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12화 (212/357)

212. <원치 않는 초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내 정체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다 함께 강호에 닥칠 위기를 막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고 이야기를 한다면?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

단언컨대 나의 의견에 동조하여 함께하겠다 나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적이 많은 와중에, 정신까지 이상하다며 도리어 약점만 하나 더 노출되는 꼴이 되겠지.

아마도 난 사지가 묶여 금옥 안에서 진짜 미친놈들과 호형호제하면서 세월을 보내게 되겠지.

……그래도 극단적인 낙관을 해보자면?

‘후…….’

그것도 그거대로 문제다.

‘강호의 주인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잘못 퍼져 저 북경의 고관대작 귀에라도 들어갔다간, 자칫 잘못하면 황건적 수령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강호의 공적을 넘어 단숨에 황실의 공적까지 확정이다.

[네놈이 감히 천하의 주인이 바뀐다 말했더냐!]

[아니야! 난 그냥 마교놈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뿐이야!!!]

[닥쳐라, 역적 놈아! 당장 저놈의 오체를 분시하라!]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지금.

정체가 까발려질 위기에 처했다.

‘빌어먹을…….’

그것도 무림맹 내에서 머리가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니, 강호 제일 뛰어난 오성을 지닌 양반에게 말이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굵은 침이 넘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제갈소명은 말꼬투리를 잡아 어물쩍 넘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제갈소명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가 자신의 ‘조각 이론’을 통해 얼추 그림들을 완성시켰다는 의미.

그에게 부족한 것은, 확증을 위한 단 한 조각.

지금 그는 ‘마지막 조각’을 찾고자 진법가들까지 물리며 저런 질문을 던진 게 분명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기색을 내보이려 애썼다.

“……전 당연히 자랑스런 무림학관의 대표인 진소운입니다.”

“…….”

하지만.

감정 없는 제갈소명의 눈빛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는다.

‘제길.’

금방이라도 내 몸을 꿰뚫을 듯 예리한 눈빛이 나를 훑는다.

“너라면, 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텐데.”

“…….”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그가 얼추 완성한 그림들을 완전히 다른 모양새로 만들 조각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제갈소명의 침중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양의팔괘만상진……. 내가 오만을 떨지 말라 말하긴 하였다만, 처음 보자마자 파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만약 네 녀석에게 정말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면, 애초에 네놈이 그리 절박하게 학관에 들어올 필요도, 네놈의 사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도 없었겠지.”

이제야 그가 진법가들이 나를 의심하지 못하게 찍어 누르고, 그들을 자리에서 물린 이유가 명확해진다.

그는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

제갈소명이 손에 쥔 철선을 촤르르 감아 한 손에 쥔다.

자연스레 철선의 끝이 내 요혈로 향한다.

“네놈은…… 간자더냐?”

어쩐지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부채를 가지고 다니나 했더니.

그게 내 명줄을 노리기 위함이었고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미래를 본다고 의심하는 게 아닌, 간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일까?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미친놈 대신 나쁜 새끼라고 의심받는 상황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사마정이 발라준 금창약의 효과 덕분인지 피가 멎으며 조금씩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효과 좋네.

따로 좀 달라고 해야겠다.

나는 얼른 정신을 집중하고 말했다.

“크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네 사문의 사람들 중. 이 일에 가담하지 않은 자에겐 피해를 주지 않겠다.”

대신 가담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조사를 하겠지.

조사에는 당연히 악병비 같은 빌어 처먹을 인간들이 동원될 것이고.

누굴 바보로 아나.

“억울합니다!”

“그럼 네놈이 양의팔괘만상진을 단박에 분석했단 말이냐?”

사실 그게 더 말이 안 되긴 하지.

마뇌도 백일이나 걸렸던 일을 내가 한 시진 만에 해낸 것이니까.

어쨌든 지금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의심을 받게 될 거 같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기억 속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사실 한 번에 분석한 건 아닙니다.”

“……내가 듣기론 네가 대마장에 방문한 건 사건이 터진 뒤 처음이라 하였다.”

소정대 대원 중에 서운창이라는 놈이 있었다. 무공 한 자락도 없는 주제에 소정대에 들어온 사기꾼.

서운창이 말하길, 상대로 하여금 거짓말을 믿게 하고 싶다면 다른 것을 의심하게 하라 했다.

인간은 양가적인 두 가지에 모두 의심을 쏟을 수 없는 존재라고.

그 사기꾼 새끼가 이렇게 도움이 되기도 하네,

“물론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그때가 처음이 맞습니다.”

“……대외적? 그렇다면 그전에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다면 제갈세가에서 봤다는 이야기인데…….”

제갈소명이 이상하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무림학관에서 처음 본 것은 맞습니다.”

“응?”

“첫 삼 일간 양의팔괘만상진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기문진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전 삼 일 밤마다 그 안에 있었습니다.”

“…….”

그리고 의심할 작은 단서를 던진다.

“그리고 전 무량불괴멸혼진 내에서 무한히 바뀌는 진로를 모두 외워 나온 사람이고요.”

제갈소명이 예의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침잠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느새 철선의 위치도 바뀌어 그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는 용도로 바뀌었다.

내가 건넨 마지막 조각으로 전체 그림을 맞춰 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살짝이나마 보여준 것이 내겐 행운이었다.

제갈소명과 같이 똑똑한 이들은 이런 식으로 작은 단서를 통해 답을 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니까.

그렇게 답을 내고 나면 자연스레 의심을 사라지게 마련이고.

아니나 다를까.

“그럼 소교주의 목을 가져온 방법과 관련 있는 것이냐?”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보여 보아라.”

의심이 점차 커지고, 답을 내리기 직전까지 왔다.

이것만 통과한다면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싫습니다.”

“뭐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기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습니다. 만약 이 일로 의심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간자로 의심받는다 하더라도 말이더냐?”

나는 일부러 태연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에게 향한 의혹은 총군사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난 언제든 말을 뱉은 말을 번복할 수 있다.”

“그러실 작정이라면 애당초 그런 말도 꺼내지 않으셨겠지요.”

제갈소명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익숙한 눈빛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빛.

“전 적이 많습니다. 제가 가진 패를 숨기고 또 숨겨야 겨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요.”

“…….”

이쯤 이야기하자 제갈소명도 더 이상 머리를 쓰는 것이 힘들었는지 관자놀이를 꾸욱꾸욱 누른다.

판도는 내게 넘어왔다.

그럼 이제는 내가 압박할 차례.

“그래서 저희에겐 어떤 보상을 주실 겁니까?”

“뭐?”

제갈소명과 같은 천재들의 머리 용적이 다른 이들보다 크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한계란 인간 수준이지 않겠는가.

생각할 거리를 계속 던져줘야 더 이상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 있을 터.

뭐, 보상이 필요하기도 했고.

손이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제갈정기가 저지른 사건을 저희 대표단이 수습하지 않았습니까?”

“……정확히는 학관장이 함께 했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북 사형은 저희 태을문의 속가제자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어디까지나 저희 대표단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지요.”

“끄응…….”

나는 일부러 말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양의팔괘만상진이라는 희대의 절진이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을 통째로 잡아먹을 뻔한 사건 아닙니까. 당연히 그냥 넘어가시면 안 되지요. 안 그렇습니까?”

“칠십팔 명이다.”

“원래 이런 숫자는 반올림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제갈소명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후 내게 묻는다.

“……무엇을 원하느냐?”

당연히 당신의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한 것을 원하지요.

나는 자연스레 두 손을 모아 비비며 말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

제갈소명의 눈꼬리가 다시금 파르르 떨렸다.

#

제갈소명은 만통부 안으로 들어간 순간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보다 분위기가 무겁다고 할까나?

외부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노라면, 찡얼찡얼대며 달라붙어야 할 맹주원이 어쩐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오셨습니까. 총군사님.”

“뭐야? 무슨 약 먹었냐?”

타박에도 맹주원이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만통부의 인원이 만통부의 수장을 보면 인사를 올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거…… 왜 이래?”

다른 만통부 직원들을 바라봤지만, 다들 맹주원과 비슷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항시 상태가 개판 일각 전인 만통부 내부도 얼추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이것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나.’

안 그래도 가뜩이나 머리가 아픈 와중에 이것들까지 이러니 자연히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오셨습니까?”

“엥?”

업무실로 들어서니 더욱 황당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혁무강이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

그제야 왜 만통부원 놈들이 평소 하지도 않던 짓거릴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총군사님…… 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정중하게 묻는 맹주원을 바라보니, 놈이 미미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뻔히 보이는 상황.

맹주를 데리고 나가 달라 이거겠지.

제갈소명은 일부러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길게 이야기를 나눌 터이니 차를 세 주전자 정도 끓여 오너라.”

맹주원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어린다.

“……그, 그렇다면 맹 인근의 다원으로 가시는 것이 어떠실까요?”

“어허! 어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무림맹의 자금을 그리 허튼 곳에 쓴단 말이더냐.”

제갈소명은 동의를 구하려는 듯, 혁무강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아마 맹주께서도 나가는 것보단 이곳에서 드시는 것이 나으실 거다. 안 그렇습니까?”

“난 상관없습니다.”

맹주원이 보고서처럼 얼굴을 구기며 뒷걸음질 쳤다.

제갈소명은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다.

“헹! 빌어먹을 놈들. 맹주님은 무섭고 난 안 무섭다 이거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혁무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왜 오셨습니까. 제가 간다니까.”

“매일 맹주전에서 먹고 노는 사람이 바쁜 사람에게 오라 가라 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직접 와야지요.”

“…….”

평소 업무 처리할 때도 이래 주면 얼마나 좋겠나.

혁무강이 이리 무거운 엉덩이를 직접 움직이는 때는, 오로지 깊은 관심이 가는 일에만 국한된다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처음은 아니지만…….

‘어째 용소아나 일명 때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누.’

혁무강은 차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어떻습니까? 예상대로 간자가 맞았습니까?”

제갈소명은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부푼 듯한 무림맹주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마치 간자이길 바라시는 거 같습니다.”

“그럴 리가요!”

제갈소명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맹주님 예상이 맞았습니다. 은신 관련 무공을 가지고 있는 듯하더군요.”

“허허! 정말입니까?!”

혁무강이 못 참겠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닙니다. 천목각이 뚫렸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양의팔괘만상진은 무림맹에서 특별 기밀로 취급되는 기물이다.

당연히 제갈세가에서 보안을 철저히 한다 한들, 무림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겠는가.

혁무강이 고개를 끄덕인다.

“혈교 부대의 한복판에서 소교주의 머리를 가져온 아이입니다. 천목각이 상대하긴 버겁겠지요.”

“후우…….”

“어쨌든 무림맹의 훌륭한 인재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인데 왜 한숨을 쉬십니까.”

그 물음에 제갈소명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낸다.

“특이한 방면으로 뛰어나니까 그렇지요.”

“특이한 방면?”

제갈소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녀석 앞에서 거짓말로 세가의 진법가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녀석은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그 자리에서 제 말에 맞춰 거짓말을 하더군요.”

당황할 기색이라도 보일 법하건만, 녀석은 그런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듣는 자신도 진짜 천기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니까.

“더구나 모두를 물리고 압박을 하는데도, 끝까지 은신 관련 무공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더군요.”

“배포가 대단한 아이군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흐음…….”

“본래 신성이라 함은 조금 순진무구한 면도 있고, 때가 덜 탄 모습도 있고 한 편인데. 그 녀석에겐 도통 그런모습이 없습니다. 어쩔 땐 흑도의 노괴를 상대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혁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 사황봉주 그자가 별호 하나는 참으로 잘 지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용(龍)은 용이되 흑룡(黑龍)이다.

여타 다른 용들이 여의주 하나만을 위해 산천에서 도를 닦는 것과 달리, 거친 바다에서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며 도를 이룬 흑룡(黑龍).

불현듯 한 손엔 청룡의 시체와 한 손엔 봉황의 시체를 잡아챈 거대한 흑룡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맹주께서는 걱정도 안 되십니까?”

“글쎄요.”

혁무강이 손가락으로 제 턱을 쓸었다.

“그 아이가 제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 것이었다면, 애당초 저나, 총군사의 눈에 들 일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쩝. 그렇지요.”

이번 일만 봐도 그렇다.

몰래 양의팔괘만상진에 대해서 알아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면 백도회를 구하겠다 나서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더구나 백도회는 진소운의 대표단을 위협하던 존재 아닌가.

당장 자신이 진소운의 상황이었다면 당연하게도 백도회를 돕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이 거친 면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태생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집안에서 자란 화초는 꽃을 쉽게 피우지만, 비바람에 취약하다.

야생에서 자란 잡초는 꽃을 쉽게 피우지 못하지만, 강한 비바람에도 쉬이 꺾이지 않는 법이다.

제갈소명은 그러한 야생화가 꽃을 피웠을 때,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으니 사황봉주의 청을 들어줄 수 있겠군요.”

혁무강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제갈소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애당초 큰일이 날 곳도 아니었으니까요.”

설사 큰일이 난다 한들, 그놈이 암수에 당할 거라는 상상은 들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일개 학관생을 사절단으로 보내달라는 말에 어찌 거절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말입니다. 당초 용봉지회나 칠성을 보낼까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사황봉주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진소운을 보내달라니 미친 거 아니랍니까? 아무리 우리가 혈교 일로 빚을 졌다 한들!”

“그나마 다행아닙니까.”

“다행 아닙니다!”

“응?”

제갈소명의 단호한 말에 혁무강이 고개를 들었다.

“보고를 열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아, 그리고 맹주전에서 예산도 땡겨 주셔야 할 거고요.”

“아니,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진소운 그놈이 이번 일로 비싼 청구서를 보냈으니까 말입니다.”

제갈소명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탁자에 턱 하니 놓는다.

혁무강은 목록을 보다 입을 쩍 벌린다.

“아니, 이걸 왜…….”

“저도 별수 없었습니다. 결국 져버렸는걸요. 정 억울하시면 맹주께서 가서 담판을 짓고 오시든지요.”

“…….”

그래, 그놈이 간다 한들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천하의 무림맹 총군사를 벗겨 먹는 놈이 흑도들 따위에게 뒤통수 맞고 올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빌어먹을 놈…….”

제갈소명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욕지거리로 쓰린 속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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