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검은 가면을 쓴 자들(5)>
“애초에 진 공자랑 올 때부터 알아봤지. 저 인간이랑 같이 다니면서 여행은 개뿔…….”
성모란은 화려한 장신구들을 풀어내고 겉옷을 벗으며 그렇게 툴툴거렸다.
“애당초 여행하러 온 게 아니라 말씀드렸습니다만…….”
“누가 뭐래요? 왜 혼잣말을 몰래 듣고 그래요?”
아니, 이 조용한 곳에서 귓가에 대고 중얼거리면 그건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닌가.
“……일이 끝나면 송향루에서 거나하게 한턱내겠습니다.”
“남자들이나 가는 그런 청루를 누가 좋아한다고……. 동정호에 배를 띄워 야경을 즐기는 게 그렇게 좋다던데…….”
점창파와 맞서야 할 상황에서 겨우 동정호의 배 운운하는 것은 그녀 나름대로 배려일 터.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야경입니까? 가장 크고 화려한 배를 띄워 연주자와 숙수를 태우고 즐기는 게 어떻습니까. 자고로 휴가를 즐기려면 그렇게 즐겨야겠지요?”
성모란은 코를 벌렁거리고 입술을 오므리며 억지로 웃음을 참아내었다.
“뭐…… 그 정도면 좋아요. 근데 진 공자는 괜찮은 거예요?”
“뭐가 말입니까?”
“그 정도로 돈을 쓰고, 점창이랑 맞서고. 솔직히 말해서 진 공자가 이 일이 해결된 이후에 얻어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잖아요.”
“…….”
고기 방패 역할이었지만 그래도 마도지세를 막기 위해 전장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었다.
백도의 위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제 이권을 위해 마교의 가면까지 쓰며 일을 벌이는 놈들을 보자니 속이 뒤집히다 못해 구역질이 올라온다.
“검을 든 무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닙니까?”
“…….”
“왜 그러십니까?”
“흑도 무림의 신성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니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흑도 협객이라니…….”
“……자꾸 그런 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대사형,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금표가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악양의 외곽 폐건물로 보이는 전각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세 명의 남자들이 나왔다.
한 명은 화월루에서 만났던 점소이였고. 두 명은 처음 보는 남자들이었다.
점소이는 다시금 악양으로 돌아가는 반면 남자들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군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마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동시에 윗선에게 알리려 움직일 겁니다. 아마 그때 몸통이 나타나겠죠.”
“역시…… 흑도인답게 그들의 생리를 금방 파악하는군요.”
“…….”
이 여자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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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동 형제와 나, 성모란 이 다섯은 조용히 남자들을 따랐다.
금·은·동 형제와 나는 귀식행보를 펼칠 수 있었기에 남자들에게 가까이 따라붙었고, 성모란은 궁금한 것이 많은 표정으로 멀리서 따라왔다.
남자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악양 외곽의 외딴 장원.
우리는 장원의 지붕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성모란이 심각한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 숨긴 걸까요?
장원의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어디에서도 잡혀 있는 인물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삼엄한 경계도 조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왜죠?
-저쪽 후문에 수레바퀴 자국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장원은 평소 별로 사용되지 않는 듯 보이는데 수레바퀴가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요?
-아…….
-아마 사람들을 실어 나르거나, 그들에게 먹일 음식 등이 있는 거겠죠.
-역시 잘 아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아녜요. 어쨌든 이 장원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긴데 어디에 있을 것 같아요?
-……하오문 악양 지부. 지하가 꽤 넓지 않았습니까?
-그쵸.
-밖에 햇빛도 들지 않고 내부가 격벽으로 막혀있다면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지 않을까요?
-결국 지하를 수색해야 한다는 거네요?
나는 구름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달빛을 의지해 남쪽에 있는 창고를 가리켰다.
-아마 저 안에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왜죠?
-창고에 저리 사람을 세워두는 경우는, 금은보화를 숨겨두었거나 그 안에 든 것이 금은보화 수준의 가치를 가진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흠…… 선화가 사람들을 데려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계획은 그렇게 여유 있지 않다.
-저들은 남궁세가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려 할 겁니다. 기다렸다간 다 놓쳐버릴지도 모르죠.
이미 정화가 남궁세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저쪽도 남궁세가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남궁세가가 올 때까지 저들을 잡아두는 것.
성모란이 검은 복면 안으로 두 눈을 부릅뜬다.
-미쳤어요? 우리끼리 해결하자고요? 여기 있는 인원만 팔십이 넘어요.
-최대한 소란스레 움직이겠습니다. 그사이 성 소저가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
-점창이 관련되었다 의심됩니다. 만약 그들까지 나서면 이 일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아, 알겠어요. 대신…… 죽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성모란이 두어 걸음 걷다가 우리를 돌아봤다.
-팔이나 다리가 잘려도 얼굴은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하세요.
-……지금 걱정하는 거 맞습니까?
걱정 한번 과격하네.
-……아무튼 조심해요. 최대한 빨리 움직일 테니까.
나는 금·은·동 형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성 소저가 죽지 말라는구나. 걱정되느냐?”
금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검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진 사형이 우릴 쌍막채에 던졌다는 걸 들으면 기절하시겠군요.”
아니, 내가 언제 던졌다고…….
녀석들은 내 변명을 듣기도 전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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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대주 정소명은 보고를 듣다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미친…….’
남궁세가? 남궁세가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한낱 예기 따위가 남궁세가라니…….
“확실한 것이냐?”
“확인되진 않았습니다만…….”
“다만 뭐? 말을 똑바로 끝까지 해 이 새끼야! 지금 사문의 존폐가 걸려있는 걸 모르겠느냐!”
“창궁상단에서 개방에 정화를 찾는 의뢰를 넣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직접 찾다가 이상함을 느꼈으니 의뢰를 넣은 것이겠지. 더구나 정화를 찾는 이들은 남궁선화와 성모란.
두 사람이 막역한 것이야 유명하니 정보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청죽루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었는데…….”
아쉽지만 별수 없었다. 여기서 꼬리가 밟혔다간 청죽루가 문제가 아니게 된다.
“청죽루주는 어떤 상태지?”
“점창파에 일을 의뢰하고 성사다원에서 기거하는 중입니다.”
본래라면 며칠 더 끌다 겨우 찾았다며 딸내미를 내밀고 계약서를 받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증거를 남겨둘 순 없었다.
“정화라는 계집은 죽이고, 시체는 동정호에 버려라. 사문의 무사들을 모두 동원해라. 장원을 옮긴다.”
“넷!”
“어서 서둘러라 남궁세가가 먼저 움직이면…….”
크아악!
정소명의 이야기는 밖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끝이 나지 못했다.
컥!
쾅!
비명에 이은, 폭발이 일어난 듯한 굉음.
벌써 도착했다고? 시간상으로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
정소명의 고개가 부러질 듯 돌아갔다.
“네놈들! 꼬리를 달고 왔구나!”
“그, 그럴 리 없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고수라는 것.
정소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장 사문에 도움을 청해라……. 아니, 성사다원으로 곧장 가라!”
“……네넷!”
“내가 직접 나가겠다.”
전각을 나선 정소명의 눈에 보인 광경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사문에서 선발한 정예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복면을 착용한 습격자들은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범인의 솜씨를 본 정소명은, 자신이 쉬이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이라 빠르게 판단을 끝냈다.
“모두 멈춰라!”
정소명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멈추라 하지 않았더냐!”
그제야 물러나는 유월문의 무사들.
“양상군자께서 이 외진 곳까진 어인 일이시오.”
침입자들에게 말을 거는 한편, 정소명은 얼른 전음을 보내었다.
-장원 내의 모든 무사를 이곳으로 모아라.
그러곤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곳이 유월문이 운영하는 장원임은 알고 계시오?”
“…….”
좋게 말로 해결하려 함에도 침입자들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재산을 노리고 온 것이라면 잘못 찾아왔소. 이곳은 유월문의 무사들이 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
여전히 말이 없는 침입자들.
헌데 침입자들을 면밀히 살피니 이상한 점이 보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대단한 자도 있는 반면에, 아직 성장이 다 이뤄지지 않은 아이처럼 보이는 자도 있었던 것.
‘혹시 애들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정소명은 서서히 열감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면 이곳엔 왜 온 것이지?”
유월문의 무사들이 거의 모여드는 것을 확인하곤 정소명의 말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놈들이군. 제 무덤을 스스로 찾아오다니.”
“…….”
침입자 중 가장 덩치가 큰 자는 자신이 쓴 복면과 똑같이 시꺼먼 검을 들어 올렸다.
“뭘 기다리고 있지?”
침입자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하는 놈의 말에, 정소명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쳐라! 놈에게 유월문의 무서움을 보여주어라!”
“넷!”
잠시 멈췄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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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가장 많이 썼던 무공이라면 단연 소천검법.
가장 강했던 무공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공 소모가 가장 적었던 무공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유월문의 무사 다섯이 먼저 달려든다.
공격점이 한곳에 몰리면 되레 피할 구석이 없어진다.
나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며 소천검법을 찔러넣었다.
“크헉.”
오른쪽 어깨를 관통당한 무사는 검을 떨어뜨리며 주저앉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는 무사를 피하며 발뒤꿈치를 잘라 낸다.
“끄아아악!”
생살과 힘줄이 잘려 나가면 제아무리 마인이라도 상처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쓰러진 무사의 몸을 밟고 튀어 올라 동시에 세 명의 무사의 급소를 찔러넣는다.
챙챙, 푹.
두 번의 공격은 막혔지만, 세 번째 공격은 유효했다. 피 분수가 피어오르며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온다.
“뭐 하고 있나! 어서 놈을 죽여라!”
소란에 몰려드는 무사들.
점점 늘어나는 숫자들은 곧 그들에게 용기가 되어 전파된다.
세 명을 쓰러뜨렸지만 여섯이 더 추가된다.
전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인과의 전투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인간인지 파도인지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계속 몰려들고, 내 비루한 내공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어, 난 근육의 힘만으로 놈들의 검을 막아내야 했다.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살고 싶다는 본능에 의해 휘둘러지는 검.
절박한 심정이 닿았던 탓인지, 전쟁터라는 혼잡한 상황이었던 덕분인지, 검기를 두른 상대의 목덜미에 검을 박아넣은 적도 있었다.
“크헉.”
“허읍, 허읍, 허읍.”
“끄르르륵.”
바로 지금, 목에 큰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유월문의 무사들처럼.
그때의 그 마인들도, 이들처럼 하나같이 제 죽음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지.
“멍청한 놈들! 검진은 뒀다 국 끓여 먹을 것이더냐!”
무작정 몰려들던 무사들이 거리를 벌린다.
나는 그들이 검진을 이루기 전에 끝내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채채채챙, 푹.
삼초식을 나누고 나면 유월문의 무사가 쓰러진다.
다시, 삼초식을 나누고 나면 또다시 유월문 무사의 피가 흐른다.
전생의 전장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발진!”
채채채챙.
서른 명의 검수들이 일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다.
유월문의 삼십유월검진은 공격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은호의 외침과 함께 금·은·동 형제가 백호필살검진을 펼친다.
제각기 움직이던 세 사람의 검법이 마치 한 사람이 펼치는 듯 바뀌기 시작한다.
“금은갑(金銀甲)!”
은호의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이 동시에 쌍천검결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금·은·동의 검진을 단박에 깨부술 기세였던 삼십유월검진은, 단단한 강벽을 만난 것처럼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콰콰콰콰콰콰.
분명 유월문의 무사들의 숫자가 훨씬 많음에도 백호필살검진은 뿌리라도 박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성환(星幻)!”
은호를 시작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환검을 피워낸다.
수십…… 아니 수백에 달하는 환검들이 삼십유월검진 전체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미친…….”
“이게 대체…….”
“뭐야!”
검진을 펼치는 유월문의 무사들은 환검과 진검을 구분할 정도가 되지 않았는지, 허공을 가득 메우는 쌍천검결에 질려버린 모습.
푹, 푹, 푹, 푹, 푹, 푹.
동시에 피륙음이 터져나가며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갔다.
“커흑.”
“으억.”
“끄르륵.”
나는 넋 놓고 백호필살검진을 살펴보던 다른 유월문의 무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을 향해 내리쳐지는 쌍천검결.
“……응?”
“화, 환검?”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는 쌍천검결에 눈을 질끈 감았던 무사들 중 몇몇은 멀쩡한 자신의 목에 얼떨떨한 표정이었던 반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윽!”
“끄악!”
“커흑!”
쌍천검결 사이사이 숨어있는 진검들에 고혼이 된 유월문의 무사들.
다섯의 인원이 또 쓰러졌다.
나는 화살처럼 튀어 나가 다시금 쌍천검결을 흩뿌린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
수십 개의 검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눈을 현혹하고, 그사이 상대의 생명을 앗아 간다.
수적 우세에 용기를 가지고 있던 유월문의 무사들은 어느새 점차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이런 등신 같은 놈들…….”
탁.
이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전각에서 몸을 날려온다.
나는 왼손을 떨쳐 만화무적권을 펼쳤다.
투투투투투투투투.
“흡!”
공중에서 몸을 뒤틀려던 그는 결국 만화무적권의 공세를 피하지 못하고, 날아왔던 속도 그대로 전각에 처박힌다.
쾅.
본래 낡았던 전각은 먼지를 흩뿌리며 우지끈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사라진 상황에 당황한 무사들을 차례차례 휩쓸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챙.
채채챙.
이미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 유월문 무사들의 검에는 더 이상 패기가 실려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는 방어적인 모습뿐.
그리고 이런 모습은 수없이 많은 전장을 겪어온 내겐, 그저 맛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크아악!
커흑.
끄윽!
푸슉, 피슉, 하며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핏물이 터져 흐른다.
유월문의 무사들은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한차례 장내가 정리된 후.
지붕 위에서 검은 인영이 뛰어내려 내 옆에 안착했다.
-진 공자.
나는 성모란의 등장에 놀라며 물었다.
-벌써 다 구했습니까?
-아뇨. 못 구했어요.
-어째서 말입니까?
-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애들만 열 명이 넘어요.
-…….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구해서 가는 게 낫겠어요.
작전 변경을 위해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는 사이.
펑.
부서진 전각에서 피어오른 신호탄이 어두운 밤하늘에 불꽃을 수놓는다.
“커흑.”
전각에 처박혔던 우두머리는 입가에 주르륵 피를 흘리며 다시금 전각 밖으로 나섰다.
“……쥐새끼 같은 놈들. 네놈들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더 이상 시간을 끌 겨를이 없었다.
성모란과 눈을 마주친 나는 내공 전부를 끌어올렸다.
“진 공자…….”
“잠시 물러나십시오.”
떨리는 공기들이 순식간에 손아귀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전에 가득 찬 내공들 중 삼분지 일이 텅하고 사라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강!
이윽고 쏘아지는 광천신장이, 전각과 우두머리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끄아악!
커흑!
컥!
광천신장에 휩쓸린 무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사이, 나와 성모란이 동시에 튀어나갔다.
성모란과는 둘이서만 합을 맞춰본 적도 없었지만, 정시를 함께 치르며 겪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서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동작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마치 과거 소정대 인원들과 손발을 맞추는 듯 안정감 있는 느낌.
“처, 철검문! 네놈……! 철검문의 인원이었구나!”
성모란의 무공을 알아본 놈을 베어버리려 몸을 날리려는 순간.
“모두 멈춰라!!”
내부를 진탕 흔드는 사자후가 장원 내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장원의 입구엔 옷가지가 마구 흐트러진 종벽기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