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33화 (133/357)

#133. <자신을 증명하는 흑염룡(3)>

“지금 화월루에서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화월루라 하면 무한뿐 아니라 호북성 내에서도 손꼽히는 청루다.

사치스럽기가 그지없어 어지간한 고관대작의 자제들도 쉽사리 드나들지 못하는 곳인데, 무림학관의 학관생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종종 화월루에 얼굴을 비치려고 한다.

각주와 당주를 비롯한 무림맹의 지체 높은 간부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에,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만들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것이다.

“일행분들을 위한 자리도 따로 만들었으니 함께 가시지요.”

일각은 당연한 듯,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고, 일행들도 그게 당연한 듯 따르려 했다.

“거절하지요.”

“……!”

“!”

성모란과 남궁선화 등은 물론이고, 일각도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선약이 있어서 말입니다.”

“…….”

일각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정도회의 장로들께서 초청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지요.”

“…….”

“갑자기 초청이라고 일방적으로 오라는 건 예의에 어긋난 거 아닙니까?”

이놈들의 대가리 속에선 그저 구파일방 오대세가 아니면, 사람 새끼도 아닌 거지.

똥개는 주인과 타인을 가리지 않고 다가가니까.

태을문의 제자로서 개는 될지언정 똥개는 될 수 없는 법.

“장로전의 어르신분들께서 훌륭한 분들이시라는 건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개 학관생도 아닌, 학관의 대표를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순 없는 법 아닙니까? 아니면 학관 대표가 아닌 강호의 선후배로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일각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저러다 두피에까지 주름이 생기겠네.

오오, 스님을 이렇게 놀렸으니 지옥에 가버릴지도?

장로들은 내가 수석으로 입관하기 전까진 태을문이란 문파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것에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전생에 만통부에서 정보들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그걸 신기하게 여겨 장로들이 종종 방문하곤 했었는데.

태을문을 이미 오래전에 멸문한 문파쯤으로 인식하는 자도 있었으니까.

“장로님들의 직위를 떠나 강호의 선후배 측면에서 보더라도, 진 시주께서 이리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건 예가 아닌 듯합니다만.”

일각은 여전히 펴지지 않는 머리…… 아니, 얼굴로 말했다.

“그 선배님들이라는 분들께서 절 흑도 무림의 간자쯤으로 취급하셨었죠.”

“…….”

“혹시 이번 기회에 지난 일에 대해 사과를 하실 생각이시랍니까?”

일각은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절대 사과 같은 걸 할 리 없으니까. 더구나 태을문의 제자 따위에겐.

“그렇다면 제가 갈 이유는 더더욱 없는 거로군요.”

일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 시주와 우리 사이에 많은 오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뒤에서 성모란이 ‘오해의 뜻이 언제부터 바뀐 거야?’라고 속삭였지만, 일각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진 시주가 이리 독선적으로 나간다면 진 시주에게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

“진 시주가 좋든 싫든 그분들은 무림맹을 떠받치는 분들입니다.”

“협박을 아주 부드럽게 하시는군요.”

“…….”

“전 상관없으니, 그분들께는 못 간다 전해주십시오.”

“…….”

나는 마저 길을 가다 말고 멈춰서서 일각을 불렀다.

“아 참, 그리고…….”

일각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도가무문 제자한테 왜 자꾸 ‘시주’라고 부르는 겁니까? 불편하게.”

일각은 사찰 입구에 놓인 사천황 같은 얼굴로 변해버렸다. 이러다 정말 지옥에 가버릴지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일각이 사라진 뒤, 일각의 변화된 모습을 가장 놀랍게 바라보던 남궁선화의 음성엔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각주들은 물론이고, 무림맹 내부에서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에요. 차후에 출세를 생각하면 대립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요.”

“전 출세 같은 거 생각 안 합니다.”

“왜요?”

그렇게 먼 미래란 애당초 오지 않을 테니까.

당장 죽을 위험이 수십 번이나 오가는데, 먼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

“당장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으음.”

남궁선화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꼭 정도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남궁세가 또한 백도회에서 입김이 작지 않으니까요.”

“네?”

“아녜요. 암튼 그렇다고요.”

식사를 마친 후엔 모용재화를 데리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귀궁문에게서 빼앗은 활로 궁도를 수련하던 모용재화는 금방 활을 부러뜨려 먹었고, 학관에서 제공하는 활 중엔 제대로 된 물건이 없어서 수련 자체를 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저희 대장간에서 장인들이 만든 활은 튼튼하기로 유명하지요.”

대장장이가 건넨 활은 우각으로 뼈대를 세운 단단한 강궁이었지만, 두어 번 시위를 당겨본 모용재화의 표정은 별로 펴지지 않았다.

“금방 부러질 것 같은데…….”

모용재화의 말에 대장장이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 백궁은 고수님들이 내공을 힘껏 담아도 부러진 적이 없습니다.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부러진다 해도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대장장이의 말에 모용재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활에 파궁의 기를 담아 힘껏 당겼다.

끼기긱-.

소뿔을 깎아 만든 강궁은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퍼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재와 각대가 서로 분리되며 부러져 버렸다.

“어……? 이게 무슨…….”

대장장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고, 모용재화는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강궁을 내밀었다.

“혹시 철제로 활을 만들 순 없습니까?”

전생에 파궁이 쓰던 활을 생각해 내며 묻자, 부러진 활을 황망히 바라보던 대장장이가 그게 말이 되냐는 듯 내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 누가 그 단단한 철제로 활을 만든답니까. 애당초 장력이 생기지도 않을 거고, 장력이 생긴다 한들 시위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대장간을 나온 모용재화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당장 궁도의 길을 걷겠다며 다짐을 했건만, 수련할 수 있는 활이 없는 상황.

“집에 이야기하면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랬다간 할아버지께서……”

세가에 이런 수상한 주문을 넣었다간 당장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모용강이 한걸음에 무한으로 날아올지도.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해결해 줄 테니.”

“혀, 형님이요?”

어차피 조만간 장도원을 찾아갈 셈이었다. 아마 장도원이라면 철제로 만든 활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전생에 만들었던 십오(十五)신기 중의 하나가 활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궁도를 가르쳐 줄 강사도 준비되었으니, 수련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말입니까?”

궁도를 파고든 문파 자체가 강호에 몇 없기에, 그중 기초를 잡아줄 강사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도 모용재화에게 따로 궁도 강사를 붙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학관대표라는 신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다만 문제라면 강사의 소속이 좀 마음에 걸렸는데.

‘조금 껄끄럽긴 하겠지만, ……괜찮겠지.’

조금 고민하던 나는 잡념을 털어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모용재화의 실력 향상이었으니까.

궁도의 기초가 잡히면 모용재화의 실력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그러면 마인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파궁이 더 빨리 등장하겠지.

모용재화는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즐거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

무림맹의 장로전은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다른 각들처럼 정보를 모으거나, 사람을 움직일 직접적인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장로전을 맹주전과 만통부와 마찬가지로 3대 권력기관이라 부르는 것은, 장로전이 법규를 제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법규가 곧 강호 전체의 법규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장로전에 선을 대길 바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손에 뇌물인지 선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귀한 물건들을 들고 무림맹에 몇 달씩 기거해도, 장로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런 입장의 장로들이 근본도 없는 문파의 제자 하나 만나자고 화월루에 다 모여있는 상황이었으니, 어지간한 하급무사 월봉에 달하는 귀한 명주를 마셔도 뒷맛이 좋을 리 없었다.

“헌데 놈이 ‘오지 않겠다.’ 했다고?”

명현 도장은 얼마나 놀랐던지, 쥐고 있던 술잔을 놓칠 뻔했다.

다른 이들의 심경도 다르지 않은지, 저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설사 감찰각의 각주라 할지라도 이런 자리에 초청을 하면 아마 올 것이다.

한데 선약을 운운하며 거절을 했다고?

“그놈이 작은 완장 하나 차더니 기고만장하구나.”

명현은 물론이고 다른 장로들의 진노가 하늘에 닿는 것은 당연한 상황.

“참으로 말세입니다. 말세. 학관생이란 놈이 무림맹의 장로들을 개·소 보듯 하다니.”

“이게 다~ 근본 없는 놈을 자리에 앉혀놓으니 제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거지요.”

“하루라도 빨리 놈을 학관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퇴학을 시켜야 합니다.”

당장에 놈을 학관 대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물론이요, 놈과 놈의 사제들을 학관에서 퇴학시키고 나아가 태을문 자체를 백팔봉에서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어쩐지 맹주전과 만통부가 녀석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사건이 이리 중하게 처리될 일도 아니었건만, 만통부는 멸혼진 사건의 책임자를 퇴학시킴과 동시에 피해 복구 비용을 정도회에 청구했다.

정도회가 극렬히 반발하자, 차가운 목소리로 감찰각을 동원해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말에 분을 삭이고 입을 꾸욱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학관 내의 분위기도 정도회에 적대적인 상황이었다.

얌체 같은 백도회와 12봉성은 흔들리는 백팔봉을 어떻게든 빼내 가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결국 놈은 멸혼진에 대한 것을 꺼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피해 복구 비용이 제아무리 많다 한들, 정도회의 자금력에 비할 땐 미미한 정도다.

중요한 건 분위기와 명분을 정도회로 이끌고 오는 것이었는데, 이는 결국 멸혼진을 학관생과 무림맹 전체에 공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일 터.

“놈은 우리가 달려가 무릎이라도 꿇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 장로의 말에 여타 다른 장로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놈이로군요.”

“차라리 흑도 무림과의 관계를 들먹여 내치도록 합시다.”

“태을문을 압박하는 건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지만, 그 어떤 의견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다만, 진소운에게 쌓인 분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을 파악한 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하시지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들먹여 봤자, 녀석의 콧대만 높아질 뿐이지요.”

“크흠…….”

“음…….”

명현 도장이 이야기했지만, 다들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들이었다.

아닌 말로, 지금 몇 번째 실수를 거듭하고 있는 건가.

슬슬 정도회 회주 자리를 바꿀 때가 오고 있음이었다.

명현 도장 또한 그 분위기를 알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자리까지 어찌 왔는데 쉽사리 자리를 내어준단 말인가. 더구나 이번 사태처럼 별일 아닌 걸로 말이다.

“명현 도장께선 달리 방도가 있으시오?”

“방도가 없었다면 제가 이야기를 꺼냈겠습니까.”

“말씀해 보시오. 한번 들어보겠소.”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지금은 참아야 할 때.

“그리 큰 문제 아닙니다. 단지 분위기를 바꾸면 될 일이지요.”

“문제가 해결돼야 분위기가 바뀌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 정도회 회주 자리를 쉽사리 놓을 수가 없다.

이리 정치를 몰라서야 어찌 무림맹에 정도각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인식에서 흐려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건으로 분위기를 바꾸면 지금의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더 빨리 사라지는 법이지요.”

“……!”

“……!”

다들 이마에 물결 주름이 잡히며 명현 도장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무림학관의 수업 일정은 그리 빡빡하지 않다. 이는 학관의 교육 목적이 무림맹에 적합한 고급인력을 길러내는 데 있음과 동시에, 각기 다른 무공을 익힌 학관생들의 개인 연공과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였다.

모용재화도 오전 수업을 마치면 학관 뒷산에 마련되어 있는 공터에서 궁도를 홀로 수련하곤 했었다.

이번 기수에선 귀궁문의 사람들이 모두 탈락하면서, 궁술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용재화뿐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우… 참… 에에…….”

그토록 기다린 강사님이었건만, 강사의 얼굴을 본 모용재화는 어색하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심정이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렇게 겨우 꺼낸 말이 어색한 안부 인사.

커다란 강궁을 들고 선 강사는 눈썹을 꿈틀이며 말했다.

“잘 지냈냐고? 질 나쁜 농담이군. 도련님이 정시에서 탈락한 탓에 당주 직위도 내려놓고, 이제는 학관에 와서 출장 강사를 하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냐.”

날이 선 대답에 모용재화는 억울해 죽을 맛이었다.

꼭 자신이 잘못한 것 같지 않은가.

‘아니, 시험이란 게 합격할 수도 떨어질 수도 있는 거지…….’

강사는 어깨에 멘 화살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모용재화라고? 모용세가의 장자 아니던가?”

서로 간의 만남은 두 번째였지만, 이름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 예. 그런데 강사님 성함은…….”

“귀궁문의 여삼통.”

그랬다.

그는 학관 정시 와중에 서로 칼과 활을 겨눴던 귀궁문의 궁사였던 것이다.

그것도 귀궁문의 공자를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던 당주.

‘형님. 어째서, 어째서…….’

정시의 일은 입학한 후엔 과거로 묻고 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까지 그리 쉽게 묻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학관생이 좋긴 좋군, 심심풀이로 익히기 위해 강사까지 초빙하고, 우리 도련님도 합격했다면 모용세가의 강사를 초빙할 수 있었으려나?”

한껏 비아냥거리는 여삼통의 말에, 모용재화가 답했다.

“심심풀이로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뭐?”

“궁도는 저에게 심심풀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

모용재화의 말에 여삼통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럼 세가의 검을 버리고 활을 집었다는 건가?”

“…….”

“허락은 받은 건가?”

“…….”

“참나! 허락도 받지 않고?”

모용재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삼통이 내려놓은 화살통을 집어 들었다.

“애당초 와선 안 되는 곳이었군.”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그러나? 자네에게 궁도를 가르쳤다 파검님의 진노를 어떻게 받아내라고. 난 그러고 싶은 생각 없네.”

여삼통이 산을 내려가려 하자, 모용재화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사이가 어색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궁도의 기본을 잡아줄 사람이었다.

소운 형님도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강사로 초빙한 것이었겠지.

“전 꼭 궁도를 익혀야 합니다.”

“애당초 모용세가의 장자가 궁도를 왜 익히려 하는 것이지? 모용세가의 검은 강호에서도 손꼽히지 않던가.”

“그, 그건…….”

“제대로 배울 마음도 없는 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생각 따윈 없네.”

여삼통이 발걸음을 움직이자, 모용재화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제, 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만병지왕은 궁이기 때문입니다.”

여삼통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어쩌면 강사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검이 안 되기에 궁을 익히려 하는 건지도 모르지요.”

“…….”

“하지만 제 검으론 아무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제 궁으론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구해낼 수 있었고요.

전 그때 확신했습니다. 제가 검 대신 궁을 든다면, 전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요. 제게 궁은 검보다 더 대단한 만병지왕입니다.”

여삼통이 몸을 돌려 모용재화를 바라봤다.

“그러니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모용재화의 말이 끝났음에도 여삼통은 한참이나 모용재화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화살통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혼자 궁을 익혔다고? 어디까지 배운 거지?”

“네? 가,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궁으로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데, 그걸 어찌 거절하나?”

“가, 감사합니다.”

“아 참, 혹시나 파검님이 누구에게 배웠냐고 묻는다면, 절대 내 이름을 꺼내선 안 되네.”

“아…… 예.”

“좋아, 더불어 내 수련은 꽤나 힘들 걸세. 중간에 포기하거나 도망치는 일은 허용하지 않겠네.”

“네!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내가 정시의 일을 빌미로 자넬 괴롭힐까 걱정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말게. 난 그리 옹졸한 인간이 아니거든.”

“……네?”

여삼통의 말을 듣는 모용재화는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왜 굳이 쓸데없이 저런 말을 덧붙이는 거지?

“자, 이거 받게.”

여삼통이 맛스럽게 생긴 붉은 사과 하나를 건넸다.

마침 시장기가 있던 모용재화는 바로 사과를 입에 가져갔다.

아삭-

“……뭐 하나?”

사과를 한입 베어 문 모용재화를,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삼통.

“네? 먹으라고 주신 거 아닌가요?”

“왜 과녁을 먹는 거지?”

모용재화는 여삼통의 얼굴과 사과를 번갈아 보았다.

“……과녁이요?”

“그래, 저기 가서 그거 머리에 올리고 가만히 서 있게.”

“……네?”

“궁술을 익히는 가장 좋은 수업은 직접 화살을 맞아보는 것이지. 얼른 움직이게. 해가 지면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가 없으니.”

“…….”

모용재화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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