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아비규환(阿鼻叫喚) 대여정(大旅程)(2)>
소정대 좌대기가 북경에 있을 때.
그러니까, 남경육가장의 노비로 도련님을 따라 북경에 갔을 때 고관대작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선 사냥꾼들이 야생의 사슴들을 수렵한다.
농장에서 기른 사슴은 인간과 친숙하기 때문에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서 사냥할 맛이 안 난단다.
그렇게 수렵해 온 사슴들을 사냥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쫄쫄 굶긴다. 너무 기운차면 또 사냥하기 힘드니까.
정말 별 지랄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다.
사슴들은 기력이 빠짐과 동시에 곡식 몇 알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 사슴들을 풀어 사냥대회를 시작하는데.
대체로 수사슴이나 우두머리 사슴이 먼저 잡힌다고 한다.
그놈들이 대장이라 다른 사슴들 앞에 서서 그런 게 아니라.
우두머리 사슴들은 대체로 화려한 뿔을 가지고 있는데, 그 뿔 때문에 발견되기가 쉽고, 다른 사슴들보다 무게가 더 나가서 빨리 뛰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무림맹의 정예 무사들이 삐까뻔쩍하게 차려입은 채로 정마대전에 나갈 당시 그들을 비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정작 거적때기를 입은 소정대에겐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 갑자기 그때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지금 사슴 사냥의 수사슴은 다름 아닌 우리기 때문이다.
통상 삼관문을 통과한 자들은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 거대한 집단을 이룬 뒤 대여정을 시작한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백팔봉의 응시생들까지도 치열하게 싸웠던 전 관문에 비해, 무림학관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대여정에선, 서로 싸우기보단 합격이 보장되어 있는 자들끼리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궁선화와 성모란은 삼관문을 통과한 자들 몇을 만나 협상을 해보았지만.
“네? 뭘 하자구요?”
“혀어업력이오?”
“파하하, 남궁 소저. 안 본 사이에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 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소.”
“농담 아닌데…….”
“핫하하하하. 시험이 끝난 뒤에 제가 한번 모시지요. 하하하핫.”
응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말 한마디라도 걸어 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동원하던 이들이 역병 걸린 사람 보듯 마구 도망 다니는 현실에 남궁선화와 성모란은 정신을 못 차렸다.
당초 남궁선화와 성모란이 보유한 무사의 수가 2할 수준으로 줄었다.
문파 간의 교류를 떠나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짐을 떠안고 싶은 이들은 없을 터.
그나마 모용세가가 합류해 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
“그런데 정작 우리는 습격을 준비하고 있고요?”
“가장 예측할 수 없을 때 하는 습격이 성공률이 가장 높은 법입니다.”
남궁선화는 작게 한숨을 내쉰다.
남악을 떠난 우리는 전력을 다해 달려 사흘 만에 복양을 지났다.
처음 우리의 속도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부리나케 쫓아왔지만, 밤이 되어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우리를 쫓아오지 못해 결국 하루가 지날 때쯤 남악에서 시작된 추격자들을 모두 떨쳐냈다.
이후엔 중간에서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습격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모용세가의 무사들의 합세로 더욱 막강해진 공격력을 갖춘 우리의 행군은 멈출 줄을 몰랐다.
다만, 밤샘 작전에 적응하지 못한 모용세가의 무사들이 픽픽 쓰러지곤 했는데, 별수 없이 강철마차를 처음으로 쓰는 것은 모용세가의 무사들이었다.
“여기인가요?”
“네.”
“……진 공자 말대로 습격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네요.”
활현과 봉구현 사이엔 강을 끼고 금단산이 위치해 있다.
산세가 높지 않고 예로부터 농사를 위한 저수지가 많이 형성된 곳이라 관도가 이어져 있었다.
정주를 거쳐 호북성으로 향하기엔 가장 빠른 길이었기에 우리는 물론이고, 여타 다른 응시생들도 필히 사용하게 될 곳.
“하지만, 산세가 너무 낮아요. 이대로라면 어지간한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벽을 타고 오를 수 있을 거예요.”
습격에 좋은 지형을 가졌으면서도 산채가 들어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무당파는 비교도 안 될 무서운 놈들을 잡았던 적이 있거든요.”
무당파의 기재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혈마귀검대에 비할바는 아니니까.
#
-너의 잘못된 판단으로 제자들의 시험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네놈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해결치 못한다면 앞으로 평생 장서각 청소나 하면서 생을 보내야겠지.
무당파 정주 도원장에게 전해 들은 본산의 이야기는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빌어먹을…….’
현수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과 현진의 패배는 그렇다 치자, 진소운에게 진 후로 정신이 없던 터라 현진에게 잘못된 조언을 강요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은호를 상대했던 현향이나 금표를 상대했던 현명의 패배가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빌어먹을 놈의 사제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자신에게로 돌렸고, 이로 인해 현수는 까딱 잘못하다간 장서각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태을문에게 빼앗긴 입관패는 태을문에게서 되찾아 온다.”
삼관문패를 획득함으로 인해 합격이 보장된 태군은 여타 다른 무당의 제자들과 함께 호북성으로 출발했다.
남은 현수와 그의 사제들은 태을문이 남악을 나서는 순간을 기다렸다.
“청풍현에 닿기 전에 일을 끝내고 호북성의 행렬에 동참한다.”
“……네.”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여전히 무슨 말만 하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눈초리.
“그렇게 불만이면, 네놈들이 계획을 짜보거라!”
“……별말 안 했습니다.”
태을문에게 관문패를 되찾는다 해도 단 네 명이서 대여정을 했다간 무림학관에 닿지 못할 수 있다.
무조건 청풍현을 지나기 전에 잡아야만 했다.
“……사형, 저들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하지만 태을문 일행은 남악을 나서자마자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전투를 촉발해라! 놈들도 결국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 빠른 무사들 몇을 보내어 전투를 유발하려 해보았지만, 놈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식하게 속도를 낼 뿐이다.
더구나 현수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상대의 수는 백 명이 조금 넘지만 자신들은 사백에 달한다는 것이다.
자연히 행렬의 길이 길어지고, 이대로라면 태을문을 잡기 전에 기습의 위험이 생긴다는 것.
“제길, 행렬을 정비해라. 선발대를 보내 놈들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놈들도 인간이다. 전력으로 달려도 어느 순간 멈출 수밖에 없다. 선발대가 놈들을 멈추지만 않으면 언제든 놈들을 사냥할 수 있다.
“사형, 놈들이 쉬질 않습니다.”
“벌써 술시가 다 되어갑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침에 시작한 행군은 해가 지고 달이 뜨도록 멈추지 않는다. 놈들도 그렇지만 무당파의 인원들도 현재 한 끼도 식사하지 못한 탓에 점점 지쳐가는 중이었다.
“일단 멈추어 간단하게 정비를 해라. 놈들도 인간인 이상 잠은 잘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도록 선발대를 추가로 보내고.”
하지만 이번에도 현수의 예상은 빗나갔다.
놈들은 잠을 자지 않고 이동을 계속했다.
“이 미친놈들이…… 오냐,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결국 이 상황까지 오자 악에 받치는 현수였다.
그는 수면 대신 한 시진 정도의 운기조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추격을 계속 이어 나갔다.
내공으로 따지자면 무당의 인원들이 태을문 일행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차륜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무당 자신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놈들이 멈춰 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단산에서 일부 인원이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답니다.”
“그래?”
절반의 인원을 나누어 계속 이동하는 척함과 동시에 절반의 인원이 기습을 통해 추격을 늦춘다.
기본적인 전술 전략이고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인원을 상대하기 참으로 훌륭한 방법이었지만 상대가 좋지 않다.
“우리 무당을 만만하게 보고 있군.”
선발대가 전하길 산의 계곡 중앙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에 기습에 유리한 지형인 것은 사실이나, 무림인에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 했다.
“선발대와 거리는 얼마나 벌어져 있지?”
“반나절 거리에 있습니다.”
벌써 그렇게 멀리 떨어졌나? 겨우 삼 일간 함께 계속 달렸을 뿐인데 이토록 거리가 벌어졌다는 것이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현수 사형, 싸우기 전에 피로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뭐?”
고개를 돌려 태명을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사흘 동안 한숨도 못 자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식사도 제대로 못 했고요.”
그제야 사제들과 자신 사이에 내공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현수.
“한 시진 동안 개인 정비를 마친 후에 다시 출발한다.”
“후…… 알겠습니다.”
과거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저 불만 가득한 시선.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관문패를 되찾아 무당을 능멸한 대가를 보여주면, 사제들은 물론이고 무당에서도 이번 일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무림학관 시험보다 어렵다는 무당 내부의 평가를 통과한 몸 아니던가.
다시 출발할 시간이 되었지만, 다들 피곤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짧은 쪽잠과 건량으로 때운 식사가 온전한 휴식처럼 기력을 채워줄 리 없었다.
“조금만 참아라, 놈들도 분명 지쳐있을 것이다.”
서산에 기울던 해가 지고 달이 뜰 때쯤. 무당파는 금단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계곡 양쪽에 서른 명씩 포진되어 있습니다.”
“계곡 위로 올라갈 길은?”
“이쪽 방향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정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계곡 높이는 어떻지?”
“높은 곳은 오장정도 되고, 낮은 곳은 삼 장 정도 됩니다.”
이거다.
여기서 명문대파와 약소문파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생각의 차이.
자신들이 오를 수 없기에 충분히 높다고 생각하는 알량함.
무당파의 제자에게 오장의 높이라면 너끈히 넘어설 수 있는 높이다.
“진소운……. 그놈은? 설마 그놈은 먼저 간 것이냐?”
“아닙니다. 자신의 사제들과 함께 계곡 쪽에 있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제들을 바라봤다.
“일정에 차질이 있었지만, 계획대로 할 수 있다. 가자.”
지형의 차이로 피해는 조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 배에 달하는 인원수의 차이와 무공의 격차를 생각하면 그 피해는 얼마든지 좁힐 수 있다.
계곡 초입부터 초상비를 전개한다.
사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움직이지만, 소음이라곤 낙엽 부딪치는 소리밖에 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 계곡을 들어간 순간.
쿵.
지축을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계곡 중앙에 사람만 한 거대한 바위가 떨어졌다.
“놈들이다!”
현수의 외침과 함께 양옆에서 수십 개의 사람 머리통만 한 돌들이 떨어진다.
몇몇이 맹렬히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 그대로 기절하긴 했지만, 당초 지시한 대로 바닥을 박차고 계곡 위를 뛰어 올라간다.
“진소운! 어디 있느냐!”
현수는 거대한 바위를 박차는 순간 내공을 터트려 하늘로 비상했다.
계곡의 벽면에 튀어나온 부분을 한번 밟고 올라선 현수는 금세 계곡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여야 할 진소운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쏴아아아아.
‘물소리?’
계곡 위에서 바위를 들고 던지려는 태을문 일행을 본 것까지는 예상에 있었던 일이었으나, 그사이 귓가로 들리는 물소리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강이나 시내에서 들려야 하는 물소리가 어찌 이런 메마른 계곡에서 들린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며 정신을 다잡고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현수는 보았다.
태을문의 일행들이 바위 던지던 것을 관두고 커다란 나무를 부둥켜안는 것을.
철썩.
그리고 계곡 위에서 거대한 물보라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이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