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원치 않는 초대(6)
명사 초대 행사가 시작되었다.
약 일주일간 학관생들은 초대된 명사에게 무학과 삶에 관한 현학적인 강의를 듣고, 무론에 관해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다.
특히나 이번 행사엔 절대 고수로 명망 높은 풍백파검 모용강이 참석하면서 더욱 기대를 높였다.
안 그래도 사천의 일을 경험하면서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던 학관이었기에, 간만에 찾아온 활기에 모두가 고무되었다.
더불어 정도회와 백도회가 침몰하여, 학관생들이 더 이상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상황인 데다.
정도회와 백도회의 인원들이 높은 행사 참여율을 보이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자존심을 세우고 행사에 불참하기엔, 정도회와 백도회 소속 학관생들에게도 ‘풍백파검’이란 이름이 너무도 무겁고 거대했으니까.
그리하여 일부를 제외한 수많은 학관생들의 참여 속에서 행사가 치러졌고, 참여자들 또한 행사에 높은 만족감을 보였는데…….
분명 그렇게 보였는데…….
“그거야, 진 공자 생각이고요.”
“……엥?”
어디서 맞고 왔는지 한쪽 볼이 팅팅 부은 성모란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의약당에 사람이 미어터지는 거 알아요?”
“……본래 가르침은 뼈 아픈 법이지요.”
마치 평소 일각의 태도처럼 태연자약한 내 대답에 성모란이 몸을 바들바들 떤다.
“그렇다고 진짜 뼈가 부러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작은 문제가 있긴 했다.
다름 아닌 모용강의 강의 방식.
행사 인원이 워낙 많기에 날짜를 나누어 강의를 진행하자 제안했을 때.
모용강은 대연무장에 모든 이를 불러오라고 했었다.
그러곤.
[나는 말코 도사 놈이나 땡중처럼 주둥이로 주절주절 대지 못한다.]
[무인이란 깨달음에 대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죽음의 위기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는 존재.]
[하여, 너희들에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마.]
[먼저 맞고 싶은 놈들부터 나와라.]
[안 나오나? 그럼 내가 가지.]
……이따위 말을 하곤 학관생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모용강의 행동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학관생들.
그러나.
차마 절대 고수인 모용강에게 손을 뻗을 수 없어 주저하던 이들도 쌍코피가 터진 다음부턴 어쩐지 눈동자가 돌아가며 모용강에게 덤벼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호승심을 느낀 사문의 제자들은 최후 절초를 쓰거나 협공을 하기도 했지만, 피가 터지고 비명을 지르는 건 언제나 학관생들 쪽이었다.
[쯔쯧. 백도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뭐? 올바른 정신? 뭐라는 거야!]
[허, 네놈은 정의라고? 네놈 사문의 장문인이 젊었을 때 얼마나 후레자식이었는진 아느냐?]
[멍청한 놈들! 백도의 가장 큰 무기는 대가리 수다! 흑도든 사도든 대가리 수로 백도를 이길 수 있는 놈이 없으니, 무림맹이 강호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모용강의 가르침(?)에 학관생들은 합심하여 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검진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렸다가 단박에 부숴버리는 모용강의 용태에 학관생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가리 수로 싸우라 했다고 그냥 뭉치기만 하면 다라 생각하는 거냐! 대체 그동안 뭘 배운 게야!]
[본디 합격진이란 서로 손발을 맞추는 거다. 합격진 안에서 제 잘난 맛에 취해 힘을 맞추지 못하면 합격진을 굳이 짤 이유가 없는 것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걱정 마라! 쥐어 터지다 보면 공자님 말씀도 이해가 되는 법이니.]
그렇게 강의(?)를 빙자한 폭행이 이어지자, 질려버린 학관생들이 하나둘 행사에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모두 기가 막히게 기억한 모용강이, 그들의 기숙사를 털어 그들을 다 끄집어내어 다시금 강의를 베풀(?)었다.
참으로 눈물 나는 열정이었다.
“……근데 왜 진 공자님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거예요?”
갸륵하게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남궁선화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노려봤다.
정말 아파 보였다.
“본래, 대표는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강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 예상하셨던 건가요?”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듯, 배신감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궁선화.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설마요……. 전 이미 어르신께 많이 맞은 탓에 몸이 힘들어 신청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난 멍이 들었던 눈을 가리켰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흔적도 거의 없어졌거든요!”
쳇, 사마정이 처방해 준 약은 너무 약발이 좋아서 문제라니까.
내 일행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불만이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 행사에 끝까지 참여했다.
멍이 든 얼굴과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매일 모용강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여준 덕분에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는데.
그중 금표와 동룡은 따로 시간을 빼어 개인 강습(?)을 듣기도 했다.
“허, 신기하구나. 한 명은 천양신골에 한 명은 천살성을 품고 태어났다니.”
동룡의 천살성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금표의 천양신골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음…… 모를 수 있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체질이니.”
“좋은 겁니까?”
“괜찮은 외공을 익힌다면, 어지간한 일로 뼈가 부러지거나, 피부가 상할 일이 없다. 그야말로 타고난 바위 같은 체질인 게지.”
그간 고통이나 타격을 잘 참는 것이 인내력이 좋아서라 생각했는데, 체질 자체가 단단한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투의 맨 앞에 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 건가?
금표는 왠지 슬픈 미래가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동룡은 울망울망한 눈빛으로 모용강을 바라봤다.
“어, 어르신 저, 전 조금 불안합니다. 언제 제어가 풀릴지 몰라서 말이죠.”
동룡이 그간 혼자 품고 있던 불안감에 대해 묻자, 모용강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수련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테니. 마침 너희 둘은 같은 수련을 해도 되겠다.”
“같은 수련이요?”
모용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맞아 보는 것이지. 천양신골은 피골이 단단해질 것이고, 천살성은 인내가 늘어날 것이니까.”
“…….”
“…….”
처음 금표와 동룡에게만 조언을 해준다고 질투를 하던 학관생들은 그 둘이 정말 몸 구석구석 하나도 빠짐없이 맞는 꼴을 보면서, 자신에겐 절대로 개인 강습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들 그렇게 기대하고 기다렸던 칠 일간의 강의는 끝났다.
학관생들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학관 밖으로, 도망치기 바빴고 의약당에는 여전히 환자가 넘쳐나 사마정을 괴롭게 만들었다.
물론,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포권을 쥐자, 모용강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학관 대표라는 놈이 칠 일간 하루도 찾아오지 않았더구나.”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이미 많은 걸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난 네게 가르침을 주고 싶다.”
우드득.
우드득.
손과 목을 꺾으며 몸을 푸는 모용강.
……저걸 두고 가르침을 주고 싶어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나?
“그렇담 그걸 가르쳐 주십시오.”
“어떤 거 말이냐?”
나는 두 손을 이리저리 마구 휘저었다.
“그거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공간이 막 일그러졌던.”
“공멸권 말이냐?”
“네!”
모용강의 입에서 노호성이 터져나온다.
“이놈아! 그건 내 필생의 깨달음이야!”
“어쨌든 저한테 치르셔야 할 깽값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뭬야! 이미 강의를 해주지 않았더냐! 나 모용강이야! 내가 이딴 허접대기 같은 것들 앞에서 무공을 펼칠 일이 있을 것 같냐?”
길길이 날뛰는 모용강을 보고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전 모용세가의 공의를 찾아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찾아드린 공의가 그리 별거 아닙니까?”
“…….”
“더구나 필생의 깨달음이라 한들 파검의 위치에서의 깨달음 아닙니까. 이제 파천의 눈을 가졌으니 더 높은 것을 지향하셔야죠.”
올바른 말만 하는 내 모습에, 역시나 왈패의 성미를 가진 모용강이 분한 듯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놈. 그때 보인 한 수는 검마의 검식이 분명하렷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헹!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찌 익혔는지 모르겠다만, 태을검제의 무경과 그 검마의 검식만으로도 넌 동 나이대에 경쟁자가 드물 것이다.”
어느새 모용강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헌데 어찌 그리 무에 집착하는 것이냐?”
나는 잠시 침묵한 후 그에게 답해주었다.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분하지 않다니?”
내 대답에 모용강의 얼굴엔 의문이 어린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숫자의 마인.
아무리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마물.
정신을 혼란케 하는 사술과 순리를 거스르는 마공까지.
내 기억 속 미래는 지옥이다.
그리고 그런 지옥을 견뎌내기엔 지금의 나로도 부족하다.
나는 모용강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제가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지키기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내 대답에 모용강이 잠시 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다.
“흐음, 단지 그뿐이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의 눈빛이 날카로이 번쩍인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고자 하는 게 아니냐 이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권력엔 욕심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미친놈. 천하의 모든 사람이라도 지키겠다는 말이더냐?”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불가한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침묵에 모용강이 혀를 쯧 하고 찬다.
“감히 나의 깨달음을 갈구한 주제에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한다니.”
그런데…….
모용강의 입가가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역시나 네놈은 딱 우리 모용세가에 어울리는 재질이다.”
“…….”
뭐야, 저 미소? 왜 좋아해? 무섭게?
모용강이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고 내게 물었다.
“무인이 내공심법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이 양반은 바빠 죽겠는데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순간 귀가 가려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말했다.
“……원론적인 거 말고 구결이랑 기의 운용 방법이나 알려주십시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퍽!
뒤통수가 화끈거리며 골이 흔들렸다.
“대, 대체 언제?”
지난번엔 멀리 있어서 못 느낀 거라 생각했건만, 가까이 있음에도 그의 몸에선 기의 운용이 느껴지지 않았다.
탐이 난다. 너무도 탐이 난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혹시 심검입니까?”
“시이이임검?? 네놈이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구나. 그게 이리 유형화될 것이라 생각…….”
난 얼른 그의 말을 끊고 포권을 쥐었다.
“무인이 내공심법을 익히는 이유는 기운을 내부에 축기하여 자유로이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용강의 눈빛이 누그러진다.
“……이제 제대로 들을 마음이 생긴 거냐?”
“전 처음부터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배우고 있었습니다.”
이건 내 상상보다 더 대단한 무공이다.
아무런 기척도 뿜지 않고 기운을 쓸 수 있다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모용강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묻겠다. 내부에 있는 기운과 세상에 퍼져 있는 기운의 차이는 무엇이냐?”
“그거야 심법을 통해 정순화되는 것도 있는 데다, 심법별로 다른 특징을 가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내부에서 갈무리된 기운이 세상의 기운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냐?”
모용강의 말에 머릿속 한 부분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어떤 내공 심법도 대자연의 기운의 근본을 지울 수는 없다. 하물며 역천의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조차 자연의 기운을 지울 수 없는 것이야.”
뭔가 단초만 있으면 코를 간질이는 재채기를 바깥으로 내뱉듯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답답한 느낌.
“그렇다면, 무인이 본디 자신의 단전에만 있는 기운을 써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
무공(武功) 근본 자체를 부정하는 이론.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틀렸다 말 할 수 없다.
그 또한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일 뿐이니까.
“무공은 자연의 도를 닮으려 하면서도 자연의 도와 하나가 되려 하지 않는다. 무의 도와 자연의 도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더냐?”
그의 현기 어린 말이 이어질수록 답답함이 가중되어 간다.
심장이 격하게 뛰고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무의 도와 자연의 도가 하나로 합치하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공멸권(空滅拳)이다.”
그야말로 반골 기질이 뼛속까지 침투하여 근본마저 부정하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이치.
오로지 모용강만이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마치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급함이 느껴진다.
“그, 그럼 구결이 어떻게 됩니까? 기의 운용은요? 내공 소모는 막대합니까?”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걸인처럼 허겁지겁 질문을 내던졌다.
모용강은 그런 나를 보며,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가르침은 여기까지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모용강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더 배우고 싶다면 모용세가의 사람이 되거라.”
“…….”
아니, 이걸 여기서 끊는다고?
혹시 양아치세요?
#
별호처럼 폭풍을 몰아치며 나타났던 모용강은 돌아갈 때도 요란하게 돌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무림맹 한복판에서 맹주 욕을 하고 가다니…….’
맹원이나 외인이라도 집행각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할 일이었지만, 정작 집행각이나 감찰각에는 모용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용강은 그렇게 모용세가로 돌아갔다.
명사 초대 행사가 안정적으로 끝나면서 대표단의 인원도 늘어났다.
학관 생활기록부에 조금이라도 좋은 이력을 남기기 위해선 대표단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 테니.
덕분에 기존에 대표단에서 일하던 이들도 일을 분배하기 시작하면서 한숨 돌렸고.
나는 더더욱 할 일이 없어졌다.
학관 대표실에 출근하여, 명품(名品)의자에 앉아 칠색화를 마시는 평화로운 삶.
뜻하지 않은 휴식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만통부에 출근을 하셔야 하죠.”
산통을 깨는 은호의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네놈은 대사형이 쉬는 꼴을 보면 온몸에 두드러기라도 나는 것이냐?”
은호가 몹시도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얼른 만통부에 출근하셔서 활약을 해주시길 바라는 거지요. 다른 사제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허, 이놈 봐라?
“……그러고 보니, 네놈이 재화 대신 전서를 쓴 것이 분명하겠지?”
“그럴 리가요. 전 재화가 불러준 대로 썼을 뿐입니다. 재화가 자긴 워낙 졸필이라 조부님의 화를 돋울 거 같다고 말했거든요.”
“…….”
은호 녀석이 노려보는 건지 그냥 바라보는 건지 모를 애매한 눈빛을 내게 던진다.
“그리고 애초에 재화를 희생양 삼으시면 안 되지 않았습니까?”
……지은 죄가 있기에 차마 은호를 몰아칠 수는 없었다.
어쩐지 그날 이후로 매일 강아지처럼 달라붙는 재화도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것 같고.
은호가 득의양양하게 쐐기를 박는다.
“얼른 만통부에 출근이나 하십시오. 대사형 때문에 만통부에서 서류가 부족하다는 트집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은호의 채근이 아니더라도 만통부에 출근하기는 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맹주원이 연통을 보내오는 것도 모자라, 일주일에 한 번씩 기숙사에 방문하고 있었으니까.
‘으, 징글징글한 인간.’
안 그래도 만통부에서 일을 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로 인해 전생과 달라진 현재의 사건들을 과거와 대조할 필요도 있었고, 앞으로 그 일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예상을 해두어야 했으니.
‘더구나 그 인간들도 있고.’
빌어먹을 장로원.
예산 관련된 일은 내게 쉬이 맡기지 않겠지만, 서류 처리를 깐깐하게 하여 장로원을 괴롭힐 수도 있을 터다. 후후.
이미 머릿속 장서고에 앞으로 작성될 서류들이 수만 개가 쌓여 있으니 따로 일을 배우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단기 목표는 최대한 빨리 인수인계를 완료하는 모습을 보여 출근을 일주일에 하루로 줄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표단에서도 쉬고 주말에도 쉬면서 따로 무공 수련에 여유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 정리를 완료한 후.
만통부에 들어서자, 맹주원과 제갈소명이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게! 어서 와! 그대의 집으로 잘 돌아왔네.”
애당초 여기가 집이었던 적도 없건만, 맹주원이 좋아 죽겠다는 듯 기쁨을 주체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제갈소명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편히 지냈을 거라 생각하느냐?”
저지른 잘못이 있다 보니 절로 몸이 숙여진다.
“나이도 있으시니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내 근심의 구 할은 다 네놈 때문이다.”
이런 건 계속 입을 열어봐야 나만 손해다.
나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전 어떤 일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뭐든 맡겨주십시오.”
내 말에 맹주원이 나를 끌고 가려 하는데…….
“잠깐 놔둬라. 먼저 맡겨야 할 일이 있으니.”
“네?”
“…….”
어째선지, 난 가만히 있는데 맹주원이 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제갈소명은 맹주원이 그런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서류 한 장을 건넸다.
두루마리로 말아진 긴 서류.
나는 서류를 빠르게 읽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흑련과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라는 말입니까?”
내가 짧게 요약해서 말하자 제갈소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사절단을 보내는 겁니까?”
생각할 사 자를 쓴 걸 보니 흑도 문파는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나 때문에 새로 생겨난 문파일까?’
내 머릿속 장서고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흑련이라는 문파는 없었다.
“애당초 사흑련이란 문파는 처음 들어봅니다.”
“그럴 수밖에. 새로 생겼으니까.”
그럼 더 이상하다.
이제 막 생겨난 문파라면, 굳이 무림맹이 동맹을 구축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제갈소명이 설명을 덧붙인다.
“네놈은 잘 알지 않느냐. 네놈과 친한 사황봉주를 중심으로 세워진 흑도 연맹의 새로운 이름이다.”
“설마…….”
“사흑련의 개파식에 다녀와라.”
“……에엑??????”
제갈소명은 세상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마셨다.
누가 보면 동네 상회 가서 두부 한 모 사 오라는 소리를 줄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