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기회를 가질 자격(8)>
또옥─
또옥─
또옥─
황금빛의 열기를 머금은 이슬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광경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
“……오래 걸리네.”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
무척이나 신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임은 확실하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느리니 금방 지루해진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어후, 이거…….’
팔이 너무 아프다.
소실되는 오령선화유가 한 방울도 없어야 했기에 수통을 높이 들고 오령선화유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단련된 사람이라도 손을 들고 있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금표야.”
“네.”
“너에게 영약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와서 이걸 잡아라.”
“…….”
금표가 나와 높이 솟은 수통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사형. 이런 중차대한 일을 감히 제가 해선 안 되겠지요. 전 괜찮습니다.”
애들이 왜 자꾸 눈치가 늘지?
“좋은 말 할 때 와서 잡아라.”
“……넵! 영광입니다!”
금표는 찡그리는 눈과 달리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흡족한 마음으로 뻐근한 팔과 목을 풀고 있자니 사련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 정말로 오령선화유를 얻은 거예요?”
내세에 쉬이 볼 수 없는 광경을 봐놓고서도 사련은 믿기지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긴…… 누구보다 태을문의 비상을 바라던 아이였으니.’
자신이 태을문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내내 가지고 살아가던 아이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버거운 무게를 짊어진 아이.
그래서 생에 내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아이.
전생의 그녀를 아는 나였기에 사련이 이리 감동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 조금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래. 진짜 태을문이 오령선화유를 얻은 거다.”
사련의 두 눈에 어쩐지 물기가 고인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고.”
“…….”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이내 오령선화유와 같은 이슬이 그녀의 눈에서 또르륵 흘렀다.
사련은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급하게 눈물을 감추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해 주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미래에 태을문이 어떻게 될지가 아니다.
오령선화유를 가지고 무사히 나가는 게 가장 큰 문제.
‘문제는 저게(?) 너무 느리다는 건데.’
멍청한 종남이 횃불을 켜고 있는 바람에 오령선화유를 소실한 것과 달리.
우리는 미리 횃불을 끄고 있었기에 소실된 부분이 없다.
그렇다면 최소 수통의 절반은 채울 수 있다는 건데.
언제 종남이 들이닥칠지 모를 상황에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제발, 조금만 더 헛짓거리를 하고 있어 주길.’
외부에서 추가로 들어오는 인원들을 막고, 내부의 인원들을 쫓아내기 위해 종남이 무진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오령선화유의 양이 많아질 테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호야.”
나지막하게 깔리는 금표의 목소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결국.
“이……은호!”
금표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타게 은호를 부르지만 은호는 계속 못 들은 척하고 있을 뿐이다.
“저 새끼…… 으으, 아혈을 집혔는데. 왜! 귀가 안 들리는 척……을 하는 건데.”
“…….”
두 형의 기 싸움에 동룡이 머뭇거리며 금표에게로 다가간다.
“그, 금표 형, 내가 들고 있을까?”
자신과 머리 하나 차이 나는 동룡을 내려다보는 금표.
거 눈빛이 너무 격하게 흔들리는 거 아니냐?
“아니야, 넌 너무 작아…….”
아무렴, 그래야지. 설마 어린 동생에게 시키…….
스윽-
“……야, 너 어딜 보냐.”
내 일갈에 사련에게로 향했던 금표의 시선이 황급히 거두어진다.
하지만 이미 시선의 방향은 들통났고.
“금표 형, 너무하다.”
“……으으으읍!”
은호와 동룡이 동시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자, 금표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뭐, 뭐! 왜?! 내가 무슨 말 했어?!”
그때, 얼굴이 시뻘게진 금표에게 사련이 다가갔다.
“이리 줘. 내가 들고 있을게.”
“아, 아닙니다. 사저, 쉬고 계세요.”
“그러다 한 방울이라도 놓치면 손해가 얼만데. 번갈아 하자.”
“……아, 그럼 잠시만…… 헤헤.”
그렇게 이제껏 없었던 여유를 즐기며 투닥거리는 사이.
타다다닥.
내 기감에 누군가가 걸렸다.
벌떡.
나는 얼른 일어나 동룡이를 바라봤다.
“동룡!”
“……네?”
얼굴색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내 기감에 걸린 이가 풍기는 기도가 심상치 않다.
아까 분명 우리를 쫓던 그놈이 맞는 것 같은데.
나는 동룡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 이번엔 모르는 거지?’
잠시 생각에 빠졌던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으으읍?”
“사형?”
다시 금표와 교대한 사련과 은호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래, 지금은 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사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으으읍?”
“아까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사련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이미 우릴 파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은 갈림길에서 정확히 우리 쪽으로 올 수 있겠는가.
“그럼 여기까지만 받을까요?”
사련의 얼굴 위로 불안한 빛이 떠오른다.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인 것은 맞다. 그러나.
“아니. 끝까지 받아라.”
눈앞에서 영약을 포기한다니.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녀석들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그러자 사제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날 말린다.
“사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사형!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요!”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제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얘들 왜 이래.
“이건 대사형인 내가 할 일이다.”
내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내젓자, 사제들의 두 눈에 복잡함이 어린다.
‘음, 이거 왠지…….’
대사형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존경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눈빛 같은데.
한 명 가지고 무슨 생난리…… 아.
그 순간, 나는 사제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래, 그랬구나.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덧붙였다.
“큼큼, 종남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이곳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니…… 너희는 끝까지 오령선화유를 받아라.”
물론 상대가 한 명이라는 걸 이야기하지 않은 내 탓이 크긴 하지만 뭐, 굳이 오해를 바로잡아 줄 필요는 없겠지.
아니 왜, 백 명 같은 한 명일 수도 있지 않겠나. 흠흠.
그때, 마비되었던 아혈이 풀린 듯한 은호가 말을 한다.
녀석, 역시 감동을 먹…….
“……대사형, 그럼 여태껏 왜 안 그러신 건가요?”
나는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야.”
“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네가 오령선화유를 받아야 할 차례다.”
“…….”
눈치 빠른 사제는 정말 질색이라니까.
#
오령선화유가 나오는 동굴을 나와 거리가 조금 벌어졌을 때. 나는 검기를 천정으로 날렸다.
스걱- 스걱- 스걱- 스걱-
투두두둑- 투툭 툭-
잘린 돌덩이와 흙더미들이 쏟아지며 그나마 틈이 남아있던 좁은 입구를 막는다.
간헐적으로 퍼져 나오던 오령선화유의 빛이 완전히 막히고 사방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혹시라도 빛이 새어 나오지 않으면 녀석들이 발각될 위험이 좀 덜하지 않을까 하여 취한 조치였다.
칙- 칙-
부싯돌을 이용해 다시금 횃불에 불을 켜고 의문의 인물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기척이 점점 선명해지고, 서서히 그가 발산하는 살기가 피부로 느껴질 때쯤.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그 또한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조금씩 느려진다.
그러더니 이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도 나와 싸울 것을 예상한다는 듯.
나는 이제 숨길 것조차 없기에 노골적으로 기감을 펼쳐 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격기(激氣)를 쓸 거리가 아니기에 그의 무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전생에 쌓았던 고수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어림짐작할 수는 있다.
‘당주…… 그 이상!’
기감으로 어림짐작한 것이기에 아마 실제로는 더 강할 가능성이 높다.
‘재수가 좋으면 당주급, 재수가 없으면 장로나…….’
왠지 철순직이 이야기했던 북두 검수가 떠올랐다.
그렇게 까지 재수가 없진 않길 바라며.
터벅―
잠시 뒤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일렁이는 횃불의 불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이는 많이 쳐줘 봐야 삼십 대 중반의 사내.
북두칠성의 무늬가 박힌 빛나는 검신을 가진 자였다.
‘씨발 진짜…….’
#
북두 검수.
종남의 최후의 공격대.
종남이 존폐의 위기에 이르기 전까진 종남 바깥으로 나서는 일이 없다는 집단.
혹자는 말하곤 한다.
종남의 북두 검수는 상호확증파괴를 위한 최후의 무기라고.
종남은 말한다.
종남을 멸(滅)하고 싶다면 자신들 또한 그리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전생에 종남이 멸망한 후에도 보지 못했던 북두 검수를 여기서 다 보다니.’
기분이 묘하다.
아니, 조금 나쁘다.
뭐, 부대의 존재 이유부터가 사문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정마대전에서 못 봤던 게 당연하긴 한데…….
그래, 당연하긴 한데 말이지.
그런 존재를 천동굴에서 보니 달갑지 않다.
‘종남 새끼들. 좀 많이 그렇네?’
터벅-
동굴 입구에 선 자는 나를 인지하고는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들어올 때마다 그의 모습이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꽤나 격렬한 전투를 벌이다 온 것인지 무복 이곳저곳엔 핏자국이 묻어 있고, 북두칠성이 그려진 검신을 따라서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곤 동굴을 둘러보더니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아직 장가가긴 이른 나이라서.”
“…….”
타닥, 타닥.
우리 둘 사이엔 횃불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무겁게 감돌았다.
#
“내가…….”
사내의 입이 조금 벌어지다가 만다. 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내가 물은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그렇소? 난 또 종남의 사람들 사이에선 첫 만남에 혼례 여부를 물어보는 게 예의인 건가 해서 답한 거요.”
잠시 고민하던 그가 대답한다.
“오해를 하게 해서 미안하군.”
……여기서 사과가 나온다고?
“알면 되었소.”
나는 당황한 티를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묻지. 일행은 어디 있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행이라니. 난 혼자 들어왔을 뿐인데.”
사내는 다시금 혼란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럼…… 함께 있던 자들을 죽인 건가?”
뭐지 이 사람? 바보인가?
“아, 같이 다니던 이들이라면 이미 진즉 헤어져서 각자 자기 갈 길을 가기로 했소.”
“…….”
사내가 한참이나 나를 뚫어지게 본다.
“거짓말이군.”
……완전 바보는 아닌가 보네. 쩝.
그래도 한 번 더 강경하게 부인해 봤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난 살아생전 거짓말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종남의 도사라는 이가 함부로 사람을 예단해도 되는 것이오??!”
내가 윽박지르자 그가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인가?”
뭘 또 정말인가야.
진짜 이 사람 뭐지?
“그렇소. 난 여태껏 거짓말이란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소이다.”
“그럼 왜 복면을 쓰고 있는 거지?”
“……난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그렇소.”
“그런가…….”
……이렇게 쉽게 수용하다니.
씨발, 설마 고도의 심리전은 아니겠지.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리고 왠지 이 사람이라면 대답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정말 북두 검수가 맞소?”
“흡!!!”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씨바. 뭐, 뭐야?
“어, 어찌 그걸 알았지?!!!”
“…….”
검신의 북두칠성의 무늬는 북두 검수의 상징이 아니던가.
이자는 자신이 북두 검수라는 사실이 숨겨질 거라 생각한 건가?
“내가 알기로 북두 검수는 종남이 존폐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찌 한낱 영약 좀 얻자고 나섰소이까?”
내 비아냥에 그가 발끈하며 외쳤다.
“지금 종남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으니까!”
그는 자신이 말을 내뱉고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차! 이건 기밀인데!”
“…….”
이 정도면 북두 검수 선발 기준 자체가 매우 의심 가는데.
여전히 혼자 읊조리며 격하게 눈동자가 흔들리는 북두 검수.
그가 이내 다짐한 듯 입술을 앙다문다.
“천동굴에선 살생을 하지 않기로 했건만…… 기밀을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군.”
“……그리 중요한 기밀도 아니지 않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씨바! 아니, 내가 듣고 싶어서 들은 것도 아니잖아!
북두천강보를 밟은 사내가 순식간에 형체를 꺼트린다.
‘이형환위?’
이어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중검이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중검 속도가 쾌검을 뺨치네.
꽝!
급하게 흑룡검으로 받아낸 순간, 마치 동굴 전체가 무너져 내린 듯 커다란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무슨 힘이!’
군천지보다 높은 수준이란 건 알았지만, 일반 검수와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괜히 북두 검수를 최후의 공격대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정신이 반쯤 빠진 반푼이 같은 이가 이 정도 실력이라는 것에 솜털이 바짝 섰다.
앞서 바보 같은 모습은 일부러 방심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나?
파팍! 파파파파파! 퍼펑!
한 초식을 받아 낼 때마다 발이 땅속으로 푹푹 박힌다.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쌍천검결과 소천검법을 펼쳤다.
촤르르르륵!
수십 개의 검영 사이로 뇌전같이 쏟아지는 검극이 그의 요혈을 노리지만, 금세 반전된 그의 검법이 다시금 삼십 육방을 방어하며 검극을 모두 막아낸다.
정체를 들킬 수도 있었기에 차마 만검을 쓰지 못하고 대신 검강을 꺼내어 들었다.
우웅-
흑룡검의 끝으로 한 자나 치솟아 오른 검강으로 쌍천검결을 흩뿌렸다.
어둠으로 가득하던 공간 안에 검강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쏟아지며 어둠을 밝혔다.
검강이 등장했건만, 북두 검수의 검에는 여전히 검기만이 어려있었다.
‘검강을 못 쓰는 건가?’
어쩌면 쉽게 제압할 수 있겠다 생각은 금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구궁신행검법
천하삼십육검처럼 삼십육방 전부를 방비하는 대신 오직 아홉 곳(구궁)을 완벽하게 지배하여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최상승 검법.
설마 이것까지 익혔을 줄이야.
그제야 북두 검수가 검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검강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채채챙! 채채채채챙!
검기로 펼친 검법에 불과하건만 검강의 부딪침에도 그는 일절 미동조차 없다.
이어 쌍천검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곳을 향해 그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다.
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퍼펑!
하나하나를 막아설 때마다 폭발의 여파가 장기를 크게 뒤흔든다.
전날 먹은 음식이 소화된 지 오래건만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제압? 씨발 그게 뭐냐! 먹는 거냐?’
종남이 심혈을 들여 만든 최후 공격대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나마 북두 검수 일곱 모두를 만나지 않을 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은 저자보다 나이도 무위도 높을 테니까 말이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제압 따윈 할 수 없다.
하지만 전력을 다했다간 결국 흔적이 남게 된다.
정마 대전에 무위를 조금 견식하기만 했어도 정면 대결은 피했을 텐데.
‘잠깐만…….’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지만 상대는 일각보단 뛰어나고, 제금학보단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히려 좋을지도.’
이 정도 무위라면, 조금 과하게 한들 단박에 죽지 않을 테니까.
‘종남의 저력을 믿어볼까.’
마침 나를 특정할 수 없으면서 힘을 쓸 수 있는 무공을 하나 가지고 있지 않던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그의 검에서 흩뿌려지는 우주분광검의 기운이 온몸을 옥죈다.
천하삼십육검이 삼십육방을 방비하는 것과 달리 우주분광검은 상대의 십팔 방을 점하여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나는 태을팔만신보를 펼쳐 그의 공세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동시에 만화무적권을 펼쳐 거리를 벌리고 그를 향해 외쳤다.
“잠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기게 해주시오!”
“유…… 유언?”
그가 움찔한다.
“거, 마지막인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요?”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짜 내가 자신의 손에 죽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해보라.”
그리고 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부디…… 죽지도 중상을 입지도 마시오. 적당히 기절할 정도로만 다쳤으면 좋겠소.”
나는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게 유언……응?!”
누가 유언이래.
이상한 낌새를 느낀 북두 검수가 급하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백월제천삼식
제 일(一)초.
‘극쾌’
검이 휘둘러지고 뒤이어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쾌애액─
이상함을 느낀 북두 검수가 급히 검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촤아악-
그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긴 실선이 생겨나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오른다.
“이, 거짓말쟁이…… 마, 마지막이라며…….”
응. 네 마지막.
쿵-
북두 검수가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쓰러졌다.
쩝.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내가 진짜 잘못한 거 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