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81화 (181/357)

#181. <다시 쓰는 사천혈사>

퉁 쐐액──

날카로운 화살이 창공을 가른다.

하지만 목표한 목적지에 닿기는커녕, 방향마저 틀어진 채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다가 그대로 폭발한다.

퍽!

화살촉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터져나갔지만, 그에 피해 입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장난하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선 진소운의 목소리가 불량해진다.

화살을 날렸던 모용재화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백 장은커녕 백오십 장에도 닿지 못했다 녀석아!”

모용재화로선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

애당초 화살은 백 장에만 다다라도 대단하다 평가받는다.

근데 지금은 백 장을 넘어서 백이십 장까지 날아갔다.

학관에서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궁술 선생이 보아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건만, 진소운은 턱도 없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형님…… 이건 아무리 봐도 비상식적입니다. 어떤 궁수도 백오십 장은커녕…….”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아! 그럼 내가 이상한 약을 먹어서 헛것을 본 건가?”

“……아니, 형님 그게 아니라.”

“아니면 먹어야 할 약을 먹어서 헛것을 본 거냐?”

“…….”

눈썹이 삐뚤어지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 진소운.

물론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 언제나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인간이 이백 장 너머의 적을 쏘냐고…….’

천하의 파검도 무공의 경지에 대해 이리 비이성적이지 않았다.

헌데 진소운은 비이성적인 것을 넘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당연한 듯 내뱉고 있으니, 모용재화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

“그, 그럼 형님이 한번 보여주십시오.”

“못 보여주는데?”

“네?”

“못 보여준다고.”

“…….”

아니, 왜 또 그건 그리 당당하게 말하는데…….

가끔 금표와 은호가 진소운을 흠칫 두들겨 패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때는 왜 이리 훌륭한 형님에게 그런 불경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아 놔! 진짜!’

진소운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시 쏴봐…….”

“그…… 운기 좀 하고 쏘면 안 되겠습니까?”

진소운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그 많은 내공을 다 썼다고?”

“……저, 그렇게 많지 않은…….”

“너 화후의 내단을 먹지 않았더냐? 그런데 내공이 부족하다고?”

“…….”

“거기다 모용세가 내에서 판판이 놀며 때마다 영약을 보약처럼 먹었을 것 아니냐? 그런데 내공이 부족하다고?”

“……혀, 형님.”

“더불어 파검님께서 어렸을 때 벌모세수도 해줬을 테지? 그런데 내공이 부족하다고?”

“…….”

아…… 진짜 한 대만 때려줄 수 있으면…….

전력으로 내공을 꽝꽝 눌러 담아 화살을 쏴도 백이십 장의 거리를 날아가는 것이 다다.

헌데 진소운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니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가까이 많은 내공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이런 방식의 무공 운용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을 터.

“그 사람은 화후의 내단도 먹지 않았지만, 삼백 장 거리에 있는 적들에게 벽력시를 쾅쾅 쏴 재꼈다. 적들은 그 사람의 위치를 가늠조차 못 하고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못 했지.”

“아니……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요.”

“……너 지금 반항하냐?”

진소운이 불량한 표정으로 모용재화를 노려보자, 모용재화는 얼른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였다.

어째 할아버지인 파검보다 무섭기로 따지면 더 무서운 건지 이해 가지 않는 모용재화였다.

“백 장의 거리에서 쏘게 되면, 결국 어디에서 쏘는지 발각된다. 금방 발각되면 계속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지.”

진소운은 과거를 회상하듯 말을 이었다.

“그럼 적도 너라는 표적을 마주하기에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추격대를 보내어 너만 잡으면 끝이란 생각을 하겠지.”

“…….”

“매번 홀로 적진에서 그렇게 도망 다닐 자신이 있느냐? 더구나 이번 적은 철강시인데?”

“……아니요.”

“그러니 멀리 쏘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너는 정확할 필요도 없지 않으냐. 보통 궁수의 임무보다 어려운 난이도도 아닌데 왜 못 하는 것이지?! 아직 고생을 덜 해봐서 그런가?”

이쯤 되자 모용재화는 은호가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

진소운의 입은 쉬지 않았다.

“네가 이백 장, 나아가 삼백 장 거리의 상대를 쏠 수 있었다면, 그 혈의인들이 감히 철강시를 풀어놓을 생각을 했었겠느냐?”

“…….”

“접근 자체를 불가하게 만든다. 혼란을 야기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이 달리 천벌이겠느냐? 그런 천벌 아래서 적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느냐?”

“……도망입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넌 한 명을 집요하게 상대할 필요 없다. 그건 다른 고수가 하면 되고. 네가 해야 할 일은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다. 오직 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 성공이란 말이지.”

이쯤 되자 모용재화도 슬슬 오기가 치솟아 올랐다.

진소운의 말대로 철강시 앞에서 무력해졌을 때, 얼마나 강함을 바랐던가.

모용재화는 생의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공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백 이십 장 이상은 쏘지 못한다. 그럼 형님의 말대로 이백 장, 삼백 장을 쏘려면 어찌해야 하지?’

이는 자연이 정한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없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몰아(沒我)의 지경에 빠진 모용재화의 귓속으로 진소운의 차분한 음성이 스며들었다.

“한계를 짓지 마라.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 한계를 벗어났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호랑이와 대적할 수 없고, 사슴보다 빠르게 달릴 수 없다. 강철보다 단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는 이미 인간이 모두 극복한 것이 아니더냐.”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렇기에 허공에서 오래 떠 있을 수 있는 신법과 비행술을 발전시켰다.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그렇기에 물속에서 오래 참을 수 있는 수공을 만들었다.

‘내공으론 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눈을 뜬 모용재화가 강철궁의 시위를 당긴다.

종전의 강철궁이 부러질 만큼 강하게 당기지도 않았다.

좀 전처럼 궁의 각을 내리지도 않았다.

마치 하늘을 쏘듯 높이 치켜들 뿐.

그리고.

퉁. 쐐액──

가벼운 탄성음과 함께 화살이 쏘아지는 순간.

펑.

화살의 뒤편에서 폭발음이 일어나며,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

모용재화는 궁을 내리고 안력을 돋우어 자신이 쏜 화살을 찾았다.

오십 장…….

백 장…….

백이십 장을 넘었음에도 화살의 속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삽십 장…….

백오십 장…….

백팔십 장…….

이윽고

이백 장…….

퍽──

떨어지던 화살이 작은 탄성음과 함께 폭발한다.

너무 먼 거리라 비명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막사 안에서 혈의인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성공이었다.

“허…….”

“거 봐라. 가능하지 않으냐.”

진소운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모용재화를 보고 있었다.

모용재화는 제가 쏘아올린 화살보다, 눈앞의 사내에 더욱 경탄했다.

“형님!”

“발사 순간의 폭발 범위를 잘 선정해야 한다. 그래야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모용재화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형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내공이 안 되면 무공을 쓴다.

본래 화살촉에 담았던 건곤파섬검의 힘을 화살촉 끝에도 담았다.

이 말도 안 되는 무공의 운용 방식을, 진소운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진소운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느냐?”

“…….”

분명 대단하지만, 막상 미소 짓는 저 얼굴을 보자 조금은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그럼…… 진즉 이야기해 주셨으면…….”

그 쓸데없는 갈굼은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진소운은 무슨 소리냐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그렇게 하면 네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을 터. 차후 내가 없을 때에도 스스로 발전해야 함을 생각해 보면, 이런 자잘한 경험들이 모여 네게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

맞다…….

분명 맞는 말이다.

확실히 옳은 말이긴 한데…….

“네 스스로의 발전할 수 있도록 미리 앞날까지 생각해 주다니. 이런 형님을 만나 천만다행이라 생각하지? 음화화화화.”

“…….”

저 어깨를 활짝 펴고 웃는 모습이 왜 이리 얄미운 거지?

소운을 무척 존경하면서도 소운을 한 대라도 때려보고 싶어 죽어라 검진을 연습하던 금표와 은호의 마음이, 다시금 이해가 간다.

정말, 이해가 간다.

모용재화는 어째서 자신의 분노가 풀리지 않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은호야…… 다시 한번 미안하다.’

은호를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용재화였다.

#

모용재화의 공격을 받은 혈교놈들은 다시금 부산하게 부대를 정비하여 부대의 위치를 더 뒤로 물렸다.

나는 모용재화와 은밀하게 이동하여 다시금 부대를 모용재화의 사정권 안에 넣은 후.

홀로 봉우리에서 내려왔다.

달빛이 구름에 가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순간, 은밀하게 천하독행신을 일으켜 부대로 서서히 접근했다.

급하게 물러났던 탓에 혈교의 부대는 한밤중에도 부산하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도, 모용재화의 화살이 두려웠는지 불은 켜지 않은 상태였다.

“막사 빨리 올려!”

“방패! 방패 모조리 다 꺼내와!”

“수색대를 집합시켜! 놈을 찾는다!”

수백의 인원들이 움직인 탓에 불이 켜지지 않았음에도 녀석들의 모습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놈들이 번을 서기 전에 녀석들의 부대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어라?’

부대로 은밀하게 접근하던 나는 예상치 못한 것에 막혀버렸다.

‘이게 뭐야?’

남화성이 실수로 등롱을 깨서 펼쳐져 버린 환술진.

그것과 비슷한 것이 지금 부대 주변에서도 펼쳐져 있었던 것.

거참, 더럽게도 기민하네.

기문진식이나 기관진식의 한계라 한다면, 한번 설치한 곳에서 쉽사리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반면, 놈들은 어떤 식으로 했는진 몰라도 술사들이 공들여 펼쳐야 하는 환술진을 이런 간이 기문진식으로 바꾼 듯 보였다.

‘이건…… 쫌 부럽군.’

어떤 곳에서나 환술진을 기문진식처럼 펼칠 수 있다니.

이는 전투나 전쟁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그걸 떠나, 긴 여정을 견뎌야 하는 표사들이나 무사들에게 가장 무서운 시간은 잠든 이후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똑같이 번을 서더라도 환술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긴장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술사 놈을 한 명 납치해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난 이내 머리를 털어냈다.

지금은 혈해옥 하나만 탈취하기에도 바쁘다.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모용재화를 데리고 도망쳐야 하는 걸 고려해 봤을 때도, 조금만 시간을 지체했다간 모든 일이 다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아쉽긴 하군. 무림맹이 정벌을 하게 되면 혈교의 술사들은 모두 씨가 마를 테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빠르게 미련을 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환술진에 다가갔다.

꿀렁──

하는 느낌과 함께 싸한 기분이 온몸을 파고든다.

환술진 안으로 들어오니, 방금 전까지 들렸던 혈교인들의 목소리가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어야 할 혈교의 부대는 온데간데없었다.

기감을 아무리 일으켜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혈교를 멀리서 보고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혈교가 남아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찌잉──.

잠시 뒤, 머릿속을 찌르는 기이한 사음이 들려오고, 나는 얼른 옥청천상력을 끌어올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을 보호했다.

아우──

크헝──

귓속에 울리던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환술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사문을 건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조심 전방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 부상자! 부상자가 있어!”

“술사를 최우선으로 살려라!”

“수색대는 아직 흉수를 찾지 못했나!”

“아직 신호가 없습니다.”

다시금 부산한 혈교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있냐…….’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수백 명의 혈교인들이 오가는 곳에서 혈해옥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잠시 후, 장서고에서 봤던 기록들과 똑같은 모양의 막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온다.

“거기 있구나. ‘내’ 적광검.”

나는 귀식행보를 밟으며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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