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오늘의 운세(6)>
생각해 보면 전생의 삶이 가혹했던 이유는, 팔자 자체가 재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생보다 훨씬 강해진 이번 생임에도, 순탄하긴커녕 전생보다 삶이 더 가혹하게 느껴질 리가 없잖아.
막말로 전생에 보지도 못한 음양쌍마를 회귀하고 만날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되나?
팔자가 더러운 놈은 회귀를 해도 팔자가 더러운가 보다.
진짜 더러운 세상.
그렇기에 내 불운이 다른 놈에게 넘어가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흐, 흡성대법!”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맞다, 이 새끼야!”
사흑련에서 며칠간 함께 있었다고 내 재수가 이놈에게 번진 게 틀림없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강호에 몰래 숨어들어와 좁밥이라 생각하고 죽이려 했던 백도의 협객이, 흡성대법을 몰래 익히고 있으려면 아닌 말로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하겠는가.
이래서 부모님이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한 거…….
“아! 마인들은 부모님이 없지?”
“…….”
화르륵!
청룡환을 타고 들어온 내기는 단전을 통해 곧장 오른손의 성화멸마수로 연결된다.
엄청난 내기가 공급된 탓인지, 손안에서 머물러야 하는 제힘을 감당치 못하고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불길을 붙였다.
퍼펑!
투두둑, 투두둑.
장포에 불이 붙은 무형비마대는 어떻게든 불을 꺼보겠다고 장포를 펄력여 보지만, 마기를 만난 성력의 성화가 그리 쉽게 꺼질 리가 있겠나.
“크흑!”
제금학의 얼굴은 서서히 핏기가 가시며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니까 미인도에 그려 놓은 선녀같이 생겼네.
기분 나쁘니까 너도 한 방.
퍼펑!
“커흑!”
그의 내기를 뽑아내어 크게 키운 성화멸마수를 그의 발치에 한 방 먹여주고.
동시에 제금학의 목을 팔로 휘어 감아 내 앞에 방패처럼 세우곤, 무형비마대를 향해 성화멸마수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움직이지 마, 이 개새끼들아! 아주 그냥 움직이기만 해 봐 이 그지새끼들아, 그 즉시 이 새끼 통구이 되는 거니까!”
“…….”
“…….”
장포를 잘라내는 것으로 겨우 불을 끈 무형비마대 놈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바닥으로 두 놈이 사라진다.
내가 아차 싶어 몸을 돌리려는 순간.
푹.
“크흑!”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오는 통증이 전신에 퍼졌다.
이 비겁한 새끼들!
다행히 천잠보의 덕분에 힘이 금방 빠지진 않는다.
“이 개새끼들이…….”
네놈들이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지.
나는 곧장 청룡환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는 청룡환을 통해 흡수되는 기운이 감당되지 않을 정도.
퍼펑! 퍼펑! 퍼펑! 퍼펑!
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성화멸마수를 주변으로 마구 흩뿌렸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다 함께 죽는 게 덜 외롭지 않겠어?.
저승길을 이놈들과 함께 간다는 게 짜증 나긴 하지만, 최소한 가는 동안 이놈들을 놀릴 수는 있을 테니까.
“드루와 이 시벌새끼들아!”
퍼퍼퍼퍼펑!
기운을 한껏 받아 끌어올린 성화멸마수는 전생에 보았던 혈옥수와 비슷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불길을 품은 손아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뭐든지 태워버릴 화정(火定)으로 변한다.
옆구리를 찔렀던 검날을 잡아채니, 검날이 순식간에 녹아 떨어져 나갔다.
땡그렁.
어라? 이거 괜찮네?
난 곧장 멸마수로 제금학의 얼굴을 감쌌다.
치이이익──.
메케한 냄새가 풍기며, 놈이 처음으로 괴랄한 비명을 질렀다.
“크허헉!”
조금만 더 하면 제금학의 명줄을 딸 수 있겠다 생각한 순간.
푹, 푸욱.
오른팔과 허벅지를 찔러 들어오는 무형비마대의 검.
하여간 개새끼들, 천잠보의가 없는 곳만 찔러대네.
파고드는 고통에 팔을 빼내려는 본능을 꾸욱꾸욱 억눌렀다.
여기서 고통스럽다고 팔 빼면, 진짜 혼자 저승길 가는 거야.
“……그건 너무 외롭잖아!”
미친 듯이 온몸을 비틀며, 칼을 쳐내고 제금학과 바닥을 굴렀다.
난생처음 끌어안고 격하게 구르는 상대가 제금학…….
씨바, 난 진짜 재수 없는 놈이 맞다.
“하아, 하아, 하아…….”
내기를 흡수하여 멸마수를 쏟아붓고 있다곤 하지만, 신체적으로 한계점이 서서히 다가온다.
청룡환을 쓴다 해도, 결국 내기가 거치는 것은 내 단전과 혈맥.
신체적 소모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크흑…….”
모용상원을 구할 때처럼 온몸에 과부화가 걸리고,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갈 듯 어질어질하다.
“크흥, 크흥, 크흥.”
다행히 제금학도 고통스러운지 괴로운 신음을 내뱉는다.
헌데 그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솨아아-
뜨겁게 타오른 성화멸마수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시뻘겋게 화정(火定)처럼 달아올랐던 손이 빠르게 제 색깔을 찾기 시작한다.
분명 쏟아붓는 내기는 똑같은데……?
이어, 손 위로 차갑게 서리가 내린다.
나는 놀라 내 몸에 밀착된 제금학을 살펴보았고.
“빌어먹을…….”
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위기를 감지한 제금학이 뭔가 다른 수단을 쓰기 시작한 것.
그리고.
쩌저적.
순식간에, 손부터 시작해 팔 전체가 동상에 걸린 듯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 와중에 청룡환에서 흘러들어 오는 기운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그저 빈 단전을 채우는 수준의 내기가 아니었다.
그 옛날 인면지주의 내단을 흡수할 때처럼 진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뭐지? 사람의 생기를 빨아들여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없었는데…….
다시금 놈의 상태를 살펴보니.
핏발선 눈동자나 곤두선 머리카락으로 보아, 놈이 선천지기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 자식…….’
……몸에 좋은 놈이었잖아!
망망대해같이 거대한 내기에 더해 어마어마한 양의 선천지기까지 흡수하니, 만년화삼을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기가 단전에 꽉 들어차기 시작한다.
하지만 막대한 진기의 양 때문에 더 이상 내기는 흡수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대로라면 팔이 얼어붙은 채로 부서질 것만 같아서 놈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놈과의 불쾌하고도 짜릿한 접촉을 끝내자마자,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허…… 삼십 년 치?’
그 짧은 시간 동안 단전의 크기가 많이도 불었다.
근래에 들어서 어떤 영약이나 영단을 먹어도 내공이 비약적으로 늘지 않았는데.
제금학은 그 어떤 영약보다 더 탁월하게 내공의 양을 늘려주었다.
나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재수 없었던 상판때기가 이뻐 보인다.
음…… 얼굴이 반쯤 녹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고.
“크아아악!”
제금학이 제 얼굴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지르자, 무형비마대 셋이 그의 주위를 감싸며 그를 보호한다.
그사이 남은 무형비마대가 내게로 짓쳐들어오는데, 솔직히 더 이상 움직일 힘 따윈 없었다.
그냥 제금학도 치료할 겸 놈이나 들고 이대로 도망쳐 줬으면 좋겠건만…….
“저 새끼를 반드시 생포해라! 놈을 본교로 끌고 가 살점 하나하나를 도려내며 죽일 것이다!”
몸에 좋은 남자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판때기 예뻐 보인단 말도 취소다 이 새끼야.
나는 두 발에 힘을 주어 겨우 버티고 섰다.
“하아, 하아, 하아.”
단전의 크기가 늘어난 건 좋았지만, 이미 사용 한계치에 다다랐다.
아랫배를 비롯하여 온몸에 비명을 지르지 않는 곳이 없었고, 상처에선 아직도 핏물이 줄줄 흘렀다.
몸에 익다 못해 자다가 일어나서도 펼칠 수 있는 소천검법을 펼쳐보지만, 전생의 기량의 반도 나오지 않는다.
채채챙.
어처구니없이 공격을 허용해 버렸고, 그럴 때마다 팔과 가슴에 상흔이 새겨진다.
시발, 전생에서도 이런 어이없는 공격은 허용한 적 없었는데.
눈과 머리로는 빤히 검로가 보이는데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다.
쐐액-
억지로 먼저 공격을 해보지만, 되려 틈만 보이며 공격을 추가로 허용했다.
퍼억.
쿠당탕.
바닥을 두 바퀴나 굴러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금세라도 무릎을 꿇고 싶어 하지만…….
난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지옥으로 가는 게 아니라, 마교로 끌려갈 테니까.
백도인 최초로 마교에 입성하는 명예는 용소아에게 양보하고 싶다.
아니면 도움 안 되는 대머리 일명 선배나.
‘제금학…… 제금학 저놈만…….’
내 목표는 생존에서 양패구상으로 바뀌었다.
최소 음양쌍마만 지옥으로 함께 끌고 가면, 제갈소명의 생이 조금 더 이어지지 않겠나.
더구나 지금 무형비마대를 물러나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고.
지금 내 목적이자 목표인 녀석의 외침이 공간을 뒤흔든다.
“비켜라! 일단 저놈 얼굴을 뜯어내는 것부터 해야겠다.”
몸에 좋은 남자.
내 덕에 이제는 반안반흉의 별호를 가지게 될 제금학이 손안에 불길을 만들어 내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을 주시하며, 만해천지검결을 극성으로 펼쳤다.
우웅─.
좁은 허공에 생겨나는 여덟 자루의 만해천지검결.
이야, 확실히 몸에 좋은 걸 먹었더니 기량도 금방 늘어나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내공을 때려 넣어 검강까지 둘렀다.
제금학으로 인해 가득 찼던 내공의 삼분지 일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어 여덟 자루의 검들이 칼춤을 추며 쌍천검결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좁은 공간 안에 불어닥친 검날의 폭풍은 제금학과 무형비마대를 구분치 않고 마구 잘라내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채채채채챙.
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챙.
시끄러운 검날 튕기는 소리와.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
번쩍, 번쩍, 번쩍.
강기의 부딪침으로 인해 생겨나는 빛무리가 눈뽕을 선사하며 시야를 멀게 만든다.
어차피 손에 닿는 모두가 적이니 누굴 딱히 지정할 필요도 없다.
난 이제 눈까지 감아버린 채 칼춤을 추었다.
콰콰쾅. 콰콰쾅. 콰콰콰콰쾅.
격기의 폭풍이 좁은 실내를 메우고 또 메운다.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새끼가 펼친 기문진은 대단한 물건이다.
나의 내부 장기가 압력을 못 이겨 터질 것 같은 와중에도, 금 하나 안 가니 대단한 물건이라 할 수 있겠지.
“우우우웩.”
한바탕 검날과 격기의 폭풍이 가시고, 내부가 진탕된 나는 검은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해냈다.
그리고 가까스로 눈을 떠 상대를 확인했을 때.
나는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바…….”
바닥에 쓰러진 헝겊데기를 보니 무형비마대원 하나는 어찌 처리한 것 같았다.
그런데.
스르륵.
제금학을 똘똘 감싼 채 온몸으로 보호하던 나머지 넷이 천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니 도저히 욕지거리를 참을 수가 없다.
“싸움 좆같이 하네.”
놈이 독기 오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게 끝이냐?”
아니라고 말하고 감자라도 하나 먹여주고 싶은데.
솔직히 이젠 나도 힘이 없다.
쉬릭──.
이내 무형비마대의 장포가 내 팔과 다리를 감싼다.
전생에 소정대에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회한이 가득 들고, 두려움이 전신에 엄습한다.
“일을 이렇게까지 벌인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해주마.”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청아했던 제금학의 목소리는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추한 노인네의 것처럼 거칠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 공포스럽게 들려온다.
‘……이제 죽는 건가?’
손발이 제압당했으니 자진도 할 수 없는 상태.
난 스스로 내 생을 끝내기 위해 단전을 역류시켜 백회를 찌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의 마지막임을 직감한 듯, 머릿속으로 온갖 기억들이 촤르르 떠오르며 삶을 반추하게 하는데…….
‘시발, 왜 이딴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냐?’
최소 아버지의 얼굴이나 태을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줄 알았건만.
기억 중에 맨 처음 보인 것은 교교신공으로 장난을 치던 노름꾼의 얼굴이었다.
[자, 돈 놓고 돈 먹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지나가는 개도 맞히는 바로 그 놀이! 콩을 찾으세요. 콩!]
염병.
다른 기억 가져오라고!
내가 속으로 발악하자, 그제야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소리를 담아 다른 공간에서 터트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게 혈투.
이어 보이는 모습은 얼음방벽을 만들어 내 검을 방어하는 제금학…….
아니, 씨바 이 눈치 없는 기억들아, 저리 좀 꺼지라고!
한 명만! 딱 한 명만이라도 여자…….
[무공은 자연의 도를 닮으려 하면서도 자연의 도와 하나가 되려 하지 않는다. 무의 도와 자연의 도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더냐?]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나오는 이는 모용강이었다.
어찌 삶의 마지막을 반추하건만, 이런 징그러운 얼굴들만 나오는 건지.
이래서야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겠네.
……그래, 죽지도 못하겠다.
“하…… 하하…….”
내 웃음에 제금학이 징그럽게 녹아내린 얼굴을 찡그린다.
“웃어?”
나는 놈을 향해 보란 듯이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오늘 운세 처봤나?”
“운세?”
“아마 오늘 내 운세를 쳐보면…… 오천왕이 나올 것 같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제금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아무래도 내가 오늘 죽을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머릿속을 가득 채운 목소리.
[무의 도와 자연의 도가 하나로 합치하려는 시도.]
이내, 딱딱하게 굳어있던 단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켜버린 혈맥을 굳이 뚫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제자리에서 조용히 움직이기만 할 뿐.
뻗으려 할 필요도 없고, 닿으려 할 필요도 없다.
도란 그저 그곳에 있는 것.
억지로 움직이려 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레 동조하여 함께 움직이면 될 뿐이니까.
그것이 공멸(空滅).
그리고…….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갑자기 무형비마대원들의 머리 위에 피어오른 네 개의 성화.
“이, 무슨…….”
이어 당황하는 제금학의 가슴에도 성화가 피어올랐다.
[그것이 바로 공멸권(空滅拳)이다.]
머릿속에, 모용강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