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오늘의 운세(4)>
일부러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탓에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큰 폭발음이 울렸지만, 외부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를 완전 차단하는 기문진인가?’
뭔지 모르겠다.
애당초 들어올 때부터 졸라 복잡하기 그지없는 기문진이었으니까.
함께 들어왔던 일명이 아직까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한 걸 보면, 분명 내가 모르는 마교의 괴랄한 기문진이 분명하겠지.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시간은 맞춘 것 같긴 한데…….
사방에 흩날리던 종이들이 바닥에 가라앉으며, 그 안에서 차가운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군유현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떻게 안 겁니까?”
시벌, 뭐지?
너 책상쟁이 아니었냐?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말하지 않았나. 관심법을 쓸 수 있다고.”
“……이 와중에도 농담을 하는 겁니까?”
“왜 다들 안 믿는 거지? 난 진실만을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흑룡검을 뽑아내어 쌍천검결을 흩뿌렸다.
촤르르르르르륵.
발목부터 시작해 수없이 많은 칼날의 파도가 군유현의 몸을 차례차례 썰어내기 시작했지만.
쩌저적, 쩌저적.
기이하게도 칼날의 파도가 휩쓸고 간 곳엔 땡땡한 얼음 조각들이 흩어지며 떨어져 나갈 뿐, 작은 상처조차 생기지 않았다.
허, 진짜 뭐 하는 새끼지?
군유현이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로 차분히 물어온다.
“암수들이야 워낙 급조해서 만든 조직이니 결함이 있다 할 수 있지만…… 어찌 제 정체까지 파악할 수 있었지요?”
자신이 안전하리라고 꽤나 확신하는 듯, 녀석은 당장 직면한 상황보다 내가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만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만큼 제 실력을 믿는다는 건가?
아니면, 쌍영흉마여단처럼 본인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걸까.
오직 순수한 호기심으로만 물든 놈의 얼굴은, 지금의 상황과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도박장.”
“……거기서 말입니까?”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겨우 그걸로?”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궁금증을 남겨놔야 나도 내 궁금함을 풀 수 있지 않겠나?
“이번엔 내 질문.”
나는 흑룡검을 놈에게 겨누었다.
“네놈이 쌍영흉마여단의 단주인가?”
“쌍영흉마여단……!”
놈의 눈이 부릅떠진다.
그러나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군유현.
“당신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내젓는다.
“그냥 돌아가려 했습니다만, 그럴 수 없게 되었군요.”
“그냥 돌아가려 했다고?”
나는 담악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피를 흘리고 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다.
저딴 짓을 해놓고 그냥 돌아가려 했다니.
마교 새끼들이 말하는 ‘그냥 돌아간다’의 뜻은 강호의 것과 다른가?
하긴, 무슨 상관이겠나.
“애당초 네놈들은 근본부터 미친 새끼들이니까!”
소천검법.
제갈삼식.
제마식.
오직 마인을 상대하기 위해 개량한 살초.
쐐액-.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쏘아져 나간 흑룡검이 단숨에 군유현의 목덜미를 노린다.
푸칵.
놈이 만들어 내는 얼음 방벽보다 흑룡검이 조금 더 빨랐다.
픽.
푸식.
놈의 목덜미에 작은 상처가 나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제 피를 보던 군유현이 조금 당황스러운 듯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본다.
“어이, 사기꾼놈. 그렇게 멍청하게 기다릴 시간이 있나 보지?”
쐐액-.
공기를 가로지르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빛살처럼 쏘아져 나간 흑룡검이, 어느새 놈의 요혈을 마구 노리며 산개한다.
눈, 목, 명치, 심장, 폐, 낭심.
놈은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얼음 방벽을 만들어 내어 소천검법을 막아선다.
그렇다고 쉬이 물러설 순 없다.
“왜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거지?”
나는 소천검법을 회수하고 대천검법을 흩뿌렸다.
상승식의 대천검법보다 환검 개수가 적지만, 속도는 더 빠른 제마식.
놈이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내걸었다.
“질문이 잘못되었으니까요.”
핑. 핑. 핑. 핑. 핑.
우습게도 군유현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환검 속에 숨겨진 진검을 모두 솎아 튕겨냈다.
그저 단순한 암살단 수장의 실력이라기엔 너무도 정확하게 환검과 진검을 가려낸다.
대체 이 새끼는 어떻게 구분하는 거지?
무공의 수위가 심상치 않다.
더구나 적봉환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마기는 전혀 익히지 않은 듯 보이는데.
내 머릿속 장서고 안에도 이런 인물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었다.
그때.
“그게 무슨……. 쌍영흉마……?”
어라? 기절한 거 아니었나?
담악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저자의 정체가…….”
군유현과 마찬가지로 담악 또한, 생사의 기로에서 제 목숨보다 궁금증을 푸는 게 더 중요했나 보다.
하여간 별난 놈들.
“마교.”
“마교?”
현생의 담악에게는 좀 생소한 이야기일 터.
담악은 본래 강호인도 아닌 데다 강호인들 중에도 아직까지 마교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은 없다시피 했으니.
나는 담악에게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오백 년 전 사라졌다 알려진 증오스런 놈들이지.”
“사라졌다라…….”
내 말을 받아친 것은 담악이 아닌 군유현이었다.
그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비틀린다.
“당신들 입장에선 그렇게 말을 전하고 있었군요.”
“사실과 다를 게 있나?”
“역사란 것이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다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용납할 수 없는 단어를 함부로 쓰고 있었군요.”
군유현은 평소와 같이 호감을 자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피어나는 기파들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다.
“우린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마치 지옥이 재림이라도 할 듯 불온함이 가득하다.
화르르륵.
여태껏 얼음 방벽을 쓰던 군유현의 주위로, 순식간에 피부가 타버릴 정도의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다.
음가기공이랑 양가기공을 동시에 다루다니…….
시벌, 이게 무슨 일이야! 네가 장삼봉의 후손이냐!
군유현은 손을 들어 올리며 또박또박 내뱉었다.
“강호를 빼앗긴 것입니다.”
퍼퍼펑!
양손에서 뻗어 나온 불덩이가 포탄처럼 날아든다.
샤샥-
기를 불어넣은 흑룡검으로 화염구를 잘라내 보지만, 잘려나간 화염구는 그대로 벽면에 부딪혀 폭발해 버렸다.
퍼퍼퍼펑!
서책이나 가구가 많았던 공간이기에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살려 줘, 개새꺄……!
“……애당초 강호란 곳이 빼앗거나, 빼앗을 수 있는 거였던가?”
난 한 번도 강호를 내 손안에 둔 적이 없어서 공감이 안 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군유현은 강호를 빼앗긴 것에 퍽이나 화가 난 듯 보였다.
“……당신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적법한 자격을 가진 우리가 보금자리를 떠나 오백 년이나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그 억울함을.”
“그러게 마공 가지고 염병을 안 떨었으면 됐잖아!”
내가 검강을 휘두르자, 불붙은 가구들이 종이처럼 잘려 나간다.
그러나 군유현만은 여전히 여유롭게 손을 놀리고 있다.
허…… 저 새끼, 지 뜨겁다고 온몸에 얼음 두르고 있는 거 보소.
놈이 나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그것을 정론이라 이야기하다니. 역시 흑염룡 당신은 백도의 위선자답군요.”
와, 드디어 백도문파의 제자로 인정받았는데.
이번엔 마교의 졸개라니.
……어쨌든 지금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하다는 것.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군유현 저자는 이 공간 안에 기문진을 설치하여 외부와 내부를 분리시켰고.
그로 인해 나는 열기에 서서히 훈제가 되어가는 반면, 놈은 얼음으로 몸을 식히고 있었다.
‘청룡환, 적봉환.’
역천(逆天)의 존재를 마주하면, 정의(定意)와 도리(道理)가 몸이 근질거리는지 제 모습을 드러내고자 꿈틀거린다.
하지만 아직 담악이 멀쩡한 정신으로 이 사태를 직시하고 있는 상황.
아무리 내 안의 정의와 도리가 선의를 품고 있다 한들, 구현될 땐 공포의 형상으로 드러나기에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황.
……정말 그러다가 흑도, 마교 놈들보다 더한 존재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일단 담악이라도 내보내야 할 텐데.’
같이 들어왔던 일명은 아직도 기문진에서 길을 헤매는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도움 안 되는 대머리 같으니라고.
내가 고민하는 사이.
“진소운……. 나를 두고 가시오.”
담악이 무척이나 힘든지 헛소리를 내뱉는다.
어, 음…….
너 죽으면 안 된다고.
너 죽으면 나중에 저 새끼들 나 혼자 상대해야 한단 말이야.
나는 담악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시오.”
순간, 담악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대체 당신은…….”
그런 그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저놈 정체를 알아내야 하거든.”
특히나 군유현이 쌍영흉마여단의 실세라면, 이놈을 여기서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러니 숨이나 꽉 붙들고 계시오.”
넌 내가 나중에 단단히 써먹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만해천지검결을 펼치자 만검 여섯 자루가 떠올랐다.
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이만한 숫자를 뽑아내 본 적은 없지만, 상대는 음양기를 다루는 마인.
아무리 과해도 부족하다.
절반의 숫자로는 소천검법을, 남은 절반의 숫자론 쌍천검결을 펼친다.
검형의 폭풍 속에서 뇌전처럼 쏘아지는 검날들.
처음엔 지풍을 미친 듯이 튕기던 군유현도, 이내 긴 장포를 휘두르며 얼음 방벽을 만들기를 반복했다.
콰콰콰쾅.
놈이 만들면 내가 부수고, 놈이 만들면 또 내가 부수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
주변의 타오르는 열기에 부서진 얼음 알갱이들은 바닥을 금방 축축하게 적셨고, 이내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가 날 만큼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군유현을 향해 소리쳤다.
“내공에 꽤 자신이 있나 보네?”
“……강호인들은 유치하게도 내공의 양으로 수위를 정한다고 했던가요?”
“어, 맞아.”
군유현이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흘린다.
“아쉽지만, 우리 천교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
나도 그에 맞춰 씨익 웃어주었다.
“그래도 한번 맛 좀 봐봐. 내가 내공이 꽤 되거든.”
쿠르르르르르릉.
양손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한 기운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그르렁 울음소리를 내뿜는다.
“받아라! 이게 바로 정의의 맛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좁은 실내를 가득 채울 듯, 급속히 퍼져나가는 광천신장.
작은 내실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칠게 요동치고, 이윽고 완전히 뒤집어진다.
불길이 붙은 서책과 가구들이 가루로 흩날리고, 타오르던 열기마저 모두 사라졌을 때.
“……별로 좋은 맛은 아니군요.”
광천신장을 그대로 맞은 군유현의 신형이 드러났다.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손가락이 마구 뒤틀리고, 온몸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아직 그가 말을 할 만큼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그거참, 입맛에 안 맞아 어쩌지. 이게 안휘성의 특산품인데.”
이어 만검을 휘둘러 소천검법을 펼쳤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기에 얼음 방벽이 세워지는 순간-
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겨뒀던 초식을 쏘아내었다.
백월제천삼식.
제 일(一)식.
‘극쾌’
쐐애애앵-
공간마저 갈라버리며 쏘아져 나가는 무형의 검기.
소천검법의 검기를 해소하기 위해 세워졌던 얼음방벽은 백월제천삼식에 제때 반응할 수 없었고.
‘극쾌’의 검기가 그 틈을 파고들어 단매에 군유현의 심장을 꿰둟으려 한다.
끄그그그그그그극.
고막을 찢을 듯 불쾌하게 울려퍼지는 쇠 갈리는 소리.
어떤 보의를 입고 있든, 최소 중상의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극쾌’의 파괴력.
이에 곧 군유현의 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찰나.
터텅.
얼음 방벽이 깨지며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뭐야.”
군유현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멀쩡한 상태였다.
‘분명 타격음이 울렸는데.’
자세히 보니, 군유현의 오른손엔 거무튀튀한 색깔의 손목갑이 착용돼 있었다.
난 손목갑의 그려진 돼지 문양을 본 순간,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하…… 포식갑?”
담악이 깨어있다는 것도 잊은 채, 전생의 증오스런 기억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내 신음과도 같은 말소리에, 도리어 군유현의 두 눈이 살짝 커진다.
“흐음……. 이 물건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대체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군유현은 이제 턱까지 쓸며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반면 나는 전혀 여유를 찾지 못했다.
포식갑은 마교의 십삼(十三) 마기 중 하나로 알려진 물건.
검기는 물론이고, 물리적인 충격까지 흡수해 대는 역천의 기물.
당초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마교가 포식갑으로 전원 무장을 할 수 있었다면, 무림맹의 멸망은 몇 년이나 더 앞당겨졌을 거라고.
그리고 그 증오스런 마물의 주인은…….
“네놈, 마뇌의 수족이구나.”
“……!”
훗날 호교법왕이 되는 마뇌의 칠(七)제자 중 하나인 음양쌍마 제금학.
그 빌어먹을 이름이 군유현의 실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