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48화 (248/357)

248. <판돈을 챙기는 흑염룡>

“으아아아악!”

제금학이 미친 듯이 제 가슴을 두들겼다.

그를 호위하듯 섰던 무형비마대원들도 제 머리에 붙은 성화를 끄기 위해 격하게 움직였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타오르며 노릿한 냄새가 사방에 펴졌지만,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내 코에서 터진 핏물이 녀석들의 냄새를 뒤덮고 있었거든.

그나저나 정말 말도 안 되는 내공 소모다.

딱 한 번 발현했을 뿐인데 단전이 바닥을 보인다.

처음 광천신장을 썼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내공 소모.

모용강 그 영감은 대체 이 무식한 무공을 어떻게 쓴 거지?

어쨌든 손과 발을 잡고 있던 장포가 풀려나갔기에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시발 역공의 기횐데.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얼굴과 가슴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는 제금학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네놈…….”

마치 나를 어떻게 할지 판단하듯 검게 익은 입술을 질겅질겅 짓씹는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놈을 살려 둘 수는 없겠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제금학 제 놈도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상태인 건 매한가지.

놈은 바닥에 무릎 꿇은 상태로 목구멍이 터져라 소리쳤다.

“저놈은 본교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될 놈이다!”

그때까지도 성화를 끄기 위해 발악을 하던 무형비마대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내가 바랐던 일이 일어나려 하는가?

“…….”

“…….”

제금학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내게 다가오려 했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하지만 무형비마대는 쓰러지려는 제금학을 부축하며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 모습에서 묘한 이상함을 느꼈다.

‘저놈 설마 모르는 건가?’

제금학이 무형비마대가 움직이지 않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느냐! 당장 저놈을 죽이라 하지 않았더냐!!”

무형비마대는 얼굴이 있을 검은 그늘 부분으로 나를 바라본 후,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뒤 제금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몸이 붙들린 놈이 발악해 보지만.

“나 말고! 저놈! 저놈을 죽이란 말이다!”

스윽-

무형비마대는 그저 제금학을 일으켜 세워 감쌀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되었다.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녀석을 마음껏 비웃어 주었다.

“그냥 갈 생각인가?”

“이 멍청한 인형 새끼들! 놔라! 내 당장 저놈의 멱을……!”

무형비마대의 최우선 목표는 호위 대상의 안전이다.

그 안전에 위협이 가해질 경우, 때때로 무형비마대는 호위 대상의 명령보다 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아마 공멸권의 위협을 파악한 무형비마대가 나를 죽이려다 제금학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보호가 우선이라 판단했겠지.

제금학은 이런 사정을 모르는지 어떻게든 비마대의 손을 떼어내려 발악했지만, 놓아줄 놈들이 아니었다.

“놔! 놓으란 말이다……! 명령이다!”

질질 끌려가는 제금학을 보며 난 억지로 팔을 들었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입속 살을 깨물며 억지로, 억지로 움직였다.

“…….”

“…….”

“…….”

내가 수상스런 움직임을 보이자, 무형비마대가 경계하며 검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난 필살의 힘을 다 쏟아 제금학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려주었다.

“내가 이겼어 새끼야!”

역시나 반응이 격렬하다.

“……크아악! 놔, 놔! 놓으란 말이다 이 새끼들아!”

발악하며 끌려가는 제금학을 향해 비룡조를 쏘아냈다.

핑-

무형비마대가 기문진에 발을 걸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감히 극한의 이득충인 나를 상대로 그냥 돌아가겠다고?

나는 다시금 단전을 움직였다.

아랫배를 갈퀴로 북북 긁어대는 느낌이 일었지만, 이가 부서져라 악물며 버텼다.

“도박에서 졌으면…… 판돈은 두고 가야지!!”

우웅…….

무형비마대와 제금학이 빠져나가려 하는 공간 일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무형비마대가 급히 기문진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내가 한발 빨랐다.

쐐액-.

작은 소성과 함께 소천검법이 발현되며 제금학의 팔을 잘라내었다.

이윽고 녀석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온다.

“끄억!”

“……!”

목이 잘린 게 아니란 사실을 확인한 무형비마대는 곧장 피 흘리는 제금학을 이끌고 기문진 안으로 사라지려 했다.

제금학을 놓쳐선 안 된다.

‘놈이 나에 대해 알아버렸어.’

하지만 제금학이 죽으면 무형비마대의 분노한 칼날이 내 목을 노릴 것이다.

겨우 얻게 된 생존의 기회.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죽이지 못한대도 백치는 만들어 놔야 한다.

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무형비마대 전원이 기문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내기를 끌어올리며 다시금 공멸권을 시전했다.

우웅.

뒤틀리기 시작한 공간에, 기문진에 발을 들였던 장포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장포를 펼친다.

하지만 손쓸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

퍽.

단 한 수였지만, 정확히 제금학의 백회혈을 때리는 만화무적권.

“꿱!”

고통에 발악하던 제금학은 눈깔을 뒤집고 피를 토한 후, 툭 하고 고개를 떨군 채 기문진 안으로 사라졌다.

“하아, 해냈다. 하아, 하아, 우웩…….”

내부가 뒤틀리고 목구멍에 차오른 핏물을 한바탕이나 쏟아냈지만, 내부가 개운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되려 속이 부글거리는 것이 뱃속에 불이라도 난 듯했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놈들이 떠난 자리를 확인했다.

“제길…… 제길…… 제길…….”

비룡조 끝에 제금학의 팔이 달려 있었지만, 내공을 운용해 당기거나 다리를 움직여 가지러 갈 수가 없었다.

퍽퍽퍽.

억지로 허벅지를 때려 보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다리.

난 움직이지 않는 단전과 발 대신에, 양팔을 사용해 엉금엉금 기어서 제금학의 잘린 팔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힘들게 그의 팔에서 포식갑을 벗겨낸 다음…….

착-

내 팔에 착용했다.

최소한 이렇게 해놓으면, 이 물건을 누가 가질 것인지를 두고 눈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뒈질 것 같은 몸으로 일련의 행동을 다 끝낸 나는, 커다란 탈력감에 바닥에 대(大)자로 누웠다.

“하아, 하아, 하아.”

정말 숨 쉬는 것조차도 괴롭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입가엔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시바……. 내가 이겼어…….”

제금학은 몰라도 무형비마대는 이제 밤마다 내 생각이 나 밤잠을 설칠 것이다.

전생에 마교를 마주한 우리 소정대가 그랬듯.

분노와 복수심, 자신들의 무력감에 매일매일 몸을 뒤척일 것이다.

풀어지지 않는 감정을 어찌할 줄 모르며 욕지거리를 내뱉겠지.

“후하.”

놈들의 꿀잠을 방해할 수 있다니, 소정대 새끼들 엄청나게 좋아하겠네.

“내가…… 내가 이겼다고! 새끼들아!”

바닥에 몸을 완전히 맡기니, 서서히 눈이 감겨온다.

내부는 진탕되어 죽을 것 같지만

마음은 편하다.

손목이 든든해서 그런가.

아니겠지…….

내가 이번 도박에서 얻은 가장 큰 판돈은.

‘……소정대 새끼들의 염원인가.’

왠지 징그러운 놈들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

“이게 대체 무슨…….”

사흑련에 물자를 납품하는 쟁자수로 몰래 잠입하던 무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암습! 암습이다!”

“흉수가 아직 남아 있다!”

“진소운! 진소운을 불러! 그자가 관심법(?)을 펼쳐야 한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이 흉수다! 모두 인피면구를 썼는지 조사해라!”

분명 개파식으로 떠들썩해야 할 사흑련이건만 흥분과 혼란이 난무한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한두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전각마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시체를 본 자들은 어째선지 주변에 있는 모두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

쟁자수로 변장한 자신들의 정체도 금방 까발려지기 직전이었다.

“무영, 어떻게 할까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입해 들어온 무일의 물음에 무영이 감정을 차갑게 잠재웠다.

“잠입은 그만둔다, 대상자 확보를 최우선 임무로 하여 움직인다.”

“네.”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부러 평범하게 걷던 걸음을 지우고 보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지붕 위로 올라섰다.

이처럼 맹주전의 수신호위가 무림맹 밖으로 나온 일은 이례적이다.

애당초 맨 처음 제갈소명의 명령을 받았을 때, 무영이 가장 먼저 반대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어 맹주인 혁무강까지 사흑련 사태에 우려를 표해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나왔다.

사흑련의 사태는 현재 사천의 사태와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사흑련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사천에 파견된 무사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흐음…….”

그리고 무영은 자신들이 이곳으로 직접 오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산서성에 들어선 뒤로 예정대로 일이 진행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지금도 사흑련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시행하던 잠입이 금방 깨져버리지 않았나.

어쨌건 지금 할 일은 대상자를 확보하는 일이다.

사흑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그 이후에 파악할 일.

그들은 자신들의 최우선 임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쉬익-

“흡!”

갑작스레 빠르게 날아드는 기파에, 수신호위들이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이윽고.

콰콰콰쾅.

수신호위들이 있던 자리가 뻥 꺼진 듯 터져 나간다.

강력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기의 운용.

이는 무서운 실력을 가진 상대라는 뜻.

무영은 뜻하지 않은 결전에 전투 준비를 했다.

그런데.

“뭐야, 백도 놈이잖아?”

목소리가 들린 건 등 뒤에서였다.

‘이 무슨…….’

고개를 돌리니 철갑을 두른 거구의 패도가 이마까지 와 있었다.

무영은 곧장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사황봉 거패 황부식!’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라니.

흑도 무림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이유가 있었다.

“어이.”

황부식은 어느새 목까지 와 있는 무영의 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피차 서로 표적이 아닌 것 같은데 무기는 치울까? 아님 내가 표적인가?”

“……우린 암살자가 아니다.”

무영은 그제야 황부식의 목에 바짝 대었던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황부식 또한 동시에 패도를 회수하며 툴툴거렸다.

“굳이 왜 쟁자수로 변장한 다음에 숨어든 거냐, 수상하게.”

무영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왜 확인도 않고 무기를 휘두르지? 무식하게.”

“뭐? 무식??”

“왜, 반박해 볼 텐가?”

“쳇.”

말싸움에 졌다 생각한 황부식이 혀를 차며 아래로 고갯짓을 했다.

“사흑련이 이 꼴이 된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황부식의 반응은 무영으로선 생경한 것이었다.

자신이 무림맹의 무사임을 분명 알고 있을 텐데도, 그다지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다니.

무영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무슨 일이긴, 진소운 그놈이 한 말이 현실이 된 거지.”

“뭐?”

황부식은 퍽 친근한 투로 대답해 온다.

“나도 모른다. 습격이 있을지 모른다고 대비를 하라고 했는데. 이걸 당최 습격이라 할 수 있나, 전쟁이라고 해야지.”

황부식이 하는 말을 무영은 당최 알아듣기 힘들었다.

애초에 무림맹 무사인 자신에게 현재 상황을 남김없이 털어놓는 상황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문 살수 놈인 것 같은데, 전각을 돌아다니며 살행을 벌이고 있다. 난 놈을 잡으러 나온 것이고.”

“……진소운이 말했다고?”

“그래. 아무튼 네놈들도 그들을 찾아온 거 아닌가?”

“…….”

무영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무영이 입을 열었다.

“사흑련 내부로 들어간 무림맹 사절단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그런가. 역시나 차단당하고 있었던 건가?”

영문 모를 말에 무영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 게 있다. 무림맹 인원들이라면…… 저쪽 건물로 가봐라.”

말을 마친 황부식은 곧장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무영을 향해 동료가 물어온다.

“무영, 어찌할까요?”

“…….”

무영은 황부식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지.”

흑도인을 믿을 수야 없지만, 어쩐지 방금 전의 태도는 완전한 적의 것이라고 볼 순 없었으니까.

#

“하아, 하아, 하아.”

당서희와의 합공으로, 마지막 장포인 하나를 독수로 만들어 버린 악병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무서운 놈들이었다.

당가의 독인처럼 독무와 비슷한 걸 내뿜고, 무기를 맞댈 때마다 사술에 걸린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뭘로 만들어진지 알 수 없는 장포는, 공격을 흡수하거나 흘려버렸기에 도저히 상대할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혈투와 염귀비와 같은 고수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진소운과 일명을 걱정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죽을 뻔했다.

고개를 돌리니 혈투와 염귀비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 듯 보였다.

죽자마자 화골산이 뿌려진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포인들의 모습에, 흑도인인 그들조차도 질려 하는 모습이었다.

“괜찮소?”

악병비의 물음에 한쪽 발이 넝마가 된 혈투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손을 툭툭 털었다.

“나는 더 이상 못 움직인다. 구하려면 네놈들끼리 가라.”

하기야 장포인 셋을 홀로 상대했으니…….

사실 저렇게 멀쩡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염귀비가 하나, 당서희와 악병비 둘이서 하나를 상대했으니, 혈투로선 자신이 맡은 바를 과하게 해결해 준 셈.

“…….”

하지만 문제는 자신들 중에서도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타다닥.

눈앞에 떨어져 내리는 인물을 보곤 악병비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대들이 어찌?”

맹주전에 있어야 할 존재가 만 리 길 너머 사흑련에 얼굴을 드러내다니.

“삼 당주. 그간 잘 지내셨소?”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안부 인사에, 악병비가 되물었다.

“어찌 된 일이오?”

“그대들과 연락이 끊겨 급하게 왔소.”

일순 악병비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연락이 끊기다니……, 정기적으로 연락을 보냈을 텐데.”

“…….”

말을 않는 무영을 보며, 악병비는 그간 사절단이 전달한 내용들이 무림맹으로 전해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악병비를 응시하던 무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지요. 진소운과 일명은 어디 있습니까?”

이에 악병비가 문 너머로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전각을 바라봤다.

“저 안에 있소.”

“네? 기문진에 갇혔단 말입니까?”

사흑련이 펼친 기문진에 갇혔다니.

보통 큰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무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갇힌 게 아니요. 구하러 들어갔소.”

“구하다니요? 대체 누굴?”

“사흑련의 총군사.”

“…….”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진소운과 일명이 뭐 한다고 원수나 다름없을 사흑련의 총군사를 구하러 기문진에 제 발로 들어간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함께 싸우고 있던 자들도 수상하기 그지없다.

발로만 싸우는 노인과 양기를 다루는 여인이라니.

무영이 의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악병비가 혈투와 염귀비가 선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아무튼 사정이 있었소.”

“……그럼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악병비 역시, 마침 무영이 나타났으니 진소운을 도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우리도 지금 그럴 생각으로…….”

그러나 악병비가 말을 하려는 찰나, 당서희가 품 안에서 자개병들을 꺼냈다.

“누군가 나오는 것이야.”

꿀렁.

붉은색의 벽은 한 차례 출렁거리더니, 기문진 안으로 들어갔던 장포인들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얼굴 절반이 녹아내린 채 칠공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군유현이 있었다.

“저놈들은……!”

악병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더 이상 못 하겠다 툴툴대던 혈투의 발에서 강기가 쏘아져 나갔다.

뻐엉-

이어 염귀비의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당서희가 곧장 독무를 펼쳐 놈들이 도망갈 곳이 없게끔 사방을 막아버렸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무영이 당황해하는 사이에도,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쐐액-

긴장포를 휘두르는 네 명의 인원들은 그 공격들을 흘려버리고 또 흘려버린다.

“진소운은 어디 있는 것이야?”

당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십여 개라도 되는 듯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쐐애애액-

이전과 마찬가지로 장포로 막아설 줄 알았던 장포인들이 지체하지 않고 공중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혈투의 강기가 포탄처럼 쏘아지며 놈들을 노렸지만, 놈들은 강기에 피해를 입고도 그저 도망치기만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너무 빠르군.”

결국 장포인들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장내에 심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다시금 벽면이 일렁거렸다.

다시금 장포인이 나타나리라 예상하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무기를 들었던 이들은.

“일명?”

……맨들맨들한 머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허억, 허억, 허억, 이, 이 사람 좀 받아주십시오. 진 시주를 도우러 가야 합니다.”

“뭐? 같이 있던 게 아니었던가?”

땀으로 흠뻑 젖어 머리가 현란하게 반짝여 대는 일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진 시주가 이 사람을 먼저 대피시키라고 하여…….”

“설마 진소운 그놈이 군유현과 싸우고 있었던가?”

악병비의 물음에 일명이 즉답했다.

“어찌 아셨습니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

장내에 갑작스런 침묵에 감돌자, 일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당서희의 절망이 담긴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말도 안 되는 것이야……. 진소운은 흑룡채 채주이자 사흑련 부련주인 것이야. 이리 죽을 사람이 아닌 것이야……!”

좌절하여 무릎을 꿇어버린 당서희 대신, 악병비가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분명, 안에서 진소운과 군유현이 싸우고 있었나?”

“네. 분명 제게 이 사람을 던지며…….”

악병비가 일명의 말을 끊었다.

“방금 군유현이 일당으로 보이는 이들에 의해 빠져나갔다.”

“네? 그럼 진 시주는…….”

장내에 있는 이들 모두가 기문진을 바라봤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알아차렸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놈이…… 결국…….”

악병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무영은 입맛이 썼다.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언제 다가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지만, 진소운과 같이 범상치 않은 신성의 죽음은 왠지 모를 허탈감을 선사하곤 했으니까.

‘안타깝군. 언젠가 대화를 또 나눠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저물어 버렸다니.’

왠지 처음 본 날, 자신의 정체를 간파하고 비열하게 웃던 진소운의 얼굴이 떠오르는 무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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