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지옥 정시 제 ‘三’관문(3)>
현 무림의 지배자는 누구일까?
사람들은 이 질문에 무림맹을 떠올린다.
지난 수백 년간 무림맹을 중심으로 강호가 재편되었고, 그를 기반으로 강호의 부흥이 일어났으며 관의 제제가 닿지 않는 곳엔 무림맹의 손길이 닿았기에, 사람들은 관보다 맹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림맹의 지배자는 누구라 볼 수 있을까?
크게 보자면 정도회를 중심으로 한 구파일방과 백도회를 중심으로 한 오대세가를 손꼽을 수 있겠다.
12봉성도 있겠지만, 아직 그들은 두 세력에 비하면 신진 세력이니 제외하자.
힘의 크기를 따지자면 백도회는 정도회에 비교가 되지 않는데, 정도회 내 두 거인의 존재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불교의 소림사.
도교의 무당파.
이 두 거인은 구파일방을 대표하고 무림맹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무림 전체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기에 무당파와 소림사와 척을 진다는 것은 곧 무림 전체와 척을 진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런 무당이 왜 굳이 진 공자와 태을문을 기다렸다는 듯 지목한 걸까요?”
원인을 굳이 찾자면 마령고원에서의 일을 꼽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걸 내 잘못이라 할 수 있나.
멸혼진 안에서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건 용소아였고, 난 그걸 저지하려다가 진법 안으로 빨려 들어갔으니까.
그곳의 참상을 목격했던 이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흑과 백에 상관없이 일심동체의 마음으로 용소아를 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사실 용소아가 점창파의 제자만 됐어도 마령고원의 생존자들이 모두 점창으로 몰려가서 죄인을 내놓으라며 백 일 시위에 들어갔을 것이다.
유야무야 없던 일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욕도 많이 안 먹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무당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증거인 것이고.
“용소아 때문에 빛을 발하긴 했지만, ‘현’자배 제자들의 실력은 동 나이대 사람들을 아득히 넘었다고 해요. 만약 그들이 태을문에게 독심을 품고 있다면 차라리 시험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중의 하나예요.”
삼관문의 대전자 목록을 보고 난 후 나를 제외한 태을문의 제자들은 얼이 나가있는 상태였고, 똘똘하게 아침부터 나와서 대전자를 고르던 모용재화는 이런 부조리하고 일방적인 패악질을 용서할 수 없다며 무당파에게 따지러 갔다.
“삼관문을 포기했다간 시험에서 완전히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삼관문의 관문패까지 가졌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과 재력, 가문의 후광까지 갖췄다는 이야기.
그런 그들을 상대로 관문패를 빼앗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빼앗을 수 있다 해도, 또 다른 추격자들에게서 도망칠 방도 또한 생각해 봐야 한다.
더구나 개중에는 관문패와 몸이 따로 움직이는 자들도 있다.
결국, ‘도망치는 입장이 될 것이냐, 상대에게 관문패를 빼앗은 후 도망치는 입장이 될 것이냐’라고 생각해 보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결론이 나온다.
“휴…….”
그렇기에 남궁선화와 성모란 소저는 자신들의 대전자를 고를 새도 없이 우리들의 시험을 걱정해 주고 있다.
덜컥.
그때 문이 열리며 모용재화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자연히 우린 하던 대화를 멈추고 모용재화를 바라봤다.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무슨 예상?”
“역시나 별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제의 실종에 관해서 물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상으로 맞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억울할 일도 아니다. 무당파의 제자들이야 워낙 그 숫자가 많기에, 전국에 퍼진 4개의 관문에 각각 자신들의 제자를 따로 분리하는 것도 당연하고, 삼관문에서 제일 약할 것 같은 상대를 찾는 것도 당연하다.
근데 마침 그 제일 약할 것 같은 상대가 자신들 사문의 이름에 똥칠을 한 이라면, 더욱이 떨어뜨릴 이유가 있는 것이겠고.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너도 일단 나가서 대전자를 먼저 정해라.”
모용재화도 어디까지나 응시생의 신분이다. 나를 위해 움직여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시험을 등한시해선 안 되었다.
“안 그래도 이미 정했습니다.”
“응? 무당파에 다녀온 것 아니었나?”
“네, 하도 말이 통하지 않기에 제가 대신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고 오는 참입니다.”
“…….”
●삼관문 시험 대전자
무당파 현군 – 모용세가 모용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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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도면 태을문의 속가제자로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작 태을문의 제자보다 더 분개하는 모용재화를 보며 금표가 한 말이었다.
“글쎄다. 그랬다간 파검 어르신께서 태을문을 가루로 만들든가, 재화를 발 병신으로 만들든지 하지 않겠냐.”
직계 가문의 유일한 장남을 반으로 가를 리는 없으니 태을문을 가루로 만들 가능성이 크겠지. 천기의 기관진식이 완성되면 괜찮으려나.
전생에도 파검의 바짓바람 때문에 제 갈 길을 가지 못했던 모용재화다.
직계 가문의 핏줄을 이을 유일한 남자의 사명이란 본래 비극적인 법 아니겠는가.
“어쨌든 저희는 삼관문을 포기하겠습니다.”
“응?”
뜬금없는 금표의 말에 은호와 동룡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도전도 좋지만, 어쨌든 역사상 처음으로 태을문에서 무림학관에 입학하는 사람도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금표가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데 녀석도 되려 고개를 갸웃거린다.
“괜히 비무를 겪다 부상이라도 입으면 사형을 도와 대여정을 치를 수 없지 않습니까. 설마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결국 금표가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니, 저희가 무슨 수로 무당파의 검수들을 상대한단 말입니까!”
이거 하극상 맞지? 감히 하늘 같은 대사형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고?
“금표야…….”
“네!!!”
“너 목소리가 좀 크다?”
“음…… 아닐걸요?”
녀석들의 반응도 이해가 되는 바다.
무당의 검수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검식의 깊이와 효율성을 제외하고 내공만 놓고 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당산의 물에는 공청석유가 흐르고 매 끼니마다 만년하오수를 처먹는 건지, 약관의 나이에 오른 제자들의 평균 내공이 반갑자를 넘는다.
어디까지나 이 수치도 평균을 냈을 때의 이야기. 무림정시에 나올 정도의 제자라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특히 나를 지목한 현수 저놈은, 전생에서 이번 기수 수석으로 정시에 합격을 하고 차후에 용봉지회에까지 입성하는 인재.
용소아가 발하는 천재성의 빛이 ‘현’자 배열의 제자들을 반푼이로 만들어서 그렇지, 그들을 따로 놓고 보면 그들도 장차 무림 역사에 이름 하나씩 채워 넣는 이들이다.
단순 계산으로 무당의 검수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선 금은동 형제가 동시에 덤벼들어야 한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내공의 차이가 있으니 우린 셋이서 나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줄 리도 없고, 괜시리 나갔다간 안 그래도 원한을 사고 있는 탓에 더 크게 다치어 대여정을 치르지 못할 일을 걱정하는 것도 괜한 근심이 아니다.
“물론 사형께서 저희가 없다고 시험을 치르지 못하시리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금표야…….”
“네.”
“이번만 봐준다.”
“헤헤……넵!”
금표는 왠지 양손을 비비며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은호는 그런 자기 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저희가 불가능에 굴하지 않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았을 때, 대사형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겁니다.”
동룡이 창궁검을 꼭 껴안은 상태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어째서 질 생각부터 하느냐?”
“…….”
“정기신의 ‘신’은 부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금은동 형제 셋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쯔쯧, 무공 구결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만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없으면 자신의 한계에 갇히게 된다.”
“세상만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내공의 차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겁니까?”
감히 대애애사형이 말하는데 불경스런 모습이라니.
은호 네놈이 암흑절혼단의 마기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구나.
“금표야.”
“넵!”
“아아악!”
금표에게 목조르기를 한번 당한 은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목을 어루만진다.
나는 말을 이었다.
“‘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이미 머릿속엔 ‘진다’라는 생각이 박힌다는 것이다.”
“그럼요?”
“어떻게 이길까를 생각해야 이기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는 방법이요?”
“잘 생각해 봐라. 단서는 너희들 가까이에 있다.”
상식적으로 태을문의 제자가 무당의 검수를 상대로 이길 방법 따윈 없다.
하지만 비무라는 특성을 생각하고, 최종 목적이 상대를 무력화시켜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닌 관문패를 얻는 것으로 접근하면 다른 방법들이 생겨난다.
더구나 녀석들의 대사형이 바로 구파일방의 파쇄식을 모두 외웠던 삼류 무사가 아니던가.
문제라면 무당파의 태극검의 파쇄식만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 말은 곧 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예전 내가 남궁산을 상대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터.
“……아!”
한참 고민하던 은호가 뭔갈 깨달았는지 입을 열었다.
“뭔갈 알겠느냐?”
“혹시…… 신흥 종교 같은 거 믿으십니까? 뭐 믿으면 이루어진다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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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 따위를 하고 있어야 한다니.”
소림의 일각이 일관문패 세 개, 이관문패 두 개를 얻었다고 들었다.
당초 현수가 일관문패 다섯 개와 이관문패 두 개를 목적으로 했던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일각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북숭소림(北崇少林)
남존무당(南尊武当)
세간의 사람들이 무림의 두 거목을 이렇게 표현하지만, 실제 무게의 추가 무당으로 이동한 지는 오래.
무림맹의 본부가 소림이 있는 하남성이 아닌, 무당이 자리한 호북성에 있는 것만 봐도 확실하지 않던가.
삿된 것에 취하길 좋아하는 민초들은 언제나 서로 박투하는 것을 즐기기에 무당에게도 상대가 있길 바랐고, 넉넉한 시골 인심으로 찾자면 소림 정도가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소림을 무당에 비교한다 한들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있는 자도 결국 자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법.
이번 무림정시에서 시험장소가 하남성으로 배정된 순간, 현수는 소림을 꺾고 무당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강호에 증명해 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근데, 태을문이라니.”
일관문패 한 개를 획득하고 다음 일관문패를 얻기 위해 다른 산채를 찾고 있었다.
지난 기수의 대사형인 용소아가 역대 기록으로 무림학관에 입학한 것을 생각하곤, 일각뿐만 아니라 대사형의 기록까지 넘어설 각오도 되어있었던 그였으니까.
하지만 현수의 시험은 그곳에서 멈췄다. 본산에선 영약을 구해서 전해준 뒤 현수와 그 사제들을 곧장 남악으로 이동시켰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무지한 이들의 말들이 어떻든 그에 휘둘리지 않지만, 직접적으로 대사형을 언급하니 말입니다.”
이번 시험의 또 다른 피해자인 태명.
그의 말대로 대(大)무당파가 무시하기엔 세간의 말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흥! 참으로 근본 없는 별호 아닌가. 흑염룡이라니.”
대사형인 현청이 무림정시를 통해 용소아라는 별호를 받은 이래, 용소아는 무당의 저력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무당파 내 제자들의 긍지였다.
소불(小佛)이라는 일명조차 용소아라는 태양에 비하면 밤하늘의 별에 불과했다.
헌데 무도한 흑도 잡배들은 어디서 근본도 없는 태을문의 제자를 데려다가 ‘흑염룡’이라는 별호를 붙이고는 용소아와 비교하곤 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듯 백도 문파에서도 종종 용소아를 욕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본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현청 사형이 마령고원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 당시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파검 어르신께서 보증하신 걸 보면 태을검제의 무공이 돌아왔다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어르신께서 기행을 하는 것이 하루 이틀이더냐. 또 말도 안 되는 고약한 이유로 진위도 불분명한 무공을 가지고 태을검제의 무공이라 이야기하신 것이겠지.”
하남 도원장께서도 말하시길 이번 정시만큼 혼탁한 시험은 없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온갖 괴랄한 소문과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애당초 태정의 손에 이끌려 올 것으로 예상됐던 진소운이 제 발로 남악까지 온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전 그 소문은 진짜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그거 말인가.”
일관문패 아홉 개와 이관문패 입곱 개를 가지고 있다던가? 그것이 실제라면 일각을 제치고 수석으로 무림학관에 들어가는 것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정보이긴 하지만.
“사형 시간 다 되었습니다.”
오늘 첫 대련이 잡힌 건 가장 막내인 현군이었다.
태을문의 제자가 넷밖에 없기에 다른 적당한 상대를 찾아주려 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모용재화가 제 혼자 성을 내더니 다짜고짜 대전자 신청을 해버리는 것 아닌가.
“너무 걱정 마라. 모용세가의 건곤파섬검이 일절이긴 하나, 모용재화는 미소철검에 비하면 한참이나 오성이 떨어진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연무장엔 시험을 기다리는 자들, 다른 응시생을 기다리는 자들, 그저 구경하러 나온 자들이 모여있었다.
무당파의 일원이 모두 대연무장에 들어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을문의 제자와 그의 일행들이 들어섰다.
“묘한 모습이군요.”
모용재화는 잔뜩 성이 나 있는 모습 그대로였고, 태을문의 진소운과 동룡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다. 반면 금표와 은호는 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피폐한 얼굴이었다.
“이래서야 비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군요.”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라.”
현수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조소를 금치 못했다.
이렇다. 무당과 상대한다는 건 상대에게 이런 부담을 주는 것이다.
“시작!”
심판관의 외침과 함께 현군과 모용재화가 기수식을 펼친다.
현군은 무당의 자랑인 태극검을 모용재화는 모용세가의 주력 검법인 건곤파섬검을.
풍백파검이란 별호가 결국 건곤파섬검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해 보면 무시할 수 없는 검법이긴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끝났군.”
기수식을 펼치는 모용재화의 검 끝이 파르르 떨린다.
어지간한 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지만, 신검합일을 이룬 자라면 단박에 그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
건곤파섬검이 중(重)과 쾌(快)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의 묘리를 하나의 검법으로 승화시킨 걸 생각해 봤을 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면 파괴력이 발산되지 않는 무공이다.
반면 태극검은 음과 양이라는 삼라만상의 기초가 되는 두 가지의 성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깨달음이 없어도 오랜 기간 익히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효용성 있는 검법이다.
채채챙.
아니나 다를까, 삼십 초식이 넘어가자 모용재화의 손과 발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모용재화는 제 자신의 검법을 펼치지 못한다.
분노로 가득했던 얼굴엔 당황의 감정이 어리고 종국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버린다.
모용재화는 섣불리 태극검을 잘라내지도(快), 부숴버리지도(重) 못한 채, 엇갈리는 검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종국엔 목 아래에 검이 닿는다.
“정지! 모용재화 응시생! 계속하겠는가!”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적당한 상대를 찾아 비무를 치렀다면 삼관문도 통과했을 것이다.
허나 무모하게도 무당의 검수를 상대로 가능성 없는 도전을 벌인 것은, 항시 냉정한 이성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무사로서 자격 미달의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분함은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곳으로 발산하게 된다.
“말하라! 계속할 것인가!”
“졌…… 졌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모용재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성을 내지른다.
아직 무당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은 무당의 작은 한 자락이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강호에서의 무당의 위치인 것이다.
“다음 대전자는 무당의 현수! 태을문의 진소운!”
현수의 이름이 호명되자 장내엔 환호가 더 커진다.
용소아의 이름에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 또한 동 나이대에선 믿기지 않는 내공과 실력으로 이미 유명했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일갑자의 내공을 가진 무당소룡 현수.
“현수 사형, 새로운 태을문의 검법은 환검과 변검을 섞어 쓴다고 합니다.”
태명에 말에 현수는 조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달라졌다더니 고작 환(幻)과 변(變)이라더냐? 너희들도 명심해라. 현혹으론 태극을 흔들 수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연무장 위로 오르자 무복부터 검까지 모두 검은색 일색의 진소운이 서 있었다.
“용케 도망치지 않았군.”
“도망? 내가?”
능청스럽게 스스로에게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니, 도력으로 쌓은 마음속 평안함이 깨지며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용기가 가상하니 삼 초식을 양보하겠다.”
진소운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긴 생사대적이나 마찬가지인 자가 삼 초식이나 양보한다니 이해가 안 되겠지.
“새로 얻었다는 태을검제의 검법이 보고 싶거든. 그 전설의 무공을 견식도 하지 못하고 끝내버리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너무 아쉬워하지 않겠는가.”
현수의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진다.
“““아하하하하”””
진소운은 여전히 곰곰이 생각하더니 심판관에게 묻는다.
“이거 괜찮은 겁니까?”
여전히 저 분질러 버리고 싶은 손가락으로 현수 자신을 가리키면서.
“상호 간에 동의한다면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진짜 괜찮겠지?”
“어디 얼마든지…….”
현수가 말을 잇는 와중에 진소운의 검은 무복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심상치 않은 기파의 발산에 현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감정이 위험하다 말하지만, 이성은 그렇지 않다 혼재된 이야기를 하고, 두 개의 대립되는 의견이 움직임을 멈칫하게 만든다.
스윽.
진소운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사방팔방에 진소운의 흑룡검이 나타난다. 앞뒤, 좌우, 하늘까지 모두 가득 찬 검은색 일색의 검.
환이고 변인 걸 알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어떤 것이 실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수는 삼초식을 양보하겠다는 말도 잊어버린 채 본능적으로 태극검을 펼친다. 하지만.
‘뭐부터 막아야 하는 거지?’
검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