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72화 (172/357)

#172. <혈해를 삼키는 흑염룡(2)>

철순직과 동행하는 성모란은 이동하는 내내 말을 내뱉지 않았다.

백팔봉의 이(二) 봉을 차지하고 있는 죽현방과 합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철검문은 서로가 서로를 백안시하던 존재였기에 함께 움직이는 것이 여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무엇보다 정시 때 있었던 일이 성모란으로 하여금 철순직을 대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단순하고 명쾌한 성모란의 입장에선, 이것저것 계산이 많고 속과 겉이 달라 보이는 철순직은 꽤나 찜찜한 상대.

“후후후. 성 소저는 제가 싫으신가 보군요.”

그런 성모란을 간파한 듯 철순직도 성모란의 태도를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네?”

성모란이 짐짓 무슨 소리냐는 듯 이야기했지만 철순직은 그마저도 우습다는 듯 여유만만인 표정.

재수 없어.

“아니면 성 소저는 제가 못 미더우신 것 같군요.”

“당최 무슨 이야길 하는 건지…….”

“항시 제 뒤에서 쫓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제게 뒤를 보이기 싫을 정도로 믿음이 안 가시는 거 아닙니까?”

“…….”

그제야 자신이 계속 철순직과 12봉성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모란이지만, 딱히 그걸 들켰다 해서 당황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기억이 워낙 안 좋아서 말이지요.”

성모란의 날카로운 말에 철순직이 끌끌 웃었다.

“정시의 일은 정시에 두는 것이 강호의 불문율 아니겠습니까.”

“결과는 잊되 과정은 기억하는 것은 무인의 본능이잖아요.”

“하긴 그렇지요.”

네가 나를 믿든 의심하든 크게 상관 안 한다는 태도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성모란이었다.

“이번엔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죠?”

“뭐가 말입니까?”

“12봉성이 어째서 진 공자를 따라왔냐는 거예요.”

“학관 대표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학관생의 본분으로서 당연한 일 아닙니까.”

뻔뻔한 대답에 성모란의 눈썹이 치켜떠진다.

“그래서 멸혼진 행사에 불참하고 대신 사람을 시켜 조사하려고 했나요?”

“…….”

처음으로 철순직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요? 정도회가 먼저 나선 것뿐이지, 그다음엔 백도회와 12봉성까지 똑같은 짓을 하려 했잖아요?”

“알고 계셨군요.”

철순직은 어깨를 으쓱할 뿐.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성모란이 볼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들은 정말이지…… 뻔뻔하기 그지없군요.”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도회와 백도회만 멸혼진에 대해 알아내게 되면 12봉성에 큰 피해가 가니까요.”

성모란이 근본적인 의문을 끄집어내었다.

“애당초 진 공자를 따를 순 없는 건가요? 12봉성도 결국 백팔봉 중 하나일 뿐이잖아요.”

철순직이 어린아이 보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기존의 체계가 무너지면, 혼란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진 공자는 그런 체계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고요.”

“내가 본 진 공자와 그쪽이 본 진 공자가 서로 다른 것 같네요.”

철순직이 다르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요?”

“자신과 친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학관 대표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천에 와 있죠. 게다가 승호당까지 동원해서 말입니다.”

“위험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철순직이 품에서 전서 하나를 꺼내어 성모란에게 건넸다.

“사천에서 일어난 일을 개방이 조사한 자료입니다. 정시 때 발생한 단체 사망 사건은 치열한 입시 과정으로 인해 서로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습격을 받았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조사 결과가 확실히 나와 있습니다.”

성모란은 전서를 든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개방의 결론은, 그리 강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장로회의 행사도 이름만 거창할 뿐이지 외유성이 강한 것에 불과하고요. 진 대표가 말한 ‘위험’이란 건 실재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

철순직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성모란은 그 얼굴이 너무도 얄미워서 당장에라도 주먹을 박아넣어 주면 소원이 없겠단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한 것이든, 아니면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떤 것이든 대표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죠.”

12봉성의 인원들 사이에서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기에 체계가 필요한 겁니다. 홀로 뛰어난 인간은 유능하든 무능하든 결국 문제를 발생시키니까요.”

“그래서 진 공자를 대표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이곳까지 쫓아온 건가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왔다고 하죠.”

“역시나 애초부터 진 공자의 말을 들을 생각 따윈 없었군요.”

“잘못된 것을 따를 이유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성모란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철순직은 여기서 대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성 소저는 진 대표를 완전하게 믿는가 보군요. 그렇게 진 대표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까?”

“아니오.”

“오호, 그건 좀 의외로…….”

“차라리, 잘 모른다는 쪽이 맞겠죠. 그의 마음이 어떤지도 잘 모르니까.”

“네?”

“하지만, 그가 ‘위험하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이 진짜 ‘위험한’ 순간이란 것쯤은 알아요.”

성모란은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령고원에서도 그랬고, 정시 때도 그랬고, 멸혼진 때도 그랬어요. 그와 함께 하며, 목숨이 경각에 달릴 만큼 위험한 순간들을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위험’하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큰 위험이 도래했죠.”

성모란은 자신을 바라보는 철순직과 12봉성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답답한 거예요. 그가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당신들이 제대로 믿지 않으니까. 아니, 믿기는커녕 더욱 의심하며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니까.”

철순직은 성모란의 의견에 반대하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위험을 판단하니 그런 겁니다. 애당초 죽현방과 태을문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겐 ‘위험’일지라도 우리에겐 ‘위험’이 아닌 경우가 많죠.”

성모란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설득해 봐야 입만 아프다.

지금은 진소운이 말한 대로 ‘위험’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사람들을 멈춰 세우는 것이 더 급한 상황이었으니까.

철순직은 멈추지 않고 제 의견을 펼쳐냈다.

“진 대표는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

“다물어요!”

성모란의 외침에 그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단절했다는 건 자신의 논리가 이겼다는 방증이었으니.

하지만 성모란은 패자의 표정 대신 심각한 얼굴을 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길 봐요.”

그곳에 달빛에 드리워진 불온한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

“…….”

철순직은 물론이고 12봉성들의 신법도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경계하세요.”

성모란이 12봉성에게 말한 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체다…….’

어둠이 사위를 가리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모란은 재빨리 품 안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튀겼다.

찰칵,

찰칵.

작은 부싯돌이 떨어질 때마다 사위가 잠시 드러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12봉성의 입가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학관생들 아니야?”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철순직이 성모란의 근처로 다가왔다.

성모란은 다시금 부싯돌을 튀겨 사체를 보여주었다.

“청성파의 제자와 청성의 속가문파인 향장문의 제자예요.”

이상한 일이다, 본래 자신들이 만나야 할 이(二)조는 화산파와 공동파, 그리고 속가문파들의 조였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마주한 것은 삼(三)조인 청성파와 속가문파들이었다.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이 진소운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심하게 틀어졌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시체를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급한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대답 없는 성모란을 향해 철순직이 물었다.

“성 소저?”

성모란이 읇조리듯 말했다.

“죽현방은…… 태을문보다 강하다 했죠?”

성모란이 바닥에 널린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청성파와 그 속가 문파들에 비교하면 어떤가요?”

“그게 무슨?”

12봉성도 경계를 이어가며 시체를 확인한다.

“학관생이 맞아.”

“청관문의 제자야.”

“청엽방의 제자도 있어.”

여기저기서 사체의 신원들이 밝혀진다.

“진 공자가 말한 ‘위험’이 철 공자에겐 별것 아닌가요?”

“…….”

“난 진 공자가 말한 대로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철 공자는 어찌할 거죠? 여전히 진 공자의 말을 듣기 싫은가요?”

철순직은 대답 대신 핏기가 가신 얼굴로 시체들을 다시금 보았다.

철순직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앞서가시죠. 따르겠습니다.”

#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공간을 바라보며 진소운이 말했다.

“절대 등롱을 부수지 마라.”

“뭐?”

남화성이 대답하기 전, 진소운이 먼저 움직였다.

섬전 같이 쏘아져 나간 진소운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선 격한 쇳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채채채채챙.

쇠와 쇠가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공기가 터져 나가는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펑.

어둠 속에선 황금빛 광채가 요동쳤고, 그것은 마치 폭풍이 쏟아지기 전 번개를 머금은 구름이 요동치는 모습과 같았다.

“대체 무슨…….”

콰르르르르르르릉.

검은 운무 속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인간의 그림자.

거인의 그림자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쓰러지고 다시 맞붙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지잉──────

그 순간 머리를 찌르는 듯한 괴로움에 남화성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주저앉았던 남화성은 갑자기 엄습하는 살기에 화들짝 놀라며 후방을 향해 권기를 폭사시켰다.

퍼퍼퍼퍼퍼펑!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어둠 속에서 타격이 느껴지자 가슴 한편에 서늘함이 감돌았다.

‘조,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다.’

명백한 살기를 담은 날카로운 검의 촉감.

수업을 위한 비무 때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본격적인 살의를 담은 행동.

남화성은 오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어둠 속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거기냐!!!”

일부러 두려움을 뿌리치려는 듯 일갈과 함께 몸을 날린 남화성.

하지만 그는 복부에 가해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커헉, 우욱.”

단 일합의 경합.

그것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둠 속의 상대는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다.

남화성은 곧장 삼원문의 최후 절초인 녹각광명권을 준비했다.

그의 두 주먹에선 녹색의 광채가 번뜩이며 어둠 속을 비추고, 힐끗힐끗 그 속에 숨겨진 인영을 드리웠다.

“하압!”

반딧불의 꼬리처럼 녹색의 궤적을 남기며 쏘아지는 남화성의 녹각광명권은, 어둠의 일 점에 닿는 순간 사방으로 녹빛을 퍼트리며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한 호흡에 서른 번에 달하는 권격을 내질렀지만, 놀랍게도 피륙이 튀는 느낌은 없었다.

마치 물속에서 주먹을 휘두른 듯, 자신의 손과 발이 평소보다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악!”

오십 년에 달하는 내공 전부를 쏟아붓자, 발광하는 녹각광명권의 빛 덕분에 어둠이 걷히고 상대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남화성의 눈가가 격하게 떨렸다.

‘대체, 이게 몇 명이야!’

어둠이 걷어진 자리에 위치한 인원만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집단.

어둠을 걷어낸다면 당최 몇이나 더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 딴생각을 하는 사이, 어둠 속에선 셀 수 없을 정도의 수없이 많은 검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권기를 폭풍같이 쏟아냈지만, 모두를 막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사이 숨어 있는 암경에 대항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퍼퍼퍼퍼펑!

암경에 때려 맞은 남화성의 몸이 대포에 쏘아진 것처럼 날아갔다.

콰직.

등에서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렸지만,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었던 남화성이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다시금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신형을 감춘 상태.

“자신이 있다면 나와라! 정정당당하게 붙자!”

남화성의 말에 반응했음인가?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움직이는 형체가 눈에 들어왔는데.

츄르르륵.

등장한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남화성은 고개를 수직으로 세워야 했다.

“……!!!”

그 ‘존재’를 본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섯다.

“처, 청린독각규룡?”

그 몸체가 너무도 대단히 크고 육중하여 용(龍)이라 불리는 마물.

평범한 사람, 아니 강호 전체를 가로지르는 무사라 할지라도 보기 어려운 거대한 뱀이 자신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본능적 두려움에 뒷걸음질하던 남화성이 등 뒤에서 들리는 또 다른 소리에 목이 부러질 듯 고개를 돌렸다.

스엑, 스엑, 스엑.

집채만 한 크기의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

“이, 인면혈주?”

사람과 비슷한 얼굴에 네 개의 송곳니를 가진 끔찍한 마물이 남화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으, 으어억!”

작전이고 진소운에 대한 조사이고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죽는다! 죽어!’

남화성이 녹각풍운종을 펼쳐 필사적으로 장내를 벗어나려는 순간.

청린독각규룡이 거대한 몸체를 귀신같이 움직여 남화성의 몸을 한 번에 말아 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남화성의 신형이 허공에 들려 올려지자, 인면혈주만 있는 줄 알았던 공간에 각종 마물들이 남화성의 고기 맛을 보겠다고 서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벌, 난 근육밖에 없어서 맛이 없다고!”

주먹을 휘두르고 권기를 쏘아보지만, 놈들은 마치 기별도 오지 않다는 듯 무시하고 자신을 향해 그 끔찍한 아가리를 쩍쩍 벌렸다.

-남화성!

때마침 머릿속을 울리는 웅혼한 음성.

-부적을 태워라.

평소엔 그렇게도 듣기 싫었던 음성.

그러나 구원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남화성은 손에 쥐고 있던 부적을 태웠다.

화르륵.

작은 불씨에도 금방 불이 붙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부적과 함께, 허공에서 천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황금색 검을 든 존재가 공간 사이로 뛰어들었다.

“고개 숙여 남화성!”

“으아아아아악!”

황금빛 검을 가진 존재는 벼락같이 내려앉으며 청린독각규룡을 반으로 잘라낸다.

허공에 떠 있던 남화성의 신형이 똑-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충격이 상당했음에도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남화성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진소운이 그를 돌아보며 일갈했다.

“빌어먹을 자식아! 등롱을 부수지 말라 했잖아!”

“아, 안 부쉈어!”

“그럼 시혈사령혼세진이 왜 발동한 건데?”

“시, 시혈 뭐?”

“환술진이다! 파사(破邪)와 제령(制靈)은 배운 적 있냐?”

“하, 항마진언주를…….”

“빌어먹을 놈들, 항마진언주가 전가의 보도지. 어디 그걸로 마교도 상대해 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는 진소운.

남화성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냐?”

“뭘 어떻게 해. 네놈의 정심이 이 환술을 견딜 만한 것도 아닌데.”

“그럼 나, 나는.”

진소운이 검을 고쳐 잡았다.

“……찢고 나가야지.”

진소운의 말에 남화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방엔 마물들이 득실대로, 어디가 출구인지, 입구인지도 모르겠는 이곳에서 빠져나간다고?

“……려 인마!”

“어, 어?”

그때 남화성의 볼을 화끈하게 때리는 따귀가 날아들었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여기서 죽고 싶냐?”

“……아, 아니!”

“전쟁터에선 지휘관의 목소리만 들어라. 네놈의 알량한 머리를 믿지 말고! 알겠냐!”

“아, 알았어…….”

진소운이 품에서 복마부 두 장을 남화성에게 쥐여주었다.

“살아남았으니 두 장을 주마. 또 한 번 살아남으면 세 장을 주지.”

“고, 고맙다.”

“지금부터 놈들의 환술진을 탈출한다. 다른 곳으로 시선 돌리지 말고 나한테만 바짝 붙어 따라와라. 알겠냐?”

“네, 넷!”

“가자!”

진소운은 사방을 틀어 막고 선 마물들을 향해 지체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검엔 황금빛 광채가 어려있고, 어느샌가 그의 왼손엔 황금빛 기다란 줄이 뻗어 나와 있었다.

거대한 인면혈주가 끔찍한 아가리를 벌리며 진소운을 삼키려 하자, 진소운이 검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금빛 광채를 내뿜는 줄이 쏟아지면, 그 거대한 마물이 꽁꽁 묶여 꼼짝하지 못하고, 황금빛 검이 휘둘러지면 그 거대한 마물이 두 동강 세 동강 난다.

진소운은 단박에 마물들을 처리하고 또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퍼퍼퍼퍼펑.

퍼퍼퍼퍼퍼퍼펑.

당장 눈앞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 연속되었지만, 남화성은 진소운이 외치는 대로 움직였다.

“권기를 쏴!”

“이 새끼야! 내공 아껴서 뭐 할 건데? 죽은 다음에 지옥에 가져갈 거냐?”

“삼원문의 절기가 이것밖에 안 돼?”

“때려, 때려! 환술진은 내구력이 약하다. 때리고 또 때리면 결국 깨진다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방을 옥죄던 기운이 사뭇 연해진다.

숨쉬기가 조금씩 편해지고, 어쩐지 마물들의 크기도 작아지는 것 같았다.

‘전쟁터에선 지휘관의 목소리만 믿어라, 전쟁터에선 지휘관의 목소리만 믿어라.’

남화성은 진소운이 했던 말을 미친 듯이 외고, 또 되며 죽어라 발을 놀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 사방에 마물들과 함께 진소운이 사라졌다.

“지, 진소운! 진소운! 어디 간 거냐!”

남화성이 어미를 찾는 병아리처럼 진소운을 부르던 순간.

누군가 남화성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허헙!”

기겁한 남화성이 발악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나다! 바둥대지 마! 무거우니까!”

찌지직.

커다란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공간이 일순간 바뀌며, 청명한 달빛이 드러났다.

“허억, 허억, 허억. 이, 이게 무슨.”

바닥에 느껴지는 흙의 촉감, 공기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진소운이 말한 환술진에서 벗어나 실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지, 진소운…….”

환술진에서 벗어났다는 환희의 감정 전에 의문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자신은 12봉성의 소속이고, 진소운을 감시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진소운은 그 환술진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다.

“고, 고맙다 진소운…….”

하지만 대답은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닥치고 일어나기나 해. 이제 본편 시작이니까.”

“으, 응?”

진소운은 어느새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방엔 환술진 안에서 보았던 혈의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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