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83화 (83/357)

#83. <용을 쫓는 자들(4)>

미간을 찌푸리던 종서강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핫!”

그리곤 이내 자신도 몰랐다는 듯 입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어서.”

종서강이 교활하게 웃음 짓는다.

“본인이 객기를 부리는 것은 상관없습니다만, 그로 인해 사제들이 위험에 처하면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그쪽이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약한 사제들이 아닙니다.”

종서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안휘성의 작은 개천의 용이 났다고 하더니, 그저 겁 없는 이무기였나 봅니다.”

“사람들이 용이라 부르는 이유는 범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엔 종 공자가 데려온 이들이 아무리 많아봐야 그리 대단할 것 같지 않군요.”

“…….”

연신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던 종서강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를 호위하듯 둘러싼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쉽게 가는 법이 없군요.”

종서강이 고개를 젓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관문패를 내놓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라.”

“…….”

종서강의 개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내 기감은 바쁘게 움직여 주위를 파악하고 있었다.

‘백오십? 이백?’

숲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둘러싸듯 주위를 둘러친 인원은, 현재 파악된 것만 백오십에서 이백.

과거의 자료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오백의 인원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겠지.

‘아직 청도방의 소방주는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더구나 이야기하는 내내 나는, 종서강의 오른편에 서 있는 사내의 눈을 가로지르는 칼자국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정황검 감철진.’

훗날 황검문이 멸문하고 강호에 홀로 떨어져 해결사 낭인으로 이름 날렸던 고수.

‘비밀무사까지 동원한 건가?’

무림맹은 자신들에 소속되어 있는 문파의 모든 정보를 알기 바라지만, 강호의 격언대로 자신의 실력 중 삼 할을 숨겨야 한다는 본능을 가진 무인들은 무림맹에도 알리지 않는 비밀 세력을 양성한다.

남궁세가의 암궁대가 그러하며, 철검문의 흑검대가 그런 양상을 띤다.

그리고 그렇게 비밀리에 키워져 강호 활동을 하지 않았던 비밀무사들은, 지옥 정시 같은 행사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어찌할 텐가?”

“두 번 말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거절하지요.”

종서강은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벌주는 그대가 선택한 것이다.”

종서강의 말과 동시에 감철진을 비롯한 호위들이 검을 뽑았다.

나 또한 기수식을 펼치며 단매에 종서강의 목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그러자 감철진은 동룡을 노리겠다는 의도를 보이는 것 아닌가.

‘종서강의 무공을 확신하는가? 아니면 호위 중에 다른 비밀 무사가 섞여있는 건가?’

지금 당장 격돌하면 양측 모두에 피해가 가겠지만, 우리 측 피해가 더욱 뼈아플 것이 분명하다.

금·은·동 형제는 이미 검진을 준비하여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지만, 감철진 정도의 고수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종서강이 장내를 자제시켰다.

“워, 워. 흥분하지 말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야기하지 않았나.”

내가 반드시 자신을 공격할 것을 알았는지, 당장에 전투를 벌이려는 의도는 내보이지 않는 종서강.

“검을 거두게.”

종서강의 말과 동시에 감철진을 비롯한 호위들이 모두 검을 검갑에 집어넣었다.

“자고로 상처 입은 맹수가 더 사나운 법이지.”

종서강은 뭔가 확신에 차 있는 듯한 말과 함께 돌아섰다.

“하아.”

금표가 긴장을 터트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은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사형, 이걸로 저들이 물러날까요?”

“아니. 숲속에 몸을 숨긴 자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다.”

“걱정 마. 우린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싸워봤잖아.”

금표의 말에 은호가 한심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

“왜?”

쌍막채가 숫자로 봤을 때 더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일된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산적들을 백팔봉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명문대파와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더구나 비밀무사가 어디에 섞여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들과 맞상대했다간, 사제들을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단 움직인…….”

자리를 뜨려 하는 찰나, 동룡과 시선이 마주쳐 멈춰 섰다.

“힘드니?”

“……네?”

동룡의 눈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동룡 자신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던지 형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철진의 살기를 직격으로 맞고선 본능적으로 살성이 다시금 끓어오른 것이다.

“하필 이럴 때…….”

“아, 아냐! 난 괜찮아!”

나는 봇짐 속에서 탕마사령주를 꺼내어 녀석에게 걸어주었다.

“사형…… 전 괜찮…… 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붉게 달아올랐던 눈동자가 본래의 색깔을 찾았다.

“사형 이건…….”

“태을진경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신물에 의존하는 건 언제나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네.”

“움직이자.”

우리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숲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건만 나뭇가지들이 서로 격하게 부딪친다.

“…사형,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있는 겁니까?”

“모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

“……끙. 그것도 그렇군요. 근데 왜 바로 공격하지 않았을까요?”

“피해를 줄이고 싶었거나, 아니면 누가 먼저 움직일지 눈치를 보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네?”

“저들은 총 7개 문파가 모인 조다.”

“……사형.”

갑자기 은호가 진중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만약 저를 버려야 우리가 살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언제든 버려주십시오.”

“…….”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내가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은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약속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무림학관 입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좀 전에 종서강이 한 개소리에 조금 자극을 받았나 보다.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금표가 말했다.

“사형,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저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지체 없이 버려주십시오.”

뒤이어 눈빛이 돌아온 동룡도 덧붙였다.

“사형, 저도요!”

“무슨 소리야, 이동룡! 넌 막내니까 살아 돌아가야지!”

“형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장남이잖아! 방앗간 물려받으려면 형이 살아 돌아가야지!”

세 형제는 서로 제가 죽겠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녀석들아! 어떻게든 살아서 이뤄나갈 생각을 해야지, 목숨부터 버릴 생각을 하느냐! 너희를 희생하여 내가 무림학관에 입학한들 마음 편히 다닐 수 있겠느냐?”

전생에 죽도록 후회한 것이 사형제와 사숙들을 두고 혼자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죽을 각오로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 하지만, 사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건 당연한 거라고…….”

“내가 말했다고? 하나 경고하마. 절대로 죽지 마라. 죽을 생각도 하지 말고. 혹시라도 나를 위해 희생하겠다, 목숨 바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당장에 사문으로 보내어 문주님께 파문시키라 말씀드릴 것이다!”

“……!”

“……!”

“……!”

“왜 대답이 없느냐!”

“조, 존명!”

“존명!”

“존명!”

“…….”

갑자기 존명은 또 뭐란 말인가. 날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

어차피 추격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이상, 산길을 타는 것은 무의미했다.

우린 곧장 발길을 돌려 관도를 내려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사형 더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될까요?”

행공을 펼치면 신법의 속도가 자연히 줄어든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압박감이 큰지, 금표와 은호는 당장이라도 이들을 따돌리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놈들을 뿌리치지 못할 거다.”

한번 포위를 당한 이상, 포위망을 뚫기 위해 격돌하는 순간 주변에 퍼져있던 동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인간이 범을 사냥하는 데 주로 쓰이는 방식인 걸 감안하면, 황검문과 청도방이 우릴 사냥하기 위해 쓰는 방식은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임은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뿌리치지 못하면 이용하면 되는 거지.”

“네?”

덕청을 지난 우리는 막간산과 호주의 갈림길을 앞두고 있었다.

“사형.”

은호의 고개가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도의 저 끝에서는 좀 전에 보았던 종서강과 그의 호위들이 모습을 드러낸 채 따라오고 있었고, 그 옆으로 같은 황색의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일정한 거리를 벌린 채 포위망을 선보이고 있었다.

“사형! 숲속!”

우리가 방금 나왔던 산자락에서도 감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절강성에 터를 둔 남향문이었다.

기이한 것은 아직까지도 청도방의 방도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형 앞에.”

그 이유는 막간산과 호주의 갈림길에 들어선 순간 알 수 있었다.

청도방의 소방주 장순원이 호위로 보이는 이들과 호주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 채였다.

“어째 저희를 산으로 유도하는 것 같은데요?”

“도시보단 산이 사냥하기 더 쉬울 테니까.”

“손발이 척척 맞는군요.”

“……산으로 가자.”

“네? 진심이십니까? 쫓길때는 산으로 도망치지 마라. 일곱 살 짜리 애도 아는 사실인데요.”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바로 장순원이 막고 선 길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막간산은 아직 절강성에서 유명하지 않은 악산이다.

약초나 나물이 잘 나지도 않고 질 좋은 목재가 나지도 않아, 주위 사람들도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는 곳.

‘그렇기에 이곳을 사냥터로 정한 것이겠지.’

하지만 이 막간산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한 사건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곳이 된다. 나는 애당초 그 사건을 조금 앞당겨 쓸 생각이었다.

뒤를 바라보자, 황검문의 무사들이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막간산을 조금씩 포위하기 시작했다.

“더 빨리 움직인다.”

산 중턱에 오르자 산을 가로질러 반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났다.

“사형, 반대쪽에 청도방의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있어요.”

막간산의 반대쪽은 이미 청도방이 막고 있는 상황.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금표의 막막한 목소리.

그때 은호가 짜증 난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좀 닥쳐! 대사형이 어지간히 알아서 생각이 있으니까 왔겠지!”

“닥치라고? 이 새끼가! 형한테!”

“시발! 어쩌라고!!”

은호의 입에서 욕지기가 튀어나오자 금표는 금방이라도 은호를 죽일 것처럼 검병을 고쳐 잡았다.

동룡만이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형들, 왜 그래?”

“넌 좀 닥쳐! 이게 다 너 때문이니까!”

금표의 호된 소리에 동룡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애가 돈독하여 서로 살라고 이야기했던 세 형제는, 서로를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행공을 풀고 기감을 느꼈다.

‘역시.’

온몸을 따갑게 찌르듯 느껴지는 살기.

인간이 흩뿌리는 직접적인 살기가 아닌 공기에 자연스레 퍼져 온몸을 암습 하는 살기다.

이런 살기에 노출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분노를 사방으로 뻗친다.

“갈!”

사자후를 터트리자 금방이라도 일전을 벌일 것 같았던 세 형제의 몸이 우뚝 멈췄다.

“행공에 집중해라.”

산에 들어서면서 속도를 올린 탓에 행공이 점점 풀리고 정심에 살기가 스며든 것이었다.

일례로 동룡도 똑같은 속도로 움직였지만, 탕마사령주를 패용하고 있던 덕분에 분노에 잠기지 않은 것이 그 예였다.

내가 말하고 있음에도 불만 가득한 표정이던 금표와 은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나운 인상이 서서히 풀렸다.

“어?”

“이, 이게 대체 무슨…….”

“사형, 혹시 저희 진법에 빠진 건가요?”

이걸 과연 진법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진법이라 분류할 수 있다면, 이건 인간이 인간에게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진법이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너희들도 들어본 적은 있겠지…….”

마교의 마인들이 백도와 흑도의 절대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주로 썼던 전술. 전생에 이 전술에 갇혀 죽은 절대 고수들의 숫자가 백에 다다른다.

“천라지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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