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지옥 정시 제‘一’관문(6)>
평생 갑질하며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숙일 수는 없는 법. 더구나 상대가 자신에게 열심히 숙이던 사람이라면 고개가 숙여지기는 커녕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자신이 고용한 최고수들을 이쪽으로 보낼 줄은 몰랐다.
‘멍청하긴.’
하오문에게 부탁한 두 번째 일을 생각하는 도중, 무풍마간 한금탁이 자신의 마간(魔竿)에서 투명한 실을 풀어 헤치며 말했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애새끼들은 재미없다니까.”
한금탁의 특기는 위협적인 마간으로 시선을 흐리고 보이지 않는 실과 바늘을 마간과 다르게 움직여, 모르는 사이 상대의 신체를 꾀어버리는 것.
난 흑룡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고용주를 안 쫓아가도 되는 거요?”
“계룡상단은 이미 자신들이 목표한 산채보다 많은 무력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금 그건 네놈이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상단주가 우릴 어떻게 하라 주문했소?”
“오른팔 하나와 단전을 가져다 달라더구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목을 베어도 좋다고.”
“아무리 낭인이어도 너무 잔혹한 거 아니오?”
“글쎄다. 우린 받은 만큼은 확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난 세 형제들에게 말했다.
“염라부 연추악은 내려치는 도끼 힘이 무척이나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검진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힘을 분산시키고, 너희들이 어찌하면 이길 수 있는지 생각해 봐라.”
“…….”
“…….”
수련자들은 자신의 발전된 수준을 확인했을 때, 수련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된다. 난 그렇게 세 형제에게 연추악을 넘겼다.
처음 실전을 겪는 아이들은 두려움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흐려지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천하독행신을 펼쳐 순식간에 세 사람과 나의 거리를 좁혔다.
“헙!”
“무슨……!”
“제길!”
동시에 만화무적권을 펼쳐 허공에 아홉 개의 권형을 만들어 냈다.
퍼퍼퍼퍼퍼퍼퍽!
한금탁과 담철각이 미친 듯이 자신들의 성명절기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고, 연추악은 도끼로 권형을 흘리며 옆으로 돌아 자연스레 세 형제에게 달려든다. 내가 원했던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심해라!”
말과 함께 다시금 만화무적권을 펼쳐 두 사람에게 아홉 개의 권형을 집중시켰다.
쩡. 쾅.
담철각의 소매 안에선 거북이 손과 모양이 비슷한 귀갑수가 떨쳐 나오며 권형을 때렸고, 한금탁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거리를 벌리지 않으며 붙었다.
“빌어먹을!”
한금탁에게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담철각이 우리 둘 사이를 파고든다.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한금탁이 마간을 휘둘러 낚시 바늘을 조정하려는 찰나.
“천잠사는 그대만 쓰는 게 아니오.”
“크윽 대체 언제?!”
나는 권형과 함께 한금탁의 가슴에 박아놓았던 비룡조를 회수하며, 반원을 그리듯 한금탁을 공중으로 띄워 바위 위에 처박았다.
빡!
“크헉!”
역시나 일류와 절정의 경계에 섰다더니 코가 박살 나고 얼굴에 상처가 남았지만, 그 짧은 시간 충격을 상쇄하며 가슴에 박혔던 비룡조를 뽑아낸 한금탁이었다.
“놈! 소문보다 더욱 비열한 놈이구나.”
“무슨 소문 말이요?”
“흑염이란 비열한 생각을 말하지 않더냐.”
“……칠흑처럼 깊은 생각이라는…….”
“닥쳐라!”
그나마 싫었던 별호가 저런 식으로 해석되니 더욱 싫어진다.
“나중에 사황봉주에게 다 이를 것이오.”
흑룡검을 뽑아 곧장 쌍천검결을 쏟아냈다.
두 사람과 나 사이엔 환검과 변검이 가득 차며 그들의 눈을 흐리기 시작하고.
처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검을 쳐내려던 담철각은 그 안에 허상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진검만을 쳐내려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금탁은 드디어 마간을 휘둘러 낚시바늘을 불규척적인 방향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펑.
흑룡검과 귀갑수가 맞부딪칠 때마다 공기가 터져나가고, 보이지 않는 낚시바늘이 내 코를 꿰려는 순간. 태을팔만신보를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크아아악!”
내가 물러남과 동시에 은밀하게 담철각의 가슴에 박아둔 비룡조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그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대체 언제?”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니까.”
나는 태을팔만신보의 환보를 펼쳐, 낚시바늘을 피하는 한편 전력을 다해 비룡조를 뜯어냈다.
우드득.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담철각의 가슴엔 주먹만 한 커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크흑.”
폭포처럼 쏟아진 피는 금세 그의 무복을 새빨갛게 적셨다.
담철각이 상처에 손을 대는 순간. 왼손을 뻗어 청룡환을 활성화시킨다.
“이게 무슨!”
청룡환에 의해 정기가 빨린 탓인지 피가 금세 멈추고, 대신 상처는 빠르게 괴사한다. 정신없는 사이 짓쳐 드는 한금탁을 향해 쌍천검결을, 물러서는 담철각을 향해 만화무적권을 펼친다.
퍼퍼퍼퍼퍼퍼퍽.
펑펑펑펑펑펑.
환검과 권형이 사방에 휘날리며 먼지를 자욱하게 뿜는다.
“철각! 괜찮은가!”
한금탁이 희뿌연 먼지 사이로 담철각을 찾지만, 담철각은 대답이 없다.
나는 한금탁의 인형을 보는 순간.
태을검제의 오의인 만해천지검결을 펼쳤다.
허공에 뜬 세 자루의 검에, 인상을 찌푸리던 한금탁이 비웃음을 날린다.
“그 빌어먹을 환검도 여기까지더냐!”
한금탁은 마간을 사방으로 휘둘러 검형에 맞선다.
어떤 것이 진검이고 어떤 것이 환검인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
하지만 마간의 간풍을 맞고도 사라지는 환검은 없다.
“무, 무슨!”
환검이라 생각한 검형들은 모두가 진짜.
힘을 아끼기 위해 진검을 찾아 헤매던 그는 종국에 진검과 환검을 구분하지 못하고 뒤늦게 몸을 뺀다.
하지만 이미 몸에 만해천지검결이 작렬한다.
푸푸푹.
양 어깨를 찌르는 두 개의 얕은 상처, 몸통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깊은 상처.
한금탁은 마지막 진기를 짜내어 마간과 낚시 바늘을 쏘아낸다.
휘리릭. 팅.
하지만 환보에 남은 잔상을 통과한 낚시 바늘은 조금 더 날아가다 바위에 맞고 튕겨 나왔다.
“허, 어찌.”
한금탁의 뒤에 선 내가 말했다.
“우리 소정대원들이 하는 말이 있지, 한 번 속으면 실수, 두 번 속으면 바보, 세 번 속으면 등신.”
고개를 돌리는 한금탁의 두 눈은 귀신을 본 듯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이류와 일류 사이의 수준이라고?”
허망한 그의 말에 답하듯 흑룡검이 움직인다.
그의 두 눈에 비친 눈동자에 환검과 진검이 가득하다.
“이 비열한 새끼…….”
전투 중에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나는 가볍게 감사를 표했다.
“칭찬 고맙군.”
*
한금탁과 담철각을 처리한 후에 세 형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채채채챙. 쾅.
금·은·동 세 형제는 필사적으로 연추악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작은 상처들을 많이 얻은 상황이었지만, 내가 이야기한 대로 최대한 연추악의 도끼를 흘려내고 동시에 검진의 이점을 백분 발휘해 시간을 끌며 싸우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연추악의 공격은 연신 막히기만 하고, 반대로 세 사람은 그 틈을 노려 조금씩 공격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검진을 펼침에 있어 공격의 기회가 나타나도, 주춤거리며 끝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싸우고 있을 것이냐?”
“대사형!”
“사형!”
세 형제가 나를 부르자, 연추악이 나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벌써? 대체 어떻게 되먹은…… 빌어먹을!”
나를 신경 쓰던 연추악이 빈틈을 보인다.
금표가 검을 찔러넣다가 주춤거리고, 은호가 연추악의 도끼를 대신 막아선다.
“담철각! 한금탁!”
연추악이 두 사람을 불러보지만,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결정했다는 듯 바닥을 박차고 도망치려는 순간.
내가 함께 날아오르며 그에게 만화무적권을 쏟아내었다.
퍼퍼퍼퍼퍼퍽!
허공에서 만화무적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바닥에 처박힌 연추악을 중심으로 세 형제가 다시금 검진을 짠다.
하지만 수련할 때의 기량이 나오지 않는다. 행공으로 내공의 여유가 있음에도 몰아치지 못한다.
실전과 수련의 간극이 나오는 것이다.
“너희 중 하나가 팔이 잘리고 단전이 부서지면 제대로 할 것이냐?”
“…….”
“…….”
정신을 번뜩 차린 세 형제의 검이 매서워진다. 연추악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탕.
내공이 가장 많은 은호가 연추악의 틈을 만들어 낸다. 금표가 검을 찔러넣는다.
‘하지만 얕아.’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적의를 가진 상대를 공격하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주춤거리는 것이다.
결국 내가 흑룡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동룡의 눈이 붉게 물들며 은호와 금표 사이에서 치고 나왔다.
동시에 동룡의 몸에선 그 나이 또래에 폭사 될 수 없는 살기가 쏟아져 나온다.
“으어어억!”
갑자기 폭사 된 살기에 질려버린 연추악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설마…….’
내가 동룡의 모습에 잠시 멍한 사이, 동룡이 마지막으로 연추악의 몸에 커다란 상흔을 낸다.
“거기까지.”
내가 연추악의 목에 검을 대자, 삼형제와 연추악의 몸이 멈춰서고 모두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온몸이 땀에 젖어 뿌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쓰으, 쓰으, 쓰으.”
금표와 은호가 한숨을 돌리는 동안, 동룡은 여전히 살기 가득한 눈으로 연추악을 보고 있다.
연추악은 목에 검을 댄 나보다 동룡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 살기를 거둬라 동룡아.”
“……아? 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룡의 눈은 평소의 해맑은 것으로 돌아오고, 동시에 긴장이 풀린 건지 녀석이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게!”
나는 목숨을 구걸하는 연추악을 바라봤다.
“우릴 죽이러 온 것 아니오?”
“나, 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했던 것뿐이야. 사감 따위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고!”
“우리가 태을문이 아닌 무당파였어도 이 의뢰 받아들였을 것인가?”
“…….”
빠각.
“크악!”
난 단박에 연추악의 팔을 가루로 만듦과 동시에 단전을 부수었다.
“커흑!”
깊은 내상과 함께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는 연추악.
“기억하시오. 앞으로 태을문에게 함부로 검을 세웠다간 그 끝이 좋지 않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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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늦은 식사를 하는 와중에 금표와 은호가 시무룩하다.
반면, 동룡은 낮에 자신이 연추악을 향해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는 것도 모른 채, 쌀과 육포로 만든 죽이 맛있다며 몇 그릇을 먹고 있었다.
은근하게 살기를 뿜어내자, 숟가락을 든 세 형제의 몸이 움찔한다.
“!”
“!”
“!”
하지만, 경기를 일으키며 물러서거나 하진 않는다. 벌써 행공을 사용하면서 불편함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자, 금표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죄송했습니다. 사형.”
“뭐가 말이냐?”
“아까의 일이요.”
아직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빨리 끝냈어야 하는데. 결국 사형의 손을 빌려…….”
“살인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난 너희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검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든 결국 너희 셋이 연추악을 꺾은 것 아니냐. 난 마무리만 했지.”
그제야 얼굴이 조금씩 펴지는 세 형제.
“사형, 그럼 그 세 사람을 꺾었으니, 앞으로 계연석 상단주가 사람을 더 보내는 것 아닙니까?”
은호의 말에 금표와 동룡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럴 걱정은 없다.”
“네?”
“하오문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했지.”
“그중 하나가 계연석 상단주를 추적해 달라는 거였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노리는 산채에 정보를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계연석은 자신의 금력을 사용해 무림맹에 지목된 산채 중 세가 가장 적은 곳을 골랐다.
절강성 부양 근처에 위치한 사호채.
무공을 익힌 두령과 부두령을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고수가 없는 산채였다.
난 그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도록 했다.
계룡상단의 표사들과 낭인들이 자신들을 노리는 것을 알았으니, 사호채는 다른 산채와 규합하거나 혹은 녹림칠십이채 중 하나에 도움을 청할 지도 몰랐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녹림칠십이채는 사실상 평가 외 대상이나 마찬가지지. 일개 학관 지원자가 무인 백을 데리고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녹림칠십이채는 강호에 널린 수천개의 크고 작은 산채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규모와 세를 자랑한다.
한 개의 산채가 곧 한 개의 방파의 크기와 다를 바 없고, 어중이 떠중이긴 하지만 다들 무공 한자락씩은 배워서 때론 명문가문의 무인들도 이들 산채는 피해 돌아가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럼….”
“사호채가 똑똑하다면 계룡상단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할 것이고, 미련하다면 그래도 시신을 수습하겠지.”
“허…….”
세 형제가 내 말을 듣고 입을 벌렸다.
“…사형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요.”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떤 금표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강호가 본래 그런 곳이다.”
무지개 빛 강호의 미래를 그리다 처음 맞이하는 냉혹한 강호의 모습에 녀석들은 무게에 짓눌린 듯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 났다는 듯 은호가 말했다.
“…어쩐지 사람들이 대사형 별호를 잘 지은 것 같네요.”
“……뭐 인마?”
“하하하.”
세 형제는 어느샌가 나란히 앉아 웃음 짓고 있었다.
은호가 내게 물었다.
“아 참, 사형 그럼 우린 어떤 산채를 상대합니까? 계연석 상단주가 가장 약한 산채를 찾았다면서요.”
내가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뒤적이자 불씨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녹림칠십이채 중 하나인 쌍막채다.”
“…….”
“…….”
“…….”
*
은호와 동룡이 누워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호법을 서고 있는 금표에게 다가갔다.
“사형, 아깐 농담이 지나쳤어요.”
“응? 무슨 농담?”
“……진짜 쌍막채가 목표입니까?”
“이미 시작이 늦은 우리에게 남은 산채가 얼마 없다.”
“……아니 그렇다고, 후… 말을 말죠.”
금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단 안 주무시고…… 뭐하십니까?”
“금표야.”
“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사형이 그런 말 하니까 더 불안한데요?”
모닥불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옆에 누운 은호의 장난을 피하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동룡이 보였다.
“동룡이 말이다. 아무래도 천살성(天殺星)인 것 같다.”
“……읍!”
내 손에 입이 틀어막힌 금표의 눈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