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전설을 마주하는 이류무사>
“모두 멈추세요!”
남궁선화의 소리가 공동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싸움에 한창 치열하던 이들도 하나둘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고, 전투는 금방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미타성수를 확보한 사람이 있는 겁니까?”
이런 치열한 싸움은 결국 미타성수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예상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게 아니오. 저들이 우리의 식량을 빼앗으려 했소.”
오른편의 제법 말짱해 보이는 사람들이 왼편의 지저분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식량이요?”
“그렇소.”
“배가 고프다면 동굴을 나가세요. 겨우 식량 때문에 서로를 죽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갈 수 있어야 나가지!”
대답이 돌아온 건 왼편이었다.
누추한 차림새의 한 남자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앞으로 나섰다.
“우린 벌써 일주일째 이끼만 먹고 있는 상태야!”
“그게 무슨 소리죠? 강로가 열린 건 오늘 아침이었어요.”
“굳이 강로가 열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무에 있었지? 어차피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텐데.”
사연인즉슨 하오문이 강로를 열어주기 전에 물길을 헤치고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것.
“그렇다면 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거죠?”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갈 수 있다면 나갔다. 이 빌어먹을 진법 때문에 여기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고.”
“결국 미타성수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건가요?”
“저 반대쪽 진법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 보든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몇백 명의 사람들이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남궁선화는 유지량이 들어오자마자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조사를 더 해봐야 어떤 진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유지량의 말에 남궁선화가 다시 일단의 무리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조사하겠어요.”
“조사고 나발이고 배고파 죽겠다고!”
“…….”
남궁선화가 오른편의 인원들을 바라봤다. 헌데 하나같이 경계심이 잔뜩한 것이 자신들의 음식을 나눌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남궁세가에서 음식을 나눠주겠어요. 대신 지금부터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아가씨!”
“안 됩니다! 만약 여기서 나갈 수 없게 된다면.”
“그만! 진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도 나가지 못할 거예요.”
남궁선화의 일갈에 세가의 사람들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저마다 행랑 속에서 육포나 벽곡단을 꺼내어 넘겨주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사람이 서른 명인 것에 반해, 왼편에 있던 사람들은 이백에 가까운 숫자였다.
결국 철검문의 무사들도 육포와 벽곡단을 꺼내어 넘겨주었다.
남궁세가와 철검문이 희생을 했음에도, 현저하게 적은 식사량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더 이상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눈앞의 식량보다 진법 자체를 해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일 테니까.
유지량은 진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본래의 진 일부가 시간의 경과 함에 자연스레 붕괴하고, 그 잔재의 일부가 천연진을 만든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남궁선화도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법이란 돌의 위치 하나만 잘못 놓아도 전체의 조화가 깨져서 무위로 돌아가 버리는 법식인데.
긴 시간 동안 진법이 버텨낸 것도 용한데, 무너진 일부가 또다시 천연진이 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유지량이 반대편에서 남궁세가의 무사들에 보호 아래 진법을 연구하는 술사들을 보았다.
진법을 확인하던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버렸다.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였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이야기에 왼편과 오른편의 사람들도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무량불괴멸혼진이란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꿀꺽.
사람들은 대답 대신 군침을 삼켰다. 단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비관적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삼백 년 전에 사라진 세상에 있어선 안 될 무서운 진입니다.”
“…….”
남궁선화의 안색이 점점 안 좋게 변해갔다. 대신 내가 나서서 물었다.
“어떤 점이 무서운 겁니까?”
“일단 진 안에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진법은 기본적으로 생문과 사문을 기본 뼈대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중심 뼈대가 없다면 어떠한 건물도 지을 수 없듯, 진법 또한 생문과 사문이 없으면 구축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진법에도 생문과 사문이 있습니다만, 그것들을 도저히 알면서도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진법 속에 생문과 사문을 감춰두는 것은 진법의 기초로 볼 수 있음에도 유지량의 이야기는 부정적이기만 했다.
“기본 뼈대를 팔괘로 잡고 십이간의 행로를 잡아 각각 육십갑자의 진로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일간의 영향을 받아 삼백육십오 번의 변화를 만들어 내니 그 변화가 무량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여 무량불괴멸혼진이란 이름이 붙은 겁니다.”
“…….”
우리뿐만 아니라 먼저 들어왔던 인원도, 나중에 들어왔던 인원도 모두 안색이 샐쭉해졌다.
“……그, 그럼 파괴는! 파괴한다면 어떠하지? 이곳에 온 사람들은 남궁세가를 비롯해 대부분이 고수들인데 파괴하고 나가면 되지 않는가!”
누군가의 절박한 물음.
유지량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진법이 결국 사라진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진법이란 결국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상대를 생포하거나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법인데. 이건 한번 설치하면 해체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 그런.”
“그나마 작은 것들은 매우 강력한 파괴력이라면 부술 수 있는지 몰라도, 이곳에 펼쳐진 멸혼진의 크기는 대략 짐작하기만 해도 30장 이상. 더구나 이곳은 동굴이 무너지면서 진의 일부가 파괴된 것 같은데, 아직도 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허어…….”
왼편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난 공동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지량님, 분명 이곳에서 미타성수를 보고 나온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떻게 된 걸까요?”
“……아마도 천운이 도와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천운이요?”
“네. 무량에 가까운 확률이긴 하지만 분명 생문과 사문은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진법을 계산할 수 있다면 생문을 찾아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길을 매번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계산 도중 길을 잃으면 그때부턴 다시 계산할 중심축도 잃어버리게 되니 결국 진 속에 갇히게 되겠죠.”
“그럼 반대로 길을 모두 외우면 어떻습니까?”
“네?”
“팔괘와 십이간 육십갑자와 삼백육십오개의 변화가 만드는 길을 모두 외운다면?”
“……대충 계산해도 이백만 개가 넘을 겁니다.”
무림맹의 만통부에서 읽었던 문서들의 글자들이 그것에 다섯 배는 될 것이다.
“가능할 것 같군요. 모두 계산해서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진심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제가 농담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잠시 생각하던 유지량이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나와 유지량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는 한편, 작은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남궁세가!!”
그때, 출구 쪽 진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튀어나왔다.
붉은 무복을 입은 무사들과 서현재 일행 셋.
붉은 무복의 사내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있었고, 서현재를 비롯한 마고산과 사무인의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어디 있나 남궁세가!”
주변을 둘러보던 서현재는 반대편 벽면에서 유지량과 대화를 나누는 나와 눈을 마주치곤 궁시탄영의 수법으로 날아들었다.
“네놈! 감히 나에게 사기를 쳐!”
그의 검이 나와 유지량을 노리는 순간,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나서서 그의 검을 막아섰다.
“크악! 남궁세가! 네놈들도 똑같은 놈들이다!”
서현재뿐만 아니었다. 마고산과 사무인도 무슨 고초를 겪었는지 적개심을 가득 드러낸 상태.
“멈추시오!”
그때 나선 건 서로를 죽일 싸우던 왼편과 오른편의 무사들이었다.
“지금 저들이 유일하게 우리의 살길이오!”
“내 알 바 아니다! 죽기 싫으면 꺼져라!”
“이 멍청한!”
오른편의 무사들 서넛이 동시에 서현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고산과 사무인이 합세하여 그들을 단숨에 물리쳤고, 뒤이어 오른편의 무사들이 일제히 그들에게 달려들며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챙, 챙, 챙.
하지만 중과부적에 밀린 서현재 일행은 일제히 품에서 목갑을 꺼내어 단환을 입에 집어넣었다.
“후욱, 후욱, 후욱.”
“하아, 하아!”
순식간에 서현재 일행의 몸에서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던 이들이 움찔거리는 순간.
서현재가 쏘아낸 빙장과 사무인이 휘두른 낭아봉에 피 분수를 흩뿌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누구냐! 누가 우리 앞을 막을 것이냐!”
핏발선 눈동자, 거친 호흡, 갑자기 두 배는 커진 내공까지 폭혈단의 효능이 분명했다.
왼편 오른편 합이 천오백에 가까운 인원들이 세 사람의 기세에 움찔 뒤로 물러난 것이다.
더 이상 움직이는 이들이 없자, 세 사람은 우리 쪽으로 성큼 다가서기 시작했고, 남궁선화를 비롯한 일행들도 서현재를 대항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궁선화가 뒤쪽을 보며 빽 하니 소리를 질렀다.
“용소아 대협!”
거칠 것이 없이 우리에게 다가서던 서현재 일행이 우뚝 걸음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여전히 용소아 일행이 진법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진법에 그들이 먼저 들어갔건만, 진법을 먼저 나온 건 우리임을 알고 의아한 것이다.
“이게 진법의 무서움입니다. 그곳에서 길을 한번 잘못 들었다간 평생 시간도 공간도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용소아 일행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서현재가 중간에 길을 막았다.
“볼일은 우리 먼저다!”
“비켜라, 흑도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이런 개 같은…….”
서현재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 빙장을 쏘아내려던 그의 손과 머리가 보이지도 않았던 용소아의 검에 바닥에 떨어지며 피 분수를 흩뿌렸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마고산과 사문인이 서현재의 몸을 밀치며 비명을 질렀다.
“네놈들도 똑같은 놈이겠지.”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다 같이 죽고 싶은 거 아니면 다가오지 마!”
마고산이 서현재의 짐 속에서 벽력탄을 꺼내어 위협했고 용소아의 움직임도 잠시 멈추었다.
“그걸 터트릴 때까지 네가 살아있을 거로 생각하는가?”
“시발!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 봐, 그냥 오늘 다 여기서 뒈지는 거니까.”
마고산의 일행들이 최후의 보루라도 되듯 마고산을 겹겹이 둘러쌓으며 그를 보호하자, 용소아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라.”
용소아가 남궁선화에게 말하자, 남궁선화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무량불괴멸혼진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는 천하의 용소아도 조금은 움찔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해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진이 아녜요. 유지량 대협과 진 공자가 계산해서 진법 안에 생문을 안내하는 거예요.”
“대충 계산해도 이백만 개의 가능성이 있고, 진의 일부가 망가졌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길도 생길 수 있는 법인데. 말도 안 되는 일에 힘을 빼는군.”
“지금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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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 후.
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유지량과 술사들이 계산해 주는 진로를 하나하나 외우고 있었다.
그사이 공동에는 이천 명의 인원이 더 들어왔고, 그중 이백 명은 싸움하다 죽고, 삼백 명은 진로를 찾아보겠다며 반대편 진법 안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유지량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일부 진이 망가졌기에 공동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며, 장장 삼십 장에 걸쳐 펴진 이 진법 안에 들어간 이상 진로를 모르면 멸혼진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들 한계에 다다랐어요.”
성모란과 남궁선화도 가뭄에 마른 식물처럼 말라 있었다.
처음에 식량의 절반을 나누어 줬던 탓이다.
그나마도 최대한 절식하며 참았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이었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하죠?”
“……앞으로 오 일은 더 걸릴 겁니다.”
“…….”
무사들도 굶주림에 피해가 컸지만, 술사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영양이 좋지 않은 탓에 계산에 점점 시간이 더 걸리고 있었다.
“……무의미한 일이다.”
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용소아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곳 공동 내에서 가장 강자는 다름 아닌 용소아.
흑도 들 중에 용소아 못지않은 명성을 떨치는 자들도 있었지만, 무당파의 다른 도사들 때문에라도 굳이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일어나라.”
용소아가 걸음을 옮긴 곳은 흑도 무리들 사이에 자리한 마고산 일행이었다.
“벽력탄을 넘겨라.”
“무슨!”
용소아의 목적을 알자 유지량이 벌떡 일어났다.
“안 됩니다. 대협! 이 진법은 벽력탄으로 해진 할 수 있는 진법이 아닙니다.”
“해진은 할 수 없겠지. 허나 길은 열 수 있지 않나.”
“…….”
용소아의 말에 백도 무리는 물론이고 흑도 무리들도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을 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각오.
“하지만 벽력탄을 썼다간 진로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제발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용소아는 건조한 눈빛으로 유지량과 나를 바라봤다.
“인간이 이백만 개의 진로를 외울 수 있다는 말을 믿는가?”
용소아의 말에 내가 말했다.
“그래서 혼자 나가겠다?”
이제야 왜 이곳에서 오천에 가까운 인원이 죽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용소아는 이 난리 통에서 어찌 살아 들어왔는지까지. 그리고 그 후에 용소아가 이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는지.
“나가서 무림맹의 술사들을 데려오지.”
“얘기 못 들었나? 애당초 해진할 수 있는 진법이 아니야.”
“무림맹의 저력은 한 개의 방파에 비할 수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라곤 이곳에서 진로를 외워 나가는 건데. 그쪽 때문에 진로가 틀어지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은 어찌할 생각이지? 상관없는 건가?”
“지금도 계속 밖에서 인원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대로 가만뒀다간 피해가 끝없이 올라갈 거다.”
용소아가 마고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고산과 사무인이 바짝 엎드렸다.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도 함게 데려가 주십시오.”
“……좋다.”
“저, 저희도…….”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챙, 콰가가가각.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용소아가 발검하며 바닥에 길게 선을 그었다.
“이 선을 넘어오는 자는 반드시 베겠다. 내가 나가 사람을 데려올 것이다. 기다리고 있어라.”
“시발! 그걸 어떻게 믿어!”
“너희 위선자 새끼들이 언제 약속을 지킨 적이 있었냐!”
용소아에게 붙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에게 적대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공동 내부의 인원 칠 할이 흑도의 인물들.
무림맹의 대표 후기지수인 용소아가 자신들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단히 갖고 있는 것이다.
“죽어!”
결국 누군가를 시작으로 검이 뽑히고 한동안 조용했던 공동 내부가 사람들의 비명과 절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크억!”
“카악!”
수십의 사람들이 용소아에게 달려들었지만, 오 초식을 넘기는 이들이 없었다.
순식간에 용소아와 무당파 도사들의 주위론 시체로 쌓은 담이 생겼고, 가공할 만한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에 사람들도 차츰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용소아 대협. 그만하세요.”
결국 나선 것은 남궁선화와 무사들이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대들 때문에 여태껏 시간을 낭비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삼천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막을 힘은 있던가?”
“……창궁검진을 준비하세요.”
“발진!”
“발진!”
남궁세가가 창궁검진을 발동하는 순간, 무당파의 도사들도 태극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남궁선화와 용소아는 검진에서 떨어져 각기 전투를 벌였지만, 천하의 남궁선화도 용소아의 앞에선 어린애처럼 보일 뿐이었다.
‘실화냐…….’
나는 용소아의 검 앞에 피어난 강기 덩어리를 보고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서른에도 들어서지 않은 그가 무려 검강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남궁선화가 회심의 검법인 제왕검법을 펼쳐봤지만, 용소아에겐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이 공동안에서 용소아를 저지할 수 있는 건 무당 검법의 파쇄식을 알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안 돼요. 용소아는 우리 오라버니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내가 나서려 하자 성모란이 저지했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여기서 꼼짝없이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방법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난 성모란을 두고 비룡조를 쏘아 벽면에 박아놓고 천잠사를 당겼다.
휘잉.
비룡조 안에서 도르래 같은 것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내 신형을 화살처럼 쏘아냈다.
“남궁 소저, 숙이시오!”
남궁선화가 내 말과 함께 고개를 바짝 수그렸고, 난 그 위로 흑룡검을 쓸어내었다.
창!
기습적인 공격에 두 걸음 물러난 용소아는 금세 신형을 다잡았다.
나는 곧장 무당파의 근원 무공인 태극신검의 파쇄식을 펼치며 놈에게 짓쳐들어갔다.
촤라라라라.
공동에 들어온 뒤 단 한 번도 표정 변화 없던 용소아의 얼굴에 작게 놀람이 감돌았다.
“뭐지?”
용소아는 자신의 검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금 파쇄식을 펼쳤다.
쾅! 쾅! 콰콰쾅!
초식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용소아가 곧장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검 위로 두 자 가량의 광채를 빛내는 것이 생겨났다.
‘미친!’
길이가 짧긴 했지만 분명 강기였다.
쾅! 쾅!
검강과 부딪칠 때마다 필사적으로 강기를 흘려 냈지만, 망치로 모루를 때린 듯 저릿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팔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다행히 금강무괴철로 만든 흑룡검은 다른 검들처럼 날이 나가거나 검편이 휘날리는 일은 없었다.
“태을문에 이런 검법이 있었나?”
“…그러게 미리미리 백팔봉의 문파들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두었으면 좋았잖아?”
파쇄식을 펼치는 와중에도 나는 비룡조를 활용해 공간을 계속 옮기고 있었다.
‘오래 못버틴다.’
용소아는 제갈천기에 의해 제갈삼식이 만들어졌지만 끝내 파쇄식을 쓰지 않았다.
무당의 정신을 해친다는 어이없는 이유.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같은 무당파의 도사가 파쇄식을 펼치고 있음에도 밀리지 않았기에, 그가 이 파쇄식에 조금만 더 눈이 익으면 그는 반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상대의 무공의 파훼하는 검법이라…….”
아니나 다를까 이미 검법의 근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창궁대연검법이 통하지 않자 금방 제왕검법으로 바꾸었던 남궁산과 달리, 놈은 일부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집요하게 태극신검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휘두르는 검법의 정체를 파악하겠다는 의도.
그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서 떨어져 그의 검법이 멈추는 순간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너는 나와 나가야겠구나.”
“역시, 이곳에 있는 사람을 모두 죽일 작정이구나.”
“…….”
더 이상 대항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비룡조를 이용해 천정을 향해 날아올랐다.
동시에 단전에 있는 내공을 모두 끌어 올렸다.
“이거나 처먹어라!”
단전을 단매에 비운 듯 쏟아지는 탄력감.
손을 타고 방사되는 막대한 진기의 위력.
광천신장이 용소아를 소멸시킬 듯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쾅
드물게 보였던 용소아의 미간에도 처음으로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됐다.’
그렇게 안도하는 순간.
필사적인 사량발천근의 수법으로 광천신장의 기력을 옆으로 돌린 용소아가 바닥에서 뛰어올라 나를 차내였다.
퍽!
그나마도 없는 공력을 끌어들여 비룡조를 쏘아내는 순간.
핑.
기다렸다는 듯 용소아가 지풍을 쏘아냈고.
비룡조는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진 공자!!”
한쪽에서 성모란이 기절할 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몸이 무량불괴멸혼진 안으로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안 돼!”
대응할 수도 없는 순식간.
내 시야가 흐려지며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끌려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