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88화 (88/357)

#88. <사냥의 시간(2)>

쿠다탕

콰당!

“……으음.”

귓전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음들.

송백은 그 귀찮은 소음에 정신을 차리려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진소운과 태을문의 제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평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호위의 얼굴엔 걱정과 근심이 가득 드러나 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찐득하고 불쾌한 감각에 손을 대어보니 핏물이 묻어 나온다.

“이게 무슨…….”

“저 흉수가 부지불식간에 도련님께 기습을….”

“…….”

그걸 막으라고 당신을 쓰는 거 아닌가?

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무림학관 시험엔 일류 이상의 무사들은 사용할 수 없기에 별수 없이 고용한, 평소에 함께 다니는 호위보단 훨씬 수준 낮은 이들이니.

이 와중에 저들을 치도곤 냈다간, 애당초 태을문 제자 따위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놈들, 놈들은…… 도망쳤느냐?”

“아니…… 그것이…….”

호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화양표국의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않았던 수많은 이들이 진소운에게 달려든다.

채채채채채채챙.

진소운은 혼자서 십여 자루가 넘는 검들을 상대하지만,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되려 허상과 실체가 뒤섞여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의 검이 신묘해 보인다.

웅크렸던 봉우리가 피었다가 다시 사그라지듯 그의 흑색 검신이 가히 교교하여 시선을 빼앗긴다.

크윽.

커흑.

꺽.

그리고 검은 꽃봉우리가 피어날 때마다 깊은 상처를 입고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서넛은 된다.

‘무공의 성취가 당최…….’

소주의 모인 무사들이라고 해봐야 이류의 수준. 시험 당사자들 중에선 일류에 이르지 못한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상대라도 한 번에 열 명, 스무 명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건만. 진소운은 그걸 해낸다.

“놈의 사제들…… 그쪽을 먼저…….”

재빨리 눈을 돌려 개방도와 구분이 불가한 거지꼴의 태을문 제자를 찾는다.

그들의 성취는 확인된 바로 10년 수준.

그들을 제압하면…….

“그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응?”

진소운의 옆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는 금은동 형제.

그들의 오른손에는 검이, 왼손에는 음식이 하나씩 들려있다.

‘음식?’

채채채채챙.

후루룩.

채챙.

쩝쩝.

세 명의 움직임이 한 사람의 움직임처럼 딱딱 맞아떨어진다.

제일 큰형으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숙여 소총반두부를 집어 먹으면, 둘째로 보이는 이가 그의 등에 작렬하는 검을 막아 낸다.

막내로 보이는 제일 어린아이는 형들보다 더 매서운 검날로 상대의 요혈을 가격한다.

컥-

그렇게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가면 이번엔 둘째가 고개를 숙여 회과육을 집어 먹고, 그사이 큰형이 등을 봐주며, 막내가 공격한다.

길거리 유랑단이 합을 맞춰 익살스레 연극을 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실제 무사들이 계속 나가떨어지고 있다는 것.

“한성무관의 무사들이 모두 전투 불능 상태입니다.”

“관태무관의 제자들도 이미 기절했습니다.”

“뭐?”

화양표국이 소주 내에서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무관의 수가 무려 스무 개.

각지에서 학관 시험을 치르는 이들까지 모두 불러들였지만, 겨우 태을문의 제자를 상대하지 못한단 말인가?

“양화무관과 하화무관의 무사들은 어디 있지?”

“…….”

호위무사가 얼굴을 굳힌다.

“도련님, 그들은 도련을 위해서 준비된 자들입니다.”

아무리 무관의 수가 많다 한들 무공의 세계에선 무력의 차이가 숫자를 압도한다.

그렇기에 화양표국은 타 문파들의 비밀무사와 마찬가지로 표국의 우수한 표사들을 선발하여 가짜 무관을 운용해 송백을 위해 움직여 왔다.

“지금 여기서 그들을 쓰지 않으면 언제 쓸 수 있지?”

덕분에 송백은 그간 일관문과 이관문을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 세 배에 달하는 인원을 움직이니 어지간한 상대는 범접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이번 일로 점창의 선배들이 서운함을 느낀다면 내가 무림학관에 들어간 후에도 큰 이득이 없을 거야.”

사람들은 무림학관에 들어가면 모두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무림학관 입학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좋은 선을 타 그들과 함께하며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곳에 배속되어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무림맹 내에서 좋은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다.

그리되어야 차후 화양표국이 강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표국이 아닌 세 손가락. 더 나아가 제일로 꼽히는 표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호위무사가 손가락을 물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귀를 찌를 듯 날카로운 소리에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귀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이내 불온함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춘다.

드드드드드드드.

쾅.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히익!”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주인은 끝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덜덜 떨었다.

쿠쾅.

뜨득.

객잔 안엔 순식간에 수없이 많은 무사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무사들은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입구가 막히자, 밖으로 난 작은 창문 하나가 덜그럭거리다가 콰직 하고 부서져 나간다.

이윽고 나무로 만들어진 벽면까지 뜯겨나간 후엔, 그 안으로 무사들이 또 쏟아져 들어온다.

“대사형! 끝도 없이 들어오는데요!”

“어떡합니까!”

“그런 말이라면 음식은 좀 놓고 해라.”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인원에는 당해낼 수 없다.

유랑단 세 형제도 이제 음식을 내려놓고 기름때 묻은 왼손을 옷에 대충 닦는다.

“얌전히 함께 가시죠.”

송백은 코와 입에 흐르는 핏물을 비단옷으로 대충 닦으며 말했다.

“화양표국이 가짜 무관을 만들어 시험에 부정 응시했다더니.”

“!”

진소운의 입에서 송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 사실은 화양표국 내에서도 몇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

그걸 진소운이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송백은 자신이 놀랐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표정을 다잡았다.

“무슨 소리신지 모르겠군요. 응시생들의 협력은 무림학관에서도 추천하는 바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협력에 국한된 것이지. 애당초 명령을 직접 내리는 건, 무사를 초과하여 고용한 부정응시가 분명하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잘잘 못을 가리고 싶다면,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근데 이런 귀한 인력들을 겨우 우리 때문에 소모해도 괜찮겠어?”

“그게 무슨…….”

“삼관문에선 시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 텐데.”

“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아, 점창의 사형들에게 부탁하면 되는가?”

“뭣들 합니까. 당장 제압하세요. 관문패도 모두 빼앗으시고요.”

“예!”

“예!”

그 커다란 객잔 안에서 무사들의 목소리가 쩌렁 울린다.

태을문의 제자들은 쉽게 발 디딜 틈도 없이 한쪽으로 몰린다.

그러다 맨 앞에선 진소운의 무복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그 모습에 다가가던 무사들이 움찔 멈춰 선다.

대체 내공이 얼마기에 저토록 강력한 기풍이 발산되는 것인가.

그리고 진소운이 왼손을 뻗어내는 순간.

무사들은 본능적으로 양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

머쓱함에 무사들이 더 이상 지체할 것이 없다는 듯 달려들려는 찰나.

우드득, 우드득, 우지끈-.

2층을 떠받들던 기둥들이 차례차례 부서져 나가면서 2층에서 대기하던 인원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내린다.

“으아아악”

“비켜!”

“으악!”

가뜩이나 무사로 가득 찬 객잔이 이제는 아예 아비규환이 되었다.

진소운이 천장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구멍이 뻥 하고 뚫렸다.

이윽고 세 형제들이 진소운의 몸 이곳저곳을 잡자, 그의 손에서 기다란 실이 천장까지 뻗어 올라간다.

“밥 잘 먹었어! 아 참, 그리고 이건 잘 쓸게.”

금색 주머니를 흔든 진소운이 천정을 바라보자, 태을문의 네 형제가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듯 천장 밖으로 쏙 하니 빠져나간다.

길거리 유랑단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기묘한 장면이었다.

“…….”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송백은 순간 진소운이 흔들었던 주머니를 다시 생각해 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자신의 품을 뒤졌다.

없다. 없어. 없어. 없어졌어!

전표와 금전 주머니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금색 주머니까지.

속이 텅 비었음에도 왜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노, 놈…….”

“네?”

“놈을 잡아! 놈이 관문패를 가져갔다!!”

#

비룡조를 통해 객잔 천장을 뚫고 나오자, 은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우리 태을문을 보고 유랑단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아까 식사를 하면서 검진을 맞춘 꼬라지가 더 유랑단 같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나도 유랑단의 연극을 꽤 많이 본 편이지만, 방금 전의 녀석들처럼 익살스럽게 손발이 척척 맞는 녀석들은 본 적이 없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더냐?”

“소주를 떠나야겠죠?”

“원래 예정이 되었던 일 아니냐.”

“아우…… 좀 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건물 아래에선 화양표국의 무사들과 그의 명령을 받는 무문들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따르고 있었다.

“엇! 아까 그 점소이네요. 지금 사오나 봐요.”

목욕물과 옷의 구매를 부탁했던 점소이가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고 보퉁이를 하나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바닥이 내려앉았다.

“헙! 깜짝이야.”

“그거 우리 건가?”

“아…… 공자님이셨군요. 네. 검은색 무복으로 네 벌 사왔습니다.”

“고맙네. 이거 받게.”

나는 송백에게서 빼앗은 주머니를 점소이에게 주었다.

점소이는 묵직한 주머니에 화들짝 놀랐다.

심부름 값치곤 너무 많은 금액이 들어있음이 분명한 주머니니까.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정히나 기분 좋으시다면 은전 한 냥이 딱 좋습니다.”

“은전 세 냥은 자네가 가지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주면 될걸세.”

“네?”

“가보면 알 거야.”

“저쪽이다!”

“이크 그럼 다음에 보지.”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점소이를 두고 다시 비룡조를 쏘아 건물 위로 올라갔다.

“사형, 아까 그 송백인지 홍백인지한테서 뭐 훔치셨죠?”

“무슨 소리냐?”

“그게 아니고선 저렇게 목숨 걸고 쫓아오는 게 설명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뒤를 돌아보자, 화양표국의 표사들 몇이 건물 위로 뛰어올라 달려오고 있었다.

표사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신법 하나만큼은 다들 끝내줬다.

나는 금색 주머니를 흔들어 보여주었다.

“왜 괜히 쓸데없는 적을 늘리시는 겁니까?”

“적을 늘리는 게 아니다. 이유 없이 적이 될 녀석들에게 이유를 쥐여준 거지. 이유 없이 쫓기면 너희도 억울하지 않겠느냐?”

“…….”

금표와 은호가 동시에 한숨을 내쉰다.

“일단은 성 밖으로 나가야겠죠?”

“성안에선 저들을 완전히 떼어낼 수가 없으니.”

관(關)과 무림이 서로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안에서 칼부림이 나면 결국 관청이 나설 수밖에 없다.

서로가 살생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선 숫자가 적은 쪽이 더욱 불리하다. 자칫 잘못하단 객잔에서처럼 인파에 짓눌려 제압당할 수도 있을 터이니.

“…….”

나는 속도를 서서히 올리기 시작했다.

금은동 세 형제도 행공을 잠시 멈추고 내 속도를 따르기 시작했다.

맨 끝에 선 동룡이 제때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유 없이 쫓길 땐 이유를 만들어 줘라. 이유 없이 쫓길 땐 이유를 만들어 줘라. 이유 없이 쫓길 땐 이유를 만들어 줘라. 이유 없이 쫓길 땐 이유를 만들어 줘라.”

“뭐 하는 거냐?”

“지금 지필묵이 없어서요. 잊어먹지 않으려고 되뇌고 있어요.”

“…….”

#

확실히 인파 사이를 뛰어다니는 것보다 건물 위를 척척 넘어 다니는 것이 속도가 더 빨랐다.

뒤에서 바짝 쫓아오던 표사들도 비검 몇 방에 나가떨어지고 나니, 건물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 우리를 쫓는 인파는 없었다.

이윽고 내공을 다 써가는지 금은동 형제들이 버거워할 때쯤.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 같았다면 그대로 성벽을 넘었겠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금은 정식으로 성문을 넘어야 했다.

“대사형,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요?”

성문 근처 공터에는 수십의 사람들과 수십 대의 수레가 성문을 바라보며 길게 줄을 늘여 서 있었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표행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쟁자수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는 원래 길이 긴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저놈들이 언제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리했다고.”

소주는 강소성에서도 유달리 물자가 많이 모여들고 상업이 발달 된 도시였기에, 이런 빡빡한 검사는 되려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혹시 뒷돈을 바라는 겁니까?”

“낸들 알겠나? 바쁘니 자꾸 묻지 말게!”

할 일도 없어 보이는 쟁자수의 태도에 내가 얼른 은전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으흠, 큼. 자네가 경우가 있어 보이니 말해주지. 아까 건장상회의 단주가 포괘들에게 돈을 먹이다가 곤죽이 되었네.”

“…….”

이해되지 않는 일의 연속.

분명 소주에 들어설 때는 검문 같은 것이 없었다.

“듣기로는 화양표국이 며칠 정도 나가는 사람에 대해 검문을 강화해 달라고 부탁 했다더구만. 이번에 소주에 발령받은 현령이 화양표국 거인표사 아닌가.”

그제야 착착 퍼즐이 이어진다.

화양표국이 소주라는 거대한 도시 하나를 통째로 포위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까?”

“그나마 북문으로 가는 이 길이 가장 널널하네. 그곳 포괘대장이 말도 못 할 건달이거든. 그놈은 돈을 많이 먹이면 통할지도.”

그사이 저 멀리서 소란스런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화양표국과 소주에 몰려든 무사들이 가까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다른 곳으로 숨을까요?”

“먼저 움직이자.”

우린 곧장 동문을 향해 달려가다 말고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단의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 골목에서 나와 우리를 막아선 것이다.

다시 남문으로 움직이니 우릴 뒤쫓던 화양표국의 표사들이 도착했고, 서문쪽에선 화양표국의 표사가 휘파람으로 불렀던 이들이 나타났다.

‘처음부터 포괘들 사이에서 우릴 잡을 생각이었구나.’

검문소 근처이기에 공터가 넓고, 인근에서 포괘들이 금방 출동이라도 할 것처럼 긴장을 바짝 하고 있었다.

살인을 하면 반드시 나설 것이고, 전투가 격화되어도 민간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나설 것이 분명하다.

덫은 이미 우리가 소주에 들어설 때부터 완성되어 있던 것이다.

“제가 설계한 함정이 어떠십니까?”

화양표국의 표사들 사이에서 송백이 걸어 나온다.

좀 전에 관문패를 빼앗기고 초조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마치 장기에서 외통수 ‘장’을 외친 사람처럼 득의양양한 모습.

“점창파 밑에 있긴 아까운 재능이네.”

이건 솔직한 감상이다.

만약 내가 화양표국의 후계자였다 해도 똑같은 포위망을 갖췄을 것이다.

“근데, 우리가 살인이 무서워서 관문패를 포기할 것 같아?”

“……그거야 해 보면 알 일이죠.”

송백이 성문 위로 시선을 맞추자 현령으로 보이는 자가 깃발을 흔든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궁병들이 화살을 죄기 시작했다.

“무림학과 정시에 부정입학할 만하네.”

“자 순순히 되돌려 주시죠.”

송백이 손을 내민다.

나는 시선을 들어 금은동 형제를 바라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작게 젓고 있다.

송백은 사제들의 뜻을 알아채고 말을 덧붙인다.

“애당초 사형들이 바란 건 진 공자 하나뿐이었습니다. 진 공자의 사제들은 어찌 되어도 알 바 아닙니다.”

송백이 이를 갈며 으르렁거린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려는 순간.

“잠깐!”

청아한 고음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린다.

사람들의 시선은 급하게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두드드드드드.

이윽고 땅바닥을 두드리는 미미한 진동과 함께 용과 같은 기백을 풍기는 무사 백오십이 기마를 타고 등장했다.

그 웅장한 모습에 성벽 위의 현령과 포괘들도 움찔할 정도.

“진 공자!”

“진 공자님!”

나는 전혀 뜻밖의 인물들의 등장에 송백을 주시하는 것도 잊었다.

“성모란 소저…… 남궁선화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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