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52화 (152/357)

#152. <혼란 속의 흑염룡(2)>

악양 지부장 일은 당혁재가 직접 부탁하기도 한 것이었다.

당장 자신이 사표를 쓰고 나가자면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혹시 아는 사람 있냐고.

잠깐의 만남으로 느낀 거지만, 당혁재는 일상의 대부분을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에 나를 만나기 위해 무림맹에 지원했다가 악양 지부장에 눌러앉은 것만 봐도 그렇지.

‘천재는 다들 이렇게 이상한 건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천재인 제갈천기가 매우 정상적인 것을 보면 모두가 그렇진 않아 보이지만, 하나같이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역시나 내 동생 제갈천기만 한 애가 없어.’

아무튼 당혁재에게 그런 부탁을 받았지만, 당장에 나 또한 추천해줄 만한 인물은 없었다.

태을문의 인사 중에 무림맹에 기거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인맥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나를 적대하거나 아니면 강호의 배분상 지부장의 자리에 올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러다 생각난 것이 바로 하오문.

물론 하오문이라도 무림맹에 인력이 심겨 있을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이들을 위한 방파이니까.

하지만 하오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들은 몇 있었다.

하오문에게 약점을 잡힌 이들이라거나, 아니면 하오문과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이거나 하는.

해령은 그런 이들 중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물을 추려 보겠다며 이야기했고 나는 동의했다.

어쨌든 악양 지부장의 자리에 하오문의 뒤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앉는다면, 악양 내에서 하오문의 입지가 더욱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고 나가려는데 해령이 다시금 나를 잡았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악양에 새로 생기는 하오문의 주루나 객잔에서 나오는 수익의 오(五) 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뜬금없는 해령의 제안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요?”

“악양 지부장의 자리도 악양의 이권도, 어찌 되었든 공자님 덕분에 생긴 것이지 않습니까. 저희는 ‘식객’에게 빚을 지지 않습니다.”

내가 뭐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해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뒤 객실을 나가버렸다.

“덕분에 한동안 돈 걱정은 안 하겠네.”

오(五) 푼이라는 수치라도 그게 악양에서 하오문이 운영하는 가게의 수익금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아마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다음은 너희들이구나.”

나는 상위에 놓인 구령신초와 혈옥수 중에 혈옥수를 먼저 들었다.

“너를 여기서 다시 보는구나.”

혈옥수.

무림맹이 지정한 십(十)대 금공 중 하나.

두 손이 붉은 진주처럼 붉게 달아오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모양새와 달리 무공 자체는 끔찍한 파괴력을 내뿜는다.

혈옥수는 시전자가 가진 내공을 혈옥공이라는 특이한 내공으로 바꾼다.

그리고 혈옥공으로 바뀐 단전은 수행하지 않아도 내공이 절로 쌓이게 된다.

이 기묘한 내공은 삼단전이 통합되는 시기인 삼화취정에 들어서면 사용자의 이지를 빼앗아 피만을 갈구하는 마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백 년 전 혈옥마제가 단신으로 섬서성에서 일만 명을 죽인 일이 있었고, 백오십 년 전 강서성에서 혈수자가 일만 오천을 죽인 뒤 무림맹의 금공으로 지정되어 소림사에 봉인되었다.

“그리고 뜬금없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지.”

바로 정마대전.

마교의 혈마귀검대가 소림을 잿더미로 만들려 집합한 순간. 소림에서 한 명의 무승이 그들을 막아섰다.

이미 수백의 승려들을 시체로 만들었던 혈마귀검대는 그 무승을 가소롭게 여기며 돌진했는데.

그날 악명을 널리 떨치던 혈마귀검대 절반이 무승의 손아귀에 고혼이 되었다.

그 무승의 정체가 일명의 사제이자 나와 수석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일각.

그리고 그 당시 일각이 썼던 무공이 바로 봉인된 혈옥수였다.

당시 강호는 위급한 상황임에도 일각이 혈옥수를 쓴 것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소림은 대중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혈옥수는 부처님의 은혜로 정화되어 정의를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외다.”

이 뻔뻔한 말에 일각이 이지를 빼앗기는 순간 소림을 치겠다 벼르는 이들이 많았지만, 일각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후에도 이지를 빼앗기지 않았다.

되려 일각이 익힌 혈옥수는 제마(制魔)의 효과가 뛰어나 마인들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어찌 마공을 익히고도 이지를 빼앗기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소림은 끝내 비밀을 밝히지 않고 북해에 안전하게 도달했다.

“해령은 이걸 무기로 쓰라고 준 거겠지.”

혈옥수 비급은 상대에게 마공의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 있는 ‘전가의 보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당초 구파일방이나 백팔봉의 성세가 대단한 자들에겐 쓰이지 않는 무기.

“그리고 나 또한 일각처럼 혈옥수를 쓰고도 이지를 빼앗기지 않을 테니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혈옥수를 읽어냈다.

그리고 혈옥공의 구결을 따라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손에 쥔 혈옥수 비급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혈옥수만큼의 붉은색 불꽃이 아닌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 불꽃을 일으키는 자태.

과거 소림이 새로 명명한 성화멸마수(聖火滅魔)手)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신기하단 말이야, 마공인 혈옥수가 제마의 효과를 가지게 된다니.”

비밀은 바로 금강력과 같은 상위 기력에 있었다.

무당의 태극령과 삼청무상검의 삼청력. 금강력은 혈옥수를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손을 한번 휘젓자 대낮같이 밝았던 방 안의 빛이 삽시간에 사라진다.

종이를 재로 태울 만큼 화끈한 화력을 자랑했던 손을 만져봐도 열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소림이 오해를 각오하고 비밀을 지키려 한 이유가 있었군.”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현재로선 혈옥수를 쓰고도 의심을 받지 않을 사람은 나뿐이다.

“하지만 내공 소모가 확실히 크긴 하네.”

단전의 내기를 옥청천상력으로 변환하여 그걸 다시 혈옥수로 사용한다.

어지간한 내공을 가지지 않은 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방법.

나는 이어 구령신초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 내공 부족을 보완할 만한 기회가 또 있었으니.

“하지만 그닥 좋은 거라 하기엔 애매하지.”

구령신초는 포함된 영기가 대단한 영약이다. 도가에선 아홉 개의 줄기에 각기 신의 이름을 붙여 구선초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이 구령신초는 통째로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줄기를 따로 섭취하면 영맥이 깨지며 효험이 사라진다.

어지간한 의원들도 함부로 쓸 생각을 못 할 만큼 까다로운 영초.

한마디로 꼭 한 번에 섭취해야 하는데, 기운을 누르지 못하면 죽는 독초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애당초 무인인 유월문주가 자신이 섭취하는 대신 점창에 뇌물로 바치려 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기록상에는 먹지 말라고 적혀있는데.”

강호영약서에선 한때 강호를 질주했던 태양검제가 구령신초를 먹은 후, 한 줌의 핏물로 화했다고 적혀있다.

그 당시 태양검제의 내공이 사 갑자였다고 알려져 있는 것을 보면, 사실상 구령신초는 영약이 아니라 독약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나는 다른 희망을 품고 생사신의의 만초보록도 찾아보았는데, 생사신의가 구령신초에 대해 적어놓길.

구령신초를 발견하면 화로에 넣어 땔감으로 사용하라

그럼 반년 내내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 수 있으리라.

거참 고상하게 써놨지만,

한마디로 아무거나 함부로 주둥이에 처넣지 말라는 말.

난 쓴 표정으로 구령신초를 바라봤다.

그간 생사신의 덕분에 몇 명의 사람을 구하고 몇 번의 도움을 받았던가.

“생사신의 선생의 말이면 들어야지.”

지금 내 내공이 삼 갑자가 조금 넘는다.

용소아가 동나잇대 삼 갑자에 달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 앞서는 상황.

거기에 구령신초까지 흡수하게 된다면 과거의 용소아가 아닌 현재 용소아의 내공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선생의 말을 듣긴 들어야 하는데…….

잠시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선생, 죄송합니다. 제가 과거 마인을 많이 상대했더니 나사가 몇 개 빠졌나 봐요.”

나는 생사신의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령신초를 들었다.

어느 정도 대책은 생각해 두었다.

먹는 게 안 되면 흡수하면 될 일이고, 나는 무림맹이 지정한 십대 금공 중 사대마공으로 분류되는 흡성대법을 익히지 않았던가.

“청룡환이라면 분명 중간에 끊어낼 수 있을 테니. 너만 믿는다. 마교의 신물아.”

나는 손을 뻗어 청룡환을 가동시켰다.

손목 부분에 청록색의 빛이 발하며 용의 문양이 일어났다.

이어 청룡환의 기운이 구령신초의 기운을 감지하고 서서히 영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언제든 구령신초를 내던져야 하기에 속도를 천천히 조절했다.

하지만.

“어엇.”

내 의지와 달리 청룡환은 마치 맛난 먹잇감이라도 만난 듯 미친 듯이 영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메말랐던 구령신초가 다시금 생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죽었던 나무가 되살아나듯 신기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으나 놀랄 틈도 없이 단전을 가득 메우는 진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X 때따.’

소주천을 아무리 돌리고 대주천을 아무리 돌려도 진기의 양은 꺾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크기가 정해진 가죽 물통에 동정호의 호수를 때려 박듯 아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떼어내야 해.’

하지만 어쩐일인지 온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황.

필사의 의지로 손가락을 폈다.

뿌드득, 뿌드드득.

마치 단단한 나뭇가지처럼 굳어있던 손가락을 억지로 펴냈을 때 나는 또다시 기함했다.

‘시벌 이건 뭐야!’

구령신초는 스스로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력은 계속 공급하고 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젠장!’

단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진기가 가득 찼고, 혈맥은 과도한 진기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기괴할 정도로 두텁게 커지며 혈관들이 기괴하게 튀어나왔다.

‘죽는다…….’

청룡환을 통한 영력은 한 층 정화되긴 했지만 양 자체가 너무 많은 상황.

애당초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청룡환으로 구령신초를 흡수하려 한 것이건만, 저 빌어먹을 영약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이원진기를 시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구령신초의 영력으로 굳어버린 몸과 근육은 한 줌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덜컥.

“사형!”

그때, 한 줄기 빛과 같은 금표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들이닥쳤다.

반갑다, 역시 내 사…….

“딸꾹. 연회를 하고 있는데 대체 혼자 뭐 하고 계십니까?”

‘이 새끼 취했어……?’

한 손에 술병을 든 금표는 반쯤 감긴 눈으로 실내를 휘휘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곤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래! 어서 가서 사람들을 불러와라!’

나는 절박한 눈빛으로 금표를 보며 말했고, 금표는 내 눈빛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에도 수련에 매진하고 계셨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사형.”

그, 그거 아니야!

“참으로 현묘한 광경입니다. 이 사제는 하루하루 사형에 관한 존경을 금할 수가 없군요. 제가 다른 사람들이 절대 접근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그, 그거 아니라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사람 불러 이 새끼야!!’

하지만 금표는 내 절박한 음성을 잘못 알아듣고는 내게 엄지를 척 선보인 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끝장이다.

이대로라면 주화입마로 끝나지 않는다.

태양검제가 그랬듯 한 줌의 핏덩이로 변화할 것이 분명했다.

‘영약 먹다 죽다니 무슨 개 쪽이냐.’

나는 두고두고 ‘먹지 말란 영약 먹다 뒈진 놈’이란 호칭을 가지기 싫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금 필요한 건 몸 안에 가득 찬 진기를 빼내는 거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담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진기를 빼내야 한다.

그리고 다행히 구령신초를 먹기 전에 혈옥수부터 익혔다.

우웅.

나는 진기를 옥청천상력으로 바꾼 뒤 필사적으로 성화멸마수를 펼쳤다.

오른손에선 황금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청룡환이 흡수한 진기를 태우기 시작했다.

‘휴우.’

성화멸마수를 전력으로 펼치자 몸 안에 가득 찬 진기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워낙에 효율이 좋지 않아 광천신장처럼 자주 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성화멸마수가 내 목숨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도하는 것도 잠시.

‘뭐여 시벌.’

이젠 구령신초가 성화멸마수의 열기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성화멸마수의 기운을 흡수한 구령신초의 기운을 청룡환이 다시금 흡수한다.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이 무슨…….’

더구나 무슨 조화인지 청룡환을 통해 들어오는 진기의 기운이 성화멸마수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듯 후끈후끈하다.

진기의 누적으로 몸이 폭발할 것 같은 와중에 견딜 수 없는 열기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

‘아, 태양검제가 이러다 죽었구나.’

나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태양검제의 죽음에 대한 내막을 알게 되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제 내가 그렇게 죽을 차례니까.

부디 얼굴 형체는 남아서 장례는 치를 수 있길 바라고 있던 순간, 몸 내부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

온몸을 녹일 듯 견딜 수 없는 열기가 혈맥을 다니며 막힌 진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뚱이를 키운 열기는 혈맥과 잠맥, 세맥에 남아있던 찌꺼기들을 하나하나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막힌 진기와 탁기들이 제거되기 시작하니 뒤이어 들어오는 진기들은 움직임이 원활하다.

진기들은 용적 한계를 넘어서 상처가 난 피부와 근육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뚜둑, 뚜둑, 뚜둑.

뼈 갈리는 소리와 근육 끊어지는 소리가 연신 울리는 와중이었지만 신음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아니, 그쪽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몸을 오가는 열기가 한 치만 잘못 들어서도 백치가 되어버리거나 장기를 모두 태워버릴 테니.

‘어쩌면 살 수 있어!’

나는 몸이 부서지건 말건 열기에 온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비룡조를 조정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기의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순간이다.

임독양맥의 찌꺼기들을 모두 태웠음에도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나는 종국에 경락을 거쳐 세맥까지 열기를 보내었다.

평소엔 느끼지도 못할 세세한 곳의 고통이 엄습한다.

팔만사천 개의 모공을 하나하나 바늘로 찔러대고 신경을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이어진다.

“으…….”

어찌나 고통이 심하던지 필사적으로 외쳤을 땐 나오지 않았던 신음까지 삐져나왔다.

펑.

몸속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소리의 근원이 뭔지 인지하기도 전에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리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모공 하나하나 신경 한 줄 한 줄을 엄습하던 고통들이 사라지고, 시원한 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아…….”

입안에서 긴 한숨과 함께 뿜어지는 허연 연기.

동시에 모공을 타고 전신에서 수증기가 발산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익.

물을 끓일 때 솥에서 나는 소리가 울리며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이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음에도 나는 그저 온전히 이 편안한 상태에 푹 빠져 있었다.

온몸을 옥죄던 압박감, 신경을 태우던 열감, 모공을 찌르던 고통까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혈맥을 난폭하게 오가던 내기들이 단전에 갈무리되기 시작하고, 몸을 씻고 남은 탁기들이 개통된 모공을 향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다.

화악.

작은 바람처럼 퍼진 내기들이 내 주변을 감싸며 꽃봉오리같이 안겼다가 산산이 사라졌다.

“아…… 이게 옥예금화의 단계인가?”

오룡봉성(五龍奉聖)의 단계를 이룬 것이 얼마 되지 않았건만, 일월합벽(日月合闢)의 단계를 건너뛰고 옥예금화(玉蘂金花)의 단계까지 이뤄버린 것이다.

“…….”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해본다.

팔을 돌리고 다리를 슬쩍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몸은 마치 거대한 무게추를 벗어낸 것처럼 가볍다.

검을 들어 검강을 시전해 본다.

불과 며칠 전에 배운 검강이 마치 오랜 습관처럼 손안에 감돈다.

더구나 단전에는 사(四) 갑자라는 말도 안 되는 양의 내공이 그득 차 있다.

아직 방두칠보단 못하지만 용소아는 뛰어넘은 수준.

내공의 양이 절대적 무력의 척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공 하나라도 그 괴물 같은 용소아를 이긴 게 어딘가.

“기연이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기꺼운 마음이 솟구쳤다.

“생사신의님, 이번엔 제가 맞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왠지 생사신의께서 지금의 날 보시면 찡그린 얼굴로 주먹 감자를 날릴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지 않은가.

나도 지금부터는 돈지랄하는 동정호의 뱃놀이를 즐겨볼 참이었다.

물론 그 전에 처리해야 할 놈(?)이 하나 있었다.

“감히 사형은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데 술을 마셔?”

내가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지나갔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금표의 경지라면 나의 상태가 위험의 순간인지 수련의 상황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사형이 죽어라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데 옆에서 술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이건 절대 뒤끝이 아니다.

전통 있는 태을문의 대사형으로서 사제들이 옳은 길을 갈 길 바라는 애타는 마음일 뿐이다.

“넌 뒈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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