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탐욕자들의 밤(2)>
“끄아아아아…….”
“끄어어엉…….”
또 철환이 늘어났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팔목에서 무릎까지.
“이놈들아! 그렇게 무겁게 움직여서야 신법이라 할 수 있겠냐! 왜 아예 네놈들이 어디 갈지 이정표라도 다 세우고 가지 그러냐!”
신법을 펼치려 족적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 푹푹 발자국이 남는 걸 가지고 뭐라 하는 진소운.
네 사람은 쌜쭉한 얼굴로 진소운을 바라봤다.
‘무게가 무거운 걸 어쩌라고요.’
‘그럼 이 빌어먹을 족쇄나 풀어주든가.’
‘아, 힘들다. 너무너무 힘들다.’
‘…….’
몸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어 놓고는 가볍게 뛰라니.
이게 무슨 개방귀 같은 소리던가.
하지만 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똑같은 조건에서 말도 안 되는 대사형의 명령을 찰떡같이 따르는 이가 있었으니.
파파파파파팍!
그가 밟고 지나간 삼백여 개의 족적엔 미미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과연 저게 철환을 잔뜩 착용한 상태가 맞나 싶을 정도.
“훌륭하다 은호야!”
“아…… 네…… 감사합니다. 대사형.”
“이것들이 은호 반만 쫓아왔어도 벌써 영약을 들고 사문으로 돌아가 금의환향했을 텐데! 으이구! 으이구!”
은근히 진소운이 은호를 두둔하자, 세 사람의 원망이 애꿎은 은호에게로 향한다.
‘네가 그럴 줄 몰랐다.’
‘사제, 나 지금 너무 서운해.’
‘은호 형 바보!’
빤히 눈으로 욕하는 것이 보이지만 은호라고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더 이상 욕을 먹고 매타작당하는 것은 지긋지긋하니까.
“대사형, 철환을 조금 풀어주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속도가 좀 더 날 텐데요. 대사형도 얼른 돌아가 어른들을 뵙고 싶지 않습니까?”
은호는 최대한 대사형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면서 말을 했다.
며칠 전 ‘도망치려 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며칠간은 정말 밤잠까지 설칠 만큼 괴롭힘을 당했으니까.
최소한 자신들이 수련을 피하고 있지 않다는 명분은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진소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뭔 소리 하냐? 아직도 착용할 철환이 더 많은데.”
“그게 무슨…….”
“봇짐에다가 넣을 수 있는 철환이 대체 몇 개라고 생각하는 거냐?”
진소운은 자신이 메고 있는 커다란 봇짐을 흔들었다.
쩔그럭쩔그럭.
그 봇짐 안에서 철 부딪치는 소리가 불온하게 울려 퍼졌다.
미친, 대체 몇 개나 짊어지고 있는 거야.
은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른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한발 물러서야 한다.
저 빌어먹을 대사형이 또 눈이 돌아가서 자신에게마저 철환을 더 추가할지도 모르니까.
은호는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아! 대사형, 근데 분명 태을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약을 가져간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근데 왜 자꾸 북쪽으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죠?”
“목적지가 북쪽이니까.”
“네?”
무한에서 합비로 가려면 동쪽으로 움직여 호북성을 넘어 안휘성으로 가야 한다.
헌데 북쪽이라니?
“아…… 그럼 영약이 하남성 밑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죠?”
최소한 호북성만 넘지 않으면 돌아가긴 해도 금방 안휘성에 갈 수 있다.
대사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은호는 긍정회로를 부단히 돌려보았지만.
“아니, 최종 목적지는 서안이다.”
“서안?”
영문 모를 대답에 결국 고개를 갸웃했다.
“호북성에 서안이란 도시가 있었습니까?”
도시 이름이야 워낙 많고 다양하기에 평범한 이들이라면 천하의 모든 도시 이름을 욀 순 없다.
그리고 평범을 벗어난 진소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있을지도 모르지.”
“오, 오늘도 새로운 걸 배우는군요.”
은호는 대사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이어 들리는 말에 결국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근데 우리가 갈 곳은 섬서성 서안이다.”
섬서……? 서안……?
머릿속에 지도를 펼치며 위치를 확인한 은호는 이내 기함을 내질렀다.
‘미친놈아! 정반대 방향이잖아!’
물론,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어때? 기대되지?”
“…….”
하늘 같은 대사형이 하늘에서 내리꽂는 매를 맞고 싶지 않았으니까.
#
섬서성 서안.
서안의 겨울은 춥다.
특히나 겨울이면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의 영향 때문에 외부 생활도 힘들어진다.
그렇기에 서안의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집 밖을 오가는 일이 많지 않고, 때문에 장사꾼들도 일찌감치 문을 닫는다.
더구나 화산과 종남산을 찾는 향화객들의 발걸음마저 뚝 멈춘다.
오악 중 하나라 불리는 화산은 한여름에도 오르기 쉽지 않은 험한 산자락이기에 한겨울에 그곳을 오르고자 하는 간 큰 이는 당연히 없었고, 종남은 겨울 향화객을 맞이하지 않는 화산을 의식하며 혹한기 수련이라는 이유로 손님을 거부해 왔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겨울이 되면 서안이 한산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그런데.
“왜 이렇게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
자판 정리를 하던 장사꾼이 거리를 메운 사람들의 숫자에 손을 멈춘다.
“그러게……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러네.”
“……묘하게 무기를 찬 사람들이 많은 거 같지 않아?”
“흠…… 어쩐다?”
저 멀리서 객잔을 운영하는 이가 달려오며 말했다.
“이 사람들아! 뭘 하고 있어! 당연히 장사 계속해야지!”
“에이, 뭘 이 정도 인원 가지고…….”
“내가 지금 남문에서 오는 길이야. 남문에 서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쫙 깔렸다고!”
“진짜?”
“귀한 밥 먹고 쉰 소리 할까!”
객잔 주인의 말에 다른 이들도 다시금 자판을 열고, 퇴근시켰던 점소이를 불러들였다.
갑작스런 연장근무에 힘이 들긴 하지만 입가에 미소는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예상치 못한 인파에 신이 난 것은 비단 상인들만이 아니었다.
“가자!”
“넷!”
오삼의 말에 거지들이 일제히 도열하여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의 허리춤엔 네 개의 매듭이 매여 있었고, 거지치고는 옷도 깔끔했다.
주위를 지나가는 이들이 그의 허리춤으로 슬쩍 보이는 매듭을 보며 놀란 표정을 금치 못한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오삼은 덩달아 걸음걸이가 당당해지고 어깨가 양옆으로 쫙 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훗, 사결개치고는 젊은 편이지.’
동년배 거지들이 아직 이결개에 멈춘 걸 생각하면 자신은 그야말로 개방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오결개가 되고, 그럼…….’
최연소 분타주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사이 무림맹의 의무복무를 마쳐야 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찡그려진다.
‘에잉……. 학관에만 갔었어도.’
의무복무는 하급무사로 활동하는 이력밖에 되지 않는다.
기간이 짧긴 하나, 월봉부터 시작해 무림맹에서 받는 대우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더구나 학관 출신이라 함은 현 강호에선 출세의 상징.
개방만 해도 학관을 이수한 후 돌아오면 두 단계의 계급을 훌쩍 뛰어넘을 수가 있다. 아니면 무림맹에 남아 맹의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자신이라면 최소 대당주쯤엔 올랐을 테니까.
‘눈에 옹이구멍만 가진 영감탱이들 같으니라고.’
오삼은 분명 자신이 학관에 들어갈 인재라 생각했다.
무공의 성장세로 봐도 그렇고, 기반도 섬서 서안에 잡은 덕에 어디 가서 뒤처지지 않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번 학관 시험에서 오삼은 제외가 되어버렸다.
물론 정시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다곤 하나, 방파의 도움 없이 시험에 출전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자신 대신 입학한 허접한 개방 놈들이 정작 학관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다는 소릴 들었다.
용소아도 없고, 일명도 없고, 당서희도 없는 그깟 학관이 뭐라고 그것조차 휘어잡지 못한단 말인가.
더구나 어디 듣도 보도 못한 태을문이란 문파의 진소운이 대표가 되었다는 소릴 들었을 땐, 꼭 서쪽에서 해가 떴다는 소릴 들은 양 충격을 받았었다.
“하여간 병신 같은 것들.”
“네?!”
“아니다.”
차라리 잘되었다.
언젠가 진소운을 만나 그놈을 꺾으면 자신이 학관을 다닌 놈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
오삼은 언제고 흑염룡이란 불온한 별호를 가진 그놈을 만나보고자 소원했다.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놈이 이곳까지 올 리 없지. 쯧.”
이뤄지지 않을 일을 계속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다.
가뜩이나 현재 서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오삼은 머리를 내저어 상념을 떨쳐버리곤 수하에게 명령했다.
“꼼꼼히 기록해라. 여기 온 놈들 중에 분명 오령선화유를 확보하는 놈이 있을 테니.”
“저어…….”
“왜?”
“차라리 이 시간에 저희가 들어가서 확보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얼토당토않은 거지의 질문에 오삼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여기나 저기나 멍청한 놈들이 넘쳐난다.
“오령선화유가 뭔 줄 알고 네놈이 찾으러 들어간다는 거냐?”
“보내주시면 제가 반드시……!”
오삼이 거지의 대갈통을 후려쳤다.
“멍청한 놈아! 마령고원에서의 사태를 잊은 거냐? 그게 아니더라도 영약 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온 천하가 요동을 치는데. 네깟 게 무슨 수로 영약을 얻겠다고?”
“……죄, 죄송합니다.”
“물론 최고의 방책은 아무도 모를 때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오령선화유처럼 나오는 때가 예정되어 있는 영약을 가지겠다 들어가면 백이면 백 죽은 목숨이다. 알겠냐?”
잔뜩 얼어버린 거지들이 일제히 답했다.
“““넷!”””
“더구나 이번에 나타난 영약들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것들을 일일이 찾으러 들어갔다간 다른 것도 놓쳐.”
오삼이 씨근덕거리며 이야기하자 눈치를 보던 거지가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그, 그럼 왜 기록을 하라 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저희가 들어갈 게 아니면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쯧쯧쯧…… 그러니 네놈 매듭이 두 개밖에 안 되는 것이지.”
혐오스럽게 거지를 쏘아보던 오삼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무슨 단체냐?”
“그야 강호의 협의를 실천하기 위한…….”
뻑.
“그거 말고.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이 뭐냐고.”
“……그, 그야 저, 정보 수집이지요.”
오삼이 답답한 듯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래. 정보단체다. 우리의 동지들은 천하에 펼쳐져 있고,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놈이 영약을 가지고 나오든 결국 우리 시야에 잡힌다 이 말씀.”
“……아, 그럼 치사한 방법으로 나중에 영약을 빼앗는…….”
빡!
다시금 뒤통수로 작렬하는 고통에 거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둥이 조심해라. 그런 걸 계략이라고 하는 거다, 계략!”
“그, 그렇습니까?”
“그래.”
질문한 거지는 결국 원하는 답은 얻지 못했지만,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랬다간 자신의 뒤통수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용자는 또 다른 데서 나타나는 법.
“그런데 왕초…….”
“왜! 또!”
다른 거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운을 떼었다.
“저…… 혹시 거지도 따로 작성을 해야 합니까?”
“이런 미친 새끼들이, 개방의 거지들이 영약을 찾으러 들어갈 일이 없을 텐데 뭣 하러!”
“아뇨. 그게 아니라 개방 소속이 아닌 거지인 거 같아서요…….”
오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감히 동냥질하는 주제에 개방 소속이 아니라니.
이 터전을 닦겠다고 선대의 수많은 거지들의 쪽박이 얼마나 많이 깨졌던가.
그런데 감히 이곳을 넘봐?
“어디! 어디냐! 감히 개방의 영역을 넘보는 건방진 거지들이 있는 곳이!”
“저, 저기…….”
질문을 한 거지가 소심하게 가리키는 곳.
그곳에선 뿌연 모래바람을 뚫고 다섯 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못 보던 거지들 같긴 한…….
‘응?’
그 인영들이 가까워질수록 오삼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거지 경력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신이 보기에도 차림새가 퍽이나 이상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가지는 물론이고, 며칠을 씻지 못한 것인지 얼굴엔 땟국물이 가득하다.
머리는 산발에 흘린 침이 말라붙은 자국도 보인다.
‘미친, 저 팔다리에 달린 건 뭐야……?’
무엇보다.
팔과 발에 기이한 철환을 족쇄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사방에 족적을 남겼고, 족적을 남기는 속도에 비해 이동 거리는 매우 짧았다.
그야말로 지랄 염병을 떨고 있는 모습.
‘거지라고 하기엔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데?’
요즘 거지 중에 저렇게까지 비위생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이들은 없다.
동냥질을 할 때도 거부감을 자아내 효율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곤 하니까.
자고로 요즘 거지들의 제일 수칙은 무엇보다 위생! 위생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또 뭐야……?“
그중에서도 다른 넷과 달리 태연하게 걷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마치 다른 네 사람과는 관련이 없다는 듯 평범하게 걷고 있었고, 반면 지랄 염병을 떠는 네 사람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예상인가?’
오삼이 대충 수상쩍은 사람들에 대한 가늠이 끝났을 때 거지가 물어왔다.
“왕초, 어찌할까요?”
“일단 데려와라. 얘길 좀 해봐야겠다.”
진짜 거지라면 단단히 교육해야 할 것이고, 노예상이라면 당장에 쳐 죽여야 한다.
매년 화적떼에 노예가 되는 민초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던가.
오삼은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며 타구봉이 달궈지는 듯했다.
“…….”
하지만 수상쩍은 놈들에게 갔던 거지가 노예상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거는데, 노예상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 게 아닌가.
몇 번 더 말을 붙이던 거지가 다시금 종종걸음으로 돌아왔다.
“저…… 신경 쓰지 말라는데요?”
이런 등신이…… 그런 말을 한다고 그냥 와?
“내 정체를 밝혔냐?”
“아!”
아?
뭐어, 아?
하, 진짜 이 멍청한 놈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오삼은 솟구치는 화를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얼른 가서 말하고 와라.”
“네넵!”
오삼의 심기가 불편해진 걸 알아차린 거지가 재빨리 달려가 다시금 말을 전했다.
얘기를 들었는지 노예상은 거지와 오삼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금 손을 휘저었다.
이어 거지가 다시금 종종걸음으로 돌아온다.
‘저, 저런 등신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오삼이 타구봉을 꺼내 들고 성큼성큼 노예상에게로 걸어갔다.
“와, 왕초!”
퍽!
“넌 빠져 있어, 등신아!”
거지를 한주먹에 날린 오삼이 흉흉한 기색으로 노예상 앞에 섰다.
“이런 씹어 먹어도 모자를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아?!”
“…….”
오삼의 위협에도 아무런 대꾸도 않는 노예상.
그러더니 이내 한쪽 눈을 삐딱하게 뜨며 오삼을 노려본다.
하, 씨바. 분명 건조한 눈빛이건만 괜히 오금이 저려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지.
자존심이 상한 오삼이 양껏 숨을 들이쉬어 가슴을 빵빵하게 부풀린 후 소리쳤다.
“내가 섬서성 서안 일성교 왕초 오삼이야 이 새끼야!”
그는 일부러 네 개의 매듭까지 앞으로 내밀었다.
이 정도 소개를 하면 보통 강호인이라면 놀람을 숨기지 못하고 굳은 얼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눈앞의 노예상은 마치 똥이라도 맛본 사람처럼 있는 대로 인상을 마구 찌푸린다.
“빌어먹을 서안의 거지새끼가 뭐라는 거야?!”
“…….”
뭐지? 이 반응?
오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기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선 강호에 적을 둔 사람일 텐데. 개방을 모르는 건가?
개방을 안다면 개방 소속의 거지를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것도 분명 알 터.
개방의 힘은 십만에 달하는 거지 규모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 십만에 달하는 거지들이 모아오는 정보야말로 진정한 개방의 힘이니까.
결국 이놈은 무공은 좀 배웠을지 몰라도 강호의 생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 볼 수 있었다.
얼굴만 봐도 그렇다. 어디서 고생 한번 안 해본 듯 피부부터 반질반질하지 않은가.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야 거지.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그 타구봉인지 뭔지랑 쪽박 다 깨부숴 버리기 전에.”
노예상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는다.
그 모습을 본 오삼의 인내심이 결국 끝에 다다랐다.
“내 오늘 개새끼 한 마리 잡고 강호의 정의를 바로 세우마.”
“뭐래 등신이.”
오삼은 타구봉에 내기를 불어넣으며 단박에 휘둘렀다.
이 얼뜨기 같은 놈에게 기필코 뜨거운 맛을 보여주…….
퍽!
“?!”
하지만 칠 성의 힘이 깃든 타구봉을 검집째 막아선 상대.
그는 하찮다는 듯 하품까지 해대었다.
“이게 다냐?”
“…….”
그러곤 눈빛을 빛내며 손목을 빙빙 돌린다.
“분명 네가 먼저 시작했다. 거지야.”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든 찰나.
“……잠깐!”
“미안하단 말이라면 접어두…….”
“그게 아니라! 네놈 이름이 뭐냐!”
“거지가 알아서 뭐 하게?”
“역시나 개방의 후환이 두려운 것이더냐?”
오삼의 발악에 노예상이 피식 웃는다.
“지랄…….”
그러더니 당당하게 답했다.
“진소운이다.”
진소운아라. 흥, 이름도 꼭 노예상 같…… 응?
“진……소운? ……흑염룡?!?”
“흑염…… 후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이 새끼야.”
분명 자신은 진소운을 만나기를 바라마지 않았던가?
하지만 분위기가 자신의 예상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진소운의 옆에 있는 네 사람.
“…….”
노예처럼 구르던 네 사람이 어쩐지 자신을 무척이나 동정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음에 심장이 몹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씨, 이거 엿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