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39화 (239/357)

239. <숨은 흉수 잡기(4)>

쌍영흉마여단을 찾아낸 이들은 그들의 실체를 알고 있음에도 당황하게 된다.

“형님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아니, 그딴 거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나는 여자 만나러 갈 때 혼자 가는 거 모르시오?”

“허…….”

지금껏 옆에 있던 상대가 적이었다는 사실을 쉬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거기다! 대답이 늦긴 했지만 분명 확실히 말했소. 관심이 없어서 생각이 늦게 났을 뿐인데…… 그것만 가지고 내가 어찌 범인이라는 거요!”

본래 존재와 쌓아온 유대감은, 똑같은 외피를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이에게로 이미 넘어가 버린 상태이기에, 쉽사리 그를 가짜라 생각할 수 없는 것.

“차라리 다른 질문을 해보라고 하시오! 겨우 질문 하나로 범인을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오!”

그렇기에 의심이 가면서도, 그 의심을 끝까진 이어가지 못한다.

혹시나 아닐 수도 있으니까, 잠시 착각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믿어야…… 자신의 붙들어 온 유대감이 박살 날 일도 없으니까.

무림맹의 상급 부대 놈들이 그렇게 많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럼, 우리 소정대는 어땠냐고?

우린 쌍영흉마여단이 침투하지 않았을 때부터 서로를 의심해 왔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면 일단 칼부터 날리고 봤다.

그럼 억울하게 죽는 일은 있어도 최소 암수로 죽을 일은 없으니까.

스르릉.

흑룡검이 뽑히며 서평오견…… 아니, 이제는 서평삼견이 나를 돌아봤다.

“잠깐 기다리지…… 아직 확실히…….”

사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수십 년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동생을 손바닥 뒤집듯 의심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교활한 쌍영흉마여단은 이런 틈을 놓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신의를 농락한다.

“기다리라 했네!!!”

내가 다가서자 둘째가 손을 들며 나를 막아섰다.

쉬이 믿기지 않겠지. 하지만 이쪽은 확신에 찬 증거가 있다 이 말씀.

나는 곧장 연화(蓮花)를 펼쳐, 둘째를 혈투에게 던졌다.

“저, 저 빌어먹을 놈이 또!”

푸칵! 펑!

혈투는 둘째를 단박에 쳐내려 했지만,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돈 둘째는 혈투의 주먹을 박차고 도리어 내게 쏘아져 왔다.

“이 미친 새끼가……! 막내야!”

“넷, 형님!”

별호에 견(犬)이 들어갈 정도로 악명을 쌓아왔던 이들도, 서로 간에는 끈끈하리만치 유대가 쌓여있다.

그렇기에 쌍영흉마여단은 백과 흑을 초월하여 모두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동시에 도를 휘둘렀다.

머리와 허리를 동시에 쪼갤 듯 날아드는 도기.

나는 철판교의 수법을 펼침과 동시에 태을팔만신보를 극성으로 펼쳐, 아슬아슬하게 도기 사이를 지나 쌍영흉마여단원에게 짓쳐 들었다.

“이 또라이 같은 놈이……!”

내 신묘한 움직임에 절박하게 도를 흩뿌리는 넷째.

그의 도법은 다른 서평오견의 것과 똑같았다.

채채채채챙.

대천검법을 겨우 막아선 그의 목을 따내기 위해 검을 찔러 넣으려는 순간.

뒤쪽에서 세 개의 도기가 날아들었고, 나는 급박하게 몸을 회전시켜 그 도기들을 막아내야 했다.

퍼퍼퍼펑!

도기를 완전히 해소하기도 전에 나는 몸을 돌려, 넷째에게 만화무적권을 펼쳤다.

수십 개의 권형이 그의 온몸에 짓쳐 들며 그가 붕 떠올랐고, 이내 그는 삼 장 너머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콰쾅.

“커흑!”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도를 고쳐잡는 넷째.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목청을 높였다.

“형제님들!! 아직도 모르겠소! 저 새끼는 이런 식으로 우릴 하나하나 죽일 작정이란 말이오!”

절박한 표정과 음성, 간헐적으로 떨리는 입술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까지.

과연 수십 년간 함께해 왔던 형제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도 외면할 수 있을까?

나라도 이 새끼가 혹시 억울한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 봤을 것이다.

‘적봉환만 아니었다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놈 앞에만 섰을 때 적봉환이 이슬만큼의 내기를 흡수했다.

뒤쪽에서 살기가 가득 담긴 도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생각하길 포기했군.”

참으로 묘한 광경이다.

백도 문파의 제자들이 이런 모습을 많이 보였다.

감찰각에서 나와 샅샅이 살피고 집행각에서 조사를 마쳐 암수란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절박한 사형제의 외침을 듣고 있다 보면 모든 증거를 부정하게 된다.

필시 뭔가 정치적 의도가 있는 모함이라고…….

절대 우리 사형제가 암수일 리 없다고…….

그런데 흑도인도 백도인과 똑같이 행동할 줄이야.

‘이런 점 때문에 마교가 천하를 지배한 것인가.’

이놈들은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의 상식과 도덕을 파괴한다.

그렇기에 난 이 빌어먹을 천마의 피를 이어받은 놈을 절대 놓아줄 수가 없다.

소천검법을 극성으로 펼쳐 도기에 반응함과 동시에, 넷째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그 앞을 막아섰다.

내가 넷째를 압박하려 하는 순간.

서평오견 세 사람이 합격진을 짜 맞추어 동시에 여섯 곳의 요혈을 찔러 들어온다.

‘죽는다!’

개개인의 실력은 그다지 대단치 않았지만, 그들이 손발을 맞추는 순간 엄청난 위협이 느껴진다.

나는 재빨리 허공에서 몸을 두 바퀴 굴려 그 합격을 피했지만, 완벽하게 공격을 해소하진 못했다.

찌이이익.

뚝뚝.

팔뚝과 허벅지에 긴 상처가 났고, 그 사이로 피가 뚝뚝 흐른다.

넷째에게 가까이 다가간 세 사람은 한 번씩 넷째와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이며 합격진을 짰다.

나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에게 경고했다.

“형제를 믿고 싶은 건 알겠소. 헌데…… 좋은 선택은 아니라 말하고 싶군. 지금 문주를 죽인 자를 비호하고 있는 거니까.”

옷가지를 찢어 대충 상처를 감고 흑룡검을 고쳐 잡았다.

얼굴이 벌게진 서평오견의 둘째가 이를 악물었다.

“그건 우리가 조사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게 안 된단 말이오.”

“놈이 암수라 해도 우리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 어떤 혹독한 훈련을 받은 자도, 제 형제의 모습을 한 이를 쉬이 의심하고 죽일 수는 없다.

쌍영흉마여단을 쉬이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껍데기뿐일지라도 제 형제, 자매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옆에 있는 존재가 가짜라 밝혀진다면, 진짜는 이미 죽었다고 선고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절대고수들도 제 손자, 손녀의 모습을 한 암수에 당하는 마당에, 무공의 고저는 의미가 없다.

이 덫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오직 악의에 찬 독기.

“그러니까 네놈들이 소정대에게 당했던 것이지.”

짐승만이 마인을 물어뜯을 수 있다.

나는 태을문의 짜깁기 무공인 태을양장을 쏟아냈다.

퍼퍼퍼퍼퍼퍼펑!

전생에는 들이는 내력에 비해 위력이 형편없어 잘 쓰지 않았는데, 그 효율성이란 것도 사 갑자의 내공이 되니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이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순간적으로나마 서평사견의 숨을 멈추게 만든다.

더불어 최근에 익힌 교교신공을 펼쳐 놈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그대로 소천검법을 찔러 넣는다.

쾌액--

서평오견은 화살처럼 쏘아져 오는 흑룡검을 쳐내려 검을 휘두르지만, 내가 조금 빨랐다.

스걱.

앞쪽에 섰던 셋째의 가슴에 깊은 상흔이 생기며, 그가 그대로 쓰러진다.

검을 회수한 내가 다시금 검을 쏘아낼 준비를 하자, 곧바로 방어태세를 취하는 서평오견.

나는 그들이 쉬이 대형을 갖추지 못하도록, 대천검법을 펼쳐 놈들의 시야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촤르르르르르.

수십 개의 검형이 순식간에 자신들의 목과 요혈, 눈 등을 노리며 날아들자.

그들은 미친 듯이 도를 휘둘러 보지만, 대부분의 형상은 환검.

나는 이어 소천검법을 찔러넣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쾡애액--

종전보다 더 많은 기운을 담은 소천검법이 한 줄기 빛처럼 쏘아져 나간다.

“제길……!”

“크윽…….”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둘째와 막내가 양옆으로 피하는 순간.

난 흉수에게 만화무적권을 쏟아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콰쾅.

부지불식간에 주먹을 맞고 구석으로 몰린 넷째.

난 놈을 향해 흑룡검을 뻗어내었다.

촤르르르르륵.

금속으로 만든 부챗살이 펴지듯, 사방을 가득 메운 환검과 진검의 환영에 넷째는 몸을 부르르 떤다.

이내,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바닥을 박차고 하늘로 붕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나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어서.

“어딜!”

핑-

들릴 듯 말 듯 한 소성과 함께 날아간 비룡조가 녀석의 발목에 감기고, 난 설화(雪花)의 힘을 이용해 녀석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콰콰쾅.

“크흑…….”

고통이 엄청난 듯 몸을 웅크리고 신음하는 넷째.

나는 마지막으로 진각을 밟으며 단박에 녀석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탕!

끄그그그극.

흑룡검이 태도에 막히고, 서로의 무기가 긁히며 듣기 싫은 소리를 퍼트렸다.

“멈추라 경고했다……!”

피를 토했는지, 입가에 붉은 핏자국이 채 마르지도 않은 둘째가 소리쳤다.

나는 흑룡검에 더욱 힘을 실으며 말했다.

“저놈이 범인입니다.”

“넷째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무공을 썼다. 더불어 넷째 말대로…… 늦긴 했지만 분명 대답을 하긴 했고.”

나를 그를 바라보며 조소를 날렸다.

“원수를 두둔하는 걸 보니, 이번엔 당신이 죽고 싶은 모양이군요.”

태도를 든 둘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다.

“크흑…… 어쨌든 멈춰라! 이건 마지막 경고다.”

탕!

결국 서로의 기력에 밀려 각각 세 발짝식 물러나고, 둘째의 주위로 셋째와 막내가 다시 호위하듯 섰다.

둘째가 정면을 주시하며 넷째에게 물었다.

“넷째야.”

“네. 형님.”

“하나 물으마, 내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넷째가 억울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낚시 아니오! 낚시! 미끼가 없을 때도, 바늘이 없을 때도 낚시를 하지 않소! 형님의 무공도 거기서 얻은 깨달음과 관련이 있고 말이오!”

“그럼 막내의 첫사랑은 누구냐?”

“옆 동네 순이였지 않소. 대감집 첩으로 들어간 후에, 저놈은 세상을 저주하며 흑도가 된 것이고.”

둘째는 어느새 복잡한 눈빛으로 넷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최근 셋째가 잘못한 일은 무엇이 있지?”

“둘째 형님 전낭을 털었소.”

“……뭐?”

둘째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자기 전낭을 만지며 셋째를 바라봤고, 셋째가 시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보아라! 누가 봐도 내 동생이건만 대체 무슨 의심이 든다고…….”

그래, 진짜 같겠지.

아니, 저자는 넷째가 ‘진짜 넷째’라 믿고 있는 거다.

그건 백과 흑을 떠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감정이니까.

우리가 살아남은 건, 저열한 농담을 손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정확안 이유.

“아직도 모르겠소? 세 사람이 합격을 벌일 땐 분명 나를 압도했는데, 왜 넷이 합격진을 펼치니 밀려난 것이오?”

“…….”

……인간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짐승에 가깝게 변해버린 우리였기에, 그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인간미를 버려야 오히려 인간으로 살 수 있다니.

인간미를 버린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고개를 돌리던 사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사내는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범인 잡기.”

그리고 말과 함께 난 백열제천삼식 일초식 ‘극쾌’를 시전했다.

쾌행.

실내에 공기가 찢어 발겨지는 소리가 울리며, 방 안에 있던 나무 의자와 탁자들이 모두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쏘아져 나간 검기가, 사람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넷째의 목을 잘라버렸다.

푸쉬.

제 목을 더듬거리는 넷째의 허망한 목소리.

“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털썩.

넷째의 머리가 떨어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눈앞에서 형제의 죽음을 본 세 사람은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듯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 지금 뭐 하는…… 뭐 하는 것이냐? 내, 내 동생을…… 내 동생을…….”

둘째는 동생의 피를 뒤집어쓰곤,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서평오견뿐만이 아니었다.

혈검문에 소속된 인원 모두가, 피를 보자 이성을 잃은 듯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죽여!”

“죽여버려!”

“감히! 우리 혈검문을……!!”

마구잡이로 공격을 해대는 혈검문에 이어, 방금 전 형제를 또 하나 잃었던 서평오견이 서슬 퍼런 기운을 풍기며 내게로 짓쳐 들었다.

옆에서 방관하던 혈투가 결국 몸을 움직인다.

“……이 미친놈이!”

그는 대경하며 난전에 합류했고, 군유현도 합세하여 나풀거리는 장포로 무사들을 쓰러뜨렸다.

“진 공자! 도망쳐야 합니다.”

군유현의 급박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욱 깊숙하게 놈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극성의 태을팔만신보를 밟으며 그들의 뒤를 점했다.

내가 무슨 의도로 접근했는지를 아는 건지, 나를 둘러싼 흑도인들이 필사적으로 내게 도를 휘둘렀지만.

내겐 애당초 필요한 것이 따로 있었단 말씀.

난 재빠르게 넷째의 수급을 들고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내 손에 들린 머리를 발견한 서평삼견이 발작하듯 눈을 치켜뜬다.

다른 혈검문 인원들 역시,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이를 갈고 있다.

“당장 넷째에게서 손 떼!”

“흑염룡! 더 이상 우릴 능욕한다면 네놈을 찢어 죽일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잘린 넷째의 머리를 들어 얼굴 거죽을 쥐어뜯었다.

우드드득.

본래 떼어지지 말아야 할 피부가 쉽게 벗겨진다.

이윽고,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고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소란이 잦아든 사이로,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인피면구?”

모두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것들로 쏠린다.

넷째의 얼굴에서 떼어낸 인피면구.

그리고…….

여태껏 넷째 행세를 해왔던,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

혈검문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치열한 싸움을 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인피면구와 사내의 얼굴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게 당신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오.”

서평삼견은, 툭 하고 자신의 무기들을 바닥에 떨구었다.

실체를 알고 난 후의 반응은 백도나 흑도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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