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기회를 가질 자격>
사제들을 사방으로 흩어 보낸 뒤, 나는 주당산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안력을 돋구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형의 모습을 담았다.
한쪽 봉우리에서 주당산의 모습을 눈에 담은 후에 다른 봉우리로 옮겨 새로운 각도에서 주당산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지만, 일이 다 끝난 시각은 이미 해가 중천에 뜬 후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당산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새 도착해 있는 사제들.
“대사형, 그려왔습니다.”
은호가 대표로 수북한 종이를 내밀었다.
“잘해 왔네.”
“대사형. 이번에 또 무슨 작당을 꾸…… 아니, 이걸로 대체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할 거냐고?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렸다.
“기회를 팔아먹을 생각이다.”
“기회요?”
“그래, 종남이 독점하고 있는 기회.”
놈들은 자신들만이 ‘독점’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겠지.
난 그 틈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이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은호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보고 있어라, 곧 알게 될 테니.”
“아니, 또…….”
뭐지? 얘 반항기인가?
입술을 달싹거리려는 녀석에게 살짝 고갯짓으로 옆을 가리켜 주었다.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철환과 강판들.
은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저는 언제나 대사형을 믿습니다.”
역시, 반항기일 리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녀석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자신들이 그려온 지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난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상세히 들여다 보았다.
내 지시대로 사람은 일절 배제하고, 천동굴 입구 인근과 그 일대를 상세하게 그려왔다.
“개방의 지도도 가져와라.”
그다음은 개방이 팔아먹은 가짜 장보도와 비교할 차례.
개방이 그려놓은 지도는 천동굴의 칠(七) 할 만을 그려놓은 상태.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내가 필요한 건 입구 인근의 지형이니까.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까 직접 눈으로 본 정보를 토대로 머릿속에 주당산을 실사화시켜 축소한 모형을 만든다.
거기에 개방의 지도와 사제들이 그려온 지도를 합쳐 천동굴 또한 실사화할 생각이다.
단면으로 그려진 동굴을 입체적으로 실사화하기 위해선, 사제들이 그려온 지도들이 필요하다.
나는 다시금 눈을 뜬 후, 은호가 처음부터 다시 넘겨주는 지도들을 개방의 지도와 비교하며 천동굴을 입체적으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천동굴의 실제 모습이 구체화될수록 뒷골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그렇게 구현된 주당산, 천동굴 두 개의 입체 지도를 이제 하나로 합치는 작업이 필요한 때.
“흐음…….”
점차 주당산의 형태가 흐려지고.
‘여기였지.’
주당산 입체 지도 기준으로 봤을 때 종남이 막고 선 입구 위치에, 실사화된 천동굴을 일치시킨다.
비율 조정을 끝내자, 입구를 비롯한 인근의 지형이 확연하게 보였다.
‘됐다!’
나는 실사화된 모형 지도를 회전시키며 더욱 자세히 살폈다.
그때.
“……대, 대사형!”
기겁하는 은호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내 면전까지 들이닥친 녀석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못생겼…….
“피…… 코피가…….”
응?
은호의 말대로 코에 손가락을 대니 한 바가지는 될 법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인지하고 나니, 머리가 핑 돌고 세상이 회전하는 듯했다.
예전에 명령으로 만통부와 심현각의 자료를 억지로 우겨넣을 때 느꼈던 기분.
그런데.
‘이 짓을 내 스스로 하다니.’
그때는 다른 이들의 강압에 했던 일을 지금은 내 스스로 하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사련이 기겁하며 천으로 내 코를 부여잡아 피를 막았다.
거 살살 좀 잡…….
“대체 뭘 하는 거예요!!”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 울먹이는 사련.
하여간 걱정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라니까.
스윽.
나는 사련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뭘 하는 거냐고?”
그리고 직접 코를 막으며 씨익 웃었다.
“종남 엿 먹이기.”
내 앞에 쪼르르 몰려든 녀석들은 인상을 찌푸린 채 미친놈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허어, 감히 하늘같은 대사형을 그런 불경한 눈으로 보다니. 고얀지고.
옆에 쌓아둔 철환과 강판을 사용해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뭐, 아무렴 어때.’
지금은 이 일로 똥 씹은 표정을 지을 종남 놈들을 생각하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케헤헤헤.
#
섬서성 서안지부 흑점 점주 호계악은 지나다니는 무인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배야…… 열 명 중 한 명한테만 팔아도 얼마람…….’
셈이 빠른 탓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쓱- 봐도 견적이 나와버리는 호계악은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계산되는 금액에 쓰린 속을 부여잡아야 했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자신의 심정을 아는지 놀리듯 노래를 부르고 비웃음을 날리며 지나가는 개방을 보자 더욱 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고~ 비단 장수는 손님이 없어 굶어 죽겠구만!”
“낄낄낄낄!”
개방도의 말에 결국 호계악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어디 손님 상대로 사기나 치는 놈들이 감히 누굴 놀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가 평소 자주 애용하는 소금 바가지를 가져와 세네 번이나 뿌리자, 그제야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하는 거지 놈들.
하지만 도망가는 순간에도 주둥이 놀리기를 쉬지 않는다.
“헹! 우리가 쳤나, 지들이 걸렸지!”
“비단 장수는 열심히 비단이나 파시오!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낄낄.”
거지 놈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한참이나 씩씩거린 호계약.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삼 년이나 준비한 건데…….’
오령선화유가 나타나기 삼 년 전부터 천동굴을 조사하기 시작한 그는 이번 오령선화유가 나올 때 개방보다 더 많은 지도를 팔 자신이 있었다.
이전에 오령선화유가 나왔던 지점들을 모두 표시하고, 영약 전문가를 초빙하여 금번 오령선화유가 나올 예상 지점들을 따로 찍어두기까지 했으니까.
정보를 팔아먹는 이는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게 호계악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상부로부터 천동굴 지도를 팔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
어떻게든 상부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빌어먹을…….’
처음엔 그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오문이 마령고원의 지도를 팔아먹은 일로 고초를 겪은 건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으나.
천동굴은 마령고원과는 다르고, 정체불명의 천연진 같은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지도 판매를 금지한 이유를 듣고는 힘이 쫙 빠졌다.
종남이 천동굴 입구를 막으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지도를 팔아먹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개방처럼 난 몰랐다 하며 팔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하오문은 개방과 그 위치가 다르다.
뒤늦게 자신들이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개방에는 쉽사리 항의를 못 하겠지만, 하오문에는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을 테니까.
잃을 게 없는 거지들과 달리, 자신들은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럴 순 없지.’
생업에 종사하는 다른 하오문도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되었다.
당장 마령고원 사태 때만 해도 얼마나 많은 하오문도들이 피해를 입었던가.
그럼에도.
“에잉…….”
머릿속으로 계속 셈이 나와버리는 탓에 호계악은 더 이상 가판을 지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도망쳤던 개방도들이 다시금 슬금슬금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울화가 치솟아 올랐으니까.
그렇게 일찍 문을 닫고 밤이나 구워 먹어야겠다 생각한 그때.
“틍별항 청을 찾고 있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에 귀가 쫑긋 섰다.
그중 확실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특별한 천!
호계악은 얼른 몸을 돌려 말을 한 이를 바라봤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어라? 진 공자님?”
현 하오문의 유일한 ‘식객’이자 학관대표, 흑염룡이자 흑미륵이고 흑룡채주인 진소운이.
“에. 점미다.”
……양 코를 틀어막은 이상한 꼴로 서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아니, 보통이 아니신 거야 원래 알았지만 이건 너무 요상…….
“큼큼.”
호계악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체 코는 왜……?”
“점주닝, 시강 있습니까?”
“시간이요?”
호계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소운이 한 손으로 왼쪽 코를 누르더니, 코를 흥 풀었다.
“네. 시간 있으면.”
그러자 오른쪽 콧구명을 틀어막은 종이가 뽑혀 나오고.
이어 진소운이 반대편 코를 누르며 한 번 더 코를 흥 풀어내자, 이번엔 왼쪽 콧구멍에서 종이가 튀어나온다.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
“우리 지도 장사나 좀 합시다.”
“…….”
어라, 더 당황스럽네?
호계악은 순간 상부의 지시와 ‘식객’의 요구 중에 무엇을 먼저 따라야 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
“진 공자님, 그게 그…… 어떤 지도를 말하시는 겁니까?”
“어떤 지도긴요. 오령선화유밖에 더 있겠습니까.”
“…….”
아니, 알긴 아는데.
그러니까 그걸 갑자기 왜…….
호계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진 공자님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왜죠?”
“흠…… 이걸 어찌 이야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호계악은 자신이 만든 지도를 가지고 나왔다.
“천동굴의 지도라면 이미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상부에서 판매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진소운이 꼼꼼하게 지도를 살폈다.
“놀랄 만큼 정교한 지도네요. 이걸 점주님이 직접 만드신 겁니까?”
“예. 꽤 오래 전부터 준비했거든요.”
“목판 인쇄입니까?”
“네?”
뜬금없는 질문에 호계악의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여전히 지도에서 눈에 떼지 않던 진소운이 덧붙였다.
“이 정도로 정밀한 지도를 일일이 사람 손으로 그렸을 것 같진 않아서 말입니다.”
“뭐…… 그렇죠. 아는 이가 있어서…….”
“그럼 됐습니다.”
음? 뭐가 됐다는 거지?
호계악이 침음하며 말했다.
“상부는 종남이 입구를 막은 일로 지도 판매를 하지 말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몹시 욕심이 났지만…… 판매를 못 하고 있었던 겁니다.”
후, 생각만 해도 또다시 울컥…….
“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응?
“우리 고객들은 항의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 고객……?”
호계악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진소운이 그의 지도 위로 커다란 종이를 쫙 펼친다.
“저희는 이 지도를 팔 겁니다.”
“네……?”
지도라기보단 풍경화에 가까워 보이는 그림에 호계악의 시선이 종이와 진소운을 오간다.
“저…… 이게 지도란 말입니까?”
지도란 자고로 위치 정보가 있어야 하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호로 평면에 그려야 하는 것인데.
‘너무 생경하잖아.’
진소운이 이야기한 지도는 평면적이지도 않고 기호도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십시오.”
자신감이 가득 찬 목리에 진소운의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호계악은 그림 속에서 익숙한 것들을 파악했다.
“이, 이건……!”
이는 지난 삼 년간 호계악이 주구장창 오르락내리락했던 곳이기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곳.
“주당산이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파시겠다고요?”
주당산은 오령선화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그리 유명한 산도 아니다.
천하에서 가장 험한 오악이나 무림의 태산북두인 숭산의 풍경화도, 유명한 그림쟁이가 그린 것이 아니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설픈 실력으로 그린 이런 그림을 팔아먹겠다니.
아무리 그가 하오문의 식객이자 학관대표, 흑염룡이자 흑미륵이고 흑룡채의 채주일 만큼 비범한 인물이라 해도…….
“음, 이건 좀…….”
자신의 당황스런 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한 진소운의 태도에, 호계악은 지금 진소운이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는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저, 진 공자님…… 혹시 돈이 필요하신 겁니까?”
호계악의 말에 진소운이 이해한다는 듯, 대답 대신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길 보십시오. ……그리고 여기.”
진소운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호계악의 시선이 열심히 좇는다.
진소운이 가리키는 곳은 천동굴의 입구들…….
그런데.
“그리고 여기.”
진소운의 손가락을 좇아간 곳엔.
“음……?”
본래 없는 동굴이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여긴…….”
“이걸 정보를 파는 겁니다.”
“자, 잠깐만요. 진 공자님.”
호계악이 다시금 그림을 본다.
하지만 재차 살펴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무리 지도를 못 팔게 됐다곤 하지만, 자그마치 삼 년이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 삼 년을 제집처럼 드나든 곳이 주당산이란 말이었다.
“공자님, 제가 지난 삼 년간 주당산을 수백번 오르내렸지만, 천동굴에 이런 세 번째 입구는 없습…….”
“당연히 없겠지요. 이제 곧 생길 거니까요.”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 들은…….
이어진 말은 더더욱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모레 묘시(卯時) 해가 뜨기 전에 이 입구가 생길 겁니다.”
“그게 무슨…….”
이윽고 진소운의 얼굴 위로 몹시도 장난스러운, 그러나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오른다.
“제가 이 입구를 만들 생각이거든요.”
“……만든다고요?”
호계악이 그 미소를 보며 입을 쩍 벌린 채 뻥긋거렸다.
#
호계악은 진소운의 지도를 들고 곧장 인쇄소로 향했다.
쾅! 쾅! 쾅!
주취꾼의 행패라 생각해 방망이를 들고 나온 인쇄소 주인을 닦달하여 목판을 만들게 하고.
하오문의 인원들을 모두 끌고와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기 직전 백 장의 지도를 먼저 만든 호계악은 곧장 지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미 개방의 지도 때문에 화가 난 이들인데 이걸 사려고 할까요?”
하오문도의 질문에 호계악은 단언했다.
“오령선화유를 찾아 서안까지 온 이들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속아보자라는 심정으로라도 살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하지만 상부에선 지도를 팔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호계악도 걱정했던 지점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상부에선 천동굴 내부의 지도를 팔지 말라 했지, 그 외부인 주당산 전체를 그린 지도의 판매는 지부의 권한 아니겠는가.
더구나 정보 제공자는 다름 아닌 ‘식객’ 진소운.
일이 조금 잘못된다 해도, 그의 계획에 도움을 주었다 이야기하면 상부에서도 크게 문제삼지 않으리라.
“그럼 가격은……?”
가격…… 가격이라.
호계악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은전 열 냥!”
장보도로 분류되는 지도치곤 너무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호계악은 열 냥을 최종 가격으로 정했다.
흔히 생각하길 사람들이 공짜 정보를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정반대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불한 값에 비례하여 정보를 신뢰한다.
“만약 의심하는 자가 있거나, 가격을 깎아달라 하는 자가 있다면 못 이기는 척 그렇게 넘겨라.”
“네?”
어차피 지도는 사람을 모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진소운의 계획대로 이것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종남은 물론이고 개방에도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터.
더구나 ‘식객’인 진소운에게 도움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
아니지 아니지, 그분을 너무 닮아선 안 되지, 크흠.
“어쨌든 시행하도록 해라.”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호계악의 지시에 의문을 품는 하오문도들이었지만, 행동까지 느리진 않았다.
아침 해가 정오에 다다를 즈음.
진소운의 지도가 알음알음 서안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믿을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내가 이미 가봤는데, 입구 같은 건 없었어.”
“여기 시간을 보라고! 입구가 열리는 건 내일 묘시(卯時)라잖아.”
“허허, 이 사람 아무리 영약이 있는 곳이라지만 동굴 입구가 시간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하겠는가?”
많은 이들이 지도를 신용하지 않았고, 더러는 사기를 당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개방에 이어 하오문까지 무인을 우습게 본다며 당장에 하오문에 처들어갈 작정을 한 이들도 있을 정도.
하지만 그 모든 행위들은 잠시 뒤로 밀렸다.
혹시나 묘시(卯時)에 정말로 동굴이 열릴지도 모르니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니까.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룬, 천동굴의 ‘새로운 입구’.
“어? 자네?”
“크흐흠……!”
“나한테는 허무맹랑한 소리 믿지 말라더니!”
“무슨 소린가! 난 그냥 산책 삼아 주당산에 오른 것뿐인데.”
“지금 시간에 말인가?”
주당산 곳곳에서 민망한 만남들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말을 줄이고 서서히 지도에 적힌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묘시가 다 되어갈 무렵.
“응?”
“뭐지?”
“자네도 느꼈나?”
민감한 감각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어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 이들도 느낄 만큼 진동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때.
드드드드드드드드.
천하가 뒤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진동이 울려퍼졌다.
산중의 바위들이 흔들려 떨어지기 시작하고, 나무위에 잠을 자던 새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떠올랐다.
“지진?”
“이, 이게 무슨……!”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커다란 빛이 발산되었다.
사람들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힐 듯한 거대한 광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야? 벼락이라도 친 거야?”
“그렇다기엔 빛이 좀 다르지 않았어?”
당황하기도 잠시.
“잠깐! 저 빛! 지도에 나와 있는 곳이야!”
누군가의 말에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나누었다.
“!”
“!!”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법을 펼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허어……!”
눈앞에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동굴 볼 수 있었다.
“이, 입구다!”
“지, 진짜 천동굴 입구가 열렸어!”
“비켜! 오령선화유는 내 꺼다!”
누군가의 외침을 신호로 수많은 무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굴 속에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