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만서고의 요괴를 만나는 흑염룡>
“일각 스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십니까? 본래 수석 자리는 스님의 것이지 않았습니까.”
일각은 억울하지 않았다.
상대가 비열한 술책으로 수석 자리를 쟁취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대표단을 이끌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한들, 그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의 본질이었으니까.
억지로 쌓은 탑은 언젠가 부서지고, 순리를 따르지 않은 반(反)은 언제고 다시 정(正)으로 돌아올 테니.
하지만 진소운은 도를 지나쳤다.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충분했을 것을, 학사 행사를 통해 사람들을 가르고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중생에 불과한 줄 알았는데, 마귀가 씐 광인이었다.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교활하고 교묘한 중생을 막지 않으면 속세에 더더욱 커다란 혼란이 오게 될 것이다.
무림의 질서가 뒤바뀌고, 그로 인해 수없이 많은 약자가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섰건만…….’
진소운의 무공은 그의 심성과 마찬가지로 교묘하고 혼란하다.
사람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속여 상처를 입힌다.
부동(不動)의 심신을 위해 천근갑을 익혔건만, 그 지난한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피부가 쓸리고 뼈가 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위험하다.
너무도 위험한 인물이다.
이자는 흑도보다 더욱 위험한, 내부의 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달마역근경을 꺼내었다.
본산에 돌아가 면벽을 몇 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 중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간악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진소운은 일각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더니 다시금 자세를 잡는다.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달마역근경의 묘리는 성법.
탕마멸사가 백도의 근간이 되는 기지이지만, 소림의 달마역근경은 그마저도 번뇌로 여길 만큼 너무 맑은 물.
삿된 목적과 깨달음.
효율성을 직시하는 백도의 무공은 달마역근경의 근본적인 물음에 스스로 빛을 꺼트린다.
파파파파파파팟!
그래야 하건만…….
여전히 환영과 실체를 숨긴 교활한 무경들이 제 풀을 꺾지 않는다.
퍼퍼퍼퍼퍽! 팍! 쾅!
여타 다른 문파의 무공이었다면 진즉 소멸하여 사라졌겠지만, 태을문의 무공은 기세가 조금 줄었을뿐 사라지진 않았다.
비무 전반부와 달리, 일각은 오롯이 서 있었고, 진소운은 조금 지쳐 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각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태을문의 무공이…… 달마역근경에…….’
불안한 번뇌가 차오르는 것을 털어내었다.
성법의 묘리는 근본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익힐 수 없는 것.
진소운처럼 속된 자의 수행이 그리 깊을 리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질서를 바로잡겠습니다. 시주.”
일각은 합장한 뒤 금강복마권의 최후 절초를 준비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비무라 할 수도 없었건만, 교두 중에 누구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지금 진소운이 일으키는 혼돈이 괴로운 것이겠지.
그렇게 일각이 마음을 다잡을 때.
“네놈들이 만든 불합리 따위에 굴할까 보냐.”
“……!”
진소운 또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마보 자세에 양손을 허리춤에 놓는다.
흡사 처음 정권을 배우는 아이의 모습.
태을검제의 절초로 막아서도 모자랄 금강복마권을 순수 내공으로 막아내겠다는 건가?
역시나 교활한 자들은, 최후엔 결국 자신의 꾀에 스스로 넘어가는 법.
“하아압! 아미타불!”
팡!
일각이 합장하자 공기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금빛 무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이윽고 그의 양손에 뭉친 황금색의 달마역근경.
욕심과 욕망은 물론이고, 정의와 희망 등의 모든 것을 버린 순수한 깨달음.
투둑, 투둑, 투두두둑.
바닥에 부서져 나간 대리석 조각들이 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린다.
진소운과 일각의 사이, 단 일 장에 불과한 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득 찬 듯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다.
“복마치세!”
일각의 두 다리가 부동신법을 펼치며 쏘아져 나간다.
눈 한번 깜짝이는 사이 좁혀진 거리에서, 황금빛에 감싸인 주먹이 진소운의 명치를 향해 내질러진다.
그 순간,
진소운은 감았던 눈을 뜸과 동시에 주먹을 뻗어 일각의 금강복마권을 마주한다.
쩡!
----------!
--------------!
진소운과 일각의 사이로 대기가 빨려든다.
동시에 진소운의 주먹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 빛무리가 일각의 금강복마권을 밀어낸다.
빨려 들어갔던 대기들이 다시금 사방으로 떠밀려 간다.
연무장에서 시작된 모래 먼지와 돌조각들의 폭풍으로 관객들이 시선을 돌린 사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진다.
----------------!
고막이 찢어지는 고통에 본능적으로 귀를 막은 관객들은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광!
뒤이어 퍼지는 폭발음 소리.
퍼퍼퍼퍼퍼펑!
청명했던 연무장은 다시금 뿌연 모래 먼지로 가득 찼다.
“…….”
“…….”
모두 실성한 듯 연무장을 바라본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들 사이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천천히 가라앉는 먼지 위로, 머리도 무복도 모두 검은색인 청년이 오롯하게 서 있었다.
“아…….”
“이, 무슨….”
일각은 큰 충격은 받은 듯 붉은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해낸 채로 이미 혼절한 상태.
장내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에 진소운의 주먹에 감겨있는 황금빛 기운이 눈에 들어왔다.
“……오, 옥청천상력?”
봄이 된 지 한참이었지만 연무장 일대의 공기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갑게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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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후, 무림학관의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진다.
얼마 뒤면 학관의 휴식기가 다가오기 때문.
물론 학관생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교두들도 특별한 행정일 외에는 대부분 휴식을 즐길 수 있었고, 입학생들의 부모에게 자식을 잘 봐달라는 접대를 받을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관 본청 최심처에 있는 북원평의 표정은 휴식기가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편치 않았다.
“미치겠군.”
휴식기가 시작되자마자 태을문으로 달려가려 했던 북원평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밤잠도 자지 못한 채 무림맹에 열심히 끌려다니고 있었다.
앞날이 창창하게 보장된 북원평을 감히 오라 가라 할 수 있겠냐마는, 그 보장된 앞날을 결정하는 이들이라면 말이 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내 위로에도 북원평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마치 나를 탓하는 표정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학관장님을 위한 추천서를 써드릴 뿐인데 왜 그러십니까?”
“으…….”
물론 아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달마역근경을 맞받아친 옥청천상력.
강호에 그 기운을 쓰는 문파가 삼청무상검과 무당파밖에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바.
무당파에서 태을문에 가르침을 주었을 리 없으니, 의심 가는 용의자는 북원평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북원평이 기운 자체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 말하긴 했다지만, 그들 관점에서야 그게 쉽게 믿겨 지겠는가?
‘우리 빼고 다 병신들이다.’라는 생각이 심장에 새겨져 온몸에 피를 공급하고 있는 놈들이니, 당면한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을 내 탓이라고 돌리면 난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곧 한솥밥을 먹게 될 사이인데, 굳이 관련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의심을 사게 하지 않을까요?”
“…….”
북원평은 잠시 고민을 하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이는 북원평을 보고 나는 내심 환호를 질렀다.
정말이지 인연이 이렇게도 풀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풀려나갔다.
삼청력은 소림의 금성력과 무당의 태극력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힘이다.
삼청무상검이 태을문의 사람이 된다는 건, 몰려드는 마인을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는 공성 병기를 설치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파도 아예 태을문 옆에다 차리라고 꼬셔봐야겠군.’
마교가 득세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문파를 꾸릴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전생의 정마대전 당시 강시 부대를 홀로 쓸어내던 그의 신위를 생각하면, 위기의 순간 그가 태을문에 작은 도움이라도 준다면 태을문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덜 수 있었다.
‘사승관계가 조금 꼬일 것 같지만…… 천하의 삼청무상검이니, 거절하진 않으시겠지.’
애초에 태을문의 무공을 배울 것도 아니고, 문주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건강을 위해 익히라고 공개한 태을심법을 가르치는 정도이니 어색함만 극복해 낸다면 큰일은 없을 것이다.
“전서는 이미 보내놓았으니, 이건 직접 가져가시면 될 겁니다.”
추천서를 넘기자 북원평은 고민하다 말했다.
“자네는 같이 가지 않을 건가? 대부분 첫 번째 휴식 기간엔 사문으로 돌아가 연회도 열고 하는 것이 관례이지 않은가.”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많아서요.”
“벌써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건가?”
“안 그래도 그걸 말씀드리려 했는데. 형산파에선 뭐라 합니까?”
맹주원을 통해 장로전에서 사천에 학관생을 파견하고 싶어 한다는 미친 소리를 듣고, 맨 마지막으로 밀어두었던 형산파의 행사를 앞으로 앞당겼다.
이번엔 인원 제한도 풀어놓았다.
차후 사천에서 맞닥뜨리게 될 시산혈교에서 생떼 같은 목숨을 지킬 최소한의 수단을 될 테니까.
이것으로 내가 해야 할 의무는 다한 거다.
자기들이 참석 안 해서 죽는 것까지 내 탓이라고 하면, 염라대왕님도 뻔뻔함에 혀를 차며 유황 지옥에 처넣을걸.
“그쪽에선 처음에 거절했는데, 자네 이름을 듣더니 해주겠다고 하더군.”
“잘됐군요.”
“……?”
“왜 그러십니까?”
“자넨 좋지도 않은가? 자네의 위상이 그만큼 많이 올라갔다는 건데 말이야.”
하긴 이름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이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 강호이지.
“더구나, 이번 일로 인해 학관 내에서 자네에 대한 인식도 완전히 바뀌었고, 더 이상 과거처럼 자네를 대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네. 그러니 조금 편안하게 현재를 즐기는 게 어떤가?”
하지만 난 그 수많은 인물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죽어가는 끔찍한 광경을 너무 많이 보았다.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하다 생각되는 그 순간, 인간은 처참하게 죽는다.
난 한시도 쉬고 있을 수가 없다.
“즐기는 건, 일이 다 끝난 다음이어도 됩니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건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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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서고.
만권의 책이 있다고 하여 만서고라 이름 붙여진, 무림학관의 유일무이한 서고.
하지만 이름과 달리 지난 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책이 새로 입고 되어, 만서고란 이름이 유명무실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고를 관리하는 사람들조차 만서고 안에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정확히 삼만육천칠백이십이 권이지.’
이걸 알게 된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열이 받는다.
만통부의 모든 보고서를 외우게 했던 무림맹은 곧이어 내게 이 만서고의 모든 책을 외우게 했다.
자신들을 만든 것의 구 할은 만서고라나 뭐라나.
하지만 정작 정마대전이 시작된 후, 이 만서고의 책들을 뱉어내게 하지 않았다.
애당초 홀로 할 수도 없는 작업이었고, 그들도 이 작업이 그렇게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한마디로 똥개훈련을 시킨 것이다.
“내 발로 직접 여길 다시 오다니. 나도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구나.”
만약 전생에 만서고에서 봤던 책 중에 비급이나 숨겨진 무공비서가 있었다면 이렇게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만서고의 서책 대부분은 쓸모없는 무공 이론의 나열에 불과하다.
무림 학관생들은 졸업 전 자신의 깨달음을 기반으로 논문을 한 편 작성해서 이 만서고에 제출하는데.
어설픈 실력으로 논문을 써서 제출하니, 그런 허접한 자료들이 그득그득 쌓여 정작 중요한 자료들마저 파묻어 버린다.
그러니까 난 불쏘시개로도 쓸모가 없는 자료들을 외운다고 그 염병을 떨었던 거다.
“후…… 하지만 언제까지고 제자리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난번 만났던 맹주전의 그림자 무사와의 일전 이후로, 스스로 벽에 가로막혔다는 느낌을 꾸준히 받고 있었다.
북원평에게 옥청천상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사사받고 있지만, 내가 쓰는 옥청천상력과 그가 쓰는 옥청천상력의 궤가 달라 배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더불어 검강에 대한 갈증까지 느껴지는 상황이니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그에 대해선 아직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
고개를 높이 쳐드니 만서고라는 현판이 보인다.
방학이 다가옴에 따라 평소 만서고를 이용하던 학생들의 숫자가 없어 한산한 느낌이었고, 사용인들도 휴식기를 맞아 만서고를 재정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과거의 악몽과도 같은 만서고를 대충 둘러보다가 그를 찾기 시작했다.
“금방 눈에 띌 텐데.”
아니나 다를까, 서고를 오가다가 금방 그가 눈에 들어왔다.
“어이 꼽추! 이것들을 정리해라.”
“아! 예, 예.”
거친 머리카락과 낡은 무복,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당당한 태도와 거대한 풍채.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 외형의 사내가 늙은 꼽추에게 책을 건네자, 꼽추는 연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책들을 챙겨 자리를 옮겼다.
‘여기 있었군.’
꼽추는 사내가 꺼내 놓은 책들을 한 번에 가져가려다가 바닥에 넘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얼른 치우겠습니다.”
“귀찮게 하는군.”
사내가 손을 슥- 한번 휘두르자, 꼽추가 줍던 책들이 단박에 쭉 밀려났다.
꼽추는 허둥지둥거리며 책들을 쫓아갔다.
“역시나 성격은 별로군.”
내 말에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나에게 한 소린가?”
“아니네. 그냥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말게.”
사내는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말을 이었다.
“인제 보니 학관 대표였군.”
“그대는 천강문의 소천수이고.”
“나를 아나?”
“천강문을 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천강문은 백도 문파 중 드물게도 패도적인 무공에 집착하는 문파였다.
얼마나 그 집착이 심한지, 입문하여 강기를 쓰지 못하면 한 명의 무사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사문을 나설 수 있는 최저 기준이 강기라고 했지?’
무공 또한 괴랄하여 최소 절정 끝자락에는 올라야 발현할 수 있는 강기를, 이들은 일류 끝자락에만 닿으면 바로 발현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강기를 정상적인 것이라 볼 순 없지만.
나이에 비해 빠르게 강기를 발산할 수 있는 만큼 천강문 출신들은 꽤나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에게 볼일이 있나?”
“없었는데, 생겼다고 하지.”
“훗. 궁금하군. 그게 뭔지.”
소천수는 손안에 수강을 발현하며 웃었다.
역시나 천강문의 수제자 다운 철없는 모습이다.
‘하긴 정체를 알기 전까진 저 강기만 봐도 어지간한 놈들은 오금이 저릴 테니까.’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난 자네와 싸우기 위해 온 게 아니네.”
“그럼?”
“자넬 도와주기 위해 온 거지.”
“응?”
그 말과 함께 백봉수를 뻗어 그의 수강이 어린 손을 제압한 후, 마혈과 수혈을 짚었다.
“이, 비, 비겁한…….”
“뭘 비겁 씩이나, 이게 다 자네를 도와주려 하는 건데. 그리고 강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데 다른 무공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게나. 천강문의 약점이 이런 기초적인 수법에 당하는 것 아니겠나.”
“…….”
애써 조언을 주었지만, 소천수는 이미 몸이 굳은 채로 수마에 빠져들어 있는 상태였다.
“쩝, 벌써 잠들었나?”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애들을 상대로 이런 수를 펼치다니, 역시나 흑도인답군.”
청룡환을 발동시켜 그의 몸에 박혀든 흑기를 뽑아내었다.
이것이 계속 몸에 남아있었다면, 소천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몸살을 겪으며 심력이 저하되었을 것이다.
워낙 찰나의 순간 은밀하게 타격당했기에 정작 소천수 자신도 가늠하지 못한 것.
나는 그의 일수를 보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다고 확신했다.
경지도 경지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단순하지만 심오한 무공으로 정점에 오른 이.
그런 그라면, 검강이 존재하지 않는 무공에서 어찌 검강을 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지도 모르니까.
“근데 어떻게 설득하지?”
흑도 무림의 가장 정점에 서 있던 자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만서고에 숨어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성정이 거칠기로 유명한 그를 감히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