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78화 (178/357)

#178. <혈해를 삼키는 흑염룡(8)>

“시부럴…… 저게 철강시라고?”

남화성이 얼이 빠진 얼굴로 물었다.

나는 기가 찬 심정으로 말한다.

“딱 보면 모르냐?”

관절의 가동이 어색하고, 피부는 돌처럼 단단하다.

천하를 혼란케 만들었던 마도의 강시들 중 가장 저급한 것이지만, 이마저도 세상에 나오면 무인에게 악몽을 선사한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과거 정마대전에서 무인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이 바로 저 철강시였으니까.

남화성이 손을 달달 떨면서도 소리쳤다.

“저게 뭔지 바로 알아차리는 네가 이상한 거지! 나, 나는 난생처음 본다고!”

“암튼 노력했네.”

녀석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내가 부탁한 것 이상으로 일을 처리해 줬으니.

어지간히 복마부가 가지고 싶었나 보다.

“잘했다. 약속대로 복마부 다섯 장을 주마.”

“젠장……! 필요 없어!”

하여간에 솔직하지 못한 놈.

철순직 같은 놈이랑 같이 다니니 늘 저렇게 음흉하지.

나는 팽팽하게 당겨진 비룡조를 더욱 당겼다.

철강시는 벗어나려 버둥대다가 나를 보곤 미친 듯이 달려든다.

나는 녀석을 곧장 뛰어넘어 비룡조를 감는 동시에 철강시의 몸을 붕 띄웠다.

퍼걱. 쾅!

땅에 머리부터 처박힌 철강시가 미친 듯이 버둥댄다.

푸스슥, 푸스슥.

주변의 흙과 자갈들을 진흙처럼 쉽사리 파헤치고 나와 그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발걸음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콩. 콩. 콩. 콩.

전생에서 하급 무사들에게 철강시가 악몽이었듯, 내게도 철강시란 존재는 악몽 그 자체였다.

이지라는 것이 사라지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철강시는, 화살이 눈에 박히건 검기에 머리가 쪼개지건 두려움 없이 적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무심함은 상대하는 이에게 악몽이 되는 것이고.

“하지만 그것도 이젠 그저 다 전생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상념을 털어내며, 태을팔만신보를 내디뎌 철강시를 향해 달려갔다.

파파파팍.

삽시간에 사방팔방 환영을 남기며 움직이는 보법을 마주한 철강시는 허공을 향해 속절없이 날카로운 손톱만 휘두른다.

놈의 뒤를 잡은 나는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녀석의 뒤통수를 냅다 발로 찼다.

퍽!

쿵.

단단한 돌덩이끼리 서로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철강시의 두 팔이 땅속 깊이 박혔다.

“저기 철강시를 때려잡으려는 멍청이가 있네.”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던 남화성이 복수하려는 듯 이죽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본래 뱁새는 대붕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꿈틀꿈틀.

철강시가 땅속 깊숙이 박힌 제 두 팔을 빼내려 몸을 움직이려 할 때.

나는 녀석의 등을 밟고 흑룡검을 대어 나무를 패는 자세를 취했다.

그때, 입만 산 뱁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멍청아! 철강시는 검기로도 피부가 안 잘린다고 알려져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고 덜덜 떨던 놈이 버럭버럭 소리는 잘만 지르네.

난 남화성을 쏘아보며 말했다.

“너 이제 괜찮지? 와서 도와라.”

“……쿨럭, 내, 내상이…….”

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상이 도지는데?

남화성의 말대로 철강시의 피부는 어지간한 철보다 단단하다.

그 피부를 자르려면 최소 만년한철 수준의 강도를 가진 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 내가 선물 받은 흑룡검이 금강무괴철로 만들어졌단 말이지.”

나는 흑룡검에 검강을 둘렀다.

기침을 하던 남화성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네, 네놈 따위가 검강을?”

남화성 너 이 새끼, 이제 안 아픈 거 확실하지?

나는 다시금 철강시에게 집중해, 전력으로 검을 내리쳤다.

떵.

거대한 범종을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이 손아귀를 찌르르 울렸다.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손을 보호했음에도 뼈를 타고 충격이 전해져 왔다.

이런 수고가 헛짓거리가 아니었는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철강시가 격하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땅속에 있던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사방 일대 일(一)장에 달하는 공간의 흙더미들을 폭발시켰다.

퍼펑!

흙가죽이 뒤집히고, 땅속 깊이 묻혀있던 흙더미가 사방으로 날린다.

내가 폭발의 여파를 피해 몸을 날려 남화성의 옆에 내려앉자, 그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쟤 좀, 열 받은 거 아니냐?”

“목이 한 마디 잘려나갔는데 열 안 받겠냐?”

“하, 한 마디나 잘려나갔다고……?”

남화성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천하독행신을 밟아 철강시의 손톱을 피해 재빨리 놈을 지나친 후, 비룡조로 녀석의 목을 다시금 묶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천잠사에 내공을 끌어올려 불어넣자, 천잠사가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잘려나간 목덜미를 보호하려 버둥거리던 철강시의 신형이, 나보다 더 빠르게 쏘아져 나와 내 옆을 지나치며 절벽 벽면에 처박혔다.

쿠쿵.

나는 즉시 흑룡검에 기를 불어넣어 검기를 마구 쏘아냈다.

이럴 때 쓰려고 그렇게 영약을 꾸역꾸역 챙겨 먹었던 거지.

콰쾅 콰콰쾅. 콰콰콰콰쾅.

호쾌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바위며 흙더미가 사방으로 날린다.

전생에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놈이, 마치 움직이는 과녁처럼 무력해진 꼴을 보니 단전의 내공이 쭉쭉 빠져도 되려 시원한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퍼드득.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에서 망가진 인형처럼 덜컥거리며 일어나는 철강시.

그사이 상처가 더 벌어졌는지 목이 한 치나 더 분리되어 있었다.

그때.

“저, 저기…….”

남화성이 기겁하며 손가락질을 한다.

나는 고개를 저어가며 녀석을 비웃어 주었다.

“아직도 모르겠냐, 철강시는…….”

“아니! 저, 저기 저놈들이 달려오고 있다고 인마!”

“…….”

철강시가 부서질까 걱정한 건지 혈교의 무사들이 죽어라 달려오고 있었다.

“쯧. ……알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시부럴! 신경도 안 쓰고 있었잖아!”

뱁새가 눈치는 또 빠르네.

나는 남화성의 시선을 무시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일각 학관생.”

멍하니 이편을 바라보던 일각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나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저들을 맡겨도 되겠지요?”

일각은 내가 가리킨 방향을 한번 본 후 고개를 끄덕인다.

“……맡겨 주시지요. 시주.”

“시주 아니라니까.”

스님 대신 학관생이라 불러서 반항하는 건가?

내가 불만을 터트리건 말건 일각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혈교의 무사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금강력을 다 소진하긴 했어도, 소림은 소림.

내가 철강시를 처리할 동안 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벌어줄 것이다.

‘그럼 나의 상대는…….’

크르르르.

일전의 무심함은 어디 갔는지, 상처 입은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철강시.

그래, 네놈도 이 정도로 당하고 나면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

철강시는 이제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종종걸음 대신, 화살처럼 쏘아지듯 움직여 단박에 거리를 좁혀온다.

펑!

쏜살같이 날아드는 놈을 향해 연화(蓮花)의 수법을 펼쳐 놈의 방향을 튼다.

나를 지나쳐 단단한 암석지대로 돌진하는 철강시.

콰콰쾅.

바위를 두부처럼 으깨버린 녀석이 무너지는 돌덩이를 마구 헤치고 나와 다시금 몸을 웅크린다.

녀석에겐 오직 나를 죽이겠다는 명백한 목적 하나만이 뚜렷하게 남은 듯 보였다.

“그래, 네놈의 그 집요함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내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놈으로 인해 스러져 가고, 동료를 희생해야 했던 소정대 인원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때리고,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죽지 않는 네놈을 우린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우린 당연하게 네놈 앞에서 희생될 사람을 고르고.

우린 당연하게 네놈 앞에서 도망쳤다.

네놈은 마교의 가장 악랄한 상징체(象徵體).

“네놈의 그 무심함이 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인간을 재료로 만들어진 마물(魔物).

그 악랄한 목적의식이 한 줌의 동정도 일지 않게 만든다.

“와라!”

펑!

바닥을 박차 화살처럼 쏘아지는 철강시.

나는 동시에 녀석을 향해 몸을 쏘았다.

캬오오오!

검은 피가 흐르는 이빨을 드러내는 놈을 향해 흑룡검을 내지른다.

챙!

흑룡검과 녀석의 송곳니가 부딪치며 쇳소리를 낸다.

내가 찌른 흑룡검을 치악력 하나만으로 버티고 선 괴물.

그 와중에 놈은 검은 손톱으로 나를 짓이기려 한다.

촤악 촤악!

검은 무복이 찢기며 손톱이 파고들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검은 무복 안에 있는 왕가장의 비전인 천잠보의가 강시의 손톱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테니까.

“네놈에게 이지가 있었다면 당장 이 검부터 빼려 했겠지.”

흑룡검의 검극에 내력이 모이며 검기를 만든다.

황금빛의 검기가 어린 흑룡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검강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끄그그그극.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철강시가 머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늦었어.”

나는 내력을 계속 밀어넣어 검강의 크기를 더욱 키웠다.

푸걱!

녀석의 입천장을 뚫고 뒤통수까지 꿰뚫은 검강이 환한 빛을 밝힌다.

“크아아아아악!”

전생에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녀석을 밀어내고 또 밀어내었다.

한 치도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녀석을 밀어붙였다.

철강시는 손을 바둥거리며 계속 뒤로 밀려나다 종국에 바위에 부딪힌다.

끄그그극.

어쩐지 철강시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네놈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느냐?”

캬오오오오!

다시금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철강시.

“그래. 다행이다!”

나는 태을진경을 전력으로 끌어올려 철강시를 반으로 갈랐다.

쩌어억…….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검은 실선이 그어진 녀석이 여전히 손톱을 휘두르려 한다.

카오오…….

그러다 검은 피를 폭포수처럼 흘리며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쿠쿵.

놈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절반으로 잘려나간 철강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의 끔찍한 철강시의 사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소정대 놈들이 생각이 났다.

“……훗. 끔찍한 마물(魔物)을 보니 끔찍한 네놈들이 생각났나 보다.”

괜한 그리움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

일각을 도와 진소운에게 다가가는 혈의인들을 처리하던 모용재화는 진소운의 기합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아아악!”

철강시와 접전을 벌이는 진소운은 철강시의 손톱도 피하지 않은 채, 집요하게 철강시를 처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저, 저러다 시독에라도 중독된다면…….’

당장 달려가서 돕고 싶었지만, 지금 진소운에겐 자신은 도움이 아닌 짐짝에 불과한 존재였다.

지금도 그렇다.

진소운이 보내준 화살을 가지고 벽력시 흉내를 내곤 있지만, 상황을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실제 벽력시를 완성했다면 저 혈의인들이 다시금 접근할 엄두를 내기라도 했을까.

모용재화는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을 털어내며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퉁. 쐐액-

퍼펑.

화살이 폭발하며 혈의인들에 대량의 피해를 입힌다.

그리고 그 뒤로 일각이 혈의인들을 휘저으며 접근을 불허했다.

하지만, 상념은 털어내려 해도 쉬이 털어지지 않는다.

‘벽력시만 완성했다면……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형님께서 저리 처절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을 구하겠다고 이 사지를 달려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무거워진다.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혈의인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더 이상 일각을 향해 접근하지도 않는다.

‘왜지?’

혈의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황금빛 검강을 품은 진소운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바라보니, 반으로 잘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철강시가 있었다.

‘세상에…….’

결국 형님은 홀로 철강시마저 잡아버린 것이다.

“재화 공자! 저들이 물러가고 있어요!”

은설란의 기쁜 목소리에도 모용재화는 기꺼이 기뻐하지 못했다.

왠지 진소운에게 죄스러워서, 진소운의 기대에 결국 미치지 못해서.

“진 오라버니!”

혈의인들이 본격적으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몸을 숨기고 섰던 은설란이 달려가 진소운에게 안겼다.

은설란과 짧은 해후를 마친 진소운은 일각과 남화성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

모용재화는 발을 떼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에게 결국 접근하지 못했다.

그때.

“모용재화!”

진소운이 모용재화를 불렀다.

“혀, 형님……!”

“너 제정신이냐!”

성큼성큼 화난 듯 다가오는 진소운의 모습에 모용재화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갑자기 제 손을 향해 뻗어오는 진소운의 손을 피하지는 못했다.

“설마, 이렇게 찢어진 손을 얼려가며 계속 활을 쏜 것이냐? 세상에!”

진소운의 시선은 모용재화의 오른 손가락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상처를 살피던 진소운이 혀를 찬다.

“쯧, 하긴 철궁을 쏘는 건 처음일 테니, 적응하려면 한참 걸리겠지.”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무복을 북 찢어 금창약을 바르고 상처를 감싸준다.

“그래도 내가 보낸 화살로 용케 버텨냈구나.”

“……네?”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린 지…… 너는 모를 거다.”

불안전한 궁술로 조금 활약했다고 그마저도 칭찬을 해주다니.

모용재화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모용재화의 머리를 진소운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수고했다.”

“…….”

손이 아리고, 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어쩐지 기운이 채워진 기분이었다.

“돌아가자.”

진소운의 그 한마디가 모용재화를 괜찮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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