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35화 (135/357)

#135. <자신을 증명하는 흑염룡(5)>

무림학관의 학관장 자리는 무림맹 내에서도 양가적 위치에 해당하는 자리다.

대주와 당주 직을 거친 이가 자리하면, 출세가 보장된 자리로 인식된다.

반대로 부각주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학관장으로 발령을 받으면 슬슬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현 학관장인 삼청수신룡 북원평은 구파일방 정예에 못지않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일인전승 문파의 제자로선 매우 드문 사례.

이미 세력화가 당연시되어 버린 강호의 법칙 내에서도 삼청무상검의 위상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신성하기론 소림의 달마역근경과 무당의 건곤태극신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북원평은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무복과 검, 머리를 묶은 천까지 모두 검은색 일색의 청년은, 그 짙은 눈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제가 익히고 싶은 것은 옥청천성검입니다.”

“…….”

숫제 제 것인 양 내놓으라는 태도에, 불혹에 다다른 북원평은 침음을 삼켰다.

삼류 낭인에게 검술 한 자락을 배울 때도 구배까지는 안 하더라도 삼배는 하는 법인데…….

“이제 와서 약속을 어기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우악스럽기가 사채업자 못지않음에도 북원평은 달리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애당초 그와 한 내기가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으니.

“그 전에 궁금한 것이 있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어째서 약관에 불과한 청년이, 무공 교두들도 잘 모르는 ‘혈도와 주화입마에 관한 상관관계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

그간 강호의 인식으론 주화입마의 원인을, 단전에 자리한 내공의 불순함과 과도한 내공 운용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몇몇 의술을 익힌 무인과 무공에 박식한 의원들 사이에서, 약한 혈도도 주화입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오는 중이었다.

교두들은 물론이고, 무공 이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그랬기에 북원평은 확신을 하고 내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데 그걸 이제 막 약관에 불과한 청년이 줄줄 외고 있는 것이었다.

“사문의 무공에 한계를 느껴 닥치는 대로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을 찾아 읽은 덕분입니다.”

태을문이 별 볼 일 없는 문파였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던 바.

강호에서 태을문에 대한 대우란, 일인전승인 삼청무상검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찮은 취급이었으니.

“……그러다가 혈도와 주화입마의 상관관계 이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네, 제가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거든요.”

“…….”

북원평은 그제야 혈도법을 묻는 교두의 물음에 삼백육십오 개에 달하는 혈도 명칭을 줄줄 외웠던 진소운의 모습이 납득 되었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막막한 상황이었음에도 사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 것인가?

어쩐지 태을검제의 진전을 되찾은 이야기도 우연은 아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설마 기억력이 좋은 줄 몰랐다며 내기를 무르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의심의 눈초리를 하는 진소운.

그간 자꾸 사고만 일으키는 탓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가졌던 북원평이었지만, 어쩐지 슬슬 그가 하는 행동이 미워 보이지 않았다.

“태을검제의 진전을 되찾았다 들었네, 어찌하여 타인의 무공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검강을 어찌 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응?”

북원평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가르침이 높은 무공이라면, 검강으로 가는 길까지는 모두 쓰여있는 게 당연했다.

허황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설의 반만 진실이라 하여도 태을검제의 무경에 검강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태을검제님은 검강의 존재를 그다지 중시하시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래도 사문의 어르신들 중에선…….”

“쾌화당의 강채석 당주님이 검기를 날리는 것까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어떤 상황인지 대략 알 수 있는 대목.

사문에 고수가 없으니, 고수를 기를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친구가 있었지…….”

“아십니까?”

“학관을 함께 다녔지. 꽤 전도유망한 친구였는데…….”

‘무공이 뒷받침되지 않아 발전이 더뎠다’라는 말은 생략했다.

백팔봉의 특례 입학으로 들어오는 이들 중 육 할에 가까운 이들이 겪는 좌절이었으니까.

“해서, 검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학관장님께 부탁드린 겁니다.”

“부탁이 아니지, 내기를 건 것이지.”

“내기에 져서 무공을 넘겼다 하면 조사님들이 슬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애당초 그런 내기를 걸지 말았어야지.”

“그렇습니까?”

자신이 잘못한지 모르겠다는 뻔뻔한 태도.

북원평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돌려 과거의 동기를 만난 듯한 묘한 느낌.

과거 강채석도 그처럼 놀라운 의지와 신념을 보였으니.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 무공을 가르쳐 주어야 하겠지. 헌데 검강에 대해선 알려줄 수가 없네. 검강을 익히자면 무공을 사사해야 하는데, 자네가 삼청무상검의 진전을 이을 생각은 없지 않은가.”

“뭔가 족집게 과외 같은 건 없습니까?”

북원평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넨 검강이 무슨 손기술처럼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나?”

진소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청천성검을 배우고 싶다 말씀드린 거고요.”

진소운의 말에 북원평이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그것도 불가능해. 애당초 옥청천성검은 삼청 중 옥청천성력을 품고 있어야 하니까.”

삼청무상검이 일인전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삼청인 태청, 옥청, 상청.

이는 무인들이 발하는 의지로, 움직이는 속기 따위가 아니라 삼청의 본질인 천도력으로만 쌓을 수 있었으니까.

더불어 천도력으로 삼청을 쌓기 위해선 타고난 무신지체와 순수한 내기로 만들어진 단전이 필요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화식을 입에 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삼청을 익힐 수 없는 존재로 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옥청천성력은 삼청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내기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검식을 익힌다 한들…….”

말을 하던 북원평이 입을 헤- 벌리고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진소운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유성추 같은 것에 꽂혔다.

“그, 그건…….”

바닥으로 축 늘어진 추와 그 추에 연결된 실 주위로 황금색의 빛무리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옥청천성력?”

북원평은 자신이 말을 내뱉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 어떻게 속가의 무인이…….”

“태을검제님 무경의 바탕이, 천도력을 기반으로 하더군요. 다행이랄지 모르겠는데, 전 어린 시절부터 태을진경의 기초공부인 태을심법만을 익혀왔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천도력이란 고대의 도인들이 공(空)을 쌓는 과정에 나오는 것으로, 무(武)를 위한 속세의 기와는 달랐다.

“오백 년간 끊긴 진전 덕분에 다른 길로 새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인가?”

“뭐, 지금에 와선 그게 좋은 일인지 알 수 없겠지만 말이죠.”

“자네가 말하는 태을진경에는 삼청을 활용한 무공은 없는 것인가? 삼청을 사용한다면 그런 무공도 당연히 준비되어 있을 텐데.”

“사실 이건 제가 어떤 괴인이 만든 무공을 익히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태을진경이 괴인의 무공에 영향을 받자 옥청천성력을 다루게 되었고요.”

“우연히 옥청천성력을 다루게 되었다고? 괴인이 만든 무공이 무엇이기에…… 혹, 누군지 말할 수 없는 건가?”

“네.”

“허허…….”

“지금 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제 옥청천성력은 마(魔)를 제압하는 데 효과가 있지만, 정작 타격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본래 누굴 해하기 위함이 아닌 공(空)을 쌓는 기운이니까.”

“그 방법을 알려주시면 굳이 검법을 사사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흠…….”

삼청의 기운을 품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사용할 방법은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명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어쩌면 태을진경의 공부는 어렵다고 손에 꼽히는 삼청무상검에 비할 바가 아닌지도 몰랐다.

“자네, 속가제자가 될 생각은 없나?”

“없습니다.”

너무 단호한 거절에 북원평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굳이 자네에게 의무를 지우겠다는 게 아니네. 삼청을 모두 쓰려면 단지 무공 한두 자락 배우는 걸론 한계가 있지 않겠나.”

“글쎄요. 태을진경이 태청이나 상청력을 구현해 주지 않으면 다른 무공을 배우는 것도 요원한 일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제 와서 다른 내공을 익혔다간, 아무리 정순하다 한들 본래의 모습은 바뀌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군…….”

북원평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도 이제 불혹에 다다랐고, 슬슬 진전을 이을 제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에서 충분히 성공한 뒤에 제자를 물색하겠다 했지만, 그가 원했던 만큼 충분한 출세는 이루지 못했다.

강호의 대우가 아무리 좋다 한들 결국 혼자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학관장님께서 태을문에 속가제자로 들어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응?”

고약한 농담에 웃음을 내뱉고 수련을 시작하려 했지만, 진소운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슬슬 제자를 찾으셔야 하는 나이가 아니십니까?”

“…….”

“하지만, 삼청의 기운을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을 찾는 일이 쉽지 않지요?”

“그걸 자네가 어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래서 말인데, 태을문에 속가제자로 들어오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내가 제자를 찾아야 하는 것과 태을문의 속가제자가 대체 무슨 상관이지?”

“태을문의 기초무공인 태을심법이 결국 천도력과 관련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북원평은 머리를 꽝 하고 때려 맞은 느낌이었다.

“물론 저도 최근 들어 알게 된 겁니다만. 태을진경과 태을심법이 본래 하나의 공부였다는 걸 생각 해 보면, 태을심법으로 기초를 닦은 아이는 삼청무상검을 사사하기에 무리가 없는 신체조건이 되겠지요.”

“…….”

만약 진소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화식을 한 아이라도 태을심법을 이용해 조금씩 화기를 없앨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태을심법으로 단전을 만들기만 한다면 그 이후 삼청의 기운으로 단전을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터.

본래 무신지체를 찾는 이유도 태생적으로 화기가 잘 쌓이지 않는 체질을 찾는 것이었으니까.

“태을심법을 알려줄 수 있겠나?”

어느새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 뒤바뀌었지만, 두 사람 다 신경 쓰지 않았다.

“허허…….”

진소운이 불러준 구결대로 일주천을 마친 북원평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순수한 기로 가득한 그의 단전이 운용되는 데 하등 문제가 없었다.

이것은 곧 태을심법이 천도력을 수련하는 공부라는 것.

“속가제자…… 속가제자라…….”

불혹에 다다라 강호의 경험이 적지 않은 그였지만, 태을문의 제자로 들어가는 데엔 큰 거부감이 없었다.

아니, 되려 꼭 받아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삼청무상검은 일인전승이라는 전통을 끊고 문파로서 거듭날 수 있을 테니.

“태을문이 나를 속가제자로 받아주겠는가?”

“태을문의 심체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기초 무공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니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저희 문주님께선 통이 크시거든요.”

“하하…… 정말이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내일 당장 태을문에 인사를 드리러 가도 되겠나?”

진소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학기 중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에게 먼저 가르쳐 줄 것이 있으시고요.”

“아아…… 그렇지. 그래야지.”

그렇게 북원평은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치던 중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물었다.

“자네는…… 왜 정도회와 각을 세우는 것인가?”

교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육각의 인원으로서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일이란 그렇게 순수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지 않던가.

이번 시험 사태도 정도회에 선을 댄 일부 교두들이 진소운을 의심하면서 일어난 일이었으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12봉성은 거대한 존재들이라네. 젊은 날의 치기로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야.”

북원평은 마치 젊은 날의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말했다.

지금 진소운의 모습은 과거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그는 결국 꺾였다.

아무리 노력하고 의지로 이겨내려 해도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저는 각을 세운 적이 없습니다.”

“…….”

“그저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옳지 않다 이야기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자네를 거슬리는 존재라 단정 짓도록 만들 수도 있네.”

“상관없습니다.”

“출세도 부귀영화도 상관없다는 건가?”

연약한 신념은 강력한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소운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출세와 부귀영화를 누린들 그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전 그저 제 사제들과 사문의 어르신들께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

“더불어 절대적 존재란 건 없다 생각합니다. 제가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제가 쓰러질지라도 제 사제들이 제 뜻을 이어갈 것이고, 제 사제들마저 쓰러진다면 그 제자들이 계속 의지를 이어가겠지요. 당금 백도의 정신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북원평은 현기 어린 진소운의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머리에 번개가 치는 듯한 충격에 한 참이나 말이 없던 그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개천에서 났다 해도 용은 용이라 이건가…….”

북원평은 어쩐지 태을문의 속가제자로 들어가면 진소운 같은 제자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심하게나, 교두들의 이야기를 언뜻 듣고는 하는데,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는 듯하니.”

“학관장님께서 사문 사람이 될 텐데, 제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진소운이 떠는 너스레에 북원평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

필기시험이 끝난 학관의 분위기는 다소 들뜨기 시작한다.

이번 실기가 학관생들의 실력 고하를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비무의 장이기 때문이었다.

뼛속까지 무사로서의 습성을 가진 학관생들에게, 이런 자리는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첫날인데 사람이 무척이나 많네요.”

갑반부터 시작하는 실기시험을 참관하기 위해 학관생들은 물론이고, 사문의 사제들이나 제자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맹에서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은 대부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원들이 많네요.”

같은 옷을 입고 드문드문 떨어져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성모란이 말했다.

“이런 자리는 그들 사이에서도 자존심 싸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은호의 말에 알만하다는 듯 성모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 공자는 누구랑 붙나요?”

내가 대답하기 전에 남궁선화가 말했다.

“갑 반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외의 인원이 없으니, 아마 을반에서 올라오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비슷했다. 애당초 실력의 고하가 많이 차이 나는 사람들끼리 붙여놓으면 정확한 실력 측정이 되지 않기에, 이런 부분은 교두들의 냉정한 평가가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을반이라면…… 역시 흑선풍 육자광일까요?”

북경육가 출신의 육자광은 구파일방의 정예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인재였다.

성모란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근데 어째 긴장하지 않네요. 육가창식의 날카로움은 강호 일절로 손꼽히는데.”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육시랑 덕분에 육가창식의 여섯 개 절초는 알고 있었다.

더불어 육시랑은 제갈천기의 도움을 받아 육가창식 여섯 개의 초식에 파쇄식을 완성해 놓은 상태.

전쟁이 끝나면 육가장에 돌아가 복수하겠다는 그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그의 꿈을 이뤄줄지도 모를 일.

“생사를 겨루는 것도 아닌데 긴장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관중석을 둘러보니 오늘 시험을 치르는 이들도 있는지, 곳곳에 을반의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림학관 실기시험을 시작하겠소! 호명하는 이는 연무장으로 나오시오!”

교두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대연무장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교두는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외쳤다.

“태을문의 진소운!”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부러움, 질투, 미움, 경계, 불만 등등.

갖가지 감정이 혼재되어 온몸을 뒤덮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으로 향할 때.

사련의 옆에 앉아있던 은설란이 말했다.

“힘내세요. 오라버니!”

나는 은설란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왜인지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표독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요. 방심하지 말고.”

“흑선풍 육자광은 평소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수련에 매진한다던데……. 진 공자님이 이기기는 힘들겠네요.”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았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돌리며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전생에도 그랬지만, 정말 여자의 마음은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연무장을 향해 가는 길, 반대편 관중석에서 푸른 무복을 입은 육자광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교두는 내 쪽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종이를 보고 크게 외쳤다.

“비무 상대는…… 소림사의 일각.”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반대편 관중석의 육자광도 마찬가지.

소림사의 승려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한 승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미친…….”

관중석의 누군가 뇌까리듯 말한 욕을 시작으로, 대연무장은 시장통이라도 된 듯 소란스럽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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