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07화 (207/357)

207. <의자 뺏기(6)>

“역시나 혈교는 혈교인가?”

사천에서 올라온 피해 보고서를 받아 든 제갈소명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파견 전 예상했던 피해 수치엔 못 미치는 숫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피해는 뚜렷하다.

더구나 동진을 멈춘 채 미적거리던 혈교가 다시금 동진을 시작한 뒤부터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가의 독왕은 독인대를, 청성의 장문인은 정예들을 이끌고 참전했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끌어내기엔 철강시가 너무 전략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래도 환술에 대한 피해가 그나마 적어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맹주원의 말에 제갈소명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혈교의 정체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사천의 파견될 새끼들이 진작에 제령구를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형산파의 복마부가 그나마 혈교의 환술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파견 전 예상했던 피해 수치를 가뿐히 넘겨버리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터.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진소운 그 녀석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내다본 것일까.

제갈소명은 언제나 태연한 표정의 진소운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아마 이대로만 혈교가 마무리된다면, 무림맹의 힘은 유지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잡철이 섞인 현철을 담금질하듯 더 강맹한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면 밀도는 더욱 탄탄해질 테니.

아까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던 맹주원.

“정말, 이런 장한 일을 했는데 뭔가 상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는 제갈소명의 시선이 제게로 향하자,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가령 만.통.부 예.비.합.격 같은 거 말입니다.”

“…….”

물론 진소운은 이번 사천 혈사에서 어마어마한 공을 세운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에 그만큼 커다란 과(過)도 저질렀다는 점.

악주평의 관절이 움직이지 말아야 할 각도로 움직였다지, 아마?

사정을 들어보니 그럴 만은 했다만, 그래도 왜 이놈은 이토록 뒤가 없이 행동하고 다니는 걸까?

학관장이 올린 보고서를 보자니, 산동악가에서 벌써 진소운을 사적으로 제재하려 했었단다.

그것도 감찰각에 끌고 가서.

‘악가 놈들, 적반하장도 정도껏이어야지. 하여간 멍청한 놈들, 쯧.’

물론 이 일로 감찰각주를 만통부로 소환해 탈탈 털어내긴 했지만,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소운이 흑도의 간자가 되어버릴 뻔했다.

‘아이고 머리야…….’

자신이 총군사가 된 이래로 학관생 하나 때문에 이렇게 골치를 썩이어 본 적이 있던가.

그럼에도 녀석을 포기할 생각은 일절 없었다.

“더구나 진소운은 사천에서 학관생들을 구하고 혈교를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런 자질 때문.

현재, 무림맹의 정예 병력들조차 사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진소운은 달랑 몇 명만 데리고 사천에 들어가, 학관생들을 싸그리 긁어모아 무사히 도망쳐 왔다.

그 와중에 혈교의 환술을 방비할 방법을 강구해 냈고, 철강시를 상대했고, 더 나아가 소교주의 대가리까지 잘라와 혈교의 동진을 멈추게 했다.

믿기지 않지만, 모두 진소운이 해낸 일이다.

그의 행보를 보면, 혼자 다른 세계에서 노는 모습이다.

무림맹의 정예병들 사이에서도, 진소운의 활동 보고서가 과장된 건 아닌지 물어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니까.

애당초 학관생 하나가 휘젓고 다녔던 전장에서 자신들이 고초를 겪으리라곤 생각하진 않았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사이.

공기와 소리를 적절히 배합한 외침이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예비 합격서! 예비 합격서! 예비 합격서!”

옆에서 시위하듯 연신 합격서를 외치는 맹주원을 보며, 제갈정기는 그의 목울대에 손날을 날리고픈 충동을 느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워라!”

애당초 예비 합격서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던가.

그따위 것을 발급했다간, 앞으로 맹의 모든 각과 당들이 마음에 드는 학관생에게 마구 예비 합격서를 발급하여 학관생들을 선점하려 들 것이다.

만통부 최고 인재인 맹주원도 이러한 부분을 모르진 않을 터.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진소운을 빼앗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뭐? 뭔 소리야, 맹주전에선 손대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맹주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맹주전만이 아닙니다. 이번 사천 관련 보고서가 맹 전체를 돌지 않았습니까. 그 보고서를 본 무각과 행각들 모두가 진소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

잠시 말을 멈춘 맹주원의 눈빛이, 아주 잠깐 살기로 번뜩인다.

“넋 놓고 있다간 빼앗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잊고 있었다. 저놈도 미친놈이었지…….

“아무튼 안 되는 건 안 돼! 그리고 애당초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제가 스스로 만통부로 기어들어 오겠지.”

“……진짜 뺏길지도 모르는데…….”

시무룩해하던 맹주원이 다른 보고서를 올린다.

제갈소명은 새로운 보고서를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갈세가에서 학관에 방문했다고?”

“네. 백도회가 준비하는 행사를 위해 당도했답니다.”

“……멍청한 놈 같으니.”

“네?”

제갈소명이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자, 맹주원이 조심스레 입을 뗀다.

“어떻게……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까요?”

“백도회 놈들이 제 돈을 써서 기문진을 시연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

“하지만 이번엔 진소운이 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대표에서 실각하면 학관에서 쫓겨나게 되지 않습니까.”

확실히 지금 천하가 양의팔괘만상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끓어 오르고 있긴 했으니까.

진소운에겐 정말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제갈소명 역시, 금번 제갈세가에서 새로이 개발한 양의팔괘만상진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는 직접 확인했던 바다.

하지만.

“……되었다. 그냥 들여보내라 해라.”

그렇다 한들 별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진소운이 그 정도에 쓰러지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맹주원은 여전히 불안한지 발을 동동 구른다.

“그, 그러다가 학관에서 쫓겨나면…….”

“그럼 네놈으로선 더 좋은 것 아니더냐. 특채로 고용해서 만통부에 데려오면 되니.”

“아…… 그렇네요?”

바보같이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맹주원.

어째 똘똘한 놈이 진소운과 관련된 일만 터지면 저리 멍청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

양의팔괘만상진.

이 광오한 이름의 기문진은 확실히 칠성칠금진보다 뛰어나다.

정마대전이 일어난 직후, 칠성칠금진을 설치했던 문파들이 멸문을 면치 못한 반면, 양의팔괘만상진을 설치한 문파들의 절반은 살아남았으니까.

물론 양의팔괘만상진도 정마대전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결국 마교의 마뇌에게 공략당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다만 양의팔괘만상진은 전생에서 많이 보급되지 않았었다.

칠성칠금진을 해체하고 양의팔괘만상진을 설치해야 한다는 비용적 부담도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기문진의 발표가 곧 돈줄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갈세가가 일 년 단위로 개량판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양의팔괘만상진을 설치하려던 문파들은 최종판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어버렸던 것.

‘전생의 제갈세가는 진짜 머리 좋은 양아치들이었는데. 이번 생엔 좀 다르려나?’

내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켜 강호의 도움이 되는 세가로 거듭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의팔괘만상진이 훌륭한 기문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제갈정기가 백도회의 지위를 공고히 할 회심의 수로, 이 양의팔괘만상진을 발표하는 자리를 무림학관에 만든 것이겠지.

나 또한 이럴 때를 대비해 무량불괴멸혼진을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는 개량판을 만들어 놨지만, 좋은 물건이 손에 들어온 덕분에 굳이 복잡한 무량불괴멸혼진을 설치할 피로는 덜어냈다.

“시불…… 시불…… 시불…….”

대체 어떤 부처를 부르는 것인지 계속 시불 거리는 남화성.

아니, 지 혼자만 삽질했냐고.

“진짜 이걸로 백도회랑 상대할 수 있는 거냐?”

“당연히 할 수 있지.”

내 다답에도 녀석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모른다.

“……구궁미혼진은 열 살 먹은 애들도 통과할 수 있다.”

“호오? 그럼 넌 열 살 먹은 애만도 못하겠네?”

“시부럴!”

온몸에 흙더미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남화성이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온다.

“통과하면 어쩔 거냐?”

“통과하면?”

“그래! 통과하면!”

녀석이 별안간 눈빛을 반짝인다.

“……다신 날 간자라 부르지 마라!”

“흐음…… 좋아.”

남화성이 무슨 자신감인지 득의양양 어깨를 치켜세우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럼 당장 시행해라! 이 몸이 단숨에 구궁미혼진을 파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남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생문(生門) 앞에 섰다.

나는 구궁진의 중심에 세워둔 돌무덤 앞에 섰다.

구궁진의 중심축이자, 구궁미혼진을 떠받드는 기둥.

구궁미혼진은 환술로 사람을 속이지만, 이 기둥의 기운만 찾아내 부수면 해진시킬 수 있다.

‘여기에다가…… 이걸 섞으면…….’

나는 품속에서 혈교 소교주에게 빼앗은 환상지를 꺼내어 손가락에 끼웠다.

평범한 기문진도 혈교의 환상진으로 바꿔준다는 기묘한 신물.

나에게 이번 행사는 강호의 신진정예라 할 수 있는 학관생들을 상대로 신물이 얼마나 효용성 넘치는지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양의팔괘만상진에 시선이 쏠려 있으니 이 환술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관심도 덜 할거고. 후후.’

구궁미혼진의 구결을 외며 기운을 환상지에 불어넣었다.

-끼야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캬캬캬캬캬캬!

환상지 또한 보통 물건은 아닌지, 기운을 머금자마자 머릿속에 온갖 비명들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난 머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사념을 억누르고 환상지에 어린 기운을 구궁미혼진에 불어넣었다.

쿠궁.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무덤이 살짝 무너지며 돌 몇 개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동시에 돌무덤에서 시작된 빨간 안개가 스멀스멀 무덤 밖으로 기어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빨간 안개는 구궁미혼진을 구축한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호수처럼 고이기 시작했다.

발목 사이로 참방거리던 빨간 안개가 이윽고 허벅지까지 차오르고, 이내 구궁미혼진 전체에 가득 찼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자신감이 넘치던 남화성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이, 이게 무슨…….”

빨간 안개가 가득 차자, 이윽고 구궁미혼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본래 눈앞에 있어야 할 구궁미혼진의 기둥과 돌무덤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마장은 삽질을 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눈앞에 덜렁 남은 생문만을 바라보는 남화성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나는 녀석을 보며 가볍게 턱짓했다.

“안 들어가고 뭐 해?”

“이, 이거 구궁미혼진 맞는 거냐?”

“네가 직접 만들었잖아. 왜? 쫄?”

“시, 시부럴!”

내 도발에, 이를 악문 남화성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녀석은 구궁미혼진 안으로 쏙 하니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윽고.

으윽!

크엑!

비, 빌어먹을 마물이 여기 왜!!!!

사, 살려줘!!!!

으아아아악!

진소운 개새꺄!!!!!

꾸에에엑!

녀석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제대로 작동하고 있군.”

단숨에 구궁미혼진의 기둥을 부숴버릴 것 같았던 남화성은 한참이 지나도 구궁미혼진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략 이 각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팔문 중 하나를 이루는 기둥을 툭 차서 구궁미혼진을 깨버렸다.

곧이어.

“으아아아아악!”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추하게 버둥거리는 남화성이 나타났다.

나는 놈을 발로 한번 차주었다.

“정신 차려, 인마.”

“허억! 허억! 허억! 시, 시부럴……!”

놈이 거친 숨을 뱉어내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이건 혈교의 사술이 아니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놈에게 대답해 주었다.

“어때? 이 정도면 다들 관심을 가지겠지?”

“…….”

남화성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입을 꾸욱 다물었다.

“대답해, 간자!”

“시, 시부럴!”

놈은 결국 욕지거리로 대답을 갈음하며, 자신의 간자 생활이 길어짐을 인정했다.

#

사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혈교와의 전투 상황은 아직 강호에 알려져 있지 않다.

정보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오고가고, 작전이 새어나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귀깨나 뀐다 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사천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쯧.”

백도회의 제갈정기도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

그는 탐탁지 않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림맹의 무각들이 학관생 하나만도 못하다는 건가?”

혈교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소식은 제갈정기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 충분했다.

무림맹이 무능할수록 진소운의 활약이 두드러져 보일 테니까.

때문에 제갈정기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필요를 느꼈다.

사천의 일이 두드러지면 진소운의 행사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고.

사천의 일이 덮이면 자신의 행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 될 것이니.

이러한 지점을 백도회 전체가 잘 알고 있었기에 다들 정보를 덮는 데 총력을 다했다.

아니 덮는다긴보단 새로운 정보를 알음알음 퍼트리는 데 열심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예산이 곧 바닥납니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습니까?”

바로 예산 문제.

제갈정기는 단호히 명령했다.

“백도회가 대표단을 맡으면 상부에서 추가로 예산이 더 내려올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개방에 의뢰를 하죠.”

“아니, 개방뿐만 아니라 호사가들에게도 일을 맡기세요. 사람들의 입소문만큼 강력한 힘은 없으니 말입니다.”

백도회는 바닥을 보이는 예산을 박박 긁어 개방과 호사가들을 고용했고, 그들을 통해 양의팔괘만상진에 관한 정보를 알음알음 퍼트렸다.

가뭄에 비 내리듯 사람들의 관심이 꺼져갈 때마다 조금씩 퍼트린 정보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바짝바짝 올리기 충분했고, 각 문파들의 관심은 첫 공개가 되는 무림학관에 더욱 집중되었다.

결과적으로 학관생들의 마음이 기존 진소운의 행사에서 백도회의 행사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한편, 무림학관의 정문에서는.

“그런 상황이란 말입니다. 아주 위급하다고요.”

“…….”

진소운의 말대로 백도회가 양의팔괘만상진에 정보를 조금씩 풀면서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문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수록 기존 진소운의 행사에 참여 의사를 밝혔던 사람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긴 한데…….

‘근데 난 왜 여기 있는 거지?’

손안에 든 두툼한 종이 다발.

어깨에서 허리를 가로지르는 어깨띠에는 ‘사술지배 군림천하’라는 표어가 쓰여 있었다.

“진 시주……. 상황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 어떤 번뇌에 휩싸였을 때보다 거칠게 몸을 떨고 있는 일각.

그런 일각을 바라보던 진소운은 뒷골목 왈패와 같은 태도로 말했다.

“당연히 백도회의 인원들을 못 끌고 왔으니 그런 거 아뇨.”

일각은 부들거리는 몸을 겨우 억누르며 대꾸했다.

“진 시주…… 말했다시피 세작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신 다른 일을 주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안녕하세요! 이번에 무림학관 정식 대표단에서 치르는 행사에 대해 아시죠?”

말을 하다 말고 능청스레 학관생에게 다가가 종이 다발을 건네는 진소운.

그러니까…….

지금 진소운은 객잔의 점소이들이나 유흥가의 왈패들이 흔히 하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뭐 합니까? 일 안 합니까?”

그것도 소림사의 후기지수이자, 면벽수련을 이겨내고 역근경까지 익힌 자신을 데리고 말이다.

“아, 안녕하시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내미는 일각.

지나가던 학관생은 일각의 그런 태도에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이며 종이를 받지 않은 채 빠르게 도망쳤다.

“자, 잠시! 어, 어찌…… 그냥 가시오!”

이를 지켜보던, 진소운이 혀를 찼다.

“쯧. 아니! 사람들 데려오는 것도 못 해! 전단지도 못 나눠줘! 소림사 후기지수라는 양반이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

진소운이 쓴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일각의 가슴엔 대못이 푹푹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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