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다시 쓰는 사천혈사(5)>
구정룡이 보기에 녹림칠십이채라는 동맹구조는 기이한 것이었다.
연맹이란 이름하에 하나로 묶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할 권한은 없다.
기존 산채의 주인이 바뀐다 한들 칠십이채 연맹 안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지난 녹림칠십이채가 생겨난 이래 백 년간 바뀌지 않았다.
그럼 서로 관계도 없는 이들이 녹림칠십이채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위기에 처했을 때 ‘떼거리’ 싸움을 하기 위함.
직업의 특성상, 상대의 분노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 산적들은 무인들과 관군들의 주시 대상이다.
언제 토벌당할지 모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안정적(?) 수익 창출을 위해 필요한 때에 뭉치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 흩어지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연합체를 구성한 것.
그리고 지금 그 연합체가 발동했다.
무림맹이나 관군 때문에?
아니다. 무인 하나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구정룡이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당장 행군 멈추고 방어대형 펼친다! 부상자들 뒤로 후송하고 쌩쌩한 놈들 이열로 분산해.”
“알겠습니다.”
감천악이 재빨리 뛰어가며 승호당을 모으기 시작했다.
녹림채들이 연합권을 발동했다는 건, 자신들을 무림맹이나 관군과 같은 위험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무림맹인 건 맞지만……. 여긴 환자들이 더 많은 상태…….’
세 개의 녹림채가 연합을 꾸렸다면, 천 명 이상의 적도 상정해야 했다.
화엄채, 적화채, 흑봉채.
사천에서 내로라하는 망나니들만 모여 있기로 유명한 산채들.
“하필 건드려도 왜 그들을 건드린 거냐!”
구정룡의 말에 진소운이 답했다.
“그놈들이 제일 나쁜 놈들 아닙니까.”
“…….”
아닌 말로, 서장과의 교역로를 독점하여 통행세에 폭리를 취하는 놈들.
간간이 작은 상단들이 서장의 길을 뚫으려 할 때면, 상단 자체를 습격해 버리는 일도 있다 들었다.
그런 이들을 이용해 혈교를 막았으니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그 때문에 당장 여기서 죽게 생겼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 들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날카로운 말투이긴 했지만, 감천악처럼 깔끔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좀 더 카랑카랑하고, 가래가 낀 듯 탁하고…….
“어째서 방어대형을 펼치는 것이지?”
몸을 돌리자 눈앞에서 수허 장로와 상원 장로가 도끼눈을 뜨고 구정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무림맹의 행차를 막은 산적 놈들이다. 저놈들을 상대로 방어를 하자니.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천하의 승호당이 겨우 산적 하나가 무서워서 벌벌 떨어! 내 이를 반드시 문제 삼겠다!”
구정룡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당장에 당주 직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어쩐지 가슴이 불같이 끓어오르고 머리는 그 열기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이들의 말처럼 전투를 벌여도, 일방적으로 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는 어떤가?
부상자들이 절반 이상이고, 싸울 수 있는 이들은 승호당을 포함해 이백이 안 된다.
사천혈사에서 겨우 생존한 이들 대부분이 결국 이곳에서 고혼이 될지도 모른다.
‘진정 그것을 원하는 것인가?’
지난 며칠간 쌓아왔던 분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설사 당주직이 해제되고, 항명죄로 금옥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서 참아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장로님들께선 그리…….”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울분을 토해내려는 순간…….
“이 영감탱이들이 돌았나.”
“…….”
갑자기 끼어든 불량한 목소리에 머리가 차게 식는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진소운이 왈패와 같은 표정으로 두 장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너, 너 지금! 뭐라 했느냐!”
“시부럴, 못 들었어? 돌았냐고!”
“뭐!!!”
이렇게 분노하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두 장로의 얼굴.
그도 그럴 게 평생을 무림맹에서 최고의 직위만 거쳐왔던 이들이다.
그들에겐 이제 막 학관에 입관한, 그것도 태을문이라는 별 볼 일 없는 문파의 제자에게 욕지거리를 당하는 경험이란 생경할 터.
“뭐? 무림맹의 행차? 산적 하나가 무서워?”
툭툭.
진소운은 그에 멈추지 않고 두 장로에게 어깨 빵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사나 본데.”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얼이 빠진 두 장로는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두어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처싸우고 싶으면 니들이 가서 싸워.”
“……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수허와 상원 장로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폭풍 같은 기파에 무복이 터질 듯 부풀고, 길게 기른 수염과 머리가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일촉즉발의 상황.
살기가 넘실거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진소운의 목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하, 그놈의 체면 때문에 생떼 같은 목숨들을 그리 희생해 놓고 아직도 체면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
벼락처럼 울리는 목소리.
방어대형을 펼치던 학관생들과 승호당원부터, 고통에 신음하는 부상자들까지도 진소운과 두 장로를 바라봤다.
“그리 체면이 중요하면 니들끼리 나가 싸워봐.”
“…….”
진소운의 차가운 분노가 주위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린다.
“그 무림맹의 기지를 이용해서, 어디 한번 천 명이랑 싸워보라고.”
진소운은 내기는커녕 검조차 뽑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어깨를 툭툭 쳤다.
“…….”
“…….”
불같이 내기를 일으켰던 두 장로는 손속을 휘두르지 못했다.
진소운이 그들을 벌레 보듯 쳐다보고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곤륜파! 종남파! 나와!”
그러곤 버럭버럭 외쳤다.
“니들 장로님께서 저 녹림채들이랑 싸우고 싶다 하시니까, 가서 싸우고 이들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뒈져!”
“…….”
사람들의 시선이 곤륜과 종남으로 향한다.
자신들 문파의 장로들이 일개 학관생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었지만, 쉽사리 나서는 이들이 없었다.
두 장로들은 꼼짝 않는 제자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저, 저놈들이!”
그 모습에 두 장로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은 명백한 경멸과 혐오.
대체 무엇을 위해 사람을 갈아넣으려 하냐며 그 이유를 찾는 분노.
진소운의 시선이 다시금 두 장로에게 향한다.
“왜 제자들조차 나서지 않으니, 당신들만으로는 못 하겠나? 자신의 목숨에 비해 무림맹의 기지와 체면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가?”
수허와 상원 장로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미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가 너무 크고, 정도회는 하나도 수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말을 따를 이들은 본산의 제자들밖에 없음이 분명할 터.
그러나 그 제자들의 충성심에도 금이 간 상황이다.
소운의 눈빛이 고요한 분노로 일렁거린다.
“겨우 그 정도 각오로 제자들의 목숨을, 그리 쉽게 내던지려 한 것인가?”
진소운은 헛된 체면과 정의라는 외피를 두른 장로들을 향해 일갈했다.
제발 그 외피가 찢어발겨지길 바라면서.
지난 삶에서와 같이, 약한 이들이 무고한 희생으로 스러지질 않길 바라면서.
“자신이 나서서 할 게 아니면 다물고 찌그러져 있어!”
“…….”
“…….”
얼마나 분했던 건지 수허 장로의 입에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했는지, 수허 장로가 손을 들려 할 때.
구정룡이 나섰다.
“그만하시지요. 비상시 부대를 통솔하는 것은 무림맹 무각의 권한입니다. 장로님들에게 지휘권은 없지 않습니까.”
구정룡의 말에 장로들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린다.
“진소운…… 두고 보자.”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악당 같은 말을 남기곤 훽하니 돌아서는 두 사람.
구정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 적당하다.
여기서 더 나아갔다간 진소운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자신을 대신해서 나서준 것은 너무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장로들은 명분을 가진 진소운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했다.
오직 지금의 진소운이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실한 명분.
“고맙네. 덕분에 고비를 넘겼군.”
“…….”
진소운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두 장로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
구정룡이 걱정스런 마음에 말했다.
“혹여나 다른 생각 말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저들은 각 사문의 힘으로 장로원에까지 올라간 자들이야.”
진소운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말했다.
“저도 당장 뭘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책임?”
“이번 행사를 주도했던 인간들 아닙니까. 절대 그냥 못 넘어가죠.”
“…….”
그냥 못 넘어간다?
장로원의 장로들을 상대로 그게 가능한가?
근본적인 질문에 구정룡이 빠져있을 때.
감천악이 다시금 다가왔다.
“당주님, 저쪽에서 부채주들이 왔습니다.”
“부채주들만?”
“네. 저희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요?”
“…….”
살기 등등하게 무기를 쥐고 전투 준비를 마친 이들이 할 이야기란 무엇일까?
당장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사정이 아니었던 만큼 구정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진소운, 자네. 자네도 함께 가세.”
“제가 말입니까?”
“……지금은 자네 말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할 수 없지. 같이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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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운은 모용재화와 자신의 일행들에게 뭔가를 지시한 후, 구정룡을 따라나섰다.
녹림채 연합과 무림학관 무리, 그 중간엔 얼굴에 ‘산적’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다니는 듯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쉽지 않다.’
그들을 향한 구정룡의 첫인상이었다.
산적이라고 경시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성취는 구정룡 본인과 비교해도 그리 낮지 않은 수준.
부채주가 저 수준이라면 무리의 우두머리인 채주는 얼마나 강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여기가 우리 무덤이 될 수도 있겠구나.’
구정룡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입을 열었다.
“산주들을 뵙게 되어 반갑소. 무림맹 청룡각의 승호당주 구정룡이라 하외다.”
일부러 청룡각과 승호당주라는 직위를 강조했지만, 부채주들의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화엄채, 적화채, 흑봉채다. 무림학관과 무림맹의 사람이라 들었는데, 맞는가?”
뻔히 알고 왔음에도 다시금 확인하는 녹림도들.
“사천에 사도의 무리가 나타나 임무를 수행 중이었소이다. 산채에 피해줄 생각은 일절 없소.”
구정룡은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러나 부채주들의 표정은 풀어질 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주었지.”
역시나 다 알고 있었던 건가?
“너희 쪽 사람이 우리 산채들을 의도적으로 전투에 끌어들여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구정룡이 재빨리 답했다.
“의도성이 있던 건 아닐 것이오. 우린 급하게 작전을 치르는 중이었으니. 피해가 있다면 충분히 보상하겠소.”
화엄채의 부채주는 이빨을 드러냈다.
“발뺌할 생각일랑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우린 결코 그냥 넘어갈 생각 따윈 없다.”
부채주 중 한 명이 구정룡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누구냐? 대체 누가 일을 저지른 것이냐? 아니면, 이것이 개인의 소행이 아닌, 무림맹의 의도인 것이냐?”
“…….”
구정룡이 굵은 침을 삼켰다.
외통수다.
무림맹의 의도라 한다면, 저들은 이곳의 모두를 죽일 것이고.
진소운이 개인적으로 한 짓이라 한다면 진소운을 용서치 않을 터.
“만약 발뺌한다면 너희 모두를 쳐 죽인 뒤 동료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의 순간.
펑.
갑자기 동쪽 하늘에서 신호탄이 터졌다.
진소운은 그걸 보더니 한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납니다.”
“진소운!”
“…….”
구정룡과 감천악이 기함하며 말리려 했지만, 이미 말은 내뱉어진 상황.
부채주들은 당장이라도 쳐 죽일 듯 진소운을 노려보았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두 명이었다.”
“아! 남화성이라고 삼원문 제잔데. 걔는 그냥 내 명령만 따른 거니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나한테 물으면 됩니다.”
“하아……?”
화엄채의 부채주 얼굴이 파르르 떨린다.
“죽고 싶다 그 말이렷다?”
“음, 그건 아니고요. 근데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책임을 지긴 할 건데 조금 나중에 질 생각이라.”
“뭐라?”
그때, 산채들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웅성웅성하기도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하고, 뭔가 뚝딱거리는 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산적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뭐, 뭐야!”
“습격이냐!”
“해보자는 것이냐?!”
세 명의 부채주가 당장에 무기를 꼬나쥐며 달려들 준비를 했다.
“아니오. 일단은 여러분들은 저 사람을 먼저 상대해야 할 겁니다.”
“뭐?”
그때, 녹림채의 산적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갈라지며, 백 단위의 인원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기존 녹림연합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복장의 사람들.
구정룡은 순간적으로 저들의 일행이 더 추가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산적들을 뿌리치고 걸어 나오는 새로운 무리들은 명백하게 기존 무리와 다른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더구나 가장 선두의 두 사람.
흑마를 탄 거구의 사내와 백마를 탄 미모의 여인.
두 사람은 세 명의 부채주가 살기를 날리는 것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그들을 지나쳐 구정룡 쪽으로 다가왔다.
흑마도 보통 크기의 흑마가 아니었는데, 그 위에 올라탄 사내의 육체는 가히 태산과도 같은 크기였다.
태연히 움직이는 거구의 사내가 구정룡의 옆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우님, 얼굴 한번 보기가 영 힘들군.”
그러자 진소운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 아우가 공사다망하여 형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로, 아리따운 목소리가 끼어든다.
“진 공자, 전 보이지 않는 건가요?”
진소운이 포권을 지며 활짝 웃는다.
“형수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저 때문에 먼 길 오시는 건 아닐지 걱정했습니다.”
“그럼 잘 지냈지요. 그리고 공자 덕분에 이곳 사천까지 여행도 오고 좋은걸요.”
한 떨기 꽃처럼 해사한 미소로 화답하는 여인의 모습에, 녹림채 부채주들마저 넋을 잃고 나서지 못한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 듯, 인사를 나누는 세 사람.
그러다 거구의 사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 구정룡을 바라봤다.
“아우님, 저 사람이 아우님의 상사인가?”
“예, 소개가 늦었습니다. 청룡각 승호당의 당주이신 구정룡 대협이십니다.”
거구의 사내가 그 큰 몸을 기민하게 움직여 말에서 내렸다.
그러곤 성큼성큼 구정룡에게 다가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반갑소. 본인은 방두칠이라 하오!”
“방두칠이라 하면…… 녹룡왕?”
“나를 아오?”
그런 소문을 들었다.
절강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연합체에 불과한 녹림칠십이채를 하나씩 복속시키는 이들이 나타났다고.
천목산에서 악행을 일삼던 쌍막채를 일거에 소탕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두 명의 용(龍)이 그 주인공.
그중 하나가 녹룡 방두칠이었다.
‘안개에 쌓인 한 명과 달리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더니…….’
일개 산적 따위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 놓고 다닌다기에 얼마나 오만한가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본 인상은 판이하다.
아니, 자신을 드러내 놓고 다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압도적이다……!’
단지 외부로 보이는 신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품고 있는 태산과 같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
그야말로 제왕과도 같은 군림의 기세였다.
구정룡은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소,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장차 녹림맹을 통일할 사람이라 하더니 그것이 결코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다.
“그렇소? 아하하하하!”
어깨를 툭툭 치는데 뼈가 쿵쿵 울린다.
웃음소리는 어찌나 큰지 사방이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애써 어깨의 통증을 무시하던 구정룡은, 자신이 놓친 단어가 번뜩 떠올랐다.
“그런데, 방금 ‘아우님’이라고…….”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인지(제대로 들었는지 재차 물었다.
아우, 분명 아우라고…….
구정룡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살피던 방두칠의 시선이 스윽- 진소운에게 옮겨갔다.
진소운은 어쩐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미미하게 젓고 있었다.
상반된 두 사람의 반응에, 구정룡의 혼돈이 더욱 깊어지려는 찰나.
“아! 난 진소운의 의형이오.”
방두칠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네?”
“우린 한날한시에 죽기로 한 의형제라 이 말이지.”
구정룡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