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오늘의 운세(5)>
마뇌는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자신의 지식이 한 사람에게 온전히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그 지식을 하나씩 물려받을 제자들을 키웠다.
그것이 칠마지군(七魔智君).
제금학은 그 칠마지군 중 흉군을 차지한 놈이다.
칠마지군 중에서도 하필 이놈이…….
훗날, 무림맹의 총군사인 제갈소명을 죽여 무림맹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 놈.
전생에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던 놈을 이번 생에서 이리 떡하니 마주하다니.
이게 확률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린가.
설마 내가 관심법 운운을 좀 했다고 일명이 나에게 저주를 내린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순 없는데.
“……흠. 대체 당신 정체는 무엇이지요? 흑염룡?”
군유현…… 아니, 흉군 제금학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쌍영흉마여단은 물론이고 포식갑과 제 정체까지……. 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
혹시나 궁금증으로 인해 죽는 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저 새끼를 상대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놈은 내 묵묵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대답해 주지 않겠지요?”
뚜두둑. 뚜둑.
제금학은 구부러진 제 손가락을 도로 펴더니, 양손에 서로 다른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직접 말을 하고 싶어지게 될 겁니다.”
빌어먹을 새끼들, 무당의 양의심공도 저리 확연하게 두 가지 기운을 다룰 수 없다 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고 불평불만만 터트리고 있을 순 없다.
내가 불만을 터트린다고 대신 해결해 줄 사람 따윈 나타나지 않을 테니.
놈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기운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했다.
서로 상극인 화기와 수기가 만났음에도 어찌 된 조화인지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광대하다.
마치 불붙은 벽력탄을 보듯 불온하기 그지없는 모습.
백월제철삼식
일초식
‘극쾌’
놈이 시간을 쓰는 틈을 이용해 놈을 공격했다.
최소한 양손을 쓰고 있는 동안엔 포식갑을 쓰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쐐액--
공기를 꿰뚫고 나아가는 검기가 놈의 가슴을 잘라 내려 하는 순간.
짝-
놈이 양손을 마주쳤다.
그 순간.
피잉--
공간을 가득 채우며 뻗어 나오는 엄청난 기운.
“끄아아아악!”
내기를 사용한 기운으로 버티고 말고 따윈 없었다.
공간 자체를 밀어내며 날아드는 공격은 광천신장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퍼퍼퍼퍼퍼퍼펑!
공간의 제약 때문인지 폭발이 밖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내부로 되돌아온다.
내부로 되돌아온 폭발의 충격이 온몸의 뼈를 잘게 부수는 듯 강하게 느껴진다.
‘미친…….’
만약 담악이 이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로선 살아남을 수가 없다.
난 재빨리 몸을 돌려 담악을 충격으로부터 보호했다.
“지금 대체…….”
뭘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담악.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어차피 여기서 내가 죽으면 담악이 살아남든 죽든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어쨌든 담악은 그 처절한 정마대전 속에서 제갈소명을 대신해 무림맹의 생을 이어갔던 자.
내 몸은 자연스레 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등 너머로 제금학의 비아냥 섞인 말소리가 들려온다.
“적이 될 자를 살리려 하는 것. 그것이 흑염룡의 협의입니까?”
협의? 글쎄 내가 협객을 꿈꾼 적이 있었나.
전생의 이맘때, 계철영에게 특별전형의 자리를 무력하게 빼앗겼을 때부터 협객의 꿈은 진작 버렸다.
“난 협의 같은 걸로 움직이지 않아.”
의념을 따라 분노한 듯 들썩이는 태을진경이 화끈 달아오른 등의 온도를 천천히 낮춘다.
다행히 왕금산에게 받은 천잠보의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조소가 지어진다.
“뱀심으로 움직이지.”
담악이 설사 나의 적이 된다 한들, 나 대신 마교에게 엿을 먹여줄 수 있다면 난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도 있다.
“뒈져 이 새끼야!”
왼손으론 만화무적권을, 오른손으론 쌍천검결을 흩뿌리며 놈을 밀어붙인다.
제금학은 여전히 얼음방벽을 새워 검기들을 막아냄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겨 환영 속에 숨은 진검과 권력을 해소한다.
이러다 내 공격이 멈추는 순간, 불덩이를 쏟아내 반격을 하겠지.
얼추 저놈이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하는지 계산이 섰다.
팅- 팅- 티티티티팅-.
내 예상대로 움직이며 진검과 권력을 해소한 제금학의 왼손에 불덩이가 모이는 순간.
흑룡검을 던져 불덩이를 공격함과 동시에 태을팔만신보를 밟아 녀석의 뒤를 점했다.
평온을 유지하던 놈이 소리친다.
“이런 어리숙한 공격에 제가 당할 거라……!”
그리고 놈이 얼음방벽을 세우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치이이익!
난 준비했던 성화멸마수를 전력으로 끌어올려 얼음방벽을 뚫었다.
“이 무슨……!”
“화기를 네놈만 다룰 수 있는 거라 생각한 것이냐!”
얼음방벽은 성화멸마수의 화끈한 열기에 순식간에 수증기가 되어 사라지고, 놈의 가슴이 크게 열렸다.
그러나 제금학이 포식갑으로 한쪽 성화멸마수를 막자, 손안에서 일렁거리던 열기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야, 진짜 못 해먹겠네.
그래도…….
“아직 한 손 남았어!”
나는 남은 한 손을 힘껏 뻗었다.
한쪽 멸마수가 포식갑에 막히고, 남은 한 손으로 녀석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마음대로 둘 것 같습니까!”
제금학이 손안에서 일렁거리던 화구로 성화멸마수를 맞받아쳤다.
촤르르륵.
공간을 반으로 나누듯 정확하게 퍼져 나가는 두 개의 불꽃.
“무슨…….”
믿지 못하겠다는 듯 제금학의 두 눈이 흔들렸다.
이윽고 손안에서 시작된 엄청난 압력이 통제를 벗어나며 사방으로 폭발했다.
퍼퍼버버버벙.
난 필사적으로 내기를 끌어올린 채 얼굴을 보호했다.
팔과 어깨, 다리와 허벅지를 휩쓸고 가는 화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환한 빛이 가시고 드러난 공간의 풍경은 이전과 달랐다.
시뻘겋게 방벽이 세워져 있던 벽들에 검은 구멍 같은 것이 생겼고, 내부에는 이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는 재들만이 가득했다.
난 얼른 몸을 살폈다.
작게 화상을 입은 것 외엔 크게 다친 덴 없었다.
얼른 흑룡검을 집어 들고 담악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소?”
“…….”
역시나 담악은 이미 혼절해 버린 상태.
그나마 숨은 붙어있어 다행이었…….
들썩들썩.
갑작스런 기척임에 고개를 돌려보니.
“지랄…….”
허, 아직도 살아 있다고?
시꺼먼 재가 되어버린 채 쓰러져 있던 제금학의 신형이 들썩거린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투둑 투둑, 투둑, 투둑.
검은 재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며 제금학이 천천히 일어선다.
진짜 지랄 맞네.
녀석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진다.
“……후.”
뚜두둑- 뚜두둑-.
몸을 일으켜 몸과 어깨를 푸는 제금학.
폭발로 인해 옷자락이 모두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그의 몸에는 작은 화상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이 무공의 궤는 본교의 것과 비슷한 면이 있군요. 이건 어찌 된 일입니까?”
담악이 기절한 상태라 천만다행이다.
사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어쨌든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단 방증 아니겠는가.
내가 담악이 슬며시 내려다보고 있자, 제금학의 미간이 주름이 더욱 깊게 파인다.
“……혹여 본교의 사생아인 겁니까?”
이놈 나가도 너무 나갔네.
“그런 거라면 좀 더 이야기를…….”
내가 어이가 없어 대답을 않고 있자, 놈은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이 빌어 처먹을 놈이 왜 멀쩡한 사람을 서자로 만들어!”
다시금 지리멸렬한 차륜전이 이어진다.
놈은 내 공격을 막아내고, 내 몸엔 하나둘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의 전력이 비슷한 상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녀석은 내공의 소모가 없어 보이는 상태.
그와 반대로 난 전심전력으로 내공을 쏟아붓고 체력을 소모해야 녀석의 공격을 겨우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안 좋은 생각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 생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가지고 있던 기운마저 떨어뜨릴 뿐.
차라리 좋은 생각……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겠네. 젠장.
그때.
찌지지직.
검게 변한 기문진 사이로, 황금빛이 번쩍이며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얼굴을 드러냈다.
“진 시주…… 여긴 대체…….”
내 인생 최고로 반가운 대머리였다.
핑-
나는 얼른 비룡조를 쏘아내어 담악을 잡아챈 다음 일명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담악을 맞이한 대머리가 당황해 소리친다.
“지, 진 시주! 갑자기 이런 걸(?) 던지면 내가 도와줄 수…….”
당신이 빠져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담악의 몸이 일명이 만든 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홀은 다시금 시뻘겋게 변해버렸다.
뒤에서 조소가 들려온다.
“어리석군요. 빠져나가는 쪽이 살 가능성이 더 높았을 텐데.”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젓는 제금학.
하지만 난 속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다 기문진 안에 갇혀 버리면 이놈을 상대하는 게 더 까다로워졌을 테지.
저놈이 제가 알지도 못하는 기문진을 설치했을 리가 없다.
나는 조소로 맞받아쳤다.
“고양이 쥐 생각하는 소리 하네.”
그게 저놈들의 본질이니까.
#
담악의 처소에 있던 혈투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들어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벌써 이각이나 지났다.”
진소운의 부탁으로 담악의 처소에까지 와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진소운은 밖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막아달라는 말만 했다.
당서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소운은 허튼일을 시킬 사람이 아닌 것이야.”
“응?”
평소엔 뭔 생각을 하는지 맹한 눈동자를 보이던 당서희가 품에서 각종 자개 병과 비도 등을 꺼내어 손에 쥐기 시작했다.
이어, 아직 회복이 채 되지 않은 악병비마저도 철창을 움켜쥐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혈투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진소운이 말하기로 이곳으로 위험한 자가 온다고 한 것이야.”
“위험한 자?”
혈투가 기감을 넓혀 보지만, 이 인근을 오가는 건 어설픈 흑도인들에 불과했다.
헌데 위험한 자라니.
화르륵.
그때, 염귀비가 화들짝 놀라며 양손에 화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래예요.”
“아래?”
혈투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횃불에 비춰 일렁거리던 그림자가 기이한 모양새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인지하고 바닥을 박차는 순간.
촤촤촤촥──
검은 칼날이 튀어나오며 인원들을 공격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혈투가 복숭아뼈에서 흐르는 핏물을 털어내며 노기를 표출한다.
허나, 평소와 같이 무작정 발을 날리진 않았다.
방금 전 한 수로 놈들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차렸으니까.
혈투의 발목을 노렸던 칼날이 스멀스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이어 검은 형체가 꿀렁거리며 주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온몸을 칭칭 가린 존재.
횃불이 일렁이며 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머리까지 뒤집어쓴 장포 안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웬 놈이냐!”
“…….”
으르렁거리는 혈투의 말에 대답은커녕 아무 답변도 하지 않는 놈들.
열에 가까운 놈들은 절반으로 나뉘어 기문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혈투를 일행들이 재빨리 달려들었지만, 남은 반수의 장포인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이 일행을 막아섰다.
“이 무슨…….”
저마다 장포가 펄럭 커지더니, 화염구고 강기고 모두 흡수하여 흘려버린다.
어처구니없이 혈투 일행의 공격이 막혀버린 사이.
절반의 장포인들이 기문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감히…… 이 놈들이!”
핏물이 흐르던 혈투의 오른발에 붉은 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혈투에 곁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당서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야 하는 것이야. 진소운이 무서운 놈들이라 한 것이야.”
간을 무림학관에 놓고 온 듯한 그놈이 무서운 놈들이라 했다니…….
하기야 딱 한 수만을 나누어 봤지만, 놈들의 수법이 범상치 않다.
혈투는 어쩐지 평소보다 발에 힘이 더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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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문진을 이용한 전투 방식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문진을 이용해 전투를 벌이면 상대를 내가 원하는 판에 끌어들여 싸울 수 있다.
도박사도 자신이 만든 판에서 호구들 털어먹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무사라고 다를까.
무림학관에서 무량불괴멸혼진을 펼쳐 사람들이게 기문진을 경험하게 한 일도, 어쩌면 먼 훗날 함께 마교와 싸울 때를 대비한 것.
상대는 기문진에 갇혀 차례차례 지옥문을 향해 걸어 들어오는 반면, 우리 편은 기문진을 자유로이 오가며 지원을 하고 부상자를 구해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무력의 차이건 사술의 괴이함이건, 판만 제대로 벌이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상상만 해왔던 일이 실제로 구현되는 걸 보니 더욱 좋다는 체감이 된다.
‘문제는 이 십쌔기들이 나한테 저 작전을 쓴다는 건데.’
붉은 벽을 뚫고 검은 장포의 다섯 인원이 들어선다.
마침 내가 제금학에게 정의(定義)와 도리(道理)를 교육시켜 주려던 참이었는데.
“하아…….”
인원들을 확인하자마자 한숨부터 터져 나온다.
무형비마대
마교의 호위무사라 불리는 그림자 부대가 들어섰기 때문.
누군가 놈을 도우러 들어올 줄 예상은 했건만, 그게 무형비마대라니.
하긴 혈투와 염귀비, 당서희까지 뚫고 기문진 안으로 들어오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내 생각보다 마교내에서 제금학의 현 위치가 그리 낮지 않은 듯 보였다.
내 반응에 역시나 제금학이 치고 들어온다.
“호오, 눈치를 보니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보군요.”
“…….”
여태껏 여유만만이었던 제금학은 이제 아주 평상시와 똑같은 말투를 쓴다.
그래, 좋겠지. 나도 같은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돌려줬을 텐데.
나는 무형비마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좀 비겁하지 않나? 그래도 일대일로 싸우고 있었는데 말이야.”
“백도 문파에서는 백도의 최장점을 머릿수라고 한다지요?”
나는 이 말에 동의한 적 없다.
왜냐면 우리 소정대가 있는 곳은 언제나 적보다 머릿수가 적었으니까.
“선동과 날조를 하다니, 역시나 마뇌의 제자인가?”
“후후후.”
놈이 기분 나쁘게 웃는다.
아니, 놈은 그냥 평소처럼 웃었는데 내 기분 자체가 나빠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이번 생에서도 내 끝이 슬슬 보이는 것 같거든.
“정말 재미난 분이시군요. 소마님이 흥미를 가지실 법합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마’라는 말에 머리속이 싸하게 가라앉는다.
마교의 졸개들이 말하는 ‘소마’란 존재는 본래 하나뿐이니까.
굳어진 내 표정을 관찰하던 제금학이 옆으로 시선을 던진다.
“본래는 다른 목적으로 왔습니다만…….”
담악이 빠져나간 곳을 보던 놈이 이내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어쩌면 이쪽이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분명 이건 내 기분이 나뻐서가 아니다.
저 새끼가 징그럽게 웃고 있는 게 확실하…….
“저와 함께 본교로 가주시겠습니까?”
“뭐?”
아니,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사흑련에서 부련주 자리를 주겠다 한 게 엊그제였는데.
벌써 마교에 초대까지 받다니 나 정말 너무 출세하는 거 아냐?
“내 생전에 그런 끔찍한 소린 처음 들어보는군.”
“아, 의중을 물어보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결정된 것을 이야기해 봤을 뿐이죠.”
“…….”
미친 새끼.
제대로 미친 새끼.
난 놈과 기문진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사이, 무형비마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 수 없는 기문진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히 있다간 마교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쪽도 나에게 달갑지 않은 선택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이런 가혹한 양자택일은 간만이네.’
어떤 선택을 해도 나에게 최악의 상황만 가중시킬 뿐이라면, 적어도 상대에게 엿을 먹여줄 수 있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내가 엿 같았던 전생을 견뎌냈던 방법.
타탁.
나는 좁은 곳에서 펼치기에 결코 좋지 않은 천하독행신을 밟았다.
탕.
빠른 속도는 둘째치고 방향조차 쉬이 제어되지 않는다.
무형비마대 놈의 검을 쳐냄과 동시에, 녀석의 장포를 잡고 가까스로 멈춰 선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에서 뻗어나오는 검날을 몸을 돌려 피한 후에 만화무적권을 뿌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
얼음방벽은커녕, 무형비마대원들이 뿌린 장포에 막혀 뻗어나가지 못하는 만화무적권.
아니, 되려 만화무적권을 막은 장포는 천천히 내 쪽으로 휘감기더니 주먹과 팔을 잡아챈다.
그물에라도 갇힌 듯 꼼짝 않는 왼팔.
이러리란 건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러러렁.
흑룡검에 검강을 둘러 소천검법을 쏘아내었다.
한 줄기 빛이 되어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검강이 얼음방벽을 뚫고 제금학의 관자놀이를 꿰뚫으려는 순간.
휘익- 터억.
다른 무형비마대원의 장포가 오른손을 감아 멈춰 세운다.
제금학이 고개를 슬쩍 피하며 빙긋 웃는다.
“역시 무형비마대가 어떤 힘을 가진지는 모르고 있었군요.”
녀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로 한 발 다가온다.
그러곤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는다.
“이들은 상대를 생포하는 데 꽤나 괜찮은 재주를 가지고 있지요.”
당장이라도 뭉개버리고 싶을 만큼 역겨운 웃음.
“그런가?”
나는 곧바로, 무형비마대원에게 잡힌 양손에 성화멸마수를 시전했다.
화르륵.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손을 감고 있던 장포가 잠깐 풀린다.
하지만 이내 더 많은 장포들이 손아귀를 감싸려 한다.
그 모습을 보던 제금학의 얼굴이 더욱 여유만만해진다.
“소용없습니다. 그들에게 한번 잡힌 사람은 절대로…….”
그러니까 저 표정 정말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절대라 이거지?”
나는 전력을 다해 성화멸마수를 뻗어냈다.
애당초 옥청천상력의 성력을 품은 성화멸마수는 제마의 효능이 뛰어나다.
턱.
장포를 불태우고 뻗어나간 왼손이 제금학의 손과 맞붙는다.
쩌저저적.
이어 서리라도 내린 듯 성화멸마수의 열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손의 감각도 아득히 멀어진다.
아직 여유로운 제금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더구나 열기도 얼마 못 가는군요.”
이 새끼는 스스로의 무공에 꽤나 자신이 있나 보다.
왜 일부러 불길을 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지.
나는 놈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왜냐면 더 이상 그게 필요 없으니까.”
“?”
이어 곧바로 왼손에 착용된 청룡환을 발동시켰다.
“응?”
자, 여유만만한 표정은 깨졌고.
솨아아-
손 위에 내렸던 하얀 서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동시에 내 반대 손에서 타오르는 성화멸마수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금학의 얼굴에 경악까지 서리기 시작한다.
“이, 이게 무슨……!”
뭐긴 뭐겠어?
네놈들이 환장하는 흡성대법이다!
제금학은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역시 저 표정이 제일 보기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