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학관에 방문한 불청객(6)>
우르릉.
격렬한 대기의 떨림이 무사들로 하여금 불편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
나는 범위를 최대한 늘려 최대한 많은 이들이 광천신장 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럼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소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하늘이 무너질 듯 폭음이 터져나간다.
연무장 뒤로 있는 작은 언덕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다.
범위가 무식하게 큰 만큼 단위 면적에 가해지는 피해의 정도는 적지만, 다들 말도 안 되는 파괴력에 질린 표정들을 짓는다.
“놈이 도망치려 한다! 막아라!”
악가의 무사들은 여전히 포위망을 유지한 채 나를 부여잡으려 하지만, 나는 애써 도망치지 않았다.
‘이제 와 도망갈 이유 따윈 없으니까!’
우웅─
흑룡검 위로 푸른 검강이 어린다.
그리고 곧장 얼이 빠져있는 악병비를 향해 휘둘렀다.
콰콰콰쾅!
연무장의 바닥이 덜덜 떨리며 쓸려 일어나고, 검파의 힘이 악병비에게 쏟아진다.
“이 빌어먹을 놈이…….”
악병비의 얼굴이 처음으로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그래, 그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는 곧장 소천검법에 이은 쌍천검결을 펼쳤다.
환검과 진검이 무차별적으로 악병비에게 쇄도한다.
단단한 외공을 익혔는지 그의 몸에 상흔이 깊게 나진 않지만 그럼 뭐 어떤가.
‘상흔이 날 때까지 내려치면 되는 것이지.’
틈을 주지 않고 들이치는 나를 상대로, 철창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쌍천검결을 해소하는 악병비.
콰콰콰콰콰쾅.
나는 이어 만화무적권을, 다시 곧바로 만해천지검결을 계속 쏟아낸다.
쾅! 쾅! 쾅! 쾅! 쾅!
마치 단단한 암석을 두드려 깨부수듯.
온 힘을 쏟아부어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철창이 가끔 날카롭게 빈틈을 찔러 들어오지만, 나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아슬하게 피하며 다시금 검을 휘두른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어디 한번 하나 죽을 때까지 해보자는 필사의 각오.
예의 열기가 공기를 데우기 시작하며 창극의 기가 붉게 변한다.
악가의 비전 창법인 열화창이 다시금 시전되려는 모양새.
나는 그의 의도가 읽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화공이 악가에만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열화창을 쏟아낸다면 이쪽은 마공 출신인 성화멸마수다.
나는 붉게 달아오른 성화멸마수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만화무적권을 쏟아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열화창의 열기는 성화멸마수의 열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순식간에 열기에 휩싸인 악병비는 이내 온몸이 성화멸마수에 집어삼켜졌다.
“크아아악!”
외공을 익힌 악병비도 성화멸마수의 열기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방어를 도외시하고, 몸에 붙은 불길을 털어내느라 바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금 만해천지검결을 뽑아내었다.
쐐액─
네 자루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천검법이 악병비의 요혈만을 날카롭게 노린다.
“……!”
악병비는 부지불식간에 파고드는 소천검법을 막기 위해 철창을 급히 휘두른다.
떠엉! 떠엉! 떠엉!
몇 번의 방어는 막아냈지만, 결국 피부를 파고드는 열기로 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악병비가 흑룡검이 제 몸을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고야 만다.
스윽─ 푹─
급소나 요혈은 아니지만, 팔과 다리 배 등등 몸 구석구석에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악가의 무사 중 한 놈이 소리쳤다.
“이런…… 모두 모여라!”
악병비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가자, 악가의 무사들이 창진을 이루려 준비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곧장 악병비에게 달려들었다.
“진소운!!!”
이제야 별호에 어울리는 듯 혈귀 같은 모습이 된 악병비.
그를 향해 물었다.
“내가 순수한 백도인이 아니라 생각했습니까?”
나는 흑룡검을 착검하며 검마의 무공을 꺼내 들었다.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나를 노려보는 악병비.
그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판단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차피 백도 문파의 정예로서 대우받을 거라 생각한 적도 없었으니까.
백월제천삼식
제 일(一)식 ‘극쾌’
그렇다면 내게 거리낄 것이 뭐가 있겠나.
쾡─
검갑을 쓸어내며 뽑히는 흑룡검의 마찰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악병비 또한 자신의 오의를 꺼내 들지만.
검마의 무공이 그리 쉬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샥──
휘둘러진 흑룡검에는 한 방울의 핏물도 묻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스르륵.
잘려나간 악병비의 옷고름이 떨어지고, 훤히 드러난 바위같이 단단한 가슴에 붉은 선혈이 새겨진다.
“이, 이게 무슨…….”
쩌억──
선혈은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왼쪽 어깨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옆구리로 향하는 긴 상처를 남긴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며 악병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이, 이놈! 감히 당주님을!”
악가의 무사들은 이미 창진을 이룬 채 공격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
덜덜덜.
그와 반대로 모든 내공을 쏟아부은 내겐 더 이상 싸울 여력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애당초 내 목표는 압도적인 내공으로 악병비를 찍어 누르는 것이었으니까.
악가의 창진을 상대하는 일은 애당초 생각해 두지도 않았다.
겨우 버티고 선 내 머리 위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진다.
“조용히 함께했다면 목숨을 부지했을 것을.”
쓰러진 악병비를 바라본 악가 무사의 얼굴에 증오감이 가득 묻어있다.
당장이라도 나를 쳐 죽이고 싶다는 심경이 그득그득하다.
“후의 일이 어떻게 되든 넌 오늘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발진하라!”
무사의 명령에 악가의 인원들이 동시에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들어 올린다.
분명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새어나온다.
이미 다 끝났거든.
“감히 신성하고 경건한 무림학관에서 뭣들 하는 짓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대기를 가르며 화살처럼 날아든다.
창진을 이루던 악가의 무사들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무림학관의 학관장이자 태을문의 꼬인 배분의 피해자.
삼청무상검 북원평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장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크, 저 풍채 좀 봐라.
듬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형, 어서 오고!’
암, 하늘 같은 사형이고말고.
#
“그대들은 누구인가?!”
북원평의 날카로운 기세에 악가 사람들은 벙어리처럼 입을 꾸욱 다물었다.
북원평의 눈길이 악가 무사들의 옷으로 향했다.
선명히 박혀있는 악가의 문양.
그럼에도 그는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인지 물었도다!”
내공까지 담아 사자후를 펼치자 더욱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악가의 무사들.
나는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쥐며 말했다.
“학관 대표 진소운이 상황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자들이 학관에 침투했기에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중이었습니다.”
“……진정 그러한가?”
내가 아닌 악가 사람들을 향한 질문.
그는 악가의 사람들에게 무림학관에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을 뿐이었지만, 그들은 그 쉬운 질문에마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신 대답했다.
“제 예상에는 사천의 일과 관련된 간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소란이 인다.
“사천의 간자?”
“그, 그게 무슨……!”
두드러지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악가의 무사들.
억울한다 한들, 지들이 뭐 어쩔 건가?
어쨌든 지금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어젯밤에도 자신을 감찰각 소속이라 사칭하며 저를 납치하려던 시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품에서 악가의 명패를 꺼내 보였다.
“그는 분명 악가의 옷을 입고 악가의 무공을 쓰며 감찰각 행세를 했습니다. 무림맹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리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에 감찰각을 사칭한 것으로 보아, 음흉한 뜻이 있는 자들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명패를 받아 든 북원평이 차가운 시선으로 악가 무리를 쳐다보았다.
“이 말이 사실인가?”
“……아, 아니 그것이…….”
지금은 무림맹의 온 신경이 사천에 쏠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찰각의 이름을 등에 업고 패악질을 부렸다면, 이는 아무리 악가의 사람들이라도 쉬이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악가의 무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릴 수밖에 없는 것.
북원평이 명패를 쥔 손으로 주먹을 꽉 쥔다.
“그럼 감찰각이 정식으로 움직인 것인가?”
“…….”
“그렇다면 명령서를 가져오라!”
있을 리가 있나.
북원평의 노기 어린 목소리가 침묵만이 내려앉은 공기를 뒤흔든다.
“어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 진소운의 말대로 간자가 맞단 말인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꾸욱 다무는 악가의 무사들.
북원평은 진정 화가 난 듯, 이를 갈며 말했다.
“그렇다면 간자 혐의로 그대들을 정식으로 체포하겠다!”
“그, 그건……!”
악가의 무사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다 설명하리다, 북 형.”
그때, 악병비가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뭐야, 저 인간.
‘무슨 뼈가 통뼈로 되어있나?’
백월제천삼식을 쓰면서 힘을 빼긴 했지만, 그래도 당장 일어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악병비는 부축을 받긴 했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상황이었다.
“악병비?”
“소란을 일으켜 미안하오.”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는 듯 보였지만 북원평의 태도는 여전히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그대가 직접 온 것인가?”
“그렇소.”
“그렇다면 진정 감찰각의 명령서를 가지고 소란을 일으킨 건가?”
“…….”
북원평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아닌 게 분명하군.”
악병비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다.
북원평이 쯧 하고 혀를 찬다.
“악가의 무인을 대동한 채 감찰각의 행사임을 사칭했다라…… 이게 얼마나 큰일인 줄 알고는 있는가?”
악병비가 황급히 몸을 웅크린다.
“……내, 다 설명하겠소이다.”
“좋소. 그럼 자리를 옮기지.”
“지금 말이오?”
악병비가 갑자기 자신의 상처를 움켜쥐며 아픈 시늉을 해온다.
저, 저 산만 한 덩치로 치졸한 것 좀 보소.
하지만 역시나 북원평은 여전히 서늘한 눈빛을 지우지 않는다.
“자네에게 남은 시간은 집행각의 조사관들이 나오기 전까지일 걸세. 원한다면 치료를 하고 오게나.”
씨알도 먹히지 않음을 느낀 악병비가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오. 지금 가겠소.”
“진소운 학관생, 그대도 따라오라.”
“네.”
휙 하니 돌아서는 북원평의 뒷모습이 어쩐지 든든해 보인다.
이야, 우리 늙은 사형 정말 최고잖아?
#
학관장실 내부엔 그 흔한 차 한잔 들어오지 않았다.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고, 간간이 악병비의 신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설명을 해보게.”
“…….”
북원평의 질문에 악병비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린다.
과연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침묵이 계속되자, 결국 북원평이 탁자를 탕- 하고 내려친다.
“지금 무림맹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인지가 되지 않는 겐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설명해 보라 하지 않나!”
우리 늙은 사형은 탁자를 쪼갤 듯 연신 주먹을 내리치며 열변을 토하고, 악병비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계속 고개를 숙이고 또 숙인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례겠구만.
“흠흠, 학관장님. 혹시 아시는 분이십니까?”
나는 뻔뻔하게 물었다.
북원평은 내 의도가 무엇일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와 동문수학했던 친구이고 악가의 사람이다.”
“그럼 간자일 가능성은 낮겠군요.”
“……그렇지.”
악병비도 내 말이 이어지자 고개를 든다.
아는 사이라고 밝혀졌으니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인간은 대체 뭘 안심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제게 예상이 가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뭐지?”
“제가 악주평의 악행을 참지 못하고 단죄를 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악가 차원에서 제게 보복하려 한 것 같습니다.”
“뭐?!”
“……!”
안심하는 표정을 짓던 악병비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학관장님도 제 징계에 대해선 들으셨겠지요? 아마 충분하지 않다며 그 일에 원한을 품고 감찰각의 이름까지 팔아 저를 단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북원평이 악병비를 노려보며 말한다.
“이게 사실인가?”
악병비는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 결국 말을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탕!
“이게 사실인지 물었네!”
어느새 탁자가 휘청인다.
북원평이 재촉하자 그 커다란 체구의 악병비가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연다.
“……할 말이 없네.”
“맞다는 얘기군.”
“…….”
북원평이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감찰각의 이름을 판 것이지?”
악병비로선 죽을 맛이겠지.
애당초 그의 계획엔 학관장과의 만남 따윈 없었을 테니까.
그저 감찰각에 데려가 금옥에 가둔 뒤.
늘상 그러했듯 ‘물은 진실을 알고 있다’를 시전하면서 없는 죄도 토해내게 만들었을 터.
이후 감찰각의 행동이 문제 될 리 없다고 공표했을 테니까.
늘상 그랬듯, 관성적으로 행동한 것에 불과했으리라.
북원평은 실망감이 담긴 눈빛으로 친구였던 이를 노려보았다.
“더구나 악주평이 부상당한 일로 원한을 품었다고? 일의 상관관계에 대해선 제대로 알고 있나?”
“……그게 무슨…….”
“악주평은 지난 반년 동안 한 학생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폭행하여 죽음 직전까지 끌고 갔네. 진소운은 그 학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악주평에게 손을 쓴 것이고.”
실망을 넘어 경멸까지 서린 눈빛.
탕-!
북원평이 다시 한번 책상을 내려치며 일갈한다.
“징계에 회부되었지만 애당초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진소운이 아니라 바로 악주평이란 말일세!”
악병비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한다.
이제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깨달은 모양.
“어쨌든 이번 일은 정식으로 감찰각과 만통부에 보고될 걸세. 그렇게 알게.”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는 북원평의 강경한 모습.
지연과 학연으로 어떻게든 비벼보려 했던 악병비는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침몰해 버렸다.
결국, 악병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학관장실을 나가려 하는데…….
“학관장님, 이대로 끝내실 건 아니겠지요?”
“……뭐?”
이대로 가면 좀 섭섭하지.
나는 턱짓으로 악병비를 가리켰다.
“저 사람은 가문의 사람들을 끌고 와 무림학관에서 행패를 부리고 기물들을 부쉈습니다. 이는 엄연히 무림학관에서 무력행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당연히 손해 배상을 해야지요.”
북원평이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뭐야, 저 눈빛.
사형이란 말 취소다.
하늘 같은 대사형의 심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하여간 요즘 사제란 녀석들이 빠져가지곤.
내가 속으로 기강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는 사이.
막내, 아니 북원평이 악병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당연히 악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것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런가?”
오, 역시 우리 사형 최고!
악주평이 이를 앙다물며 대답한다.
“……그리하지.”
이내 상처를 부여잡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악병비.
아니, 근데 저 인간은 왜 자꾸 말이 안 끝났는데 나가려 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다고.
“잠깐, 그럼 저는요?”
“응?”
“……크흠?”
두 사람의 눈에 의아함이 어린다.
그 시선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하마터면 감찰각에 끌려가 물고문을 받으며 없는 죄를 토해낼 뻔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감찰각에서 기습적으로 들이닥쳤다는 기억 때문에 한동안 불안하여 잠을 설칠 거 같은데…….”
나는 두 손으로 양어깨를 감싸 쥐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제 정신적·육체적 피해 보상에 대해선 왜, 언급이 없는 겁니까?”
북원평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악병비에게 물었다.
“어찌할 건가?”
악병비가 분에 찬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빠드득 간다.
이런 예의범절 따윈 없는 악가 놈 같으니라고.
“그냥 넘어갈 생각인가 본데요?”
나는 처량한 얼굴로 우리 사형, 아니 북원평을 바라보았다.
“하아…… 그럼 제 분노는 그냥 악주평에게 풀어야 하겠군요. 양발을 꺾어놨으니 이번엔 양팔을 꺾어놓으면 될까요?.”
북원평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악주평을 채근한다.
“크, 크흠…… 진짜 그냥 넘어갈 건가?”
악병비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빠드득…… 보상해 주겠다.”
“얼마나 보상해 주실 겁니까?”
“……얼마를 원하지?”
“악주평의 목숨값만큼만 해주십시오.”
“……그럼 주평이를 건들지 않겠다 약속할 수 있나?”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털끝 하나 건들지 않을 겁니다.”
“좋아, 지불하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악주평의 목숨값.”
내가 생긋 웃어주자, 이를 바드득 갈던 악병비가 서둘러 학관장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북원평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온다.
“내가 태을문에 갔을 땐, 경제 상황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왜 돈 귀신이 들린 것처럼 행동하나?”
자고로 두 번째 삶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있다.
“거기서 번 돈이 뭐 저한테까지 오겠습니까. 사제들한테 쓰기도 바쁠 텐데요. 그러니 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을 모아놔야지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
그리고 피해 입힌 놈들에겐 반드시 열 배의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
손에 들어올 악주평의 목숨값을 떠올리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북원평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땡길 수 있을 때, 열심히 땡겨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