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56화 (256/357)

256. <열매가 맺히는 시간(3)>

“어서 오게.”

진태산이 안으로 들어서자, 홍문기와 강채석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째 자네는 날이 갈수록 늙는 것 같지?”

강채석이 툭 내던진 말에 진태산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판판이 놀고먹는 놈은 이해를 할 수가 없겠지. 인생의 짐이란 걸.”

“노, 놀고먹긴 누가 놀고먹는다는 거야!”

진태산의 눈초리가 더욱 가늘어진다.

“대체 검강은 언제 뽑아낼 생각이지?”

“……그, 그게 뭐 뽑기 뽑듯이 간단히 뽑아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느냐!”

본래 태을문의 가장 강자였던 강채석은 누구보다 태을진경의 회수를 가장 반겼고, 드디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겠다며 득의양양 수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나이 탓인지 커다란 진척이 없었다.

“유성이가 검강을 먼저 이루면 쾌화당의 당주는 유성이로 바꿔야겠군. 그때가 되면 자네도 다시 쾌화당을 이수하도록 하게.”

“…….”

농담 한번 던졌다가 말로 돌려받은 강채석은 쓰린 속을 털어내듯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두 사람의 투닥거림을 지켜보던 홍문기가 진태산을 향해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태을문의 모든 부담을 진태산에게 넘긴 홍문기는 항시 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문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테산은, 살포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여건으로 따지면 십 년 전보다 지금이 백배는 더 좋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마른세수를 하는 그 모습이 홍문기는 안쓰럽기만 했다.

그 마음이 전해지자, 진태산은 재차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십쇼. 저도 욕심이 안 났으면 이리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애써 잡은 기회를 그냥 놓쳐 버린다면…….”

그러곤 아이들이 있을 연무장 쪽을 바라보았다.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에 홍문기도 말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왔는가?”

“제가 못 올 곳을 왔습니까. 새삼 왜 그러십니까.”

“허허, 이 사람. 요 몇 달간 한시도 태을문에도 오지 않았던 사람이.”

“…….”

진태산이 민망한지 볼을 긁적거리자, 홍문기가 자애롭게 웃었다.

“걱정 말게. 그걸 가지고 자넬 탓하려는 게 아니니. 자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그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물은 것이네.”

문주의 말에 한참이나 주저하던 진태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태을문의 문을 여는 건…… 얼마나 더 있어야 가능하겠습니까?”

“응?”

홍문기도 강채석도 눈썹이 들썩거렸다.

봉문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봉문을 한 이상 충분한 준비를 마쳐야 한다.

더구나 현재로선 대천상단까지 보유한 상태.

태을문의 문이 열리는 즉시, 사방에서 압박이 들어올 것이 여실하다.

이를 모를 진태산이 아니었기에, 필시 질문한 의도가 있을 터.

낮게 침음을 내뱉은 홍문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찌 그러는가?”

강채석과 홍문기를 한 번씩 본 진태산이 천천히 운을 뗐다.

“수라문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

“대천상단을 사고 싶다고 하더군요.”

“뭐야?”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지고, 급기야 강채석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대천상단은 이미 태을문의 기둥과 같은 곳인데 누가 함부로 사고판다고 지껄이는 거야?!”

“…….”

홍문기는 그제야 진태산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태을문에까지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림사를 뒤에 세웠는가?”

“……언급하긴 했습니다.”

“하긴 노골적으로 나올 만하겠군.”

대천상단은 이미 이전의 창궁상단 지부의 수준을 넘어섰다.

안휘성 전체에서 무림맹 지부의 물자 유통을 독점하고 있고, 안휘성과 절강성을 잇는 관로인 천목산 일대의 상권도 일부 가지고 있다.

절강성 최대 관광지인 항주에 진출할 날이 머지않았으며, 절강성 전체에 유통을 지배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렇기에 인근의 상단과 문파들이 대천상단에 탐을 내는 건 당연지사.

“왕 장주께서 매우 분개하시며 자신도 한 발 걸치겠다 하셨지만, 그렇게 되면 수라문이 소림사를 끌어들일 명분만 주게 될 겁니다.”

“그래. 그리고 그런 갈등이 지속되면, 결국 무림맹에서 나서겠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대충 예상이 간다.

갈등을 일으킨 책임으로 무림맹은 안휘성의 유통 독점권을 되찾아갈 것이고, 수라문을 비롯한 여러 문파의 상단들이 유통권을 나눠 먹을 것이다.

그리고 대천상단은 이전과 같이 다시금 동네 상단의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말 터.

진태산이 양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문을 여는 것은 무리겠습니까?”

그 물음에 강채석은 주저하며 탄식했지만.

홍문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게 미안한 말이네만, 당장 문을 열 수는 없네.”

“…….”

“지금 문을 열게 되면, 아이들이 싸움에 내몰리게 될 거야. 검을 든 이상 싸움을 두려워해선 안 되겠으나, 그렇다고 한들 아직 준비도 안 된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네.”

진태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안 된다는 것쯤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저 이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었을 뿐.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

“대신!”

술잔을 들려던 진태산이 멈칫했다.

“내가 나가겠네.”

“문주님!”

강채석이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간 자네에게 부담을 떠넘겼으니 이제 내 차례 아닌가.”

“…….”

진태산은 물끄러미 홍문기를 바라보았다.

태을진경을 입수한 후, 문주인 홍문기는 단 하루도 수련을 쉬지 않았다.

이류에 머물던 실력은 금세 쑥쑥 올라갔고 최근엔 검기상인의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그뿐이다.

태을문 내에서야 검기상인의 경지가 대단하지만, 당장 합비에만 해도 그보다 뛰어난 고수들이 차고 넘친다.

태을문의 가장 큰 고질적 문제인 가르침을 줄 고수의 부재다.

태을문에서 역대 가장 고수인 사람이 일류 수준의 강채석이었으니,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보는 이들은 깊은 공부를 홀로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좀 나으련만…….’

개인 수련만 해도 버거운 상황에 다른 일까지 신경 쓰게 할 수는 없었다.

생각을 마친 진태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문주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응?”

“다른 방법을 이미 준비해 놨으니까요.”

홍문기의 두 눈에 의아함이 깃든다.

“다른 방법?”

“네.”

물론 생각해 둔 방법 따윈 없지만, 지금 이 짐은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진태산은 궁금해하는 두 사람에게 대답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쓸데없는 말을 내뱉어 버리면 홍문기고 강채석이고 목숨을 내던지려 할 것이 뻔하니까.

이럴 땐 적당한 말로 둘러대고 혼자 처리해야 한다.

“그러니, 염려 마시지요.”

부담감 속에서 억지로 미소를 짓던 진태산은 문득, 제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도 매번 일부러 웃어 보였던 것인가?’

생각해 보면 진소운이 웃었던 건, 언제나 이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였다.

문 내의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녀석은 스스로 할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대체 녀석은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있었던 걸까.

새삼 아들이 이제까지 얼마나 큰 부담을 짊어왔는지를 깨닫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썩을 놈……. 제 아비가 그리 못 미더웠던 것이냐.’

미안한 감정에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이윽고.

그 못난 아들이 앞에서 웃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녀석과 함께 이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

“흐음…….”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점소이가 은밀히 전달한 전서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일그러졌다.

“무승 일이, 옴뇸, 잉는 것이야?”

뭉개지는 발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

당서희가 회과육 양념을 입가에 잔뜩 묻힌 채로,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다.

“거참……이리 와보세요.”

나는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던 천을 꺼내어 당서희의 입가를 깨끗이 닦아주었다.

……당최 내가 사절단원으로 온 건지 보모로 온 건지 분간이 안 가네.

그래도 더 이상 협객 놀이 하겠다고 설치진 않는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사문에 문제가 생겼다는군요.”

“뭉제?”

“진 시주, 무슨 문제가?”

“…….”

일명과 악병비도 이쪽을 돌아본다.

마침 소림사 제자가 여기 있네?

나는 일명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일명 선배, 수라문이라고 아십니까?”

“…….”

태을문의 ‘문제’와 ‘수라문’.

이 두 단어만으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금세 눈치챈 영특한 일명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수라문과 태을문 간의 일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문이 세력 확장을 준비하는 듯한데…… 그 목표 대상이 태을문인 것 같습니다.”

“아미타불…….”

일명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사이, 악병비가 내게 묻는다.

“가볼 생각이냐?”

“글쎄요.”

어차피 사절단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여기서 잠깐 내가 빠진다 한들 사절단 일정에 문제가 생길 일도 없고, 학사 일정도 대표단이 알아서 운영할 테니 출석 일수 문제만 제외하면 큰 탈은 없을 것이다.

“대천상단은 태을문의 유일한 자산이자 수익원입니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일부러 일명에게 들으라는 듯 이야기하자, 눈을 감고 있던 일명이 슬며시 눈을 뜬다.

“……절 내의 어른들이 하시는 일에 대해선, 저도 잘 모릅니다.”

“암! 그러시겠지요.”

나는 말없이 그저, 일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크, 크흠…….”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결국 잠시 뒤.

작게 숨을 내쉰 일명이 말했다.

“……어찌하면 좋은지 지혜를 빌려주시지요.”

하여간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 잘 통하는 스님이라니까?

내가 이래서 선배를 맘에 들어 하지.

나는 즉각 대답했다.

“소림사가 나서는 일은 없게 해주십시오. 애당초 수라문이 소림사의 뒷배를 믿기에 까불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설마…… 세상 그 누구보다 청.렴.한 절간의 스님들이, 욕심 때문에 세력을 넓히려 하거나 그러진 않겠지요?”

“……하지만 본 산의 어른들께서 제 이야기를 귀담아들으실지는…….”

우둑우둑-

나는 별수 없이 손목을 풀었다.

“그럼…… 이 기회에 수라문과 본격적으로 붙어봐야겠군요.”

“…….”

어깃장을 놓자 일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이윽고 한참을 고민하던 일명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본 산의 어른들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일명의 진동하는 두피를 구경하던 나를 향해, 악병비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가볼 것이냐?”

“나도 항께 가고 싶응 것이야.”

거, 먹던 건 마저 삼키고 말…… 쩝, 됐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소림사가 나서지 않는다면 제가 굳이 갈 필요도 없으니까요.”

“응? 수라문은 백팔봉 중에서도 중·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태을문도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신 있게 말했음에도, 악병비는 여전히 못 믿는 눈치였다.

“거, 단장님 표정이 왜 그러…….”

“크흠, 별일 아닐세.”

……내가 봉문 해제만 하면 바로 산동악가에 친선 비무 신청하고 만다.

하긴, 아직 세간의 시선이란 게 그럴 때니까.

나도 지금의 태을문이 수라문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대신 다른 걸 준비해 놨으니까.’

나는 다시금 양념이 잔뜩 묻은 당서희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

“어떻게 하기로 했나?”

왕금산의 물음에 진태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아직 문을 열 때가 아닙니다.”

“흠…… 역시 그렇지?”

왕금산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서리자, 진태산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색이라지만, 태을문도 백팔봉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라문이라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겁니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진태산의 마음도 편하지 않음을, 왕금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자신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더 갔다.

평생 자신에게 손을 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만 보아왔지, 자신에게 되려 도움을 주려 한 사람이 있었던가.

어쩌면 자신을 부유한 왕가장주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봐주는 모습 때문에, 왕금산은 진태산과 친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친우를 위해선, 얼마든지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었다.

“걱정 말게! 수라문? 그놈들이 깐죽거리면 우리 왕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어찌 되었든 무림맹의 물자를 왕가장도 함께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진태산은 그저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대답을 피했다.

왕가장이 강호의 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왕금산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왜! 나를 못 믿겠는가? 나 화산파와 점창파도 압박했던 사람이네! 그놈들이 나 때문에 자금문제로 얼마나 골머리를 썩였는지 아는가!”

지금이야 왕소소가 개척한 서역로로 인해 복구되었지만, 그 일로 인해 섬서성 일대의 지부들이 개박살 나고 왕가장이 한차례 흔들리지 않았던가.

“……잘 알고 있지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크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상황에 한숨이 새어 나오려던 그때.

사용인 하나가 조심스레 집무실로 들어섰다.

“진 상단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사용인의 말에 왕금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엄청 성미가 급한 놈들인가 보군.”

“수라문에서 오신 분들인가?”

사용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진소운이란 분의 소개를 받고 왔다고 합니다. 상단주님과 성이 같기에 혹시 몰라 보고드리는 겁니다.”

“진소운?”

‘진소운’이라는 말에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안으로 모시거라.”

“네.”

잠시 뒤, 중년 부부와 딸로 보이는 여아가 내부로 들어섰다.

백발의 남성은 호방하고 단단한 느낌이 가득했고, 중년 여성은 차분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홍안의 소녀는 낯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운지, 제 엄마의 다리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진태산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진태산이라는 사람입니다. 소운이 소개로 오셨다고요?”

진소운은 이따금 사람들을 태을문과 대천상단으로 보내곤 했다.

유성이나 장도원처럼 소운이를 통해 태을문으로 와 자리 잡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는 이제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진태산이 가볍게 포권을 쥐며 인사를 하자, 사내가 덩달아 포권을 쥐며 말했다.

“자생을 하려 해보았으나 그게 쉽지 않아, 이리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중년사내의 말에, 뒤에 서있던 왕금산이 작게 ‘또 돈 귀신이 들어왔구나.’라고 중얼거렸고, 진태산은 눈초리를 보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어찌 되었든 아들이 보낸 손님이다.

보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최대한 이들을 돕는 것이 그나마 아들을 돕는 일 아니겠는가.

진태산이 정중히 질문했다.

“외람되지 않다면 혹, 성함을 여쭈어도 있겠습니까? 아들이 남긴 서찰이 있을지 찾아보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름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는 중년사내.

잠시 뒤 사내는 다시금 포권을 쥐며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전 백해광이라 합니다.”

그간 봐온 사람 중 가장 담백한 자기소개를 한 사람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