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58화 (58/357)

#58. <신검을 놀라게한 일류무사(6)>

“네가 가진 것이 정녕 창궁상단의 값어치만큼 하는 것이냐?”

창제신검의 의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검을 뽑았다.

“먼저 이걸 봐 주십쇼.”

방금 전, 신검이 펼쳤던 무공을 똑같이 펼치기 시작했다.

동작이 몸에 익지 않았기에 미비한 점이 있고, 무공을 익힌 경험이 천지 차이였기에 단순한 검로에도 의지를 보이는 신검의 검과는 달랐지만, 분명 똑같은 검법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따라 하는 모습에 신검의 눈이 커졌다.

“너…… 그사이 그걸 기억한 것이냐?”

“제 천형(天刑)(하늘이 내린 벌)입니다.”

“그것이?”

신검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대부분 나오는 반응.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가, 여우에게 물려 가던 장면이 방금 일어난 것처럼 생생합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는 법이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지금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이걸 봐주십쇼. 제가 생각했던 파훼법입니다.”

나는 창궁무애검법의 파쇄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온전히 창궁무애검법을 파훼하기 위한 검법.

마교의 마인들이 정파를 속절없이 베어 넘길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신검이 펼친 파훼식보다 더욱 단호하게 약점을 찔러넣는다.

동시에 일부러 파쇄식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도 찔러넣는다.

신검도 만들지 못한 온전한 파쇄식을 보여줬다간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갈천기가 만든 파쇄식은 신검이 만든 파쇄식을 훨씬 상회한다.

“산이가 당황했던 이유를 알겠구나.”

“하지만 이 파쇄식과 선배님께서 만드신 파쇄식엔 공통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첫째로 창궁무애검법을 익힌 이들에겐 너무 어렵습니다.”

검은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처음엔 머리로 익히고, 이후엔 몸으로 익힌다.

몸에 익은 자세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둘째로 창궁무애검법을 파훼하는 것 이외에는 일반적인 전투에선 오히려 삼류 검법보다 못합니다.”

“……동의하는 바다.”

“셋째는 이 검의 방향성이 뚜렷하다는 겁니다.”

“방향성이 뚜렷한 것이 무에 문제더냐?”

“남궁세가의 무공이 남궁세가의 근간을 부정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됩니까?”

“……노부가 널 보려 했던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구나.”

수백 년간을 이어온 전통 있는 검법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그 검법의 오의를 이어받는다.

제갈천기와 같은 천재가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

제갈천기는 파격(破格)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하초(下招) 중초(中招) 상초(上招).

각각의 명칭은 초식의 강함이 아닌, 약점을 얼마나 많이 보이느냐에 따라 달랐다.

상대방에게 몸을 드러내는 유인초는 하초다.

초식과 초식의 중간을 연결하는 초식은 중초다.

자신을 보호하는 초식은 상초다.

이런 분류 때문에 무공의 최후초식이 하초가 되기도 했고, 예를 갖추는 일초식이 상초가 되기도 했다.

“이것이 제가 제시하려는 값입니다.”

기수식을 펼치고.

일 초(一招初) 창궁약연을 시작으로 창궁무애검법의 파격(破格). 상승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총 서른여섯 개의 초식 중 정확히 절반의 숫자에 완벽한 상승식을 보이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만든 초식을 섞어 넣는다.

신검의 수준이면 이 안에서 옥석을 가릴 것이고, 그 옥석을 통하여 완벽한 상승식을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른여섯 개의 초식을 모두 펼치고 나자, 이마에서 주르륵 땀이 흘렀다.

“허어…….”

신검은 머릿속에서 방금 본 초식을 재조립하는 듯 한동안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자신이 정신을 놓았다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냐?”

여기에서 난 그럴듯한 거짓말을 시작했다.

“태을문이 위치한 안휘성엔 두 마리의 용이 있습니다. 태을문이 승천하기 위해선 그 용들과 대립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본 문의 무공이 너무 약했습니다.”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기억을 활용한 것이냐?”

“기억을 잊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는 것보다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 제겐 더 쉬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하던 신검이 고개를 저었다.

“놀라운 일이다. 살기가 너무 강하긴 하지만 창궁무애검법의 약점을 극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검이라니.”

높은 평가는 제갈천기의 것이다.

그의 바람은 무림맹이 다시금 강호에 우뚝 서 강호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문파들이 자파의 무공을 파훼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되려 백도 무공의 약점을 마교에 넘긴다는 누명을 쓰기도 일수.

그리고 지금 제갈천기의 바람이 나를 통해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태하에게 전해진 것이다.

“산이를 상대로 했던 것은 그것을 활용한 것이더냐?”

“네.”

“그럼 무리해서 검을 잡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제왕검법은 본 적이 없고 설사 본다 한들, 파훼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에 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아, 네 말이 옳다. 근데 왜 열여덟 가지만 보인 것이냐?”

창제신검은 내가 빼놓은 남은 절반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제 부족한 머리와 능력으로는 절반을 완성하기도 버거웠습니다.”

신검이 끌끌 웃었다.

“그게 아니라, 모든 초식을 선보였을 때 위험성을 생각한 것이겠지.”

“…….”

역시나 신검의 눈을 속이기엔 무리였다.

“……충분한 값이구나. 아니, 차고 넘친다. 창궁상단의 지부가 아니라 전부를 넘긴다 한들 아깝지 않아.”

창제신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골머리를 썩이게 한 문제의 해결법을 찾아낸 듯 그의 얼굴엔 편안함이 가득했다.

“장로 회의를 열어주마. 네가 말한 의제에 대해서 발표할 것이나, 최후의 설득은 네가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더불어 네게 대연신단 한 개. 태을문에 대연신단 두 개를 주겠노라. 더 주고 싶지만, 그것이 남궁세가에 남은 모든 것이니라.”

난 최대한 몸을 숙여 포권을 쥐었다.

“이 은혜는 길이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남궁세가의 기둥뿌리를 뽑아가는 녀석이.”

흐뭇하게 웃던 신검이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궁금한 것이 있다. 어찌하여 무공을 펼침에 있어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냐?”

내공 운용법을 모르는 내가 펼칠 수 있는 최대함이었음에도 신검의 눈엔 그마저도 일부러 그런 듯 보였나 보다.

“초식은 눈으로 익힐 수 있지만, 구결은 눈으로 익힐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더냐, 넌 한번 본 것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머리로 기억하는 것을 어찌 몸이 바로 발현할 수 있겠습니까?”

신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어떤 기연을 만났는지 모르겠다만 이미 오룡봉성의 경지에 닿아 정기신의 조화를 이룩한 것 아니었더냐?”

일전에 무량불괴멸혼진 내부에서 진로를 파악하기 위해 억지로 상단을 열었다가 중단까지 개통한 적이 있었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기연이라면 기연. 덕분에 오룡봉성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격기를 피했음에도 그것만으로도 신검은 내 경지를 파악하고 있었음인가.

“……맞습니다.”

“정기신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곧 생각의 뜻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 아니더냐. 머리로 외웠다는 것은 곧 신체 또한 기억한다는 것이고.”

“……!”

순간 머릿속에 뇌성벽력이 치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기연으로 오룡봉성의 경지에 올랐지만, 정기신의 조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검이 그것을 눈치채고 혀를 찼다.

“이런 미욱한 녀석을 보았나. 이미 정기신의 조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내공과 신체와 생각이 하나가 된 것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머릿속에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몸 또한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

“몰랐던 것이냐?”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 음…… 너희 사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만, 아마 너희 사문에서 너 정도의 경지에 닿은 이가 없었겠지?”

“……예.”

태을진경도, 영약도 내게서 처음으로 얻었던 것이기에.

“아마 그것이 문제였을 것이니라.”

“…….”

“걱정 말거라. 이제 네놈이 있지 않으냐? 너의 아래 세대에선 너보다 더 뛰어난 녀석도 나오겠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어서 앉거라. 깨달음은 그 순간 정리하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나는 당장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 태을진경을 끌어올렸다.

지금, 이 순간 천금보다 귀한 깨달음을 놓칠 수 없었다.

“끌끌, 이것으로 조금은 갚은 것일까나? 물론 부족한 것 같다만……. 어떻게 갚을까나…….”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사이, 신검의 혀 차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

무아지경(無我之境) 속에서 선명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태을문의 계철영이 삼영검을 펼치고, 홍사련이 섬뢰검법을 펼친다.

무림맹의 화산의 화정산이 매화검법을 펼치고, 소림의 일명이 나한십팔장을 펼친다.

염마귀안대가 염마귀검진으로 도륙을 하고 흑사자 곽궁이 일권으로 태산을 소멸시킨다.

곧이어 내 모습이 그들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이전처럼 동작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동작 속에 나의 의념이 새로이 자리하고. 나의 의념이 움직일 때마다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내공이 움직인다.

그 뒤 다시 흑룡검을 뽑아 들고 있는 내가 나타난다.

태을진경을 끌어올려 만검을 펼친다.

그 만검 속에 타인도 나도 모두 산산이 부서져 영원히 사라져 없어진다.

부서지는 가루 속에 천천히 눈을 뜨자, 팔짱을 낀 남궁산과 걱정스런 눈으로 보는 남궁선화가 눈에 보였다.

“깨어났는가?”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습니까?”

“꼬박 하루를 이렇게 있었네.”

찰나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던가.

“여태껏 이곳에서 절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남궁산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님께서 지금쯤이면 깨어날 테니 데려오라 하셨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궁산이 나를 한참이나 지그시 바라봤다.

“자네…… 할아버님과 무슨 일이 있었군.”

“그게 무슨 소린가요? 오라버님?”

남궁산이 남궁선화의 질문에 답했다.

“어제 봤던 진 공자와 오늘 본 진 공자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네?”

남궁선화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고, 남궁산은 호승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할아버님 명만 아니었으면 자네와 당장 비무를 해봤을 텐데 말이야. 물론 이번엔 내공의 제약 같은 건 없어야겠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남궁산의 말에 남궁선화가 경악한 표정으로 남궁산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민망하여 얼른 화제를 돌렸다.

“신검님께서 부르신다 하셨지요?”

“가세나.”

계속해서 대화에 제대로 끼어들지 못했던 남궁선화가 급기야 내 옷자락을 잡았다.

“할아버님께서 장로 회의를 여셨어요. 그곳에 진 공자를 데려오라 하셨고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 신검님께서 고맙다는 의미로 선물을 주시겠다며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얼 달라고 하셨는데요?”

“창궁상단을 달라고 했습니다.”

“……네?”

“!!”

남궁선화는 물론이고, 남궁산까지 고개를 홱 돌려 미친놈 보듯 나를 바라봤다.

#

내실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양쪽에 늘어선 채 앉은 장로들은, 남궁 남매와 함께 들어선 나에 대한 시선이 전혀 곱지 않았다.

이미 신검이 창궁상단의 이야기를 꺼낸 모양.

나는 창제신검의 옆쪽. 창궁상단의 실질적 주인인 남궁송주의 건너편에 앉았고 남궁남매는 내 뒤편 벽으로 붙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

장로들이 내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하는 것과는 반대로 남궁송주는 차분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 방금 가주님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들었네. 그 이야기를 듣고 여기 장로분들께서도 꽤나 분개하셨지.”

차를 내려놓은 남궁송주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쉬이 믿어지지 않지만…… 가주님께선 자신의 생각이라 이야기하셨네.”

창제신검은 나를 배려하여 자신이 선택한 바라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네가 어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군. 가주께서 합비의 창궁상단을 자네에게 주시겠다 하셨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궁송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로들이 기운을 뿜어낸다.

개중에는 은밀하게 살기를 뿜어 목을 옥죄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태을진경을 끌어올려 심신을 보호한 후 말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에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남궁송주가 피식 웃음 지었다.

“그렇겠지…….”

“……만, 대선배님께서 주시는 것이니만큼 저는 감사하게 받을 생각입니다.”

“!”

남궁송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장로들 사이에서도 과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어…… 저 무식한 인사를 봤나.’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구나.’

‘한낱 뱀이 황소를 먹으려 드는구나.’ 등등.

손님을 앞두고 할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처럼 크게 광분하고 있었다.

“창궁상단을 이야기했음에도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건 단지 가주님만의 뜻은 아니었겠군. 안 그런가?”

“그것이 중요합니까?”

“내 미리 경고했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보군.”

남궁송주의 눈에서 시퍼런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창궁상단은 남궁세가의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특히나 안휘의 합비는 창궁상단의 근간이 되는 곳이지. 감히 그런 것을 달라 해? 남궁세가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 것이냐?”

장로들도 이제는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 뒤쪽에 선 남궁남매도, 남궁송주 뒤에 섰던 남궁기태도 조금씩 버티지 못하고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가주인 창제신검은 남궁송주의 주제넘는 말에 불쾌할 법도 하건만, 그저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었다.

“창궁상단이 남궁세가의 기둥이라면 그 근간은 황산의 남궁세가가 되어야지 어찌하여 멀리 떨어진 합비가 그 근간이 되는 것입니까?”

“!!”

“창궁상단은 이미 강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상단입니다. 허나 그 영역이 대부분 강남에 몰려있는 만큼. 안휘의 합비에서 활동하는 건 북쪽으로 불필요한 거리를 더 늘리는 것 아닙니까?”

남궁송주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모두들 이론적으론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겉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이었다.

“안휘성의 합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이지만, 창궁상단의 측면에서 봤을 땐, 무의미한 곳 아니겠습니까? 그런 지부 하나쯤 주는 거야 대(大)남궁세가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아니면, 합비의 창궁상단이 황산의 남궁세가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로들 사이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놈! 말이 과하다!”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그건 외부인인 네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장로전의 인물들 대부분은 세가의 무사 출신이거나 방계의 혈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직계의 힘이 강해져 자신들의 입김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훗, 꽤나 괜찮은 논리를 가져왔군.”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남궁송주가 있었다.

“자네 말이 일정 부분 맞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렇다 해도 합비를 내줄 수는 없다.”

“…….”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께서 자네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마저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최근 자네 사문에서 제철 유통에 관한 문의를 해왔네. 운 좋게 광산을 발견했다지? 창궁상단에서 그 유통을 담당해 주겠네. 이것으로 가주님의 선물을 대신하는 것으로 하지.”

장로들도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내가 말했다.

“전 창궁상단 합비지부를 원합니다.”

“…….”

조금 풀리려던 긴장감이 다시 조여들기 시작했다.

남궁기태는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두 눈에 흰자를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자네. 결국 그 끝을 보고 싶은 것인가?”

“…….”

내게 말을 하던 남궁송주가 창제신검을 보며 말했다. 마치 그에게 협박이라도 하듯.

“설사 자네가 창궁상단을 가져간다 한들, 나는 자네의 사문을 지우고 창궁상단을 되돌려 받을 자신이 있네.”

창제신검은 그 불온한 눈빛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파쇄식과 상승식을 확보한 이상, 걱정할 것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다만 창제신검은 내가 어찌 행동할지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것인가?”

열기가 과열되고 있다.

남궁송주는 마치 생사대적이라도 맞이한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이건 그리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네 놈이….”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남궁송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전에 말씀하신 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이유…… 왕가장의 왕소소 때문이겠지요?

남궁송주의 냉막한 표정이 순간적으로 깨졌다.

다시금 냉정을 되찾기 위해 표정을 애써 다잡고 있지만, 두 눈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왕소소를 구하면서 왕가장주님과 조금 인연을 쌓았는데. 그분께서는 아직도 소소를 납치한 흉수를 애타게 찾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쏟아내서라도 그 상대를 지옥으로 처박겠다고 말이지요. 전 내막을 알면서도 왕가장과 남궁세가 사이에 거대한 혈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요.

남궁송주의 얼굴에 당황이 어리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남궁송주는 전음으로 이야기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밀궁대의 무사가 고수의 반열에 속해있기는 하나, 부지불식간엔 결국 남궁세가의 무공을 드러내 버리더군요. ……원래 납치 암살 이런 일도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을 쓰는 겁니다.

-증거가 있는가?

-그 시체의 위치를 알려주어도 될까요? 아직 채 다 썩지 않았을 것인데.

나와 남궁송주가 서로 입술만을 달싹이며 대화하는 것을 보곤, 장로들이 하나둘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창제심검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창궁상단…… 아니죠. 방계와 직계가 서로 반목하고 있더군요. 이런 경우 왕가장주님이 내막을 알고 창제신검님과 뜻이 통한다면…… 신검님께 좋은 명분이 될 것 같은데…… 과연 여기서 조금 전까지 신검님의 반대편에 섰던 분 중에 살아남을 분이 있을까요?

나는 말을 하며 남궁기태를 바라봤다.

동시에 남궁송주도 내 시선을 따라 남궁기태를 바라봤다.

-창제신검님을 붙들고 있던 그 거대한 명분은 선배님의 실수로 이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분의 진노…… 받아낼 수 있습니까?

남궁송주가 창제신검을 바라봤다.

“…….”

당황한 남궁송주의 표정을 신검은 흥미롭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왕금산 장주와 창제신검의 진노를 받아내시겠습니까? 창궁상단 합비 지부로 대가를 치르시겠습니까.

-비밀은…….

-창궁상단 합비 지부가 제 손에 떨어진다 한들, 창궁상단이 사라지면, 저도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다시금 이걸 빌미로 협박한다면 난 내 모든 걸 걸고 자네와 자네의 사문을 무너뜨릴 것이네.

-이제부터 선배님과 저는 함께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전 동료에게 부탁은 해도 협박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

몇 번이나 전음을 내뱉을까 말까를 망설이던 남궁송주가 남궁태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주님…… 생각해 보니, 마령고원에서 남궁세가뿐만 아니라 강호의 많은 동도가 진 공자와 태을문에게 빚을 졌습니다. 강호의 기둥 중 하나라 불리는 남궁세가가 그 빚을 갚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 가주님의 뜻대로 창궁상단의 합비 지부를 건네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게 무슨……!”

“아니! 단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말도 안 되는 남궁송주의 말에 순식간에 장로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들었다.

창제신검과 남궁 남매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사건에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고 있었고, 나는 차분하게 벽라춘을 음미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벽라춘의 향도 훌륭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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