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45화 (145/357)

#145. <검은 가면을 쓴 자들(4)>

“은인께 인사 올립니다.”

얼굴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있는 세월의 흔적, 검은 머리 중간중간 변색되어 버린 흰머리.

세월에 젊음을 빼앗겼음에도 그 모습 자체만으로 독특하고 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인이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과공은 비례라 하였습니다. 강호의 배분상으로 보나 나이순으로 보나 제가 후배인데 이런 과한 환대는 부담스럽습니다.”

내 말에도 여인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미에게서 자식을 구해준 분을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 누가 은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하오문주 여미미의 첫째 제자인 해령이었다.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해령은 우아한 몸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쩐지 성모란과 남궁선화는 되려 좀 딱딱해진 모습이었다.

“차를 준비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

“…….”

해령에 말에 두 소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해령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작게 웃었다.

조르르.

차를 준비하는 모습과 차를 따르는 모습. 그 하나하나에도 아름다움이 묻어있었다.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품위라는 것이겠지.

그녀 앞에서 성모란과 남궁선화는 마치 엄한 선생님 앞에 앉은 학생들처럼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고소한 차의 향기가 올라오고, 목이 말랐던 내가 차를 얼른 한 번에 들이켜자 남궁선화와 성모란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

뭐야, 저 눈빛들은?

“왜 그럽니까?”

“……아니에요.”

“…….”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려 보지만, 대답 없는 두 여자. 대신 해령은 그 모습마저도 재미있다며 입을 가리고 쿡쿡 웃고 있었다.

“공자님은 여전하시군요.”

“사람이 바뀌기엔 그간 못 뵈었던 시간이 너무 짧지 않습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강호에서 공자님의 위명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라졌던걸요.”

“그게 어디 제힘으로만 한 일이겠습니까. 하오문같이 훌륭한 문파가 도와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와 해령이 서로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성모란과 남궁선화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혹시 어떤 분이신지…….”

그 괄괄하던 성모란이 갑자기 저리 숙녀가 된 걸 보면, 해령에게서 내가 알 수 없는 뭔가 위엄 있는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나?

하오문의 첫째 제자인 해령을 어찌 소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이곳에서 해령을 만날 거라 생각한 적도 없었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비밀을 지키고 싶어하는 그녀의 특성상, 당연히 성모란과 남궁선화를 밖에서 기다리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내 고민이 무색하게 해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하오문 만빈각 각주 해령이라 합니다.”

“…….”

“…….”

해령의 말에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눈을 마주치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점점 입을 벌렸다.

“만빈각 각주라면…… 하오문주님의 첫째 제자 되시는…….”

“네. 부족한 저를 거둬주셨지요.”

“허…….”

“……하오문은 주요 인물들에 대한 신상을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들었는데.”

해령은 나와 여자들을 번갈아 보곤 말했다.

“저희 진 공자님의 친구분들이시니까요.”

“……‘저희’요?”

“……분명 저희라고?”

해령의 말에 두 사람은 머리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해령이 나를 보고 말했다.

“장 노사의 일로 찾아오신 거 맞으시죠?”

“알고 계셨습니까?”

“저희 쪽에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공자님이 악양에 오셨다는 말에 들르실 거라 생각했지요.”

거기까지 예상을 했다면 하오문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킨 뒤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마교가 맞습니까?”

가장 중요한 질문.

잠시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두 소저도 ‘마교’라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해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악양에 온 것도 사실은 그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마교가 사람들을 납치한다는 질 나쁜 소문 말입니다.”

해령은 커다란 족자를 탁자 중앙에 펼쳤다. 악양의 전체 모습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

그 지도 위에는 붉은색의 점과 검은색의 점들이 곳곳에 박혀있었다.

“붉은색의 점들은 아직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인물들을 표시한 것이고, 검정색의 점은 죽음이 확인된 자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게 전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점들의 숫자와 분포는, 특정 지역을 유추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종과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사망한 사람과 실종된 사람들 간의 공통점도 없습니다. 여기 허후란 자는 팔십 세의 나이로 미곡을 거래하던 자였고, 여기 실종된 정화라는 아가씨는 청루에서 연주를 하던 예기였습니다.”

“……범인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군요.”

“네.”

나는 이야기를 듣다 맨 처음 들었던 의문에 관해서 물었다.

“일을 벌인 이들이 마교……라는 소문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진짜 마교가 활동을 했다면, 그들의 정체가 드러날 리 없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면 이미 무림맹이 한바탕 발칵 뒤집혔을 테니.

“그건 저희도 알 수 없어요. 일이 시작된 이후로, 저잣거리에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교’를 입에 담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의 목적은 마도치세이지 혼세(混世)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의미 없는 죽음과 납치는 마교에 대한 경계심만 올릴 뿐.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서히 머리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교를 사칭했다……가 맞겠군요.”

해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마교에 대항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죽음을 수없이 목도했던가.

숱한 희생과 좌절들이 마교 때문에 일어났었다.

단순히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 보기엔 한참이나 선을 넘었다.

“……빌어먹을 놈들이…….”

어쨌든 이 사건은 내 장서고에 있는 천하의 기록을 뒤져봐도, 마교와의 접점은 찾을 수 없는 사건이다.

즉, 전생에 없던 일이 현생에 생겨났다는 뜻.

“혹시 이 사건의 시작점은 언제부터였습니까?”

해령은 함께 가져온 책을 휘리릭 둘러보다가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입니다. 첫 사건은 임인월 갑진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반년 전… 반년 전이라……. 그때 악양에 뭔가 큰일이 있었습니까?”

“악양에는 없었지만 인근 호북성에는 꽤나 큰일이 있었지요.”

“호북성에? 무슨 일이었죠?”

해령이 쿡쿡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진 공자께서 흑도문파들을 이끌고 무림맹에 행차하셨죠.”

“아!”

사건에 매몰되어, 되려 나에게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오해입니다. 전 그저 그들의 뜻이 숭고하여 흑백을 넘어 존중의 의미로 참가했던 것일 뿐입니다.”

“저희도 그렇게 소문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령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괜히 신경 쓰인단 말이야.

“……어쨌든 그 이후로 악양에서 이 일이 바로 일어난 겁니까?”

“그건 아니었습니다. 악양에 적을 두고 있는 흑도 문파 묵혈방, 흑부궁과 유월문, 창성파가 긴박한 갈등을 겪었고, 유혈사태도 일어났었습니다.”

“본래 악양에선 그 두 문파가 터줏대감이 아니었습니까?”

“마령고원의 일로 앙심을 품은 묵혈방과 흑부궁이 흑도무림의 행사 이후, 명분을 만들어 악양을 양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점창의 성사다원이 생기는 결과를 만들어 냈죠.”

“그럼 그 일에 앙심을 품고 흑도 문파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해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묵혈방과 흑부궁의 용의점을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사건은 금방 미궁에 빠져버렸다.

애당초 해령이 해결을 했다면 나에게 정보를 가져다주었겠지.

나는 해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종자와 사망자 명단이 적혀있는 책을 주르륵 살피며 머릿속에 하나하나 저장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앞으로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작은 단서로라도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헌데 이름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넣던 도중, 문득 한 곳에서 행동이 멎었다.

“은봉객잔이라면 산동악가가 운영하는 곳 아닙니까?”

“네. 악양에서도 규모로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객잔입니다. 그곳 객주가 죽는 바람에 한동안 은봉객잔이 잠시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

“뭐가 이상하십니까?”

나는 대답 대신 책자를 끝까지 모두 머릿속에 넣었다.

책자를 다시 살피면서 머릿속 장서고의 정보들과 비교했다.

무언가……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한 작은 실오라기가 손안을 자꾸 빠져나가는 느낌.

그리고 미세한 감각이 잡히는 순간.

탁.

“점창파와 관련된 인물 중엔 죽거나 실종된 이가 없군요.”

“……!”

“…….”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이 감돈다.

단지 이곳이 깊은 지하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

“이 희생자들과 관련된 정보들도 있습니까? 가령 이 사람이 죽은 후, 이들의 사업체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다 하는…….”

“……네.”

침을 꿀꺽 삼킨 해령이 한쪽에서 목갑처럼 두꺼운 책자를 가져왔다.

본래 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정보들을 한데 묶어놓은 듯 엉성한 형태였지만, 정보를 확인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허후란 노인이 죽은 후 그가 가지고 있던 미곡 거래권은 창성파가 운영하는 표국으로 넘어갔군요.”

“……정화라는 예기의 아버지는 청죽루의 루주입니다. 청죽루는 최근 점창파와 인수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고요.”

“…그러니까 이 사건 이후에 이익을 본 건 항시 점창과 점창에 관련된 문파들이군요…….”

정보들을 하나하나 대비해 갈수록 장내의 무게감은 점점 짙어져 주변 공기를 짓눌러 갔다.

그리고 모든 정보를 다 확인했을 땐, 쉬이 입을 벌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들로 이번 소행이 점창의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아주 우연히도 일이 터졌고, 그 후에 이익을 얻은 이들이 점창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긴 개뿔이.”

내 욕설에 침잠하던 세 사람이 눈썹을 치켜뜬다.

“무림맹의 기둥이라는 것들이 마교를 사칭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들어?”

“…….”

내 말에 해령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공자님, 이런 증거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물론 관련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월문과 창성파가 깊게 관련된 이 일에서 점창이 완전히 자유로울 리 없다.

애당초 점창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

해령의 속뜻은, 돌려 말하긴 했지만 점창파를 단죄하는 건 불가능하단 이야기.

감찰각을 불러 수사한다 해도, 점창파가 오리발을 내밀어 버리면 끝.

더불어 의심의 화살은 도리어 내게 돌아와, 내가 그들을 모욕했다는 명분을 내어주게 되겠지.

어쩌면 점창파의 제자들이 내 목 하나 따자고 무림학관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알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죠. 안 그렇습니까?”

남궁선화와 성모란이 초조한 얼굴을 하는 것과 달리, 해령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도와주실 겁니까?”

“돕지 않아도 실행하실 생각이 시지 않습니까.”

#

우린 장도원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태을문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했고, 네 사람은 당연하게도 우리보다 더 분개했다.

하지만 분노했다고 모든 걸 터트릴 수는 없는 상황.

“점창을 건드렸다간, 우리뿐만 아니라 남궁세가와 철검문까지 곤란해질 거예요.”

사련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일의 해결은 분명 필요하지만, 섣불리 건드렸다간 역풍에 휘말려 오히려 우리가 산산조각 날 것이다.

“남궁세가는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야.”

남궁선화가 그리 말하긴 했지만 점창에게 명분을 준다면, 가뜩이나 이제 막 안정을 찾은 남궁세가에 또다시 커다란 혼란을 안겨줄 수도 없는 법.

“결국은 점창의 시야를 피해서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군요.”

은호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이 사람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찾고 있긴 하지만 시일이 걸릴 거다.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증거를 지우려 할 수도 있고.”

은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고개를 들고는 볼을 긁적였다.

“그…… 좀 딴 얘기이긴 합니다만, 저랑 금표 형은 간식이 생기면 바로 먹어버리지만 동룡이는 항상 아꼈다가 나중에 먹는 버릇이 있습니다.”

“……뭐?”

뜬금없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은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희는 동룡이가 나중에 먹는 걸 알기 때문에 동룡이가 간식 숨긴 곳을 늘 찾아보는데, 얘가 점점 숨기는 솜씨가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한 날은 동룡이한테 숨긴 간식을 먹어봤냐고 물어봤죠. 진짜 진짜 달다고 그거 그냥 두면 개미가 꼬일 거라고.”

동룡이는 그때의 기억이 난 듯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동룡이는 저희 눈치를 보다가 얼른 간식을 숨긴 곳으로 갔고, 저희 둘은 동룡이가 숨긴 간식을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씨…….”

은호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동룡이가 은호에게 마구 엉겨 붙기 시작했고, 은호는 짐짓 어른인 척 동룡이를 말렸다.

“……흠.”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게 만든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투닥거리는 은호와 동룡을 뒤로하고, 남궁선화와 성모란을 보며 물었다.

“한번 해볼까요?”

“……뭘요?”

#

악양의 밤거리는 낮보다 화려하다.

동정호의 밤을 보기 위해 천하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곳.

바로 악양의 밤거리였다.

고관대작부터 강호의 명망 높은 이가 나타난대도 별 관심 없던 사람들의 시선이 두 여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허…… 사람인가? 선녀인가?”

“내 섭혼서시와 옥안소소가 미의 끝이라 생각했건만, 오늘 안계를 넓히는군.”

“대체 어디의 누구지?”

“다가갈 생각 말게, 아까 화화공자 무리가 말을 걸었다가 삼 장이나 날아가 처박혔으니까.”

“무공까지 대단하다고?”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킨 두 여자는 화려한 악양의 주루 중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화월루로 향했다.

그녀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뭇 남성들이 우르르 그녀들을 뒤따르기 시작했고, 호객행위를 하던 화월루의 점소이는 이게 웬 떡이냐며 얼른 화월루의 문을 열었다.

두 여자가 들어서자 화월루 내부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

그러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이야기들은 잊었는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점소이들은 앞다투어 두 여자를 자신의 탁자에 모시기 위해 경쟁하듯 달려왔다.

“제가 오늘 밤 확실히 모시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혹시 원하시는 이상형이 있으십니까? 제가 악양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드리겠습니다.”

점소이들의 경쟁에, 눈을 마주치며 쿠쿡 웃던 여자들이 말했다.

“우린 음주가무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에요.”

“아, 그럼……?”

“제 육촌 동생을 만나러 왔어요. 이곳에서 거문고를 연주한다고 하였는데.”

“아…… 그러십니까? 혹시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화예요.”

남궁선화의 말에 점소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화라는 예기가 있었나?”

“처음 듣는데?”

“그런 예기는 화월루에 없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답하는 점소이들.

“그거 이상하네요. 여기서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점소이가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세 번째 점소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찌 그 예기를 찾으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별일 아니에요. 이번 남궁세가의 행사에 꼭 참석시키라는 할아버님의 말씀이 있었거든요.”

“넷?”

점소이가 대경하듯 놀라고 남궁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닙니다. 혹시 소저께선…….”

“전 남궁선화라고 해요.”

“…….”

“정화는 먼 친척이긴 하나, 제 가족과 할아버지가 특별히 어여뻐 하던 동생이었어요.”

“……그, 그렇군요.”

“여기에 없다니, 별수 없군요.”

결국 정화를 찾지 못한, 아니 애초에 그곳에서 찾을 생각이 아니었던 남궁선화와 성모란은 화월루를 나섰다.

다시금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면사를 착용해 얼굴을 가리고 골목 안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참을 걷던 그때, 남궁선화에게 전음이 들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음을 보낸 자는 다름 아닌 화월루 지붕에서 장내를 살피던 진소운.

남궁선화가 보이지 않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변화가 있나요?

-지금 점소이 하나가 주방 사람들을 마구 헤치며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랑 이야기했던 사람이겠네요.

-그렇겠지요.

범인이 간식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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