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의자 뺏기>
악병비와 악주평과의 일을 끝내고.
남은 하루의 휴식기를 느긋하게 보내려던 내 계획은 늙은 사형이 붙잡으며 헝클어졌다.
“이게 뭔 줄 아는가.”
늙은 사형은 학관장실에 꼬불쳐 둔 명주(名酒)들을 꺼내어 나를 현혹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후루룩…… 제가 술이 이렇게 약하지 않은데. 명주가 독하긴 독하군요. 크흠.”
간밤에 기숙사로 어떻게 돌아온 건진 모르겠지만, 눈을 뜨니 미칠 듯한 갈증과 머리를 때리는 고통이 밀려와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시비장이 타다 준 꿀물을 마시며 간밤의 일을 털어놓자, 시비장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의 명주도 그리 섞어 마시면 사람을 무너뜨리는 독이 되는 법입니다.”
“……제가 섞어 마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까?”
“늙은 사형이 대접했다며 마신 술들을 모두 열거하셨었습니다.”
“…….”
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지?
“무공을 익히신 분들은 주취를 몰아내실 수 있다고 하던데…….”
싸늘한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난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아까워서 말입니다.”
그렇다. 아까웠다.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명주를 마실 기회를 놓칠 순 없다.
흔치 않은 기회를 통해 맛본 명주 본연의 취기를 내기로 해소하다니 아깝기 그지없지 않은가.
뻔뻔한 내 표정을 바라보던 시비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일단 세수부터 하시지요.”
“알겠습…….”
찰박.
시비장이 가져온 세숫대야에는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운 물이 담겨있었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
“……저, 본래 미지근한 물을 준비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시비장이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대꾸한다.
“아침 물을 데우지 못해 찬물밖에 없으니 그냥 하시지요.”
“…….”
여태껏 빈틈 하나 없이 보좌해 왔던 시비장이 물을 데우지 못했다니.
시비장의 시선이 세숫대야 속 물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 생각했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삼엄하여 더 따지지 못하고 그냥 찬물로 세수를 했다.
“어으…….”
뼈가 아릴 듯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시고 나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이윽고 시비장이 쟁반 가득 음식들을 담아 들어왔다.
“조반입니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워낙 속이 메슥거렸기에 뭔갈 집어넣기 힘든 상황이었다.
무르라 이야기하려는데, 시비장이 사발 하나를 내민다.
“뜨끈한 닭국물입니다. 이걸로 속을 좀 달래십시오.”
“…….”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닭국물을 보자 나도 모르게 굵은 침을 삼켰다.
닭국물을 들이켜자 속이 편해지면서 다른 음식들도 식욕을 자극하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씩이나마 모든 음식들을 집어 먹었다.
시비장은 내 곁에 서서, 내가 잘 먹는 찬들을 가까이로 옮겨준다.
“다음부턴 이렇게 폭음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분명 쌀쌀한 말투이건만, 그 안에서 걱정이 배어나온다.
채근은 하되, 배려가 느껴진다.
마치 철없는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 같달까.
그런 마음이 느껴지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겠습니다.”
식사를 다 마친 후.
시비가 가져다준 새로운 의복을 입었다.
어제 악가와의 싸움으로 인해 정말 여러 가지로 손해가 막심하다.
생각할수록 열 받네?
‘옷값도 받아내야겠어.’
나는 굳게 다짐하며 시비장과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연무장 바닥에 깔려있던 대리석들은 물론이고, 연무장을 감싸고 있던 작은 언덕과 수석 대표 기숙사와 본관을 가르는 담장까지 모두 망가진 상태.
시비장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학관 설립 이래로 처음 있는 일입니다.”
“…….”
“무림학관 내에서 가장 전통 있는 곳을 이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한 건 내 착각인가?
“혹…… 저를 원망하시는 겁니까?”
“…….”
내 질문에 시비장이 고개를 홱 돌린다.
아니, 잘못은 악병비 그 인간이 한 건데 어째 혼나는 건 나란 말인가.
“크흠…… 거 이참에 새로 고치고 얼마나 좋습니까.”
내 낙관적인 반응에 시비장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진다.
“고친다고요?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학관에서 쉬이 허락해 주지 않을 겁니다.”
무서운 눈빛에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손을 허공으로 휘휘 내저었다.
“아, 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악가에서 다 보상해 주기로 했거든요.”
“…….”
내가 또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은 성격이지 않은가.
내 당당한 태도에, 시비장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아마 오후에 악가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그 사람들한테 망가진 부분들을 이야기하면 모두 고쳐줄 테니, 가감 없이 다 요구하시죠.”
“그거 다행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연무장 바닥을 한 차례 쓸어보았다.
이거 이거, 안 되겠구만?
“음……. 우선, 연무장 바닥은 예전처럼 ‘청강석’으로 복구해 달라고 해주십시오.”
내 말에 시비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린다.
“청강석이요? 본래 이곳 연무장엔 대리석이…….”
난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으흠. 시비장께서 연무장을 자주 안 와보셨군요.”
“네……?‘
“연무장 바닥엔 분명, 청강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
저 표정,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인데 분명.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입니다.”
결국, 시비장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아 참!”
“또 뭘…….”
“저번에 사용인들이 기거하는 숙소가 좀 작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나는 전각 한편에 붙어있는 사용인들의 숙소를 바라봤다.
본래 별채로 지어진 건물이라 사용인들의 건물은 임시로 만들어진 탓에 비좁고 낡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또 뽑아먹을 게 없는지 궁리해 보았다.
“흠, 생각해 보니 제가 쓰는 욕탕도 좀 작은 것 같고. 조리실도 여럿이 오가며 쓰기엔 작다고 하셨지요?”
시비장이 대답 없이 눈만 끔뻑끔뻑한다.
별수 없군.
나는 손을 휘둘러, 전각에 딸린 사용인들의 건물 지붕을 날려버렸다.
콰직.
자, 이제 지붕 없고.
“지, 지금 뭐 하시는…….”
“아뿔싸! 지붕이 사라졌군요! 이걸 어쩌나…… 분명 어제 악가 놈들이 지붕을 막 밟았던 것 같기도 하고.”
“…….”
나는 손으로 턱을 잡으며 고뇌하는 척했다.
“어차피 놈들 잘못이 분명할 테니, 이참에 새로 지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악가에서 나온 사람에게 이야기하십시오.”
시비장이 불안한 기색을 살짝 내비친다.
“……그들이 저희 뜻대로 다 해주겠습니까?”
합당한 걱정이다.
하지만 내겐 어마어마한 무기가 있다.
“아! 혹여, 말을 잘 안 듣는다면 이렇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
“악주평이라고요.”
“그게 뭡니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름이죠.”
최대한 뽑아먹어 주마. 후후.
시비장에게 새로 고쳐야 할 부분들을 모두 이야기한 후. 나는 곧장 학관 대표실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 했다.
“응?”
폐허가 된 연무장 한구석에 처박힌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시체처럼 미동 없는 모습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분명, 어제 전투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는데.’
인형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불온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악가…… 죽여버린다. 진소운…… 가만 안 둬. 날 버리고 가버리다니.”
“…….”
“악가…… 죽여버린다. 진소운…… 가만 안 둬. 날 버리고 가버리다니.”
익숙한 목소리가 염불 외듯 이어진다.
하아.
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냐.
“악가…… 죽여버린다. 진소운…… 가만 안 둬. 날 버리고 가버리다니.”
내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바닥에 드러누워 꼼작도 못 하는 인형이 눈알만 데굴데굴 굴린다.
이내 충혈된 눈알이 내게 고정된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인형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야율극.
놈이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발악한다.
“뭐, 뭐 하냐고? 누가 날 여기다 두고 갔는데……!!!”
“악가 무사들이 안 풀어주디?”
“미친! 그걸 말이라고……!”
여전히 마혈이 집혀 있는 야율극은 밤새 연무장에서 악가를 저주하고 있었던 것.
내가 얘를 잊고 있었네.
어쩐지 뭔가 까먹은 듯했더니.
“쩝…… 어쨌든 마혈을 짚은 것도, 너를 두고 간 것도 모두 악가의 짓이다. 알지?”
난 나름대로 놈을 달래보려 했지만.
부릅!
야율극의 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진다.
“진소운! 기억 안 나나! 너 어젯밤에 노래 부르면서 여길 지나갔잖아!!!”
내가?
아니, 언제?
“내가……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 나를 쳐다보곤 그냥 갔다고!”
“…….”
왠지 모르게 물기가 어린 야율극의 목소리에, 지난밤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어제의 광경.
그래, 분명 연무장 바닥에 볼품없이 누워있는 야율극을 비웃어 주곤…….
[강호의 악이 얼마나 많은가~♩????]
[검 한 자루로 천하를 지키려 하네~♪♩]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 버리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오. 왜 그냥 지나친 거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서운할 만했네.
“그래도 노래는 좀 들어줄 만하지 않았냐?”
“시발, 그걸 말이라고!”
상처 입은 살쾡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야율극을 보며 마혈을 지금 풀어주는 것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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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악주평에게 손대지 않을 거다.”
야율극의 서운함을 조금 풀어줄 생각으로 악가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오히려 녀석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런 더러운 거래를 하다니 실망이다!”
삐져있던 야율극은 어느새 눈동자를 표독스럽게 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그런 거래를 했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냐!”
“물론 아니지.”
“응?”
일순, 녀석이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나는 녀석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나는 야율극의 앞에 쪼그려 앉아 설명을 이어갔다.
“내가 약속한 건 더 이상 ‘내가’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뿐이었잖냐.”
“그,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나는 녀석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 주었다.
“네가 건들지 않겠다는 건 애당초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
야율극의 표정이 요상하게 바뀐다.
좋아하는 건지 분노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도 적당히 해라. 너도 어제 봤지? 악가 사람들 바로 출동해서 나를 감찰각에 끌고 가려던 거.”
“……시, 시발! 난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어차피 유운신공만 완성하면……!”
“그래그래. 안 무섭겠지. 그래도 혹시나 감찰각에서 체포하려고 하면 나한테 오고. 그 정도는 내가 막아줄 테니까.”
야율극이 대답하지 않는다.
뭐야, 저놈 저거 약간 감동받은 표정인데?
한참이나 눈동자를 굴리던 야율극이 겨우 입을 뗀다.
“……어, 어째서?”
“뭐가?”
“어, 어째서 날 도와주냔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내가 언제는 널 안 도와줬냐?”
“……!”
녀석의 표정이 더욱 오묘해진다.
이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야율재와 조금 닮은 구석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유운신공을 빨리 완성하고 악주평에게 복수하려면 작은 원한에 연연할 시간 따윈 없겠지?”
“…….”
눈알을 굴리던 야율극이 조금은 누그러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제 나를 무시하고 노래 부르면서 간 걸 잊어라. 이 말이냐?”
거참, 애새끼 역시 눈치 한번 빠르네.
나는 뭔가 야율극과 처음으로 통한 기분에 외쳤다.
“너도 말귀를 알아듣는 놈이었구나!”
“…….”
하지만 야율극은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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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한 애새끼는 약속과 달리 마혈이 풀리자마자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별수 없이 놈의 수혈을 짚어 잠재웠다.
얕게 짚긴 했지만, 곧장 잠에 빠져드는 걸로 봐선 마혈이 짚였던 밤새 한숨도 자지 않은 것 같은데.
‘독한 놈…… 잘 법도 하건만. 밤새 저주하고 있었다니.’
아마 오늘 하루 정도는 그냥 내리 잘 듯싶었다.
‘그래도 뭐, 수업 결석을 그렇게 신경 쓰는 놈도 아닐 테니까.’
그렇게 학관 대표실로 향했다.
“진 대표님.”
가는 길에 장우재를 만났고.
뒤이어 남궁선화와 성모란, 은호와 홍사련까지 합류했다.
“넌 얼굴이 어째 죽어있냐?”
혈색이 영 좋지 않은 은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화성이 한탄하는 걸 날이 샐 때까지 들어줬습니다.”
“한탄?”
“자기가 간자가 아니라고요.”
은호의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키득거렸다.
은호만은 표정을 펴지 못한 채 말했다.
“대사형, 자꾸 간자라고 놀리지 않으면 안 됩니까? 앞으로 계속 저 붙잡을까 봐 무섭습니다.”
“쯧. 자꾸 귀찮게 굴면 그냥 걷어차 버리든가.”
내 과격한 대응에 은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제가 남화성을 혼자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또 아닌 거 같고요.”
얘넨 또 어느새 이렇게 친해진 거래.
대표 간부단이 있는 건물에 다다르자 남화성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자! 일찍 나왔네.”
“…….”
남화성과 은호의 얼굴이 구겨지건 말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응?”
길가에 일단의 학관생들이 모여있었다.
그러곤 나를 보자마자 곧장 이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표님!”
나를 보자마자 포권을 쥐는 학관생들.
면면을 살피자,
일부는 정도회의 인원.
일부는 장우재의 친구들.
일부는 백팔봉의 인원들까지.
조합이 요상했다.
대체 뭐지, 이 조합?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포권을 쥐어 답하자, 먼저 나를 불렀던 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저희가 갑자기 찾아와 놀라셨습니까?”
“뭐, 놀랄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사실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그간의 실례를 사죄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가 그간 대표님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을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자, 다른 이들도 저마다 헛기침을 하거나 얼굴을 붉힌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면면이 다시금 보인다.
누군가는 속가문파의 제자로서,
누군가는 힘없는 문파의 제자로서, 학관에 와 있는 이들.
자연스레 주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선 자들이다.
“다들 사정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해합니다.”
항상 그랬다.
힘이 없는 자들은, 못하고 상황에 휩쓸린다.
전생에서의 나 역시 그랬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나약한 이들이 용기를 내어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디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의 용기가 기뻤다.
그러나 내 위로에도 그들은 쉬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간 저희의 잘못된 행동은 앞으로 두고두고 갚도록 하겠습니다.”
학관생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조금 이상한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일이요?”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새로운 대표 간부단이라는 이들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참석하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새로운 대표 간부단이라니요?”
학관 대표가 여기 버젓이 있건만, 무슨 새로운 대표 간부단이 있다는 거지?
그때,
“이(二) 학기 첫 번째 학사 일정 완비되었습니다!”
“두 번째 학사 일정 ‘명사 초대’ 후보 명단 나왔습니다.”
“예산안 통과를 위해 만통부에 다녀오겠습니다.”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린 마치 학관 대표단인 듯 일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아니, 이게 무슨…….”
“대체…… 누구길래?”
이들의 옷가지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장우재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백도회군요…….”
“백도회요?”
저놈들이 갑자기 왜 지랄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