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용봉과 노니는 흑염룡(4)>
흐드러지게 퍼져있는 매화가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다.
저 매화 하나에 맞을 때마다 부상으로 며칠을 앓았었던가.
하지만 이내 새로운 기억이 뒤덮인다.
매화검법의 파쇄식을 쓰는 나.
그걸 넘어 태을진경을 운용하는 나의 모습.
기억 속에 떠오르는 존재의 움직임을 따라 발을 딛는다.
태을팔만신보.
환(幻)의 묘리를 가진 보법은 지나간 자리에 자취를 남긴다.
자리를 옮긴 후, 잔상이 남은 자리로 매화들이 떨어져 내린다.
파파파팍!
단단한 대리석 바닥이 심히 패며 흉하게 변한다.
연이어 떨어지는 매화들.
웅. 웅.
집을 공격당한 벌떼마냥 움직이는 매화들이 다시금 습격자를 노리듯 쏘아진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곳에 매화검법 파쇄식을 밀어 넣는다.
파파파파팍.
삼 할에 달하는 매화가 사라지자 화정산의 얼굴이 천천히 굳기 시작했다.
“……이놈!”
네 번째 격돌과 달리 소천검법으로만 상대한다.
대천검법까지 이용하여 파쇄식을 썼다간 화정산이 냉정을 찾아버릴 테니까.
사라졌던 매화들이 다시금 피어난다.
여전히 하늘을 가린 매화들은 급소를 노리며 짓쳐드려 한다.
이미 자하신공을 쓸 때부터 화정산의 머릿속엔 비무라는 개념은 날아가 버린 것이 분명했다.
다시금 태을팔만신보를 밟아 움직여 매화들을 잘라낸다.
그렇게 잘라낼 때마다 화정산의 눈에 어리는 자줏빛은 더욱 강해지고, 허공을 노니는 매화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과열된 비무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나왔지만.
태을문의 인사 중에 이 자하신공을 받아낼 사람은 없고.
용봉지회의 사람 중에 이 비무를 끝내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또 한 번 그런 상황을 기꺼워하며 검을 휘두른다.
머리로만 기억하던 것들은 남궁태하를 통해 얻은 깨달음 덕분에 몸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생에 후회로 보내며 상상했던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펼쳐지고, 태을진경을 익히면서 얻은 깨달음들은 더욱 파괴적으로 무위를 뽐낸다.
소천검법이되, 소천검법이 아니다.
“큭…….”
반복되는 접전에 화정산이 내공을 전부 끌어올린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눈의 자광뿐만 아니라 어깨에서 자줏빛 연무까지 피어오른다.
자하신공의 기운이 자연 발화하며 피어나는 오묘한 현상.
그에 따라 매화는 먼지보다 커지고 실제 매화의 모양과 비슷해졌다.
시뻘겋게 달아 오른 눈동자를 보면 이제 화정산도 한계에 달한 눈치.
이제껏 펼치지 않았던 대천검법을 부챗살처럼 펼쳐낸다.
갑자기 늘어난 검형에 화정산의 눈이 부릅떠진다.
나를 쫓던 매화들은 산개하여 검형을 쫓아가지만, 대부분이 환검이기에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쐐액.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매화의 틈 사이로 파고든 소천검법이 화정산의 옷자락을 베어낸다.
“!”
옷을 고정하는 끈이 바닥에 떨어지며 화정산의 가슴이 훤히 드러난다. 그 사이로 얇은 혈선이 드러난다.
한 치만 더 들어갔다면 부상이 얕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무슨…….”
후다닥 뒤로 물러난 화정산의 얼굴이 쌜쭉하게 변한다.
“이것이 태을문의 검입니다.”
소천검법이 쾌검식임에도 빠르지 않았던 것은 기초검법이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의 섬뢰검법과 조화가 되지 않았던 것은 섬뢰검법이 고강한 무공이어서가 아니었다.
소천검법은 대천검법과의 조화로 완성되는 검법이다.
소천검법의 묘리는 쾌(快)와 중(重).
대천검법의 묘리는 환(幻)과 변(變).
환 속에 쾌를 숨기고, 변화 속에 중을 넣는 것.
그것이 태을문의 오의인 쌍천검결이다.
“……내가 태을문의 검을 모를 거라 생각하느냐!”
다시금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
웅웅.
바람에 몸을 실은 꽃잎처럼 하늘로 치솟았다가 벌떼처럼 쏟아진다.
나는 쌍천검결을 쏟아냈다.
빠르게 베어내고.
무겁게 짓누르며.
허상으로 혼란하게 만들고.
변화로 눈을 속인다.
사삭.
화정산의 가슴을 반으로 나눈 혈선의 중간지점에서 다시 열십자 방향으로 혈선이 생긴다.
흑과 백이 어울렸던 그의 무복 절반이 잘려 바닥에 떨어진다.
“이게 무슨…….”
드디어 용봉지회의 얼굴에도 태을문도들이 짓고 있는 비슷한 표정이 드러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분노를 자아낸다. 화정산은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무슨 짓거릴 벌이는 것이냐!”
“먼지로는 저를 치울 수 없습니다.”
더욱 약을 올리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럴수록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화정산은 매화검법을 고집하게 될 터.
그리고 매화검법은 제갈천기가 사력을 다해 만든 파쇄식 앞에 무용하다.
냉정한 자, 성취가 십이 성에 오른 자라면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나, 그러기엔 화정산은 너무 흥분해 있고, 성취도 십이 성에 오르지 않았다.
쌍천검결의 환과 변으로 매화들을 흐트러트리고, 쾌와 중의 묘리로 화정산을 압박한다.
쐐액.
빠르게 짓쳐들어.
쾅.
무겁게 짓누른다.
“크흑!”
매화를 피워내느라 제때 반응하지 못한 화정산의 입에서 처음으로 기침이 튀어나왔다.
“쿨럭!”
쾅. 쾅. 쾅. 쾅.
철검문에서 겪었던 중검의 묘리를 떠올려 더욱더 강하게 내려친다.
한번 내려칠 때마다 화정산의 발걸음이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난다.
“커흑!”
복잡한 검식을 위해 내공을 급히 운용하다가 무거운 충격을 받으며 내부가 진탕된다.
그 충격이 중첩되는 와중에 흘려내지 못하면 결국 내상으로 이어진다.
“커헉!”
화정산의 입가에서 전생에 내가 그 앞에서 토해낸 것과 같은 핏물이 터져나왔다.
“무슨! 당장 멈춰라!!”
연무장 아래에서 용봉지회의 종벽기가 일갈한다.
허나, 난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계속 화정산을 몰아세운다.
바닥을 구르고 뒤로 물러서던 화정산이 결국 연무장의 끝까지 몰린다.
자신이 나려타곤을 시전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화정산은 정신없이 피하기 급급하다.
“멈추란 소리 듣지 못하였느냐!”
종벽기의 말에 난 화정산에게 검을 겨누고 말했다.
“아직 화산이 태을문에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일부러 화산을 들먹였다.
본인의 패배라면 인정할 수 있을 것이나, 화산이 태을문에 졌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을 리 없을테니까.
챙!
이미 본능만 남은 화정산은 내 검을 쳐내며 암향표를 밟는다.
순간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져 뒤에서 나타나, 유성처럼 내리꽂힌다.
유성추월검.
화산의 7대 문주가 만들어 낸 상승검법.
매화검법이 변(變)의 묘리라면 유성추월검은 중(重)의 묘리다.
쾅.
자하신공과 함께 펼쳐지는 유성추월검의 힘은 철검문의 파산검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쾅. 쾅.
유성추월검이 통하는 것 같자, 더욱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난 연화로 그의 검을 흘려내는 대신 대천검법으로 마주한다.
내 검이 유성추월검과 맞부딪히려는 순간, 허상처럼 사라진다.
연무장 아래에 선 종벽기가 외쳤다.
“정산! 뒤다!”
화들짝 놀란 화정산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내 흑룡검은 그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머리 일부와 끈을 잘라낸다.
사라락.
바닥에 그의 잘린 머리가 떨어지고, 산발이 된 화정산은 멍한 눈으로 머리카락과 나를 번갈아 본다.
“…….”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
나는 다시금 지체 없이 몰아친다.
“큭!”
쐐, 쐐액.
정신이 돌아오려고 할 땐 쾌검으로 혼을 빼놓는다.
거기에 환을 섞으면 탈각한 도사도 정신을 못 차린다.
구르고 피하고, 물러선다.
그러다 화정산이 막을 수 있을 만한 곳에 중검을 내리꽂는다.
쾅.
“우웩!”
한 움큼의 피를 뱉어내는 화정산.
전생에 문주님이 뱉어냈던 것처럼 똑같이 피를 뱉어낸다.
문주님이 그랬듯 화정산의 내상도 확실시되었다.
“빌어먹을!”
보다 못한 종벽기가 결국 검을 뽑는다.
“그만두라 하지 않았느냐!”
쐐액!
점창파의 사일검법.
소천검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가진 쾌검이다.
‘해를 쏘다’란 의미처럼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찌르기로 쏘아진다.
난 철검문이 태을문을 제압했듯 중검의 묘리로 사일검법을 파쇄했다.
콰쾅.
번개처럼 날아들었던 종벽기가 돌에 부딪힌 화살처럼 떨어져 나간다.
그를 밀어낸 후에 다시금 화정산을 몰아친다.
잠시 숨을 돌리던 화정산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정산! 정신 차리게!”
화정산에게 쾌검식을, 종벽기에겐 중검식을 쏟아낸다.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종벽기가 사일검법의 후예만궁 초식에 이어 반마만궁의 초식을 펼친다.
내가 초식을 피하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
종벽기가 입을 달싹댄다.
이어 화정산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물러난다.
“지금 내공을 끌어올리시면 부상이 심각하실 겁니다.”
“…….”
내 말에도 화정산은 그저 나를 죽일 듯 노려볼 뿐이었다.
대신 입가의 피를 닦아낸 그의 몸에서 이전과 같은 폭발적인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 종벽기의 무복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오는구나.’
각각 자신의 사문의 최종오의를 펼치려는 자세.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종벽기의 주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성된다.
검풍이 일으키는 거대한 폭풍.
그 옆으로 화중산이 허공에 번쩍 날아올라 태양을 등지고 아홉 개의 반달을 만들어 낸다.
종벽기는 회풍무류검을.
화중산은 구궁반첨검을 펼치고 있었다.
나 또한 태을검제의 오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만해천지검결.
쾌,중,환,변의 묘리를 모두 담은 만검.
허상이자 실제이고 실제이자 변화인 만검이 네 자루가 나타났다. 동시에 환의 묘리를 펼쳐 환검 스무 자루를 만들어 회풍무류검에 대항한다.
퍼퍼퍼퍼퍼퍼펑.
회풍무류검과 부딪친 만검들이 폭풍 속을 쏘다니며 검기와 함께 폭발했다.
“크흑!”
종벽기의 검기를 무효화시킨 나는 다시금 내공을 끌어올려 구궁반천검을 대항했다.
콰콰콰콰콰콰쾅.
하나하나가 검강의 파괴력과 맞먹는다는 구궁반천검의 검기들.
어쩌면 그의 경지가 아직 미숙한 것이 나에겐 행운이었다.
두 자루의 만검을 쏟아내 일부를 파괴하고, 남은 두 자루로 반첨검의 네 개의 달을 파괴한다.
이 갑자에 달했던 내공이 단전을 쑤욱 빠져나가며 오래간만에 허한 느낌을 준다.
이어 아직 해소하지 못한 마지막 하나의 반달을 소천검법으로 파괴한다.
펑!
공기가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먼지가 뿌려진다.
연무장 아래 선 사봉 중 하나가 작게 읊조린다.
“말도 안 돼…….”
“대체 저 공자의 내공이 얼마이기에.”
먼지가 걷힌 연무장 위엔 피를 한 바가지 흘린 화중산과 벼락 맞은 듯 머리가 흐트러진 종벽기가 서 있었다.
“더 없습니까?”
“…….”
“…….”
나는 다시금 태을팔만신보를 밟아 그들의 뒤를 짓쳐들었다.
내가 단칼에 그들의 가슴을 베려 할 때.
“그만!”
옹혼한 음성과 함께 소불(小佛) 일명이 부동신법으로 내 앞을 막아섰다.
마흔이 되기 전에 소림의 칠십이절예 전부를 십성까지 익힌 천재.
허나, 아직은 그 절반의 무공도 익히지 못한 채다.
“거기까지! 그만하시지요. 시주.”
“…….”
긴장한 얼굴로 합장을 하며 말하는 그.
그리고 이제는 두려운 듯 눈동자를 격하게 떨고 있는 화중산.
‘이런 장면을 볼 줄이야.’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마땅히 기꺼워하며 검을 내리쳤다.
#
쩡.
상쇄공으로 진소운의 검을 막아선 일명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에 놀랐다.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남아있는가?’
무려 구궁반천검과 회풍무류검을 막아낸 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는데, 아직도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에 대경하는 중이었다.
“이미 끝났습니다.”
“…….”
승부는 이미 났다.
자신만만해했던 것과 달리 화정산은 진소운을 넘지 못했고, 최후엔 종벽기까지 붙었지만 결국 승리한 이는 진소운이었다.
그것이 분명함에도 진소운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듯한 모습.
“단지 비무일 뿐입니다! 시주. 그만 멈추세요!”
옆에서 종벽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
“저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일명. 합격하자!”
회풍무류검이 무력하게 사라진 덕분일까.
종벽기는 후배를 상대로 합격이란 말을 서슴지 않았다.
우스운 건 방금까지 피를 토하며 도망치기 바빴던 화중산도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그만하세요!”
일명은 왼손으로 종벽기를 선인장으로 밀어내고, 동시에 오른손으론 탄자권을 펼쳐 진소운을 막아섰다.
검에 맞서 탄자권으 펼친 손이 어릿하다.
이대로라면 중간에 낀 자신 때문에 진소운도 종벽기도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자꾸 이러신다면 저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일명이 금강불괴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피부가 점차 황금색으로 변하여 하나의 빛나는 불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소림의 상승무공 중 하나인 금강불괴신공이 펼쳐진 것이다.
그 모습만으로도 대부분의 무공인들은 뒤로 물러설 법한데, 진소운은 물러서긴커녕 더욱 맹렬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주위엔 이미 화정산을 압박했던 환검들이 생겨난다.
쐐액.
일명은 부지불식간에 금강반약장을 뻗어냈다.
화과산의 제천대상을 잡아냈던 부처의 손바닥 같은 거대한 장이 펼쳐진다.
퍼퍼퍼펑.
순식간에 몇 합이나 쏘아낸 것인지, 연속적인 폭발음과 함께 금강반약장이 해소되었다.
진소운의 상태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작은 핏물이 흐르고 있었던 탓이다.
‘화정산과 원수라도 진 것인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금강지마저 펼치려는 찰나.
“인정하세요.”
용봉지회 사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용설이었다.
“인정하세요. 저 공자는 단지 그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
순간 진소운의 움직임이 멎었다.
“……진 공자, 사실입니까?”
진소운은 대답 대신 화정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만 하면 끝내는 겁니까?”
“…….”
진소운은 여전히 말이 없다.
일명이 화정산을 보며 말했다.
“화 형, 승복하세요.”
“…….”
화정산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진소운이 다시금 검을 고쳐 잡았다.
“인정하세요! 진정 피를 보고 싶은 겁니까!”
일명의 호통에 주저하던 화정산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졌다.”
화정산이 겨우 말을 내뱉자.
“…….”
진소운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검갑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겨우, 이걸 위한 것이었다고?”
일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진소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
“후우.”
끝내 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겼지만, 장내에는 아직도 정적이 감돌았다.
용봉지회의 누구도 이런 장면을 생각지 못했을 것이며.
태을문의 문도들 중 누구도 이런 광경을 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터이니 당연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누군가 정적을 깨고 미친 듯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용강 옆에 선 모용재화가 마치 제 사문이 큰 승리를 거둔 것처럼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와 눈을 맞춰 고개를 까닥여 주고 문주님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홍문기.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죽었던 자식이 돌아온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울음을 시작으로 장로들이, 뒤이어 당주들이.
어른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오라버니가 이겼어!”
왕소소가 주변의 얼이 빠진 제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대, 대사형이 이겼다!!!”
“대사형이 화산을 이겼어!!!”
“아니야! 화산과 점창도 이긴 거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자들이 태을문 전체가 떠나가라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난 이내 연무장에 올라오려는 사제들을 대신해, 연무장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태을문에 찬물을 끼얹는다.
“…….”
고개를 돌리니 종벽기가 씩씩거리며 허연 김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무공! 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이냐!”
“태을검제의 검을 견식하고 싶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태을검제의 검이 맞느냐?”
“…….”
뚱딴지같은 소리에 용봉지회의 인물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 무공! 태을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것이 맞는지 물은 것이다!”
“…….”
내가 대답하지 않자 득의양양해진 종벽기가 활짝 웃었다.
“……네놈이 어디서 우연찮게 기연을 얻은 것이 분명하렷다.”
기연은 기연이었기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
“만약 그렇다면, 우선 그 무공의 권리는 무림맹에게 먼저 있다. 그리고 무림맹이 그 무공의 연원을 찾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
종벽기가 기괴하게 미소 짓는다.
“우리 용봉지회는 감찰사자의 권한으로 그 무공을 조사하겠다!”
“…….”
이런 식인가?
너무 뻔한 수법.
무림맹은 기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기연을 통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신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 북풍권성이라는 거물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무림맹은 그의 무공의 연원을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그를 핍박했지만, 그는 그에 불복하였다.
그 핍박 속에 북풍권성은 이름을 날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무림맹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종 공자! 그만 하세요! 그건 우리의 권한이 아닌…….”
모용설이 종벽기를 말리는 듯 보였지만, 그 뒷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후후…….”
“우, 웃어?”
오백 년이다.
무려 오백 년이란 시간 동안, 제자는 태을문을 짓고 부족한 살림과 약한 무공 속에서 간신히 태을문을 지켜가며 사부를 기다렸다.
또한, 믿었던 이들의 계략에 빠져 탈출할 수 없었던 사부는, 자신의 제자에게 무공이 전달되길 바라며 오백 년간 그 밀실에서 기다렸다.
“……그 긴 시간을 그 방정맞은 주둥이로 입에 담아?”
“뭐, 뭐? 너 지금…….”
“마지막 유언은 그것인가?”
“무슨…….”
“결정했다.”
오늘 놈을 죽이고 무림맹과 척을 진다.
어차피 사라질 무림맹, 굳이 바꾸겠단 생각도 없었다.
많은 계획이 어그러지고, 구해야 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고 질질 끌려다니기엔 전생에 대한 후회가 너무 많다.
“쉽지 않겠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소불 일명.
청풍명검 소제호.
중창진인 악북산.
섭혼서시 서사령.
옥안소소 황보연.
백수신녀 당서희.
그리고 미소철검 모용설.
저들이 막아설 것이다.
상관없다.
막아선다면 모용설을 제외하고 모두 죽일 것이다.
의념을 가득 담아 내공을 움직이고, 부족한 내공은 선천진기까지 끌어올려 운용한다.
태을진경은 의념의 의지를 가장 확실히 실현시키는 공부.
나조차도 처음 겪어보는 살기와 함께 만해천지검결을 흩뿌린다.
“이, 이……게 무슨!!”
“…….”
매화검법이 연무장을 지배했듯, 만검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하나 살기가 가득 담긴 것들.
“진 공자! 진정하시오! 그런 뜻이 아니외다!”
그 소불 일명이 대경하며 비명을 지르지만, 내 귀에는 닿지 않는다.
내가 가져온 태을진경과 만해천지검결은, 앞으로 태을문에 무궁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무공을 전폐당한다 한들 내가 태을문에서 할 일은 많을 것이다.
“이미 늦었어.”
사색이 된 용봉지회의 모두가 연무장에 올라와 만검에 대응하려는 찰나.
“끌끌끌. 무림맹을 변화시키라고 어린 것들을 뽑아놨더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어른 흉내를 내는구나.”
호방한 음성이 귓전을 때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음성이 시작된 허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약초꾼 복장의 노인이 허공을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허공답보!”
종벽기가 기겁하며 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