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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51화 (51/357)

#51. <어둠을 엿보는 일류무사(4)>

-자네 신법은 얼마나 빠른가?

갑자기 전음으로 말을 걸어오는 모용상원.

그의 의도를 알기에 이전, 내가 천하독행신을 익히기 전의 속도를 알려주었다.

-10리를 가는 데 반 각 정도 걸립니다.

-……전력으로 달렸을 때 말인가?

태을문의 신법은 신법이라 불리기도 부끄러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 각 정도의 시간을 벌어보겠네. 그사이 최대한 빨리 도망치게나.

모용상원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한 손엔 고이 아껴두었던 화후의 내단과 자신의 명패가 꺼내어져 있었다.

-……만약 운이 좋아 빠져나간다면, 우리 집에 들러주게. 내 자식과 아내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주게나.

난 화후의 내단과 명패를 다시금 그에게 밀었다.

-지금은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네.

혹시나 싶어 준비했던 나의 계획이 역시나 맞아서 떨어졌다.

적건인들은 나의 전생에도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모용상원의 체내의 마기를 흡수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기가 있었다.

천마경에서 발화된 수천 가지의 마공들이 있지만, 각 마공들은 자신들만의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모용상원을 공격한 자들의 마기에는 특히나 은밀하게 상대를 갉아먹는 독기와 같은 특성이 있었고, 나는 소정대 시절 이미 이 마기를 지긋지긋하게 경험했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네.

다가오는 스물의 적건인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시지요. 저도 소가주님께 청명환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모용상원이 나의 태연한 말에 코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제가 밟는 곳을 그대로 따라오십시오. 태을문의 신법이긴 하나 선배님껜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하자 처음엔 조금 헷갈려하던 모용상원은 금방 신법의 궤를 깨닫고 내가 밟은 곳을 그대로 밟아 달리기 시작했다.

내공 운용에 대한 묘리는 몰랐지만 본래 가진바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높았기에, 내가 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따라오고 있었다.

문제라면 적건인들의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모용상원의 얼굴이 점점 핼쑥해지기 시작했단 것이다.

-이보게, 차라리 내가 자네를 안고 뛰는 게 어떤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제가 밟은 곳에서 한 치라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뒤통수가 뚫릴 것 같은 서늘한 살기에 뒤를 돌아보니 이미 적건인들이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추적을 하는 사냥감 뒤에서 살기를 뿌리는 못된 버릇은 여전하구나.’

빌어먹게도 이놈들은 암살자 계열인 주제에 상대를 죽이기 직전 끔찍한 살기를 뿌려 상대를 더욱 큰 공포에 처박았다.

스릉. 스릉. 스릉.

소름 끼치는 검 뽑는 소리까지.

긴장감에 결국 모용상원이 목소리를 터트렸다.

“소운! 이제 곧…….”

그 순간.

철컥!

둔탁한 철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혀를 깨문 듯 입안에 고인 고통스런 신음이 들려왔다.

“정지!”

맨 앞에서 검을 휘두르려던 녀석이 맨 오른쪽에 선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곰 덫에 발목이 단박에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난날 음식을 구하러 가는 길에 덫을 좀 설치해 놨습니다.

-그게 무슨…….

-모용세가의 소가주님을 습격할 정도의 무력이라면 그게 우연은 아닐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

모용상원은 당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절대 제가 밟는 곳에서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곰 덫이라 발목을 잘라 먹습니다.

-아, 알겠네.

우리 두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이자, 적건인들은 발목이 잘린 사내에게 화골산을 뿌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허헉!”

산 채로 화골산에 저며진 자는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처음으로 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본 모용상원은 이전보다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지, 지독한 놈들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시금 따라붙기 시작한 적건의 사내들.

녀석들은 이제 덫을 걱정하여 초상비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모용상원은 다시 한번 대경실색.

암살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 전부가 초상비를 쓸 수 있는 문파란, 강호에 없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비도 세 자루를 넘겨주었다.

-녀석들에게 던져주십시오. 초상비에 집중하게 해선 안 됩니다.

모용상원은 재빨리 비도를 받아 들곤 동시에 두 자루를 날렸다.

쉬쉭.

챙! 챙!

나 또한 모용상원이 비도를 던진 반대편으로 공력을 잔뜩 불어넣어 비도 세 자루를 날렸다.

녀석들도 모용상원의 비도를 막아낸 자들처럼 검으로 쳐내려 했지만, 가득 담긴 내 공력에 신형이 뒤로 날아가거나 검이 부러져 목에 비도가 박힌 녀석들도 나왔다.

푸푸푹.

철컥. 철컥.

한 사람은 비도에, 두 사람은 곰덫에 걸려 손이 잘리고 발목이 날아갔다.

뒤이어 쫓아가던 동료들은 지체 없이 화골산을 뿌리고 녹는 자들은 비명 속에 죽어간다.

분명 매 순간의 위기를 넘기고 있었지만 모용상원은 상대의 그 끔찍한 손속에 벌써 심리적으로 지쳐가고 있는 듯 보였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마교의 전투 방식은 이렇게 승기를 못 잡은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정신적 피로감을 계속 쌓게 했으니까.

나는 구릉을 지나 숲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적건인들은 나무를 박차고 올라 아예 땅에 닿지 않으려 하고 있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설치해 놓은 넝쿨 두 개를 잘라내었다.

휘이익. 퍼퍼퍽!

우리가 지나가자마자 우리 자리로 사람 머리통만 한 바위 여덟 개가 떨어지며 그중 두 개가 적건인들을 맞췄다.

그들이 떨어진 위치에는 당연하게도 덫이 작동되고 있었고.

철컥! 철컥!

“크윽!”

“아, 안 돼!”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는 자도 나왔지만, 이번에도 어김없는 화골산 결말.

-선배님, 차라리 돌아보지 마십시오.

-……알겠네.

녀석들은 계속 피해가 생겼음에도 위축되기는커녕 되려 더욱 살기를 진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을 장식할 덫을 모조리 발동시켰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잘라내자, 사방에서 나무로 만든 창들이 쏘아져 나갔다.

뒤이어 예의 바위들이 사방에 날아다녔고, 목창이든 바위든 맞은 이들은 그 아래 곰 덫에 걸려 버렸다.

순식간에 또다시 두 명이 죽자, 드디어 적건인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우리는 거리를 벌리며 숲을 빠져나와 양 갈래 길 앞에 섰다.

“선배님께선 오른쪽으로 가십시오.”

“자넨?”

“전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왜 함께 가지 않나?”

“설치한 덫은 여기까지입니다. 놈들이 덫에 겁을 먹어 주춤거리는 동안, 저희는 놈들에게 혼란을 주고 최대한 빨리 도망을 쳐야 합니다.”

“알았네. 무강의 청명표국으로 오게나.”

“알겠습니다.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나와 모용상원은 동시에 양 갈래 길로 달려나갔다.

#

숲을 빠져나온 복면인들은 길을 따라 양 갈래 길로 나왔다.

예상치 못한 덫의 존재에 동료를 잃은 분노가 컸는지 살기로 숨이 막힐 듯했다.

그리고 양 갈래 길에 각각 두 사람의 흔적이 나 있는 걸 알고 각각 여덟, 넷으로 나누어 쫓으려 했다.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

내가 걸어 나오자 맨 앞에서 수신호를 하던 이가 손을 멈췄다.

“오랜만이군…… 아, 너희들에겐 아직 아니지.”

다시금 수신호로 모용상원을 쫓아가라는 신호를 하는 적건의 복면인.

“지금 그 사람을 쫓는 게 의미가 있나?”

“!”

적건인은 내가 그의 수신호를 알아차린 것에 대해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소정대 시절 녀석들과 지긋지긋하게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하는 동안, 녀석들의 수신호를 모두 외워버렸다.

결국 4명의 사내가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지기를 보고도 회포를 풀 생각조차 안 하는가? 염마귀안대여?”

“!”

“!”

“!”

달려나가던 녀석들이 걸음을 멈췄다.

“뭐랄까,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필사적으로 쫓기기만 했었는데 말이야.”

“네놈은 누구냐.”

쇠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가 네놈들의 습성을 뻔히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적건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뒤쪽에 섰던 네 명의 적건인들이 사라졌다.

나는 품 안에서 비도 세 자루를 허공에 던졌다.

커흑, 큭. 꺽!

세 개의 비명과 함께 뒤로 돌아 흑룡검을 휘두른다.

촤악!

허공에 핏물이 쏟아지며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진 적건인이 나타났다.

“어째 임기응변이란 것이 없는 건가?”

“……!”

적건인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참 말 없는 건 여전하네. 사람 무안해지게.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우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어서 그랬던 건가? 마구의 쥐새끼들.”

마구는 마교 내에서 자신들을 비하할 때나 쓰는 말이다.

중원에선 그들이 강호에 진출한 다음에나 쓰는 단어였다.

“……네놈은 누구냐?”

“우리도 처음에 너희들에게 그 질문을 엄청나게 해댔지. 한 번도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워.”

나는 양손에 광천신장의 기운을 모았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쏘아냈다.

콰과과과과과광

광천신장은 파괴에 미친 마교놈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용소아처럼 사량발천근으로 광천신장을 흘려낼 수준 또한 아니었다.

“허어…….”

광천신장에 직격당한 두 녀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장의 여파에 포함되어 있던 녀석 하나는 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곧장 태을팔만신보를 밟았다.

신법과 보법이 하나로 조화된 경신공은, 발 딛는 곳에 환영을 만들어 내어 상대에게 혼란을 가져온다.

그렇게 팔 하나가 잘린 녀석의 목을 부여잡고 텅 비어버린 단전을 채우기 위해 청룡환을 발동시켰다.

“그어어어어억!”

녀석이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 쪼그라들며, 동시에 텅 비었던 단전에 삼 할 수준의 내공이 차 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폭혈단이라도 먹게 하는 건데 말이야.”

“…….”

그들의 눈에 비치는 감정.

저것을 나는 소정대 동료들에게서 많이 보았다.

과거 염마귀안대를 맞이할 때 우리의 모습이 지금 그들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강한 상대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땐 왜 그리 두려워 했을까?”

“…….”

녀석들이 눈을 데구루루 굴리기 시작했다.

그 의도가 뭔지 알기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정체가 들켰는데도 도망갈 것인가?”

“!”

이 시기 마교 녀석들이 중원에 나타났다는 것은 내 기억 안에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함은 녀석들은 정마대전 이전에 수년에 걸쳐 사전 작업을 해왔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이 말은 곧 녀석들이 활동한다는 것을 백도와 흑도가 알아선 안 된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마음이 정해졌는지 다섯이 동시에 움직여 검진을 펼친다.

염마귀검진.

서로 간의 마기를 중첩해 일대를 지옥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것 또한 그리운 진이군.”

나 또한 태을진경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혈도를 파고들려던 마기들이 태을진경의 정순함에 밀려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한다.

소천검법 상승식을 흩뿌린다.

쐐액.

이전과 다른 속도로 마기는 물론, 공간마저 찢고 그 안을 점하던 이의 목을 잘라낸다.

쌍천검결.

허와 실이 뒤섞인 검들이 사방에 튀어나온다.

허라 생각했던 검은 실이고, 실이라 생각했던 검은 허다.

또한 허가 실이 되기도 한다.

푹. 푹. 촤악.

동시에 세 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조장으로 보이는 이는 눈앞의 현상에 바닥을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살인멸구 할 수 없다면 이 소식을 마교에 전달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극상의 신법을 펼쳤는지, 녀석의 모습은 벌써 작은 깨알처럼 보였다.

나는 천하독행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공간을 접어 녀석을 추월해 그 앞을 점한다.

“!”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는지 녀석의 반응이 늦었다.

“마, 말도 안 돼!”

자신의 마지막을 예측하는 듯한 쇠 긁는 목소리.

그리고 결과는 녀석이 예상하는 그대로였다.

촤악!

목과 몸이 분리된 그는, 죽어가기 직전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는 자신의 몸을 보고 있었다.

“가서 너희 신에게 전해라. 네놈의 신도가 곧 줄줄이 너를 만나러 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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