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과거로부터 온 전령(5)>
“으어…….”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일하는 진태산을 보며 왕금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왕소소가 수련에 매진하면서 왕가장의 바쁜 일이 한결 줄어들었다.
예전엔 딸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매일 안타까워했지만, 지금에서 와선 수련을 핑계로 아이가 종종 태을문에서 자고 오는 일상이 기꺼웠다.
덕분에 한숨 돌린 왕금산의 혈색이 꽤나 좋게 돌아온 반면.
‘저러다 사람 잡겠군.’
진태산의 몰골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벌써부터 머리 곳곳에 빈 곳이 보이고, 세수도 제대로 못 하는지 피부 상태도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대체 마지막 잠은 언제 잔 건지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고, 눈두덩이는 검게 내려앉았다.
‘최근에 대장간을 짓는다고 했던가?’
악양에서 유명한 야장과 당가의 기술자가 섭외되어 태을문에 적을 두게 되었다 했다.
그야말로 근 몇 년 사이 눈이 부실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태을문.
그렇기에 바쁜 건 당연하지만, 진태산은 여전히 독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좀 쉬엄쉬엄하지 그러나.”
“…….”
고개를 슬쩍 들었던 진태산은 왕금산을 무시하듯 고개를 처박고 다시금 일을 한다.
“그러다 쓰러지네 이 사람아.”
“……심심하십니까?”
“응?”
“아님, 절 놀리러 오신 겁니까?”
“커험, 큼.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왜 굳이 놀리러 여기까지 오겠나.”
“그럼 당과와 차는 왜 챙겨 오신 건데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시겠다는 뜻 아닙니까.”
사실 왕금산도 자신이 왜 휴일에 굳이 이곳까지 온 건지 몰랐다.
물론 진태산을 놀려 먹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고관대작들과 대문파의 수장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도 꽤나 즐겁지 않던가.
“……자네 먹으라고 가져온 거지. 어디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 건가.”
“……입맛 없습니다.”
진태산은 다시금 고개를 처박고 일을 한다.
대천상단은 합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
물류량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천목산 일대에 새로 연 상단지부도 인력 부족을 호소할 정도로 잘되고 있다 들었다.
“조금 쉬엄쉬엄해도 되네. 왜 이리 목숨 걸고 일하나?”
“……지난번에는 ‘요즘 젊은것들은 농땡이 피울 생각만 한다.’며 까지 않으셨습니까?”
“커험! 험! 그야, 그냥 한 소리지.”
물론 동기부여를 하려는 의도였지만 진짜로 이렇게까지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연신 투덜대던 진태산의 표정이 일순 진지해진다.
“부끄러워서 하는 겁니다.”
“응?”
여전히 고개를 처박은 채 일을 하며 말을 잇는 진태산.
“장주님도 잘 아시겠지요.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말고.”
“실제로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 세상이 무척이나 무서워집니다. 장주님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
평생 돈의 무서움을 배우며 살아왔지만, 정작 왕금산은 가난했던 적이 없었다.
그야, 어린 시절부터 왕가장 내부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자라왔으니까.
“말 그대로 ‘처절하다’라고 말 하는 게 낫겠네요.”
아픈 기억을 더듬는지 그의 눈가에 엷은 주름이 잡힌다.
“애들 입에 들어가는 곡식의 양을 줄여야 하나, 겨울에 방 안에 뗄 장작의 양을 줄여야 하나…… 저울질해야 하는 고통이 일상이죠.”
잠시 붓을 내려놓은 진태산은 눈이 아픈지 양손으로 두 눈을 꾸욱꾸욱 눌렀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어른들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그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금방 철이 들지요.”
“…….”
“제 아들놈도 그렇고요.”
진소운을 떠올린 왕금산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소운이가 그리 훌륭하게 자랐다 이야기하면 너무 오만인가?”
진태산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네. 오만이십니다.”
형형한 눈빛과 단호한 말투.
왕금산으로선 거북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딱히 불쾌하거나 하진 않았다.
진태산은 다시금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전, 진소운 그놈이 정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
“과연 그 녀석이 돈 대신 무엇을 희생했을지 상상하기조차 싫었죠.”
진태산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과연 내게 애비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고요.”
“…….”
“지금 태을문이 얻게 된 기회도 다 그 녀석이 가져온 겁니다.”
진태산이 왕금산을 다시금 바라본다.
“장주님, 하나 여쭙겠습니다.”
“말하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셨죠?”
왕금산은 즉각 대답했다.
“맞네. 그것만이 진리라네.”
“그럼 태을문같이 아무것도 없는 문파가 이 정도로 단기간에 풍요를 누리려면 뭘 희생해야 하는 겁니까?”
“…….”
이번에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가 없다.
그런 처지가 되어 본 적도, 아니 애초에 상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전 녀석을 대견하게만 볼 수 없습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진소운 그놈이니까요.”
“…….”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습니다. 태을문이 다시금 가난해진다면, 다른 아이들은 또다시 잔혹한 세상에 던져질 테니까요.”
왕금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태산은 다시 바삐 손을 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 한시라도 쉴 수 없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진태산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던 왕금산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피식.
이제야 자신이 황금 같은 휴일에 고관대작이나 대문파의 수장을 만나러 가지 않고, 이곳에 온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제 부족함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우직함.
왕금산은 저 외통수 같지만 올곧은 진태산이 좋았던 것이다.
“내 생각이 짧았군. 혹여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나?”
“장주님께서 도와주실 일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진태산이 얼른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그러곤 이내 준비했단 듯이 무언가 줄줄 읊기 시작한다.
“안휘성을 중심으로 인근 성과 시세 차이가 나는 물품들을 분류하여 수익성 계산을…….”
“아, 미안하네. 말이 헛나왔군. 난 오늘 휴일이라 쉬어야 해서 말일세.”
“…….”
왕금산이 괜히 헛기침을 내뱉던 그때, 사용인 하나가 들어서며 전서를 전달했다.
왕금산을 계속 노려보던 진태산이 천천히 전서를 뜯어 내용물을 읽었다.
“헙!”
두 눈을 부릅뜨고 숨을 삼키는 진태산.
왕금산은 그의 반응에 전서의 내용이 궁금해져 천천히 다가갔다.
평소라면 전서를 보여주지 않을 텐데, 어쩐 일인지 진태산이 전서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것 아닌가.
이윽고 전서를 가져와 읽으려 하는 순간.
진태산의 입에서 앙천광소가 터져나왔다.
“음하하하하하하하!!!!”
“……자네 왜 그러나?”
“읽어 보시지요.”
입가에 미소를 가득 품고 있는 진태산.
빠르게 전서를 읽던 왕금산의 입에서도 작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무림맹의 전용구매처로 지정되다니…… 정말 놀랍군.”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권리를 따기 위해 수십 개의 상단들이 달려들었을 텐데. 당최 어쩐 일인지…… 아무튼 축하하네.”
“그럼요. 저도 장주님을 바삐 놀릴 기회가 생긴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왕금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진태산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린다.
“왕가장에서도 무림맹과의 정기 거래를 원해왔지 않습니까?”
“!!!”
기억이 떠오른 왕금산의 머리칼이 삐쭉 솟았다.
“아, 아니네. 아니야. 이런 좋은 기회를 우리가 빼앗을 수는 없는 법.”
겸손을 가장한 왕금산의 태도에, 진태산이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릴 하십니까. 무림맹 지부들에서 필요한 물건의 양과 종류가 얼만데 그걸 저희 혼자 처리하라는 겁니까. 당연히 왕가장과 함께 해야죠.”
“아니, 괜찮다니까!”
“전 괜찮지 않습니다!”
“나, 난 받지 않을 거야!”
“그럼 소소에게 이야기해야겠군요.”
“…….”
왕금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진태산은 간만에 호탕한 웃음으로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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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극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추론한 첫 번째 근거는 야율재다.
전생의 이 시기에 야율재는 폐인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고 그저 몇 년간 술에 빠져 살았노라고만 했다.
야율재는 쉽게 좌절하는 인간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인간이었다면, 성인이 되자마자 낭인 활동을 하며 무공을 수련하고, 번 돈은 몽땅 사문에 보내는 일을 몇 년이나 지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자연스레, 폐인 생활의 원인이 되는 일이 그 시기에 있었다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야율재는 혈육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
혈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데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면, 소정대에 들어올 시기엔 이미 형제들과 틀어졌거나 혹은 죽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만약, 혈육이 죽었고, 혈육의 죽음을 쉬이 말하지 못했다는 건.
‘……그 죽음이 평생에 멍에를 지울 만큼 강력한 충격을 주었단 뜻이겠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리움이란 부유물과 함께 아픈 기억이 떠오를 터.
그럼에도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단 것은 스스로가 그 그리움을 억지로 억눌렀다는 것.
그러니까 ‘죽음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저 사고나, 지병이 아닌…….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괴로워할 만큼 고통스러운 종류의 것.
세 번째. 유운신공을 완성한 이후에 엄청난 죄책감에 후회를 반복했다는 것.
이런 행동은 자연스레 유운신공과 형제들의 죽음이 연결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네 번째는. 무림학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증오했다는 점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야율재는 야율극을 통해 유운신공을 완성하려 했다. 야율극은 그런 부담스런 상황에서 소외와 폭행의 일상 속에 박혀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이어가던 생각을 뚝 멈추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 형제네!”
나는 본관 교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누가 신성한 교내에서 경망스레 뛰는 것이냐!”
“거기 멈춰라!”
교두와 교관들이 학관 내에서 뛰는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태을팔만신보를 펼쳐 환영을 만들며 그들을 피해냈다.
“진 공자!”
갑작스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성모란과 남궁선화, 그리고 사련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왜 이리 급하게 뛰고 있어요?”
나는 다급히 요청했다.
“야율극을 좀 찾아주십시오.”
“네? 그게 누군데요.”
“아무튼 부탁 좀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관 교실을 다 뒤지고, 서관과 동관까지 모두 뒤졌다.
혹시나 몰라 옥상들도 다 뒤졌지만, 어디에도 야율극은 없었다.
‘그놈을 찾아가 봐야겠군.’
뒤에서 교관과 교두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막 뭐라 뭐라 소리 지르고 있는데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금 내공을 일으켜 사(四)인 기숙사로 달려갔다.
복도에 들어서자, 방에서 나와 있던 이들이 일제히 이편을 바라본다.
나는 그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하나하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진소운?”
그때, 땀을 잔뜩 흘리며 방에서 나오던 남화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린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너, 악주평이 몇 호에 사는지 아냐?”
“악주평? 갑자기 걔는 왜?”
“알아, 몰라?”
차가운 내 목소리에 녀석이 흠칫거린다.
“삼십팔 호다.”
“그래?”
“야, 무슨 일인…….”
남화성의 질문을 무시하고 곧장 삼 층으로 날 듯 뛰어올라 삼십팔 호를 찾았다.
쾅.
다행히 문은 잠겨 있지 않아, 문짝을 부숴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소란이 인다.
“……뭐, 뭐야!”
“지, 진소운?”
안에서 네 사람은 농담 따먹기를 하던 중이었는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놈의 얼굴을 찾아내었다.
“악주평.”
놈은 뒤로 살짝 기댄 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감한 표정으로 놈에게 물었다.
“어제, 야율극과 함께 있었지? 거기가 어디냐?”
“야율극? 놈은 너랑 인연이 없다고 하던데?”
“말장난할 시간 없다. 야율극 어디 있냐?”
녀석이 비릿한 조소를 흘린다.
“내가 왜 대답을 해줘야 하지?”
“그래야 네 뼈가 멀쩡할 테니까.”
“뭐?”
악주평이 웃음기를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제법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눈높이가 나보다 살짝 높았다.
놈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나를 내려다본다.
“알량한 대표 권력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나?”
“알량한 악가의 힘을 내가 무서워할 것 같나?”
“이 자식이……!”
뻑.
놈이 몸을 움직이자마자, 발끝에 기운을 모아 정강이를 때렸다.
“꺼억──.”
부지불식간에 정강이가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꺾인 악주평이 두 눈을 부릅뜨고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놈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야율극, 어디 있나?”
“으아아아아악!”
뒤늦게 고통이 밀려왔는지 악주평이 소리를 지른다.
내가 마저 남은 발 하나도 반대편으로 꺾어주려는 찰나.
“지, 진소운! 진정 백도회와 척을 지는 게 무섭지도 않나?”
뒤에서 돌려오는 목소리에 놈을 돌아봤다.
“이미 백도회와 정도회, 12봉성이 나와 척을 지고 있는데 내가 뭘 무서워해야 하지?”
“그, 그건…….”
난 악주평의 남은 발도 반대로 꺾어주었다.
“끄아아아아악!!!”
악주평은 눈깔까지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문다.
관절을 완전히 꺾어놨으니, 아마 회복을 한다 해도 이전처럼 완벽하게 신법을 펼치진 못할 거다.
“야, 야율극은 어제 본 게 마지막이야……! 그, 그 이후엔 진짜로 못 봤어……!”
대답을 하는 악주평의 똘마니.
“내가 물은 건 어디인지일 텐데.”
“‘야, 양산봉 근처다.”
“그때가 언제였지?”
“해, 해시쯤 되었을 거야.”
“……얼마나 때린 거냐?”
“……꿀꺽.”
똘마니가 굵은 침을 삼켰다.
“너도 악주평처럼 남다른 관절을 가지고 싶냐?”
녀석의 얼굴에 공포가 어린다.
“부, 분명 숨 쉬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라…….”
놈이 거의 울먹거릴 듯 말을 덧붙인다.
“그, 그래 부, 분명 숨이 붙어있었어.”
“놈이 기숙사에 들어왔는지 확인했나?”
“…….”
똘마니가 굵은 침을 꿀꺽 삼킨다.
“어제 야율극은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악주평의 비명 소리를 듣고 학관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화성 역시 군중에 끼어있다.
“이런 미친…… 뭔 짓을 한 거야!”
“남화성. 너 애들 괴롭힌 적 많지. 특히 힘없는 애들.”
갑작스러운 물음에 남화성이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으, 응?”
“애들 주로 괴롭히던 곳이 양산봉 맞나?”
“그, 그게 무슨…….”
“맞냐고.”
잠시 고민하던 남화성이 이내 한곳을 짚어낸다.
“으, 응. 올라가기도 힘들고 교관들의 눈에도 안 띄니까.”
가을이지만 밤 중엔 온도가 낮았을 텐데.
“시부랄.”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더 이상 추론이 아니었다.
그때, 학관생들 사이로 교관들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감도 비명을 듣고 함께 오는 듯 보였다.
“남화성, 여기 뒤 좀 처리해라.”
“뭐? 야! 인마!”
나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양산봉을 향해 무림학관을 가로질러 달렸다.
나를 쫓던 교관들과 교두들이 숨을 헉헉거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바닥을 박차고 건물 위로 올라가 건물들 사이를 뛰어넘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이 끝난 후에는 나무를 타고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양산봉 입구에 도착해 주로 다른 이들의 전낭을 터는 장소라는 공터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곳에 불온한 인형이 보였다.
“제길.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야율극이다.
얼굴에 혈색은 돌지 않고 몸은 차갑다.
결국 늦은 것인가.
사천의 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자신한 것이 무색하리만치 허무하게 동료의 혈육은 결국 구하지 못했다.
“이런 개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