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탐욕자들의 밤(3)>
사람이 제일 어이가 없을 때가 언제일까.
바로 가만히 있는데 욕을 한 바가지로 처먹을 때다.
그래서 지금 진소운은 어이가 가출을 한 생태였다.
“난 개방도다!”
연신 이 거지가 외치는 개방도라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방도들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욕을 내뱉을 권리라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거기에 더불어.
“타구봉법! 타단구퇴!”
굳이 초식을 외치며 무공을 쓰는 걸로 봐선 분명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그래서 감정을 꾸욱꾸욱 눌러 담아 거지를 패기 시작했다.
개방은 뭐 이런 새끼들에게까지 무공을 가르쳐 주는지 원.
‘쯔쯧, 이러니 마교한테 처발리는 거지.’
정보단체라는 것들이 정작 자기들 내부에서 어떤 거지가 미쳤고, 안 미쳤는지를 모른다.
아니, 집안 밥숟가락 개수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집 사정은 어떻게 알겠느냔 이 말이다.
이따위 정보단체가 과연 정보단체라 할 수 있겠는가.
타구봉이 꽤나 매섭게 휘둘러지지만, 이건 이미 제갈천기에 의해 파쇄식이 밝혀진 무공.
상승식을 쓰는 게 아니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이 거지는 여태 모른다.
“억! 컥!”
검집으로 팔꿈치를 가격해 봉의 움직임을 막은 후 발을 찍어 놈의 몸이 넘어지려 할 때.
놈의 배때기를 올려 차버렸다.
“커흑!”
이어 붕 떠오른 거지 놈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단박에 뒤돌려차기로 날려버렸다.
퍼퍽!
이 한 수로 인해 앞으로 저 거지는 ‘뒤돌려차기 맞은 놈’이라 불리겠지.
“끄으윽…….”
충격이 꽤나 컸는지, 아니면 앞으로 자신이 불리게 될 굴욕적인 별명 때문에 고민이 많아졌는지 거지는 한참이나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하 거지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몰려들었다.
“왕초!”
“왕초! 괜찮으십니까?”
“방금 뒤돌려차기를 맞으셨……!”
“으아악! 닥쳐라!”
사방에서 쇄도하는 걱정 담긴 소리마저 짜증 나게 들리던 오삼이 이를 악물고 주위를 물렸다.
아프다고 자빠져 있기엔 너무 수치스러웠으니까.
“비, 비겁한 놈. 감히……!”
뒤돌려차기라니…… 뒤돌려차기라니…….
백도 무림에선 눈에 흙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비겁한 행동 아니던가.
평생 개방의 정예로 살아온 오삼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놈! 후환이 두렵지도 않더냐?”
그러나 노예상, 아니 진소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되려 한숨을 뱉는다.
“하아, 이 빌어먹을 거지 새끼가 귀찮게……. 바쁘니까 더 맞기 싫으면 꺼져.”
“……저, 저놈이!”
방금 일 합은 분명 방심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초식명을 외치는 습관을 들였더니, 그게 결국 이렇게 악재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자랑스런 개방도이자 협의를 이어가는 자신이 고작 이 정도 고난에 굴한다면 진정한 개방도가 될 수 없는 법 아니겠는가.
오삼은 몸을 일으켜 어깨를 쫙 폈다.
“제대로 갈 것이다. 긴장해라.”
“……하아.”
진소운은 저 끈질긴 거지를 보며 머리를 쥐었다.
제대로 온다며 준비 자세를 취한 무공이 타구십팔초. 꼴을 보아하니 상승무공은 못 익힌 거 같은데.
이 거지 때문에 사제들의 수련이 멈춘 상태였다.
‘다 와서 이게 무슨 꼴이람.’
자신처럼 사제들도 시간이 아까웠는지 오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올망졸망한 사제들을 위해서라도 이 거지를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사명감마저 일 지경.
진소운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제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사제들을 향해 자애롭게 웃어 보였다.
물론 나머지 네 사람은…….
‘좀만 더 버텨봐라, 제발! 우리도 좀 쉬게…….’
‘불쌍한 중생이 늘어났구나…….’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진소운은 오삼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래, 내 인생이 언제는 뭐 순탄했었나. 좋다, 와라. 오늘 미친개 계도시킨다 셈 치지, 뭐.”
“타핫!”
기수식에 이어 과구견미, 규화타구, 풍구난교의 초식이 연이어 펼쳐진다.
진소운은 태을팔만신보를 펼치며 유려하게 타구봉을 피한다.
그 모습에 오삼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타구봉법이야 그렇다 쳐도 타구십팔초는 쉬이 피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니까.
더구나 동년배 거지들은 물론이고 같은 사결개의 거지들도 그의 타구십팔초를 받아내길 버거워했건만, 어찌 진소운 따위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유려하게 타구봉들을 피해간다는 말인가.
‘이게 무슨…….’
게다가 크게 피하지도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타구십팔초를 피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진소운과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자신과 그의 사이에 어마어마한 무공의 차이가 나거나, 그가 타구십팔초를 모두 외우고 있거나.
하지만 자신도 타구십팔초를 다 외우기 위해 일 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진소운이 다 외우고 있을 일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뻗치자 오삼은 자신의 힘으로 수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자, 잠깐…….”
“잠깐은 무슨 얼어 죽을 잠깐이야.”
권기가 어른거리는 주먹을 허리춤으로 당겨낸 진소운이 표독스런 눈으로 오삼을 꼬나보았다.
“이건 나한테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내뱉은 값.”
꿍.
장기가 한차례 들썩거릴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 오삼을 휩쓸었다.
헌데, 그의 몸은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커윽!’
오삼이 미처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다시금 진소운의 정권이 오삼의 복부에 박힌다.
“이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눈앞에 어른거린 죄!”
꽝.
“이건 우리 이쁜 사제들의 귀한 수련시간을 방해한 죄닷!”
머리 꼭대기까지 수직으로 치솟았던 진소운의 발이 그대로 오삼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퍽!
온몸의 뼈가 잘근잘근 부수어지고 머리까지 쪼개질 듯한 아픔 속에서 오삼은 아까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거지가 진저리칠 만한 꼴로 한겨울에 땀을 줄줄 흘리며 다 죽을 듯한 얼굴로 걷던 네 사람…….
‘누가 사제한테 그딴 걸 수련이라고 시키는데!’
억울함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오삼은 이미 꽥하고 기절해 버린 상태였다.
탁탁.
“별 거지 같은…… 아니, 거지 맞지. 웬 거지새끼가 귀찮게 하고 있어, 쯧.”
진소운이 손을 털며 자신들에게로 다가오자 은호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 그런데 대사형. 대체 이쁜 사제들이 누굽니까? 여기 저희 말고 누가 또 있습니까?”
“뭔 소리야. 너희가 이쁜 사제들이지.”
응?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저희가요?”
“그래, 내가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보살피는 거 보면 모르겠냐?”
은호는 순간 오소소 닭살이 돋아 말문을 잃었다.
“근데 은호야.”
“……네.”
어쩐지 대사형의 자칭 애정 어린 눈빛이 자신의 발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왜 발이 멈춰 있냐?”
“어……랏?”
순간적으로 머리를 급속하게 돌린 은호가 대답했다.
“감히 저희의 대들보이신 대사형께 욕지거리를 내뱉은 저 거지 놈에 대한 분노를 너무도 참기 힘들어 그만…… 죄송합니다.”
“그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은호를 지켜보던 나머지 사제들이 작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은호는 대사형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근데 대사형, 저 사람들 개방 출신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괜찮은 겁니까?”
“안 괜찮으면?”
“분명…… 사람들을 불러올 텐데요.”
개방이 무서운 건, 그들 개개인의 실력에 있지 않다.
끝도 없는 인력의 규모.
더구나 저마다 작게나마 내공을 익히고 있다.
그런 인원이 매번 생겼다가 사라진다.
십만 개방도라는 건 대략적인 수치에 불과할 뿐, 실제로 그보다 더 많을 거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지 않던가.
강호의 사람들이 말하길.
소림을 멸하는 데 십 년이면 충분하지만, 개방은 백 년이 걸려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런 상대를 건드린 거 아닙니까? 본인도 그걸 알고 ‘개방’, ‘개방’ 노래를 불렀던 거 같은데…….”
“쯧. 개방의 거지가 거지지.”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얼른 발 놀려라. 저놈처럼 뒈지게 맞기 싫으면.”
당장 대사형에게 두들겨 맞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네넷!”
하지만 그 발걸음도 얼마 가지 못해 멈췄다.
스물에 가까운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와 진소운 일행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것 보십쇼.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이은호.”
“넵!”
“넌 제자리에서 발 놀려.”
“…….”
“안 그럼 저것들 치우고 넌 죽는다.”
“안 그래도 열심히 놀리고 있습니다!”
은호가 제자리에서 가시라도 밟은 듯 촐싹거리며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거지라고 하지만 상대는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런 자를 곤죽을 내놓고 그 일행까지 온 마당에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대사형의 표정은 느긋하기 그지없다.
“거 또 왜 우르르 몰려온 거냐.”
진소운의 핀잔에 개중 가장 현란한 차림새를 한 거지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나는 섬서성 서안지부 삼분타주 삼철이다.”
“자기소개는 됐고.”
진소운이 귀를 후비며 오삼을 툭툭 발로 찼다.
“이 거지 때문에 수련을 방해받았어. 어떻게 손해배상 할 거야?”
태을문 사제들은 뜨악한 심정이 되었다.
‘미친…….’
‘뭐라는 거야?’
‘정신이 나갔나?’
‘대사형…… 이상해…….’
삼철 역시 진소운의 태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련 좀 방해했다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뭐? 수련 좀?”
진소운이 손가락을 쫙 펴곤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욕도 했고, 선빵도 날렸구나.”
그 여유로운 모습에 약이 오른 삼철이 소리를 질렀다.
“녀석이 어디 소속인 줄 모르는 것이더냐?!”
“뭘 몰라, 지 입으로 초식 이름까지 외더만.”
“그런데 감히!”
삼철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개방도를 핍박해?!”
“눈치가 별로면 구걸하다가 쪽박도 깨지는 게 거지 팔자야. 그것도 모르고 거지 한 건 아니겠지?”
“네놈 정체를 밝혀라. 내 반드시 네놈 사문과 소속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리라!”
눈에 핏발이 선 삼철의 협박에 진소운이 피식 웃었다.
“세상 좋아졌네. 삼분타주 따위가 보복하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무림맹에서 학관생들이 이리 핍박당하는 걸 보면 뭐라 할까?”
“뭐……?”
삼철은 순간 등골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학관생 신분이 왜 갑자기 튀어나오는가.
학관생은 엄연히 무림맹 소속의 간부후보생이다.
학관생이란 신분 그 자체가 이미 무림맹의 간부라는 신분패와 다름이 없는 것.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보호는 무림맹의 가장 앞선 임무 중 하나이고.
학관생들이 외부에 나가 횡액을 당하면 무림맹은 반드시 무림맹의 이름으로 보복한다.
출세를 떠나서 배경이 없는 이들이 하나같이 학관을 통해 무림맹에 들어가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 지금 삼철은 무림맹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소릴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 신분을 밝히지 않을 생각이냐?”
하지만,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학관생들도 그 내부에서는 서로 연줄을 만들기 마련이니까.
마침 이번 기수에도 개방의 거지들 몇이 들어가 있는 상태.
그들을 통하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아니, 더 나아가 친우의 선배에게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한 사과도 받을 수 있을 터.
“신분 먼저 밝혀라.”
그러기 위해선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필수다.
“참 내.”
그 속을 다 파악한 듯 고개를 내젓던 진소운이 건조하게 답했다.
“태을문.”
“뭐?”
삼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문파가…… 음 근데 왜지?
태을문…… 태을문…… 태을문…….
근래에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순간 삼철의 눈이 번쩍 치켜떠졌다.
“합비신성! 태을문!”
진소운이 혀를 찼다.
“안휘신성도 아니고 뭔 합비신성이야. 하여간에 이름 짓는 놈들 수준하곤…….”
삼철은 불량한 상대의 차림새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은은하게 자수가 들어간 검정색 무복. 허리춤에 메인 온통 검은 빛의 검과 비열하게 생긴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숨길 수 없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앞섬까지!
“서, 설마…… 네놈 흑염룡이더냐?”
불린 별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는 진소운.
그제야 삼철의 머리에서 비상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좆대따!’
그것도 아주 심히.
#
삼철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반 거지꼴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딘가 비슷하게 생긴 세 명의 청년들.
‘저들이 아마 철벽삼룡으로 불리는 금·은·동 형제일 테고.’
얼굴에 묻은 먼지와 땟국물만 걷어낸다면 한 떨기 꽃과 같은 미모를 뽐낼 것 같은 여인.
‘홍문기의 금지옥엽 외동딸 홍사련이렷다.’
더구나 홍사련은 학관에 방문한 남궁태하와 개인적인 만남까지 가졌다고 했다.
아직 세간의 인식으론 보잘것없는 문파에 불과하지만, 개방과 같은 정보단체의 입장에선 언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지 모를 벽력탄이나 마찬가지였다.
‘흑염룡…… 저 자식은 당최 어디로 튈지 모를 인물이고…….’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자가 바로 흑염룡 진소운.
눈앞에 선 불량한 왈패의 정체였다.
“진소운…….”
삼철이 짓씹듯 나직이 물었다.
“왜…… 학관을 이용해 돌아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지?”
학관생들은 자신의 지위를 잘 이용한다.
학관에서 주는 많은 혜택 중의 하나가 바로 고향에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만약 진소운이 그 혜택을 잘만 이용했다면 이런 불상사는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
하여 그 연유를 묻는 것이다.
하지만 진소운은 귀를 후비적 파며 무심히 툭 내뱉었다.
“내 맘이니까.”
돌아온 대답에 삼철이 샐쭉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내 맘대로 움직이겠다는데, 이것도 거지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
너무 당연한 논리에 더 이상 꼬투리 잡을 부분도 없었다.
오삼이 두들겨 맞은 건 억울한 일이지만, 그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시비(?)를 건 것 또한 잘못.
이쯤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옳았다.
“좋다.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듯하군. 여기서 조용히 마무리 짓는 게 어떤가?”
무림학관이란 배경이 무섭긴 하지만,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개방이다.
태을문에 비하면 거대한 문파이자 정보단체.
그런 개방을 적으로 돌리는 건 태을문도 바라지 않을 터.
“그러지.”
훗, 역시나 개방의 힘을 두려워하는군.
대충 알아들었겠거니 생각하며 삼철이 돌아서려 할 때.
“단.”
뒤통수에서 진소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피해 보상만 제대로 해 주면.”
“……피해보상?”
삼철은 바닥에 자빠져 눈깔을 뒤집은 오삼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몹시 멀쩡한, 아니 더 나아가 껄렁껄렁한 자세로 서있는 진소운을 봤다.
대체 누가 누구한테 피해보상을 한단 말인가?
“저 거지 새끼 때문에 우리 사제들이 수련을 제대로 못 했단 말이지. 더불어 연약한 내 마음을 거친 욕설로 갈기갈기 찢어놨거든. 시간적,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아야겠어.”
“……하!”
흑염룡의 혓바닥이 어지간한 바늘보다 날카롭다더니.
숫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는 솜씨가 일품이다.
삼철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자네는 개방의 후환이 두렵지도 않은가?”
“뭐래 거지새끼가.”
역시나 미친…… 아니, 진소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개방에선 그런 기본도 안 가르쳐?!”
“…….”
“저기 엎어진 거지 놈은 멀쩡히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을 날렸다. 단순 사실만 살펴봐도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가 분명한데 뭔 자꾸 궤변을 늘어놓고 있어. 이 거지새끼가!”
그의 말대로 사실만을 놓고 봤을 때 분명 개방의 잘못이 맞다.
다만 이런 경우 서로 간의 오해가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건만…….
“피해보상 안 할 거야? 그럼 몸으로 때우든가.”
“……잠깐.”
곧장 검을 뽑으려는 진소운의 태도에 삼철이 손을 뻗어 시간을 벌었다.
그의 머리는 지금 인생 최대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뒤가 없는 새끼다. 잘못 일을 키웠다간 불똥이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
그간 흑염룡이 저질렀던 기행들을 보라.
그가 휩쓸고 지나간 곳은 마치 황충이 지나간 것처럼 처참한 폐허가 되지 않았던가.
더구나 명분이 저쪽에 있는 상황.
태을문은 두렵지 않으나, 무림학관과 무림맹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개방은 결국 지진 않겠으나, 이 일이 문제가 되면 분타주인 자신의 목은 날아갈 것이 분명한 상황.
차라리 적당한 수준에서 일을 마무리 짓는 게 더 나은지도 몰랐다.
판단을 내린 삼철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대가를 원하는 거지? 돈인가?”
진소운이 뽀양한 앞섬을 쓸며 비웃는다.
“거지새끼들이 돈이 있어 봤자지.”
삼철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겨우 억눌렀다.
분명 자신은 거지가 맞다.
그래, 거지가 맞는데…… 왜 저 개새끼가 외치는 ‘거지새끼’라는 단어는 이리 귀에 재수 없게 쏙쏙 박히는 걸까.
그래도 참자, 참아.
상대는 미친…… 아니, 학관대표 흑염룡이다.
“……그래서 뭘 원하나?”
진소운이 피식 코웃음을 친다.
“니들 이번에도 지도 팔아먹고 있지?”
“…….”
“하여간 마령고원 사태를 겪고도 교훈도 못 얻은 새끼들.”
진소운의 얼굴에 경멸이 어렸지만, 삼철은 분노를 꾸욱 참아냈다.
“그거나 가져와. 그럼 없는 일로 퉁 칠 테니까…….”
“장보도를 말하는 건가?”
지금 오령선화유 장보도가 한 장에 금전 이십 냥이라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다.
한낱 실수 하나로 그걸 내놓으라니.
이거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아예 도둑놈이잖아??
“장보도의 가격이 얼마인 줄은 알고 말하는 건가?”
“장보도는 무슨…… 그냥 천동굴을 그려놓은 지도인 줄 내가 모를 줄 알고?”
“……!”
삼철의 머리털이 삐쭉 섰다.
저놈이 그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개방이 오령선화유 장보도로 팔고 있긴 하지만 실제 오령선화유가 있는 곳을 그려놓은 지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천동굴이라 불리는 복잡한 굴 내부를 그려놓은 것일 뿐.
거기에 오령선화유가 어디쯤 나올 것이란 예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도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지도 한 장에 금전 이십 냥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고 오령선화유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계산하면 저렴하기 그지없으니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시치미 뗄 생각이면 없는 일로 치고.”
다시금 검을 뽑으려는 진소운.
“잠깐!”
“왜?”
삼철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건 어찌 알았…….”
“금전 이십 냥.”
“……응?”
진소운이 손가락 두 개를 까딱거렸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알고 싶으면 이십 냥을 내라고. 정보를 사고파는 놈이 양심도 없이 공짜로 정보를 얻으려 하네.”
“…….”
“살 거야?”
뭐야, 얘. 진짜 정체가 뭐야.
“……되었소.”
“지도는??”
“…….”
고민하던 삼철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지도가 있어 봐야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 위험한 자와 실랑이를 계속 벌일 바엔, 지도를 넘겨주는 편이 훨씬 낫다.
“……좋소.”
“그럼 됐네.”
두 사람이 극적 타결을 맺은 그때.
“끄으윽…….”
기절했던 오삼이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삼철을 발견하곤 어미를 찾은 새끼 새처럼 울부짖었다.
“부, 분타주님! 저놈! 저놈입니다! 십만 개방의 무서움을 모르고 일개 학관생 따위가 감히 개방의 정예인…….”
하지만 오삼의 간절함은 이어지지 않았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불식간에 삼철의 손에서 취팔선권이 작렬하여 오삼의 아구창을 날렸기 때문.
다시금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자신을 비웃고 있는 진소운을 바라보며 오삼은 생각했다.
‘아니, 왜…… 날…….’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