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의자 뺏기(4)>
사람이 너무 어이없는 광경을 보면 몸이 절로 반응한다던가?
지금 내 심경이 그랬다.
“이거 아주 웃긴 새끼네. 누가 누구한테 뻔뻔하다는 거야?”
남궁기표를 밟고 있는 와중에도 어처구니가 없다.
“지, 진소운……!”
목이 밟힌 채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남궁기표.
나는 발에 힘을 한 차례 더 주었다.
“선화 소저, 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그냥 듣고만 있는 겁니까?”
“…….”
내 말에도 여전히 고개를 쉬이 들지 못한다.
나는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꼭 이놈 말이 진짜처럼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고개를 드는 남궁선화.
그녀의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는 듯했다.
“혹 전에 말한 ‘명사 초대’ 때문에, 이놈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 한 겁니까?”
남궁선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 공자님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오시면 더 좋을 듯해서…….”
나를 향한 저 투명하고 순수한 호의.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선화 소저. 전 저 때문에 소저가 이런 얼간이한테 욕보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어, 얼간이……? 진소운! 당장 이거 놓지 못하겠나! 커헉!”
버둥거리는 남궁기표의 얼굴을 한 번 더 차주고 말을 이었다.
“뭐, 절대 그런 일은 없겠지만, 대표직을 잃으면 잃었지, 전 선화 소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길 원치 않습니다.”
“…….”
내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그녀도 내 눈을 마주 바라본다.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제겐 대표직 같은 것보단 남궁선화 소저가 더 중요하니까요.”
“……!”
내 입장에선 대표직 못지않게 남궁선화와 관계를 긴밀하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차후 정마대전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선, 남궁세가의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하니까.
파쇄식을 전해 남궁세가가 반파될 뻔한 상황도 막아줬는데, 정작 정마대전에서 그 빚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나.
“저, 정말요?”
남궁선화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나를 바라봤다.
“당연하지요.”
남궁세가 직계, 절대 놓지 못하지.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화악.
남궁기표의 멸시를 참아왔던 그간의 수치심이 몰려왔는지,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오르는 남궁선화.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족제비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백도회 놈들쯤은 쉽게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조, 족제비라니! 진소운 나한테 한 소리냐!”
나는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놈을 가벼이 무시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놈한테 굴욕당하는 일이 없겠다 약속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귀까지 붉게 물든 남궁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다.
“좋습니다. 그럼 저랑 같이 가시지요.”
“네?”
“제가 백도회를 어떻게 정리할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자 제압당해 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남궁기표가 벌떡 일어났다.
“진소운!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날 짓밟고 그냥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챙.
얼굴에 발자국이 남은 남궁기표가 씩씩거리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감정에 사로잡힌 이는 저렇게 늘 그른 판단을 하는 법.
나는 턱 끝으로 놈을 가리키며 남궁선화를 바라보았다.
“아까 들은 나쁜 이야기는 털어내셔야죠?”
내 말에 그녀가 눈을 빛낸다.
“네.”
남궁선화가 돌아서자, 남궁기표가 차갑게 웃는다.
“선화! 진정 가문을 등질 생각이더냐?”
놈의 도발에도 그녀는 꿈쩍하지 않는다.
“전 가문을 등진 적 없어요.”
그러곤 나를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오히려, 이는 가문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죠.”
“어리석은!”
남궁기표가 창궁무애검법을 펼치며 짓쳐들어오자, 남궁선화의 백옥 같은 손이 앞으로 뻗어나간다.
파팡.
“흐억……!”
창궁운위검법을 쓸 필요도 없었다.
천뢰삼장에 직격당한 남궁기표는 눈알을 뒤집으며 오(五) 장이나 날아가 기절해 버렸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좋군요.”
이래야 내 간부지.
#
“여긴…….”
진소운을 따라 도착한 곳.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남궁선화의 입에선 의문이 터져나온다.
“기숙관이잖아요.”
무림학관은 한 학기마다 성적순으로 기숙사를 배정한다.
때문에 상위 성적을 석권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정도회와 백도회에 몰려 있었고.
특히 정도회 인원들은 자신들이 이(二)인실 기숙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그것도 정도관.”
그렇기에 이인실 기숙관은 종종 정도관이라 불리곤 했다.
“맞습니다.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거든요.”
“만날 사람이요?”
의아해하는 남궁선화를 바라보는 진소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게 될 사람이지요.”
이인실 기숙관으로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진소운과 남궁선화의 등장에 사람들은 당황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 다 정도관과는 인연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두 사람을 말리거나 막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되려 눈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남궁선화도 기억하고 있다.
바로, 사천에서의 일을 함께 겪었던 이들.
호의가 어린 눈빛들을 모여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소운은 정도관 안을 활보했다.
“흠…… 분명 사백사 호라 했는데.”
계단을 거침없이 올라선 진소운은, 한 기숙사 앞에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흡사 채권자가 채무자를 찾아온 듯한 기세.
이윽고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누가 이리 소란을…….”
대답과 함께 조용히 문이 열리고, 승복을 입은 이가 나타났다.
“지금은 수행 중이오니 다음에 방문하여 주시길…….”
“야! 안에 일각 있지?”
“…….”
거침없는 말투에 승복을 입은 이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떨린다.
제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강호에서의 배분이 낮다 한들, 역근경을 익힌 일각의 입지는 보통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헌데 그런 불력을 쌓은 이를 동네 왈패처럼 부르다니.
소림사 제자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며 입을 열었으나.
“진소운 학관생. 너무 무례하군요. 지금 스님께선 수행 중이신…….”
진소운은 파리 쫓아내듯 손을 휘휘 저었다.
“됐고. 수행하기 전에 업보나 청산하라그래.”
“……업보?”
“그래 어마어마한 업보. 그거 청산 안 하면 극락세계 가기는 힘들 거라고.”
소림사 제자의 두피에 미세하게 주름이 잡힌다.
“……지금 부처님을 욕보이시는 겁니까?”
진소운은 그 주름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말이나 전해, 얼른. 급하니까.”
“…….”
눈가를 파르르 떨던 학관생은 문을 닫았다.
“진 공자님. 지금 대체 무슨…….”
남궁선화는 당금 일어난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각은 지금 정도회의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정도회를 이끄는 존재나 다름없다는 이야기.
만약 진소운이 대표직을 맡지 않았으면, 이번 무림학관의 대표는 일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도회 또한 일각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
그런데, 그런 일각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점차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진소운이 일각을 찾아왔는데?”
“뭐? 그자가 왜?”
다른 기숙사들에서도 하나둘 머리를 내밀며 경계 어린 시선을 던진다.
사천에서의 일로 진소운에게 호의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이들이 다시금 떠나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남궁선화의 마음에 괜한 불안이 일어나려는 순간.
끼익.
문이 열리고 기숙사 내부가 드러났다.
한가운데에서 일각이 등을 돌린 채 불경을 외고 있었다.
소림사 승려가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들어오시지요.”
탐탁지 않아 하는 승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불당에서나 맡을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진 시주.”
이윽고 천천히 돌아앉은 일각이 미소를 띠며 진소운을 바라본다.
하지만 진소운은 똥이라도 씹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 시주 아니라니까.”
일각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합장을 한다.
“시주께서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혹 부처님 뜻에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부처님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좀 지금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서 말입니다.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막 걱정하고 그러네요.”
일각이 짐짓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지요?”
“참나, 모른 척 말고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흠……. 당최 모르겠군요.”
일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소운이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선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일은 정도회 때문이 아닙니까.”
일각은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그 무슨…… 백도회와 정도회는 협조는 할지언정 서로 긴밀히 영향을 끼치는 사이는 아닙니다.”
진소운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그려진다.
“역시나 알고 있었군요.”
“크흠…… 큼.”
“모른 척 시치미를 떼다니. 부처님 뵙기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진소운의 비아냥에 옆에서 지켜보던 승려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진 대표라지만, 감히 그런 소릴……!”
하지만 일각이 손을 들어 승려의 입을 막았고, 진소운 또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연신 일각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 시주, 진 시주는 그 입 때문에 언젠가 경을 칠 겁니다.”
“내 존재 자체가 이미 경을 칠 존재니, 되려 입 때문에 경을 친다면 저로선 억울할 일이 없지요.”
일각은 도저히 말로썬 당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길게 한숨을 내빼었다.
“아무튼 이번 일은 정도회가 어찌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애당초 제갈정기 그 친구가 저의 이야기로 움직일 친구도 아니고요.”
“아,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일각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오른다.
“응? 그럼 무슨…….”
진소운이 여유로운 몸짓으로 침상에 기대며 말했다.
“대표 간부단에 들어오십시오.”
“흡!”
“……!”
승려와 남궁선화는 진소운의 말에 토끼 눈을 떴다.
아무리 간부 자리라 하지만 일각이 정도회 내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설사 제갈정기가 진소운을 몰아내고 대표직에 오른다 해도, 일각이 백도회의 대표 간부직에 들어갈 일은 절대 없을 걸 생각하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일.
“그게 무슨 개뼈다구 같은…….”
모두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승려의 거친 표현에 남궁선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소운은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애당초 정도회가 사천에서 그 삽질을 안 했으면, 백도회가 저렇게 나설 일도 없었겠죠. 안 그렇습니까, 스님?”
“……끄응.”
진소운이 손가락으로 일각과 승려를 콕콕 집으며 말을 이었다.
“정도회가 혈.교.의 암계에 죽는 걸 제가 그저 방치했다면, 백도회가 저렇게 빈자리를 꿰차려 나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스님?”
진소운의 지적에 일각의 반질반질한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땀방울이 아주 유려하게 또르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진소운은 쐐기를 박았다.
“소림과 점창이 맞닥뜨린 철.강.시.를 상대하지 않았으면, 백도회가 저렇게 나설 일은 없었을 텐데요.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까, 스님?”
“…….”
여전히 대답을 않는 일각을 진소운이 더욱 몰아붙인다.
“부처님 말씀에…….”
“그만…… 그만하시지요, 진 시주. 진 시주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해했습니다.”
씨익 웃고 있는 진소운과 달리, 일각은 마치 커다란 번뇌에 휩싸인 듯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 시주…… 차라리 정도회로서의 대표성을 가진 다른 이가…….”
“불가! 안 받아줄 겁니다!”
“아니면 정도회가 진 시주를 정식으로 지지한다면…….”
“불가! 허울뿐인 지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진소운의 단호한 태도에 일각이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 시주…….”
하지만 진소운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간 내부적으로 대표직 하나 가지겠다고 얼마나 혼란이 많았습니까.”
진소운은 의도적으로 일각의 핵심을 건드렸다.
“그게 진정 ‘부처님을 위한 길’이 맞습니까? 이제 대국적인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
침상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진소운을 올려다보던 일각이 파르르 눈꺼풀을 떨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일각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헉!”
“스, 스님! 그게 무슨!”
주위에서 어떤 탄성을 지르건 말건, 진소운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일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각이 그 손을 마주 잡는다.
“진 시주…….”
“그 시주라는 말은 좀 빼주시면 좋겠고. 앞으로 잘해 봅시다.”
“아미타불.”
#
폭풍 같은 진소운의 방문이 끝나고.
정적이 가라앉은 방 안에선 일각이 외는 불경만이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수행 중일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지만, 승려는 도저히 방금 전의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님……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눈을 감고 불경을 외던 일각이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러곤 승려의 심경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진소운의 대표단에 왜 들어갔는지 말입니까?”
“……네. 너무 섣부른 선택이었습니다. 정도회가 그에게 빚을 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각 스님께서 그 자리에 가는 것은 정도회의 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나 또한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분이 어찌하여…….”
일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승려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쏟아지는 광채에 압도된 승려는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피할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일각은 여전히 요지부동의 자세로 낮게 읊조렸다.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일각은 먼 산의 너머를 궁금해하는 수도자처럼, 시선을 멀리 던진다.
“그가 ‘깨달은 자’인 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
승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무슨…….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어찌 그리 돈과 보상만을 밝히는 천박한 이에게 그런…….”
“본사의 고승이셨던 청원께서도 평생을 걸인과 같은 생활을 하셨었지요.”
“……끄응. 하지만 그분은…….”
일각이 승려의 말을 끊었다.
“물론 그분에게도 과오가 있습니다. 본사의 신물인 탕마사령주를 잃어버리시긴 했으나……. 그렇다 한들 그분의 깨달음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자 승려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일각의 선택이 그저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함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아니, 그보다 더 큰 것을 위한 선택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럼…… 스님께선 그자가 역사를 바꿀 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한 사람의 삶이 바뀌면 그것을 운명이라 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의 운명이 바뀌면 역사라 했다.
일각은 그가 수많은 이의 운명을 바꿀 이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물음에, 일각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일각은 잠시 과거를 떠올리듯 두 눈을 꼬옥 감았다.
그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사천에서의 진소운은 분명 광채를 발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평범한 이에게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일각은 감았던 눈을 다시 천천히 떴다. 그의 눈빛은 깨달음에 갈급한 수도자의 눈빛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가 어디까지 나아갈지입니다. 그리고…….”
그가 승려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그것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건 바로 그의 옆이 아니겠습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일각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얼마나 큰 고난을 겪게 될지 잘 알면서도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아미타불…….”
승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불호를 외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