따랐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르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수백 명의 사람이 들어갈 법한 공동엔 되려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형으로 되어있던 다른 동굴들의 방과 달리 이곳 거대 공동은 한쪽이 쓱 잘려 나간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잘려 나간 부분엔 벽 대신 어두운 그림자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이곳으로 들어갔나 보군요.”
유지량이 검은 그림자에 슬쩍 손을 넣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손이 완전히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설치되어 있는 진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다. 약간 천연진 같기도 한데…….”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형성하고 있는 기운이 꽤나 강대하군요. 아무리 삼·사백 년을 유지해 온 진이라고 해도 너무 강력합니다.”
“그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만약의 경우를 산정한 겁니다. 천연진의 형태라 어지간한 강력에는 금방 부서질 겁니다.”
유지량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었는지, 용소아가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남궁선화가 대경하며 말렸다.
“용소아 대협! 아직 조금만 더 기다렸다 분석이 끝나면 들어가시는 게 어떠실까요?”
“약초꾼도 빠져나온 진이다 무인이 통과하지 못할 리 없지.”
그 말을 끝으로 용소아와 무당의 도사들이 쏙 들어가 버렸고, 이어 하민중 일행도 하나둘 진 안으로 들어갔다.
“현청 대협의 말대로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건 만약을 대비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때 동굴을 쩌렁하게 울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남궁세가! 그 이름이 아깝구나, 감히 이따위 협잡을 부려!”
방금 전 만난 서현재의 목소리였다.
“창궁검진을 펼치세요!”
남궁선화의 외침에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무사들.
그 안에서 모산파의 세 명의 술사들은 재빨리 손을 넣어 진을 파악하고, 바닥에 그림과 숫자를 써가며 계산에 여념이 없었다.
“지도를 건넨 네놈! 반드시 눈알을 뽑아 먹어주마!”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유지량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계산 끝났습니다. 들어가도 됩니다.”
“어서 움직이세요!”
이번엔 유지량이 맨 앞에 서고 그다음에 내가, 그리고 성모란과 남궁선화의 순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만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좌로 우로 한참을 걸어가던 유지량은 어느샌가 은은한 빛이 나오는 출구를 찾아내었다.
출구를 넘어선 순간.
갑자기 짓쳐 드는 검날에 나는 재빨리 유지량의 오금을 차 넘어뜨리고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챙!
검을 부딪친 순간 내공이 많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팔 성의 공력을 끌어올려 놈의 목을 잘라내었다.
촤아아악!
“커흑!”
피분수를 뿌리며 흩으러진 흑도인.
진 너머에 나타난 광경은 방금 지나온 공동과 똑같은 크기의 거대한 공동안에서 사람들이 피분수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검진을 유지하세요!”
“철검대! 구중검진을 펼치세요! 사각을 제거합니다.”
우린 한쪽에 서서 싸움의 양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쪽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면면이 이상했다.
특히 우리와 함께 들어왔던 이들과 반대편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삐쩍 마름 몸에 며칠이나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더러워진 옷을 입고 있었다.
“남궁 소저!”
그때 유지량이 처음으로 흥분하여 남궁선화를 불렀다.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죠?”
싸움의 양상을 지켜보는 남궁선화는 시선 대신 대답만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갇힌 것 같습니다.”
“네?”
“안쪽과 바깥쪽의 진이 서로 다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바깥쪽에 있던 천연진은 본래의 진이 무너지며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