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96화 (96/357)

#96. <암흑 속 가장 날카로운 칼(3)>

“대사형은 돈을 좋아합니다.”

은호와 성모란, 초무빈은 전투 초기 암흑절혼단에게 집중 공격을 당했다.

은호는 암흑절혼단이 빛을 싫어한다는 이야기에 따라 틈이 날 때마다 사방에 불을 질렀다.

사방에 불을 질렀을 때, 이미 많은 응시생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가기 시작한 때였다.

문제는 암흑절혼단을 막느라 내공을 모두 써버린 성모란이었다.

“근데 남자들은 여자 집안에 돈이 너무 많으면 부담스러워한다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왕소소라고 새로 들어온 사매가 있는데. 집안이 굉장히 부잔데 대사형은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공과 체력을 모두 써버린 성모란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은호는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여러 말을 하던 중 대사형의 이야기에 그녀가 반응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전장의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연유였다.

“왕소소? 왕가장의 외동딸 이야기하는 거야? 왕소소가 태을문에 들어갔어?”

“알던 사이였습니까?”

“나야 알지. 왕가장이면 천하 삼대 상인 가문 중 하나인데. 더구나 엄청 이쁘잖아…… 제길, 경쟁 상대는 홍 사매 하나인 줄 알았는데.”

“네?”

“혹시 둘이 뭐 마음이 통한다거나 그랬어?”

“…….”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그런 이야기가 과연 중요한가? 라고 생각했지만, 질문을 하는 와중에 성모란의 검법이 매서워지는 것을 보고 은호는 순순히 대답했다.

“에이, 두 사람은 애초에 만날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사문 내의 소문 중에는 진소운이 왕가장에 데릴사위로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굳이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니라 생략했다.

“남녀 간의 마음은 원래 짧은 시간에 통하는 법인데.”

성모란의 검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시무룩하니 지쳐가는 모습. 은호는 성모란의 뒤를 치는 이를 막아내고 말했다.

“대사형에게 왕 사매는 막냇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애당초 대사형이 좋아하는 이상형도 아니고요.”

“진짜?”

붕 휘둘러진 성모란의 검이 엄청난 파괴력으로 응시생 둘을 피떡으로 만든다.

지친 상태에서 일반적인 검보다 두 배는 무거운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럼 진 공자는 어떤 여자를 좋아해?”

애당초 대사형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따위에 관심이 없었기에 알지 못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은호는 현 상황에 도움이 될 말을 되는대로 지껄였다.

“강인한 여자를 좋아하십니다.”

“엥?”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시련을 뚫고 가는 여성 말입니다.”

“……그거 이상형 맞아?”

은호는 아차 싶었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사기란 분위기가 전부라는 걸 대사형을 통해 배우지 않았던가.

“대사형을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독하고 끈질기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 아닙니까.”

“……하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독해 보이긴 하지.”

진소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성모란의 검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적의 검을 막는 성모란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공이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전투에 따른 체력 소모로 탈진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아, 그리고 그것도 있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뭔데?”

“잘 먹는 여자 좋아하십니다. 먹는 것 안 가리고 잘 먹는 여자.”

“정말?”

은호는 그렇게 말하며 육포 주머니에서 육포를 잔뜩 꺼내어 입에 넣었다.

성모란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어 자연스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나 잘 먹어.”

성모란도 육포를 한 줌 집어 입에 꾸역꾸역 넣었다.

은호는 작전이 이렇게 잘 통하는 이상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검진을 잘 맞추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

급박한 상황임에도 성모란은 굳이 시간을 내어 의심의 눈초리로 은호를 쏘아보았다.

“검진을 맞춘다는 건 곧 행동과 마음을 맞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사형은 소통이 잘되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은호의 확신에 찬 말에 성모란의 검식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며 검진에 맞춰지기 시작했다. 성모란이 계속 튀어나가는 바람에 고생을 하던 초무빈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

“음…… 그리고 대사형은 사제를 잘 챙겨주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은호는 자신의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되는 대로 지어서라도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성모란과 함께 싸우며 그녀를 보호하라는 것이 진소운의 명령이었으니까.

‘어떤 방법을 쓰라는 말은 없었잖아?’

지금 먼 미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

나는 어둠을 향해 움직였다.

전생에 어둠을 피해 도망 다녔던 것과 반대로.

집요하게 어둠을 쫓았다.

어둠과 어둠 사이를 오가는 동안 남궁선화와 성모란 각 사문의 무사들도 살폈다.

앞으로 백도의 수많은 정적들과 싸워야 할 마당에,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나를 따라나섰다가 횡액이라도 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창제신검이나 철검문주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가뜩이나 적이 많은데 더 만들 필욘 없지.”

어둠이 한번 내린 전장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무림정시 간에 일어난 살인과 폭력에 대해선 불문에 부치는 것이 규칙이고, 응시생들 사이에선 최소한의 정도를 지키는 것이 관례였지만, 마인들이 백도의 관례 따위를 지킬 일은 없었다.

은밀함은 저 멀리 버려둔 채 전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확인사살을 하지 않기 위해 시체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놈들의 목적은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

때문에 처음 우리를 목표로 하던 녀석들은 이제 이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이들을 최우선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나로선 마교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최초의 기회였기에 비록 내 관문패를 노리고 이곳에 온 이들이었지만, 전장을 피해 도망치려는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려내려 발에 땀나게 달리는 중이었다.

“한 번에 믿을 리 없겠지만.”

이미 자신들이 강호의 영원한 주인이라 생각하는 백도의 적폐들은 눈앞의 사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두 번 세 번 발생하면 최소한의 경각심은 가질 것이다.

그리된다면 마교의 정예들 앞에 맹의 하급 무사들을 꼬라박는 등신짓은 하지 않겠지.

“어쩌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전생에도 이와 비슷한 전장이 많았다.

맹의 무사들 위로 어둠이 덮이면 암흑절혼대가 출동한다.

어둠이 사람을 죽였다고 보고하면 헛소리 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죽어간 맹의 하급 무사가 무려 이천.

암흑절혼대는 맹의 하급 무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였다.

그들은 살아남은 하급 무사의 머릿속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고, 생존자들은 평생 어둠을 피해 살아갔다.

“그러니 궁금해지는군. 정마대전 내내 스물의 인원으로 활동했던 암흑절혼단원을 하나 만드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케헥.

성대가 녹은 암흑절혼단원은 피 눈물을 흘리며 죽어갔다.

“이로써 열.”

처음 광천신장으로 죽인 하나까지 포함해 열하나.

“소정대 놈들에게 월봉을 못 받는 건 좀 아쉽군.”

전생에 소정대 녀석들은 암흑절혼단을 한 명이라도 죽이면 평생 월봉의 절반을 준다고 했었는데.

“크으.”

발치의 응시생으로 보이는 인원이 상처를 부여잡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다행히 암흑절혼단원의 골검이 팔만을 꿰뚫은 것 같다.

“괜찮나?”

“그, 그건 대체 정체가.”

응시생은 내 손아귀에 잡혀있는 절혼단원을 보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긴 놈들 꼬라지가 여간 지독한 탓이다.

“모른다. 그저 시험과 상관없는 놈들인 것 같기에 잡고 있었던 것이지.”

“…….”

시험 얘기가 나오자 응시생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린다.

“나, 난 당신 관문패를 빼앗으러 왔오.”

응시생은 왜 그런 자신을 구해준 것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도전하겠나?”

“…….”

응시생은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다.

“시험이 아무리 치열하다 한들 우린 결국 같은 백도인 아닌가.”

“…….”

손안에 잡힌 암흑절혼단원의 시체가 흐물거린다.

처음 광천신장으로 잡은 이 말고는 모든 시체가 이런 현상을 나타냈다.

놈의 시체를 바닥에 던지자 푸쉬쉬 하는 연기와 함께 시체가 녹아버린다.

심장이 멈춘 후, 몸에 박아 둔 화골산 용액이 자동으로 터지며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이래선 무림맹도 믿지 않겠지.”

자조적인 내 말에 응시생이 대답한다.

“내가 봤소!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그럼 살아 돌아가야겠군.”

“…….”

“어둠을 피해 생존자들을 최대한 많이 데리고 도망치게.”

“그쪽은 괜찮소?”

처음 보는 사람도 걱정할 정도로 내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럼 이 전장의 무의미한 희생자도 계속 늘어나겠지.”

“…….”

“내 걱정은 마시오.”

“……고맙소.”

응시생은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걷지 못하는 이를 하나 부축했다.

두세 걸음 걷던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보중하시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소.”

내공이 바닥이다.

이미 예전의 바닥이 났다.

암흑절혼단 놈들의 뼈는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게 개조되어, 단박에 부수기 위해선 내공을 쏟아부어야 한다.

“청룡환을 쓸 수도 없고.”

그나마 떠오르는 방도는 청룡환.

청룡환이 마기에서 내기를 얼마나 뽑아낼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서라도, 혹여나 이 전쟁터에 있는 누군가 흡성대법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간 꼼짝없이 암흑절혼단원 놈들과 한패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쉴 순 없으니까. 도박을 해봐야지.”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근육에서 연신 뚜두둑 소리가 울린다.

관절은 비명을 지르고, 피는 더 없이 빨리 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이곳에서 생존자는 아무도 없다.

생존자가 없으면 마교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펑.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다음 어둠 속에 뛰어들었다.

비룡조를 뽑아 들지만 금빛 광채는 처음의 빛을 잃었다.

정확하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곳을 향해 절마광편을 휘두른다.

촤악.

역시나 힘이 많이 빠졌다.

절마광편이 힘없이 튕겨 나가고, 어둠 속의 하얀 골검이 두 명의 응시생의 심장을 꿰뚫는다.

“네 상대는 나야, 이 새끼들아!”

퍼버버버버벅-.

권형 수십 개가 어둠 속에 빨려든다. 골검으로 심장을 꿰뚫은 녀석은 흐물흐물한 유체를 이용해 권형을 모두 막는다.

촤악.

그곳에 회수된 비룡조를 채찍처럼 휘두른다.

드디어 검은 유체가 갈라지고 녀석의 실물이 보인다.

얼굴 껍데기가 사라진 녀석의 근육이 역동적인 표정을 짓는다.

그곳을 향해 쌍천검결을 꽂아넣는 순간.

스르르륵.

반으로 갈라졌던 유체가 결국 온몸을 삼킨다.

결국 녀석의 유체 속에 삼켜져 버린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기분 더럽군.”

유체 속에 갇히면 도망칠 방도가 없다.

몸은 제압된 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골검에 몸이 꿰뚫려 죽는다.

-네놈은 뭐지?

“네놈들을 마신에게 돌려보낼 저승사자.”

청룡환을 최대로 발동시켰다.

이 정도 흡입력이라면 비룡조를 뚫고 빛이 새어 나왔을 정도지만, 유체 속에 있던 덕분에 그런 기현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설마 흡성대법?

“잘 알고 있구나.”

-말도 안 돼! 네놈, 괴마님의……. 케헤헥!

말을 잇던 놈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천룡환의 흡입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서히 내 주위를 감싸던 유체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난 얼른 청룡환의 흡입력을 낮추었다.

-케흑, 어째서 괴마님의 자식이…….

놈의 형체가 확연하게 늙고 삭았지만 본래 모습 자체가 워낙 괴랄할 탓에 티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건 마신에게 가서 물어봐.”

목을 내려치자 붉은 피분수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역시나 마기는 흡수하기 힘들군.”

단시간에 출력을 최대로 잡아 흡입했건만 단전에 찬 내공은 미비하다.

-네놈 때문이었군.

그때, 암흑절혼단원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쉴 틈을 주지 않는군.”

곧장 녀석이 있는 쪽으로 몸을 던지자, 놀랍게도 녀석이 뒤로 쭉 멀어지는 것 아닌가.

-단원들을 죽인 건 네놈 혼자인가?

묘한 느낌이다.

전생에도 암흑절혼단원 놈들이 내뱉는 소리라곤 ‘죽어라’와 ‘케에엑’밖에 없었는데. 녀석의 목소리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침착했다.

-이 일을 꾸민 것도 모두 네놈이겠군.

“재밌네. 암흑절혼단장인가?”

어둠 속의 유체가 뚜렷하게 일렁거린다.

-위험한 놈이군. 대계를 망칠 녀석이구나.

“맞아. 네놈들이 한 짓을 똑같이 돌려줄 작정이거든.”

한 줌 회복한 내공을 모두 쏟아부어 천하독행신을 펼친다.

펑.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녀석에게 치닫자 녀석 또한 전력으로 뒤로 물러난다.

이어 녀석에게서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끽-----

전장에서 정신없이 싸우던 이들도 본능적으로 검을 떨구고 귀를 막는다.

동시에 사방에 펼쳐져 횃불을 끄던 어둠들이 우뚝 멈추어 선 뒤 이편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대 대체 무슨…….”

“지, 지금 봤어? 그림자가 저렇게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이봐! 여기 봐! 시, 시체야!”

“우웩!”

어둠이 한곳에 모여들자 그 근처에 있던 이들이 암흑절혼단이 만든 시산혈해를 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관문패를 노리며 벌이는 전쟁은 끝이었다.

“이렇게 정체가 드러나면 대계가 무너지지 않겠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네놈과 저들은 오늘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다.

한데 뭉쳐진 어둠들이 울렁거리더니 사방으로 검은 기체를 뿜어낸다.

“시발!”

검은 기체를 본 나는 본능적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외쳤다.

“도망쳐! 독이다!”

묵골흑기.

유체골검을 시술받은 암흑절혼단의 몸속에 흐르는 특이한 마기.

실제로 독이라 칭하긴 어렵지만, 독과 같이 작용하는 마기다.

몸에 스며드는 순간 뼈를 좀먹으며 움직임을 둔화시킨다.

내공이 약한 자는 그대로 돌멩이처럼 굳고 강한 자도 마기를 몰아내려면 한참을 고생을 해야 한다.

무당파의 태정과 화산파의 연우문의 뼈가 검게 삭아 발견된 것은 저 묵골흑기에 당한 탓이다.

내가 가장 먼저 움직였지만, 나 또한 그 묵골흑기 안에 갇혀버렸다.

더불어 나보다 늦게 반응한 응시생들과 그의 무사들도 마찬가지.

이미 복잡한 전장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 놈들은 더욱 잔혹하고 매섭게 돌변했다.

놈들은 천명에 가까운 인원들에게 자신들의 흔적이 남는 것도 개의치 않게 된 것이다.

“이런 미친 새끼들.”

나는 절마광편을 뻗어 암흑절혼단원 하나를 잡아채 청룡환을 발동시켰다.

전력으로 내공을 빨아들이지만 역시나 단전에 흡수되는 양은 미비하다.

“금은동! 도망쳐라!”

허리부터 시작해 온몸이 천천히 마비되어 가기 시작했다.

남은 내기를 가득 담아 외쳤지만,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느낌은 없었다.

‘끝인가…….’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다.

감각마저 무뎌져 이제 곧 유체골검에 심장이 꿰뚫릴 일만 남았다 생각한 순간.

오른손이 꿈틀거렸다.

손가락부터 시작한 감각이 팔뚝을 타고 어깨까지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령고원에서 얻었던 한 물건이 생각났다.

‘천마지존환.’

청룡환과 모양이 비슷하여 적봉환이라 이름 짓고 가지고 다니던 것.

그 적봉환이 묵골흑기를 스스로 해소하고 있었다.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오른손에 낀 적봉환을 비룡조와 함께 왼손에 착용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손을 뻗어 절혼단 하나를 잡아 챈 후 청룡환을 발동시켰다.

-케헤헤헤헥 끄륵.

왼손을 타고 내기가 들어찬다.

짙은 마기를 걸러내어 미량의 양만 회복하던 때와 다르다.

대해와 같은 엄청난 양의 내기가 임독양맥을 순식간에 채운다.

온몸을 일주하는 내기는 몸 안을 잠식하던 묵골흑기를 모두 태워버리고 단전이 제자리인 마냥 자리 잡는다.

이어 왼손에서 뻗어 나온 비룡조가 본래의 광채를 번뜩인다.

어둠이 걷히며 해골 일곱 개가 모두 토끼 눈을 뜨고 있었다.

-이 무슨!

태을진경을 역마경의 묘리로 운용한다.

이전과 같은 내기였지만, 지금 내뿜는 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가볍고 투명하며 무엇보다 단단하다.

쌍천검결을 사방에 흩뿌린다. 어딜 벨지 누굴 속일지 상관없다. 그만큼 암흑절혼단과 나의 거리가 가까웠으니까.

쏴악. 쏴악. 싸왁.

한 번씩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둠이 찢겨나가고 암흑절혼단원의 기괴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네놈, 이상한 수를 숨기고 있었구나.

순식간에 두 명의 단원을 잃은 단장이 해골을 딱딱거리며 말한다.

-하지만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나도 아직 네놈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해.”

천하십대고수도 살아남지 못했던 놈들이다.

기습과 역마경이 아니고서야 애당초 상대조차 되지 않았겠지.

“그래도 내가 이겼어.”

-뭐?

“해가 뜨고 있거든.”

한밤의 치열한 전투에 상관없이 찬란한 빛이 처참한 평원에 서광을 비추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당대 천마에게 전해. 강호가 마교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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