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의자 뺏기(5)>
“음…….”
“어…….”
“커흠…….”
장내에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정작 어색함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가만히 앉아 염주를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깨부수지 말라고 했더니…… 심장을 뜯어 온 격인가?”
남화성의 거친 감상에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진소운을 바라본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들.
그러나 진소운은 일각의 반짝이는 머리를 한번 쳐다본 뒤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다.
“뭐, 그렇게 됐으니까.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세요.”
“…….”
한참 부족한 설명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진소운.
일각이 대표단의 간부로 오게 된 상황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은호는 확신에 찬 얼굴로 일각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측은지심이 담긴 눈으로.
“스님……. 혹시 대사형이 간악한 술수로 스님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진 않았습니까?”
승려에게 죄악을 저질러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았던 은호가 공손히 물었지만, 정작 답변은 진소운에게서 나왔다.
“내가 무슨 협박범이냐……? 아니, 뭐 필요하면 협박도 하긴 하지만…….”
일행들이 저마다 ‘알긴 아네.’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진소운의 매서운 눈초리에 헛기침만 해댄다.
“어쨌든 저쪽은 자신의 업보를 청산할 겸 ‘자의적으로’ 들어온 거니까. 안심하라고.”
왜 협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안심을 해야 하는 거지?
간부단 일원들은 본질적인 의문은 꾹 삼킨 채, ‘저 말이 사실이냐?’는 시선으로 다들 일각을 바라본다.
하지만 정작 일각은 번뇌를 쫓으려는 듯 빠르게 염주알을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 참! 그리고 간자라고 의심할 필요 없어요.”
당연한 소릴!
정도회가 아무리 등신짓거리를 한다 한들 일각 같은 인물을 간자로 들일 이유가 있겠나.
염주알을 굴리던 일각의 손가락이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나도 자의로 들어온 건데 왜 난 맨날 간자라고 의심하는 건데?”
남화성의 질문에 진소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넌 저 정도로 거물이 아니잖아.”
“뭐, 뭐?”
“억울하면 거물이 되든가.”
“시부럴!”
남화성이 얼굴을 구기며 방을 나가버리자, 은호는 ‘또 시달리겠군.’이라 혼잣말을 하며 어깨를 축하니 늘어뜨렸다.
이렇듯 진소운의 대표단이 놀란 것과 마찬가지로, 일각의 간부단 합류는 학관 내에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다.
“일각 스님이 간부단에 들어가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대표 단일화를 잘못 들은 거 아닙니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일각 스님이 뭣 때문에 진소운과 단일화를 한답니까!”
애당초 일각은 정도회장이라는 상징성을 넘어 현 학관 세대의 대표성을 가지는 존재였으니까.
자신의 소속을 뛰어넘어 일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학관생들이 많았던 만큼, 일각의 행보는 그들에게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일각 스님이 진소운을 인정한 거라 봐야겠지요?”
“인정하는 걸 넘어서 본래 진소운이 현 학관 대표이지 않았습니까?”
“그럼 정도회도 진소운 대표를 인정했다고 봐야겠군요?”
일각의 갑작스러운 간부단 합류는 정도회 내부에도 혼란을 일으켰다.
일각의 선택을 지지하는 자들과 비난하는 자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우리 정도회가 진소운을 지지한다고 다들 여기는 분위기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일각 스님께서 대표단에 들어가셨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뇨! 이러다간 우리 정도회의 기지가 꺾여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럼 가서 일각 스님 머리채라도 잡고 끌고 오시든가.”
“아니, 없는 걸 어떻게 잡……!”
마교도보다 더한 모진 말들까지 오고 갔다.
정도회가 사천에서 삽질을 하면서 정도회 내부에서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정도회의 기득권들은 몸을 사리느라 하나로 뭉쳐 활동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일로 백도회가 이득을 얻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도회의 빈자리를 귀신같이 파고들어 정도회를 흔들어 볼까 생각했던 백도회들은, 일각의 돌발행동에 화들짝 놀라서 어버버하는 행동을 보였고.
“이건 정도회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백도회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정도회와 백도회는 서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편으론 동반자이기도 하오. 갑자기 정도회가 백도회와 척을 질 이유가 뭐가 있겠소!”
“그렇다면 도대체 일각이 움직인 이유가 설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진소운에게 머리채라도 잡힌 것 아니겠소!”
”아니, 잡힐 머리채가 어디 있…… 크흠.“
일각의 행동이 내포한 정치적 견해를 해석하느라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머리채를 두고 말이 오가는 상황은 생각지도 못한 채, 일각은 대표단실에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진 시주…… 그럼 난 여기서 무슨 일을 맡아야 합니까?”
“일은 무슨, 스님이 속세의 일을 어찌 안다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제가 하는 말에 졸린 닭이 된 마냥 고개만 끄덕끄덕 해주면 됩니다.”
“…….”
진소운은 장우재가 포섭한 인원들에게 하나하나 일을 나누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통부에 가게 되었다는데, 여간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
다른 이들이라고 한가한 건 아니었다.
기존 간부들은 각자가 맡은 일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고 있는 와중이었고, 일각 본인만이 아무런 일도 배당받지 못해 망부석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는 상태.
아무리 면벽 수련에 이골이 났다 한들, 일하는 사람 옆에서 가만히 있는 것만큼 고역인 일이 어디 있던가.
일각은 결국 먼저 나서버렸다.
“어차피 간부단에 합류하기로 한 거 제대로 일을 배워보겠습니다. 진 시주께서 필요한 일을 알려주시지요.”
이에 진소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꺼내 든다.
“뭐,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신다면야 저도 어.쩔.수.없.이. 일을 줘야겠네.”
“이게 뭡니까?”
“백도회에 가입된 문파들 중에서 우선적으로 우리 대표단에 끌어들여야 하는 곳들입니다.”
일각이 서류를 받아 들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간자 일을 하라는 겁니까?”
일각은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진소운을 바라봤다.
“무슨 간자씩이나, 그냥 가서 이야기나 좀 나누고 호의를 얻어 백도회에서 나오게 하면 되는 거죠.”
“……그걸 보통 ‘세작’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호오……!”
진소운이 놀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리 속세의 일에 대해서 잘 아시다니…….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맡길 수 있겠군요. 아주 든든합니다! 하하하.”
이거 뭐지? 왠지 낚인 기분인데…….
앙천광소를 터트리는 진소운을 보며 일각은 과거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보고 진소운을 ‘깨달은 자’라 착각한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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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식은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귀에 들려온다.
가령 일각이 진소운의 대표단에 들어갔다는 소식 같은 것 말이다.
‘진소운…….’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학관 식당에서 진소운이 일각이 받아 온 반찬 중 고기들만 쏙쏙 골라내 집어먹는 꼬라지를 보고 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당연한 의문이 따라온다.
진소운은 어떻게 일각을 대표단에 합류시킨 것일까?
쉬이 떠올릴 수 있는 바로는 약점을 잡혔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는 말이 안 된다.
진소운이 아는 것을 백도회가 모를 리 없으니까.
백도회와 정도회는 학관 내에서 협력을 많이 하긴 하지만, 결국 무림맹에 들어가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에 서로 간 흠결을 잡히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뼈에 새겨져 있는 본능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보통 사람도 아니고 일각이다.
그는 설사 협박을 받는다 한들 움직일 인물이 아니다.
결국 해소되지 않는 의문은 방향을 틀어 상대를 비난하는 행동으로 발현된다.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각이 저리 움직이는 이유는 백도회가 대표직을 차지하는 상황이 싫기 때문입니다.”
제갈정기의 단언에 백도회원들은 당연한 의문을 품는다.
“그렇다고 한들 일각이 진소운의 대표단에 합류하여 얻을 이득이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너무 당연한 질문에 말문이 막히기엔 제갈정기는 너무 똑똑했다.
“정도회는 사천의 일로, 대표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를 얻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무능해서가 아닌, 진소운이 뛰어나서 대표직을 유지하게 된 것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발악 아니겠습니까.”
제갈정기의 의견에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각이 직접 움직여야 할 정도로 우리 백도회의 위세가 무섭다는 거겠지요.”
이젠 백도회 임시 간부들의 얼굴에 조금씩 이채가 어리기 시작한다.
제갈정기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결국 백도회가 진소운으로부터 대표직을 탈환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일각이 백도회의 위세를 두려워했기에 돌발적으로 진소운의 대표단에 합류한 것이라는 해석에, 임시 간부진은 동기부여가 되어 자신들이 개최하는 행사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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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여유를 가장한 제갈정기의 속은 사실 혼란스러웠다.
‘참으로 예상이 안 되는 자군.’
진소운의 행동은 제 머리론 짐작하기 어려웠다.
단지 일각의 사태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과거, 그가 세가에서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금옥에 갇힌 제갈천기를 꺼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기관진식과 같이 천박한 기계 따위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아이를 데려다 무얼 하겠단 말인가?
더 나아가 진소운이 할아버지인 제갈소명에게 입관패를 받았다는 사실은 의문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자신의 핏줄인 손자들에게도 절대 주려 하지 않았던 입관패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삼류문파의 제자에게 주다니.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제갈소명이 절대 그럴 리 없다 생각했지만, 정작 입관패를 받은 그가 모용재화에게 입관패를 넘겨 그를 합격시켰다는 내막을 들었을 땐 황당함마저 느꼈다.
그야말로 어떤 일을 벌일지 예상이 아예 되지 않는 인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벽력탄 같은 존재.
지금 제갈정기에게 진소운은 딱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예측 불가한 인간이 예상치 못한 때에 자신을 찾아왔다.
“일각 스님을 간부단으로 합류시켰다지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멍하니 칠색화가 담긴 찻잔만 바라보는 진소운.
“……응? 아, 예. 그렇게 되었지요.”
역시나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다.
“좋으시겠군요.”
“좋긴요. 이제 회식을 주루에서도 못 하고, 식사 자리에서도 고기를 빼고 주문해야 하니 여간 신경 쓸 일이 많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인간이다.
“일각 스님은 어떻게 설득한 겁니까?”
“설득이요?”
“일각 스님이 돈에 움직일 사람도 아니고, 뭔가 약점이라도 잡은 건가요?”
“호오, 그쪽은 사람을 설득할 때 약점을 꼭 잡는가 보군요.”
“그게 아니라면 움직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진소운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인다.
“달리 한 건 없습니다. 그저 함께해 달라 이야기했죠. 뭔가 동기가 되었다면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제 ‘인성’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미친…….”
“응?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제갈정기는 그의 헛소리에 말리지 않으려 애쓰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음, 그러게요? 오늘은 어떤 일로 왔을까요?”
여전히 눈은 칠색화가 출렁이는 찻잔에 고정한 채, 선문답을 제시하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진소운.
그 모습은 제갈정기로 하여금 제 생각을 확신하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예상이 전혀 되지 않는 인간에게 권력이 몰렸다간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공명정대한 대표가 있어야 학관은 보다 나아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제갈정기는 세가에서 만들어 준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었다.
칠성칠금진.
천하의 이름난 세가라면 반드시 설치하는 제갈세가 최강의 기문진법.
천하는 이 칠성칠금진이 설치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두고 거대 방파냐 아니냐를 구분하곤 했다.
그리고 지난 이십 년간 제갈세가 내의 장로원과 기술원에 속한 최고의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새로운 진법이 곧 발표된다.
양의팔괘만상진.
기존 칠성칠금진이 단지 오천 개 정도의 진로를 가졌다고 하면, 양의팔괘만상진은 무려 만이천 개의 진로를 가졌다.
그야말로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죽음의 절진.
혹자는 무량불괴멸혼진으로 인해 제갈세가의 신화가 깨진 게 아니냐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관행사를 통해 증명되지 않았던가.
무량불괴멸혼진은 인간이 조절할 수 없는 죽음의 절진이다.
적을 막아내기 위한 기문진이 아군마저 삼켜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꼴.
그렇기에 아직도 천하는 칠성칠금진을 계속 찾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흑도 무림이 연맹을 결성하고, 녹림맹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가뜩이나 긴장감이 올라간 강호에 혈교까지 나타났다.
세상은 칠성칠금진보다 더 강력한 기문진의 등장에 호기심을 감출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을 시연하는 학사 행사에는 각 문파의 대표격이나 마찬가지인 학관생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론이 움직이면 교두들 또한 진소운을 규탄하는 데 손을 보태줄 수 있을 터.
제아무리 진소운이 이제 와서 어떤 발악을 한다 해도, 백도회의 승리는 확실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그 비열한 얼굴에서 얼빠진 표정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제갈정기는 여전히 칠색화가 담긴 찻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진소운을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
행사 일정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백도회는 전격적으로 자신들이 개최하는 행사의 정체에 대해 밝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갈세가가 새로이 선보이는 기문진.
아직 천하의 그 어느 곳에서도 선보이지 않은 새로운 기문진의 등장에 학관 내는 물론이고, 가까운 무림맹, 더 나아가서 강호까지 들썩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떻게서든 양의팔괘만상진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애가 달아 있었고, 저마다 연줄을 동원하여 양의팔괘만상진에 대해서 캐내려 했다.
이쯤 되자 학관생들은 자신의 사문으로부터, 혹은 가까운 친인척으로부터 받는 전서의 숫자가 대량으로 늘어났다.
반드시 누구보다 빠르게 제갈세가의 새로운 기문진 정보를 알아오라는 압박이 거세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으니.
“백도회의 행사가 진 대표의 행사 일정과 겹치는군.”
“진소운 대표가 형산파를 정식으로 초대해서 파사와 제령에 대한 강의를 준비했다고 하던데.”
“나도 이번에 정도회의 얘기를 듣고 강의 들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둘 다 너무 훌륭한 행사였지만,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열리는 행사에 모두 참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한쪽은 자신의 목숨과 관련된 행사였고, 한쪽은 자신의 사문의 존폐와 관련된 행사.
이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상황은 학관생들을 고뇌에 빠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학관 전체가 술렁이던 그 시각.
“헉헉! 시부럴. 왜, 왜, 나만 삽질을 하고 있는 거냐?”
“뭔 소리야, 나도 하고 있잖아.”
마장 전체를 돌며 땅을 파던 남화성이 자신보다 더 많은 구역의 땅을 파놓은 진소운을 보며 물었다.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냐?”
“안 되지, 새끼야! 저녁 먹고 싶으면 빨리 파!”
진소운의 즉답에 남화성이 답답하다는 듯 되묻는다.
“아니, 그러니까 백도회가 새로운 기문진 체험 행사를 열겠다고 하지 않냐. 너도 최소한 전에 설치했던 무량불괴 뭐시기 진이라도 펼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무량불괴멸혼진 한번 펼치는 데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가는지 알아?”
“그렇다고 이딴 구궁미혼진 따윌 보고 사람들이 우리 행사에 오겠냔 말이다.”
진소운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자고로 사람은 덤으로 주는 물건에 약한 법이야.”
“덤?”
“그래. 덤. 형산파의 행사는 기본, 지금 만드는 기문진의 참여는 덤.”
“…….”
구궁미혼진 따위의 기문진을 과연 사람들이 좋은 덤이라고 생각할까?
평소 머리 쓰는 일을 싫어하는 남화성이 모처럼 뇌를 짜내며 곰곰이 따져봤지만.
아무래도 아니올시다.
당장 자신만 해도 무림맹에 가면 배울 수 있는 파사와 제령을 미리 공부하느니, 제갈세가에서 만든 새로운 기문진을 경험해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리고 여론은 남화성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듯 보였다.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지?’
마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남화성에게 핀잔이 날아온다.
“뭐 해? 빨리 삽질 안 하고.”
남화성은 더 이상 구궁미혼진이나 진소운의 계획에 의구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더욱 시급한 실제적인 의문이 제 눈앞에 있기에.
“그러니까 내 질문은 그거다. 왜 나만 삽질하고 있는 거냐? 대표단에 사람도 그렇게 많은데.”
“그 사람들은 일하고 있잖아.”
“나, 나도 일한다!”
“간자 주제에 일은 무슨…… 빨리 삽질이나 해.”
“…….”
삽질이 정말 삽질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남화성은 저도 모르게 진소운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흣차.”
열심히 삽질하는 진소운을 바라보던 남화성은, 사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얄팍하게 고민하기보단 그저 그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최소한 그를 믿어서 손해 난 적은 없었으니까.
“간자! 빨리 삽질 안 해!”
물론 자신이 받는 처우는 몹시 부당하긴 하지만.
“시, 시부럴! 간자 아니라고!”
“열심히 안 하는 거 보니까 간자 맞네.”
“…….”
그럼에도 차마 삽을 던져버리진 못하는 남화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