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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48화 (48/357)

#48. <어둠을 엿보는 일류무사>

별호라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자꾸 듣다 보면 정감이 간다던데, 내게 붙은 별호에는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들을 때마다 뭔가 움찔대게 만드는 묘한 거슬림이 있는 별호였다.

그 별호 때문에 대화에 집중도 못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제갈천기가 ‘주군…….’ 그러고 있으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천기 공자. 일어나세요. 아버님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난 제갈현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힘들게 허락을 받았는데, 자기 친자식이 삼류 문파 제자의 신하로 들어가겠다 자처하는 모습을 보이면 갑자기 제갈현운의 마음이 돌아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소자 나이 십오 세.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아버지도 저의 뜻을 따라주실 겁니다.”

꼼짝하지 않는 제갈천기를 보며 나는 제갈현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데, 제갈현운은 불쾌한 표정을 짓기는커녕,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그때 허공에서 검은 인영이 하나 나타나더니 천기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포권을 쥐었다.

“도련님께선 흑염룡 대협이 오셨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고민해 오시던 거였습니다. 하루아침에 결정한 일이 아니니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복면으로 안면을 반쯤 가린 영영이었다.

영영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더욱 곤란해졌다.

내 대답이 없어서였을까? 불안해진 제갈천기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만약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전 이 금옥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않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

제갈천기가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절대 못 꺾는다.

기관진식을 포기하겠단 말 한마디면 나올 수 있는 금옥에서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아, 내가 회귀하기 전 삶에선 8년의 세월을 갇혀있었다.

“천기 공자 난 문파를 창설할 생각도 없고, 장사나 표국을 운영할 생각도 없습니다. 무림맹에 가면 부하들이 생기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무림맹 내부에 있을 때의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무림맹에도 따라가겠습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나는 제갈천기를 살살 달랬다.

니가 자꾸 이렇게 나오면 너희 아빠가 판을 뒤엎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내 말을 들어보세요. 일단 의형제를 맺는 거 정도면 어떻습니까?”

“네?”

“!”

“!”

제갈천기와 영영은 물론이고 제갈현운까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 정도면 제갈세가의 가주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강호에서 일류 문파의 제자와 삼류 문파의 제자가 의제를 맺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저, 저를 동생으로 맞아주신다는 겁니까?”

“의형제가 되는 거죠.”

제갈천기의 두 눈이 글썽거렸다.

“평생 형님을 성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결연한 의지에 다시금 제갈현운의 눈치를 보게 된다.

차라리 없는 자리에서 했다면 최고의 인재를 얻었으니 신나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혹시나 그가 불쾌해 하지 않을까 그를 슬쩍 바라봤는데.

“하하하, 좋군. 좋아. 이런 방법이 있었어. 그래! 의형제를 맺는 자리에 증인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 증인 내가 해줘도 되겠나?”

“……??”

제갈현운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시비에게 술을 가져오게 했다.

우리는 도원결의같이 경건한 의식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우정이란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서로에겐 신뢰가 충분하다면 형제의 잔을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앞으로 잘 부탁하네. 동생.”

“그리고 태을문에 제가 가게 되면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건가?”

“영영이를 제 호위로 쓰고 싶습니다.”

“응. 그건 문제가 안 될걸세. 어차피 자네 파견을 위해서 제갈세가에서 몇몇 무사들이 함께 파견될 테고.”

“아니, 그게 아니라 영영이가 그림자 무사가 아닌 진짜 무사가 되길 바라는 겁니다.”

“도련님! 전 괜찮습니다.”

복면으로 가려지지 않은 영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마 그 오랜 시간 단둘만이 이야기를 이어 오면서 서로의 꿈을 들어주며 위로의 시간을 보내왔던 가보다.

“그건 내 허락보다 가주님의 허락이 필요한 거 아닐까?”

그림자 무사는 암살자를 육성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육성된다.

오대세가의 경우 직계 자손의 보호를 위해 직접 그린 자 무사를 육성하곤 했다.

“아버지. 영영이가 그림자 무사 일을 그만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

“영영이의 꿈은 모용설 소저처럼 훌륭한 무사가 되는 겁니다.”

모용설이란 이름을 듣자 내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여성의 몸으로 용봉지회 서열 3위에 올랐고, 아름다운 미소와 더욱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

후에 검으로 일가를 이룰 정도의 성취를 얻어 검후라 불리고, 정마대전 중에는 모용세가가 괴멸하는 바람에 소정대에 배속되어 우리 소정대를 몇 번이나 구해주었던 생명의 은인이었다.

‘괜찮다 생각했건만…….’

기억이 오래된 만큼 감정은 낡지 않았나 보다.

내가 잠시 감성에 빠져 있는 사이 제갈천기가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입니다. 저도 제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가주님 전 괜찮습니다. 도련님! 이러다간 도련님이 다시 금옥에 갇히시게 될지도 몰라요.”

영영이와 제갈천기는 서로를 위하기 위해 한발도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

난감한 것은 제갈현운이었다.

어찌 되었든 제갈천기는 제갈세가의 직계.

더구나 제갈천기는 무공을 익히지 않아 그림자 무사를 배치한 것인데 그 아이가 무사가 되어버리면 제갈천기를 밀착 보호할 사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슬쩍 운을 떼자 제갈현운이 기대 만만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천기가 무공을 익히지 않아서 그림자 무사를 붙인 것이라면 천기가 제 한 몸 지킬 수 있을 때까지만 그림자 수행을 하고 그 이후엔 무사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음. 괜찮은 생각이군. 그런데 천기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천기는 어린 시절부터 무공 익히는 것을 싫어했는데.”

제갈현운은 되려 반갑다는 표시.

그러자 제갈천기도 환한 표정을 지었다.

“하겠습니다. 아버님. 꼭 무공을 익혀서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겠습니다.”

“…….”

“좋다. 천기가 일류 무사 수준에 오른다면 영영이가 대외활동하는 것을 허락하겠노라.”

제갈현운 딴에는 꽤 허들을 높게 잡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제갈천기는 그저 ‘잘됐다’라며 영영이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십이 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공에 입문하여 초절정의 경지까지 올라갔던 제갈천기를 생각하면 제갈현운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시기가 더욱 당겨질 것이 분명했다.

“도련님.”

“같이 목표를 이루자. 영영아.”

“네.”

분명 제갈천기가 어리고 영영이 더 몸이 컸지만, 지금은 두 사람의 나이가 서로 바뀐 것처럼 보였다.

#

파견 행단은 조촐하게 꾸려졌다.

파견되는 인원이 제갈천기 한 명뿐이었고, 제갈천기가 가진 자산이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짐 마차 하나와 천기가 타고 갈 마차 가 행단의 전부였다.

“형님은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난 볼일을 마저 보고 돌아갈 거야. 먼저 가 있거라. 그리고 이거.”

난 따로 빼둔 전표 다발을 천기에게 맡겼다.

전표의 금액을 확인한 천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금전 오천 냥이요?”

“당장 기관진식을 만드는 덴 한계가 있겠지만 일단 이걸로 초석을 다지고 있거라. 돌아가서 자금을 더 보태줄 터이니.”

한동안 돈이 들어가야 할 곳이 태산처럼 많았다. 그걸 위해서라도 무림학관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비밀창고 몇 곳은 더 털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 돈을 꼭 지켜내겠습니다.”

결연히 다짐하며 전표를 품속 가장 깊은 곳에 넣는 제갈천기.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너니까.”

“……형님.”

어쩐지 제갈천기의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하다.

그렇게 제갈천기를 먼저 보내고, 난 마중 나온 제갈현운과 제갈정을 향해 포권을 올렸다.

“신세를 많이 지다 돌아가는군요. 그동안 실례한 점이 있다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갈정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수염을 꼬불거리고 있었다.

“언제 또 올 것이냐?”

“네?”

“화전민 마을. 그쪽 사람들이 잘사는지 봐야 할 것 아니더냐.”

요 며칠 계속 화전민 마을에 오간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벌써 그쪽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었나 보다. 정말 알면 알수록 쉬운 사람이었다.

“태상장로께서 신경 써 주시니 전 걱정하지 않습니다.”

“흥! 내가 그것들을 왜 신경을 쓰나! 다음에 융중산을 지날 일이 있거든 꼭 들렀다 가거라.”

하며 제갈정이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는 제갈현운.

“태상장로께서 자네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보군.”

“되려 싫어하시는 것 아닙니까?”

“태상장로께선 싫어하는 사람에겐 잘 지내라는 말만 하시지 무슨 이유로라도 다시 보자는 말은 안 하시네.”

“정말 고약한 성격이군요.”

“사실 내 마음도 다르지 않아. 가끔 들러 아들 이야기나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

하남성 등봉에는 산적들의 전설인 백마산군의 비밀 거처가 있다.

처음으로 녹림칠십이채를 하나의 녹림맹으로 만들고 천하의 산로를 모두 지배했던 산적왕 백마산군.

평생 칠십이 개의 산채에서 받는 상납금만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는데, 그가 직접 수탈한 보물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그가 어떤 보물을 남겼을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의 거처엔 재산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심 많은 백마산군이 남긴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해 온 천하를 다 뒤졌었다.

허나 강호의 모든 도둑들이 천하를 다 뒤졌음에도 끝내 백마산군의 비밀창고를 찾지 못했는데.

그 비밀창고는 숭산의 소림사가 등봉에 손님용 전각을 세우면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차마 산적인 백마산군이 소림사가 있는 숭산 인근에 자신의 비밀창고를 만들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백마산군이 황금을 좋아했던 건 내게 행운이고.”

비밀창고에는 월향의 무덤만큼은 아니었지만, 보따리 세 개가 될 정도의 황금이 나왔다.

나는 곧장 하남성 정주의 하오문 지부에 들러 금붙이들을 모두 전표로 바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번에도 시세 가격을 그대로 쳐주었다.

“진소운님은 특별관리 대상이시니까요.”

처음 보는 정주 지부장의 말.

“그렇습니까?”

“문주님께선 답변을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에 대한 건지 말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무림학관 정시가 시작되기 전에만 결정이 나면 되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곧장 무강의 서호봉으로 향했다.

평정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관통하는 서호봉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화후의 내단이 발견된다.

양기를 뿜는 영약 중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이 영약은 습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우선 열기를 품고 백 년을 살아온 화후를 찾아야 했으며, 그 화후를 잡아야 했고, 화후가 내단을 뱉어내지 않은 상태여야 했다.

그렇기에 효능은 비슷한 영약이 있을지라도 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는 것이 화후의 내단이었다.

그런데 서호봉의 골짜기에선 이 화후의 내단이 신원미상의 시체와 함께 발견된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화후를 찾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했지…….”

정마대전 초기에 모용세가가 무너진 이유로는 다른 문파들이 제때 지원하지 않은 것까지 무리하게 지원하다 손실이 컸던 것도 있지만, 모용세가를 이끌어야 할 소가주가 너무 이른 나이에 사라져 버린 탓도 있었다.

그 강인했던 모용설 소저는 가장 힘든 밤을 지낼 때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나에게만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또 했었다.

그녀에 비해 활약이 두드러지지 못했던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반복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하루는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무엇도 잊지 않는데 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 주는 거냐고.

[나의 생생했던 기억을 공자가 기억해 주길 바라요. 그래야 내 기억이 흐려졌을 때. 나에게 생생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이야기해 주지도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왜 먼저 청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을까.

이 이야기가 맞냐는 핑계를 대면서 먼저 다가가지 못했을까. 무척이나 후회했었다.

“아서라. 그만 생각해도 된다. 이제 오지 않을 미래다.”

심장 부근에 이상함이 느껴지려는 순간, 얼른 머리를 털고 머릿속 장서고에서 강호 영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나는 서호봉의 골짜기에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한 후.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쏴아아아.

어느 정도 아래로 내려가자 힘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장 비룡조를 쏘았다.

휘리리리릭.

작은 태엽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천잠사가 천천히 늘어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거의 골짜기 끝에 다다르자 골짜기 중앙으로 흐르는 세찬 물살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골짜기 벽면에 뚫린 구멍들을 세다가 한 곳을 정하곤 비룡조를 뽑아내는 동시에 벽면을 박찼다.

툭.

꽤 먼 거리였지만 움직임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볍게 느껴졌다.

태을진경과 천하독행신을 익힌 이후로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저기 있구나.”

깊지 않은 작은 동굴.

입구 근처에 죽어있는 시체가 하나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제가 좋은 곳에 쓰도록 할게요.”

시체를 뒤집어 품을 만지려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사…려주…….”

“!!”

머리카락이 삐쭉 서며 절로 흑룡검이 뽑혀 나왔다.

‘아직 죽은 게 아니었어?’

이곳에 시체가 있을 거로만 생각했지, 그 시체가 살아 있을 거라 상정하지 않았던 나는 혼란 그 자체.

‘살인멸구?’

순간 번뜩 머릿속에 든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서라. 영약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

화후의 내단이 아쉽지만,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다면 절반 정도는 떼어주지 않을까? 라는 계산으로 그의 상태를 살피려 동굴 밖으로 조금 당긴 순간.

그의 얼굴에 빛이 비치며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에 고개가 갸우뚱 꺾였다.

‘어디서 본.거.같.다.고?’

내 기억은 너무 정확해서 틀릴 일이 없다.

내가 본 것이라면 내가 기억하는 것이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이 남자는 내게 ‘어디서 본 것 같은?’이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그때, 갈라진 목소리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바짝 귀를 데었는데.

“…오용…가…….”

“뭐라고요?”

“……모용…….”

뒤통수에 벼락이 내려친 기분이었다.

‘모용’이라니.

다시금 남자의 얼굴을 보며 어떤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확히 ‘모용설’의 얼굴과 그의 남동생인 ‘모용재화’의 얼굴을 반반씩 섞으면 이 남자와 똑같은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럼 실종된 모용세가의 소가주 모용상원이 화후의 주인이었다는 거야?’

그가 어찌하여 화후의 내단을 가지고 홀로 이곳에서 죽어갔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재빨리 맥을 짚었다.

“맥이 너무 약해. 대체 뭐지? 독인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꼴딱거리는 맥박.

나는 재빨리 그의 옷을 벗기고 독흔을 찾으려다 기함하고 말았다.

“마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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