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어둠을 엿보는 일류무사(2)>
정마대전의 패배 원인을 꼽자면 수없이 많이 꼽을 수 있지만,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마기’였다.
천마신교의 근본이 되는 천마경으로부터 비롯된 수없이 많은 마공들.
그 마공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마기는, 마공을 익힌 사람보다 마기에 공격당하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치명적이었다.
마기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높은 도력이나, 선천지기.
하지만 500년간의 많은 변화 속에서 깊은 정신적 수양을 유사 좌도방문의 술로 인식하고 있던 무림사에선 도력보다 초식을, 선천지기보다 내공을 가꾸는 데에만 열중을 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백도무림의 멸망.
미약한 마기는 막대한 내공으로 얼마든지 몰아낼 수 있지만,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마기는 순식간에 신체를 집어삼킨다.
마기는 독약보다 치명적이다.
특정한 해독제가 없다 보니 중독된 본인의 신체 능력으로 몰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면 죽는다.”
온몸의 상처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장에 마기를 몰아낼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않다.
지금 생각하기로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라 한다면, 월향의 무덤에 가서 선천지기로 몸을 씻어내는 것이겠지만.
조금만 움직였다간 내부의 충격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컸다.
당장에 화후의 내단이 있지만, 기운이 떨어진 지금 화후의 내단을 먹였다간 내부의 장기가 모조리 녹아버리게 될 것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인가.”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가장 힘든 밤마다 나를 찾아 이야기했던 모용설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고 싶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지만, 내겐 과거였던 그 시간에 대한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 순간 오른쪽에 차고 있던 천마지존환, 아니 이제는 적봉환이 된 물건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동안 어떤 효능이 있었는지 모르기에 그저 안쪽의 ‘천마지존환’이란 글자만 깎아낸 뒤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적봉환이 미미하게 떨리면서 모용상원의 마기를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제야 적봉환의 효능이 뭐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내공을 불어넣어 보아도 미동도 없던 적봉환은 오직 마기에만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적봉환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부르르 떨리던 적봉환의 진동이 서서히 커지면서 모용상원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마기들을 조금씩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끌어당긴 마기가 내 몸을 중독시키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마기만 끌어당겨서 삼킬 뿐, 그걸 다시 내뿜어 내지는 않았다.
“푸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모용상원이 마기에 오염된 죽은 핏물을 분수처럼 토해내었다.
“휴우.”
천천히 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도 모용상원의 온몸을 잠식하던 마기는 모두 제거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미미한 기운 때문에 모용상원을 함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 이곳에서 요양을 해야겠는데……. 지금 당장 기운을 복돋을 영약이…….”
머릿속 강호영약서를 뒤지며 모용상원을 치료할만한 영약을 찾아보았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약이 무려 육 일이나 가야 할 거리.
“의원을 다녀오기도 아직은 불안하고.”
간헐적으로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걸 보니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약을 짓기 위해 자리를 떴다간 돌아와서 시체만 구경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때, 모용상원이 조금 정신을 차렸다.
좀 전보단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내, 내 부탁이 있소…….”
머리를 들려는 그를 보며 대경하며 말했다.
“잠깐 가만히 계십시오. 지금 함부로 움직이려 하다간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아니……, 난 어차피…….”
말을 듣지 않는 환자의 입을 막았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운을 아끼는 게 최선이었다.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인가.”
나는 품속에서 단도를 하나 꺼내었다.
노숙을 하면서 가끔 쓰는 물건인지라 날이 바짝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단숨에 손바닥을 그었다.
내가 그동안 먹은 영약들 대부분은 태을진경을 통해 내공으로 환원화되었다.
그럼에도 워낙 먹었던 양이 방대했던지라 아직도 몸 안에 남은 영약의 기운이 있었다.
더구나 내가 한번 소화하여 독성이 제거된 상태이기에 환자에게 주기에도 무리가 없는 상태.
“제발 살아주십시오. 당신이 죽으면 그 사람이 힘들 때 기댈 곳이 없습니다.”
난 절박한 심정으로 손의 피를 짜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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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상원은 자신의 끝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무공에 대한 재능과 열의는 있었지만, 제 누이에 비해 항상 약한 부족했던 아들 모용재화는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수없이 많은 영약을 먹여보았지만, 태생이 그런 것인지 내공은 늘어나도 체질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림맹에서 초빙된 명의가 모용재화의 맥을 짚어보곤 몸에 맞지 않는 영약을 먹었다며 혀를 찼다.
명의의 말로는 남자 몸치곤 화(火)기가 부족하여 신체의 조화가 맞지 않는 상태이니 화기가 충만한 영약을 먹는다면 몰라볼 정도로 강맹한 신체를 가질 거라는 말을 했다.
이후 화기의 영약을 구하려 백방으로 소문을 내고 재화를 풀어보았지만, 무림학관의 시험이 열리기 전이라 영약의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황산에 화후가 발견되었다는 확실한 정보를 듣곤 모용상원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었다.
호위무사 둘과 함께 화후가 목격되었다는 황산에 들어섰고, 몇 주를 산에서 숙영하는 수고를 거쳐 드디어 화후를 발견했다.
호위무사 둘과 함께 화후를 한쪽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 모용상원은 결국 화후의 내단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근심이 풀렸다고 생각한 순간.
정체불명의 이들이 그들을 습격해 왔다.
모용상원은 처음엔 그들의 습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후의 내단을 노리는 잔챙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 이 무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중원의 무공과 궤를 달리하는 그들의 어지러운 무공과 독에 중독된 것처럼 몸을 좀 먹는 정체불명의 기운.
자신을 보호하려던 호위무사들이 피를 토하며 즉사하는 모습을 보곤 난생처음으로 죽음이 엄습함을 느꼈다.
필사의 각오로 이름 모를 산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천 길 낭떠러지를 뒤로하여 습격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따위 짓을 벌이는 것이냐!”
상대에 대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 말을 걸어보았지만, 습격자들은 말없이 공격을 감행할 뿐이었다.
결국 모용상원은 천 길 낭떠러지로 몸을 날렸고, 습격자가 중독시킨 무언가에 당한 채 절벽 아래에서 죽어가던 중이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흘렀을까?
‘아버지, 소녀 불안합니다. 가지 않으시는게 어떠십니까?’
세가를 나서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던 딸아이의 처연한 얼굴이 떠올랐다.
다 커서 이제 곧 시집을 가야 할 녀석이 별걱정을 다 한다며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딱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득히 옅어지는 정신 사이로, 웬 인영이 줄을 타고 계곡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온 이가 품을 뒤져 화후의 내단을 발견한 순간.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던 탓일까?
모용상원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문을 밝힌 것.
모용상원은 끝을 예감했다.
‘하아, 멍청하구나. 이렇게 죽음을 자초하다니.’
화후의 내단은 강호의 영약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귀한 영약이다.
계곡을 타고 내려올 정도의 무사가 영약에 욕심을 내지 않을 리 없고, 더구나 모용세가의 사람이라는 걸 안 순간 살인멸구를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용세가를 구해주고 화후의 내단을 돌려주기보단.
화후의 내단을 먹고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올 테니까.
‘어리석음으로 내 죽음을 자초했구나. 미안하다 설아…… 너를 다시 보긴 힘들겠구나.’
그렇게 끝을 직감하며 눈을 감는 순간.
놈이 이상한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기기 시작한 것.
‘끝은 점잖게 보내줘라! 이미 넝마가 된 옷가지가 네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열심히 외쳐 보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으- 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청년이 중단전에 손을 대자 몸을 좀 먹고 있던 답답한 기운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퍼졌던 독기가 모공으로, 장기에 머물던 독기는 입으로 다시금 튀어나왔다.
푸헉!
독기를 모두 내뱉자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왔다.
‘이, 이건 대체 뭔가?’
모용상원은 눈앞에 보이는 수상한 놈…… 아니, 이젠 의협심에 불타는 정의롭고 화후의 내단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협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지만 또렷하고 사내다운, 그러면서도 여성스러운 면이 조화된 헌앙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화후의 내단을 보고선 모용상원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모용상원은 청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대경실색하였다.
일부 독기가 빠져나갔지만, 신체 내부엔 독기가 이미 흡수되어 버렸고, 그런 곳에 화기가 가득한 영단을 먹으면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청년은 목갑을 다시금 내려놓았다.
청년은 절벽 위를 번갈아 보며 다시 올라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살 수 있겠다는 희망도 잠시, 이 높은 절벽 위를 청년이 자신까지 메고선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곳을 왕복하며 자신을 치료하기란 더욱 요원한 일이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난 여기서 끝이다. 부디 내 유언만 딸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전해준다면…….’
돌아온 기력으로 간신히 입을 열어 말을 했다.
“내, 내, 부탁이 있소…….”
모용상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 가만히 계십시오. 지금 함부로 움직이려 하다간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차피 난…….”
청년은 결국 손으로 모용산원의 입을 막고는 손가락을 제 입에 대며 조용하라는 모습을 보였다.
‘유언을 전해달라고!’
모용상원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걸 표할 수 있는 기력이 없었다.
청년은 단검을 꺼내 들어 자신의 손바닥에 상처를 내었다.
그러곤 붉은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모용상원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이자는…… 대체 누구길래?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위해…….’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연로하여 병약한 아버지가 죽을 고비에 다다르자 자식이 의원이 오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모용상원 또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효를 강조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 생각했기에 큰 감흥이 없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입가를 타고 들어오는 피가 뱃속으로 퍼지자 몸 전체가 따뜻해지며 기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것 아닌가.
‘전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때 모용상원의 귓가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살아주십시오. 당신이 죽으면 그 사람이 힘들 때 기댈 곳이 없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살리는 데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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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운은 피를 흘려 모용상원에게 주면서 자신이 한 가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혈을 집었어야 했는데.’
무공을 익힌 자라면 영약에 집착한다.
과거엔 영약을 먹은 자를 그대로 잡아 삶아 먹은 마귀들도 있었다.
모용상원이 자신의 피 속에 영약의 기운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에이, 설마… 그래도 모용세가 소가주인데…….’
진소운은 머릿속에 자꾸 드는 쓸데없는 잡념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