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 <자신을 보이는 흑염룡(2)>
길게 자란 속눈썹.
그 아래로 달빛에 비춰 초롱한 깊은 눈동자.
옅은 화장은 그녀를 순수하고 앳된 얼굴로 보이게 했지만, 반대로 은근하게 몸매를 드러나게 보정한 듯한 붉은 궁장은 그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선녀로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기녀로도 보였다.
한 사람에게 이리 다양한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뭇 새로웠다.
더구나, 그녀의 소개를 한번 듣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그림이 덧대어진다.
“인사드립니다. 소녀 은하상단의 정소을이라 하옵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예의.
온몸에 오랜 세월 깃든 자연스런 기품이 보인다.
“은하상단이라 하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소을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네. 공자께서 아시는 그 은하상단이 맞습니다.”
그녀의 음성엔 깊은 자부심이 있었다.
하기사 왕가장과 함께 천하사(四)대거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정심호가 그녀의 아버지였으니까.
가문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며 하남을 기준으로 옛 위나라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안휘를 중심으로 남동쪽에 물류를 지배한 왕가장과는 경쟁자이자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은하상단에서 어찌 나를 찾아온 겁니까?”
내 물음에 정소을이 왕소소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왕소소는 ‘흥’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훽 하니 돌려 버렸다.
“근래에 들어 천하를 뒤흔드는 진 공자님의 위명을 듣고 흠모의 마음에 만남을 청하고자 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소녀의 마음에 제대로 공자님께 전달되지 않는 듯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이리 달려왔습니다.”
“허! 참 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왕소소가 끼어들려 했지만 정소을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다시금 나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하기 그지없다.
금방이라도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돌을 일게 하는 맑은 호수처럼.
“진 공자님은 소문으로 듣는 것보다 더 의젓하시고 더 거대하시군요. ……소녀 마음이 크게 뛰어 오래 보지 못하겠습니다.”
“……허! 참나! ……허! 참나!”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뇌쇄적인 몸 선. 그리고 순수한 말들은 남자의 가슴과 머리를 뒤흔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차…… 제가 별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세요.”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정소을.
신기하게도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매번 다른 향이 풍겼다.
좀 전까지 달콤한 향이었다면 지금은 청초한 야생화의 시원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능숙하군.’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행동 하나, 내뱉는 말투 하나하나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순리대로 흐르는 것처럼.
어떤 남자라 한들 자신이 남자라는 자각이 있다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여자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고.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면 말이지.’
싱긋 웃은 그녀가 사용인에게 눈짓을 하여 배첩을 받았다.
그녀의 궁장과 마찬가지로 붉은 비단에 금색실의 자수가 박힌 것이었다.
“공자님과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소녀의 마음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백설기 같은 하얀 손길에 건네진 배첩이 내게 내밀어진다.
“진 오라…….”
불쑥 끼어들려던 왕소소는 정소을의 여유로운 시선에 분한 듯 입을 꾸욱 다물었다.
상대의 동의 없이 함부로 끼어드는 건 기품 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겠지.
나는 왕소소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정소을을 바라봤다.
“정 소저…….”
“을 매라 불러주세요.”
어딜.
“……정 소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굳이 호칭을 바꾸지 않았지만 그녀는 안색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무엇입니까?”
“이 초대장은 정 소저가 개인적으로 보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은하상단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입니까?”
“호호. 그것에 따라 차이가 있나요?”
“물론 있고말고요.”
“…….”
순간 정소을의 표정에 잠깐 당황한 모습이 어렸다가 금세 사라졌다.
“흐음…… 소저는 잘 모르겠는데 알려 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보내는 초대장이라면 거절할 것이고, 은하상단을 통해 보내는 것이라면 이미 왕소소가 거절했으니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
정소을과 왕소소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렇게 보니 토끼 두 마리가 호랑이를 동시에 보고 놀란 것처럼 보이네.
“……어, 어찌 되었든 거절하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정소을은 이런 거절이 처음인지 당황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어째선지…….”
질문을 이으려던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먼저 앞서 걷자 왕소소가 정소을을 향해 혀를 쏙 내밀더니 득의양양하게 내 뒤로 따라붙는다.
어째 네가 더 기분이 좋아 보이냐.
“진 오라버니!”
내게 찰싹 붙은 왕소소가 작게 소근거린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역시 진 오라버니밖에 없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물어보려다 말았다.
거절당한 상대를 앞에 두고 수군거리는 것만큼 못된 짓이 없으니까.
왠지 뒤통수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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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 들어선 뒤, 방금 있었던 일을 아버지와 왕 장주에게 전했다.
근데 반응이 좀 이상했다.
“소운이 이 친구…… 역시 왕가장은 자네가…….”
“아버지!”
“크흠…… 미안하다. 아무튼 태산. 자네 이야기하지 않았나?”
“…….”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듯 복잡한 침묵이 세 사람 사이를 오간다.
“……별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버지의 담백한 말에 왕 장주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뭐…… 무슨 일이 있다면 있는 거겠지.”
대천상단이 절강성 항주에 진출하면서 공급해야 하는 상품이 많아졌지만 그것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
관광차 항주에 들리는 이들 대부분이 고관대작의 자제들이나 신분이 높은 이들인데.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품은 보통 하북에서 제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북의 장인들 대다수가 은하상단에 소속되어 있거나 그와 관련된 상단에 소속되어 있기에, 은하상단의 허락 없이는 물품을 직접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물론 은하상단도 강남의 곡식과 비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등가교환을 하기로 했지만 정작 도장을 찍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
“은하상단은 따로 곡식이나 비단을 받을 경로가 있는 겁니까?”
왕 장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만큼은 아니지만 사천이나 귀주 호남에도 공급망을 가지고 있지.”
은하상단의 주 거래 상대는 왕가장이다.
하지만 왕가장이 사치품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대천상단 때문이라는 걸 알고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
“아까 그 여자가 가져온 배첩과 관련된 일이겠군요.”
“은하상단이 창단 백팔십 주년을 맞이한다. 거기서 무공을 선보일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하더구나.”
일반적인 연회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무(歌舞)라면, 은하상단과 같이 거대한 세력을 가진 이들이 꼭 함께 선보이는 것이 자신들의 영향력이다.
자신들의 세가 얼마나 강한지 자랑하고 싶은 것.
은하 상단은 계약의 조건으로 내가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와서 분위기 띄울 겸 춤을 춰달라는 거군요.”
자신들의 영향력을 선보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뛰어난 이가 자신들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무인의 입장에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무공을 선보이는 건 굴욕적이기 그지없는 일이니까.
대단한 이가 와서 재롱을 떠는 모습은 분명 영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은하상단은 소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네. 특히나 그 집 둘째 아들도 학관 출신이고. 들어는 보았겠지. 정소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대당주급까지 올라갔던 기록이 만통부에 남아 있었으니까.
“유성창 정소군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무림맹 출신에 뛰어난 고수가 있는 곳에서 어줍잖은 무공을 선보인다면.
‘되레 창피당하기 십상이겠지.’
그런 판을 깔고 초대를 한다니.
의도가 너무 뚜렷하게 보여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자네가 이번 기수의 대표라는 걸 알고는 더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하긴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개인적으로 초청장을 수도 없이 받지 않았던가.
무림학관 대표라는 직책이 워낙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위인데.
거기다 나는 좁밥 문파의 제자니까 호기심도 두 배일 터.
‘나야 뭐 귀찮아서 보지도 않고 다 버렸지만.’
아버지를 통해 이런 요구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굳이 사치품을 팔지 않아도 충분히 이익은 나고 있으니까. 네가 원치 않는 자리에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달랐다.
“아니, 왜요?”
“응?”
“사치품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이 남는데. 거 무슨 자존심 좀 세우자고 그걸 마다합니까?”
“…….”
“전 태을문의 각 당마다 연못을 하나씩 만들고 싶습니다.”
“언제는 돈 지랄이라더니…….”
아버지가 배신당한 표정이 되었다.
“물론 없는 상태에서야 돈 지랄이지만 차고 넘치는 상태에서는 여유가 되지 않습니까?”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가겠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자리 아닙니까. 두 번, 아니 다섯 번도 가지요.”
사치품의 이익은 공산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필수품은 가성비에 휘둘리지만 돈 많은 놈들은 가격이 저렴하면 제 자존심이 구겨진다 생각하는 미친놈들이다.
이건 무림맹에서 날고 기는 가문의 자제들 밑을 열심히 닦아본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이 새끼들은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환장하고 달려든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면서 돈 줍는 일인데.
그깟 자존심 챙기자고 이걸 마다한다고?
‘더구나 이 행사는 단순히 은하상단이 체면 세우자고 날 초대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겨우 코딱지보다 조금 큰 문파의 제자를 초빙하자고 금지옥엽 딸내미를 보냈다.
거절 할 경우 엄청나게 체면을 구길 것이 예상되면서도 말이다.
물론 이것이 상단주의 생각인지 정소을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다.
‘정소을 본인은 자신이 애당초 거절당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은 듯 보이고.’
문제는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이 많은 낮이 아니라 밤에 방문했다는 점이다.
정소을이 스스로 자신이 있었다면 낮에 찾아왔겠지.
하지만 그녀는 밤에 찾아왔다.
결국 그녀가 밤에 움직인 것은 다른 이의 심계가 깃들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거절할 것까지 계산했다 이거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권력자 특유의 음습함이 느껴진다.
아마 이번에 그냥 넘기더라도 이런 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갑자기 주머니를 튀어나온 송곳이 신경 쓰이는 건 범부나 성자나 똑같은 법이니까.
어차피 겪을 귀찮은 일이라면 내가 선빵을 치는 게 낫다.
최소 선빵을 치면 상대의 틈을 먼저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왕 장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돈에 대한 미칠듯한 집착.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심까지.”
왕 장주가 왠지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나 자네의 몸속엔 무인의 피가 아닌 상인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해! 자네, 진정 상인이 되어 보지 않겠나?”
이거 내가 돈에 환장한 놈이라고 비꼬는 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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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굳이 먼저 초대장에 답을 해주지 말라 일렀다.
일단 내가 정소을 면전에 거부의사를 표시했기에 바로 대답하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얼마나 집요한지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그쪽이 이쪽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도 볼 겸 다시금 초대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답하라 해두었다.
[더 이상 초대가 안 오면?]
아버지가 그런 질문을 해왔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 오면 안 오는 거지 뭐.
아버지는 이런 쪽으론 영 고지식한 분이시니까.
다음 날 백해광을 만나 기절 한번 하고 깨어난 후, 약속대로 장도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연무장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사련은 물론이고 금·은·동 형제가 태을문의 사제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잘 들어라! 대사형이 말씀하시길. 이 행공은 어떤 상황에서든 너희의 목숨줄을 살려줄 유일한 희망이라 하셨다.”
“대사형의 말씀하시길 강호는 단 한 순간만 긴장을 늦춰도 목숨을 잃는 곳이라 말씀하셨다! 내가 겪어본 바 그건 사실이 분명했다!”
“대사형이 말씀하시길. 철저히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실전에서 겨우 한 번 써먹을 수 있다!”
“대사형 말을 잘 들어야 해! 잘 들으면 언제나 살 수 있거든!”
나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심어주는 건 둘째치고, 강호에 대해 너무 무섭게 표현해서 애들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이럼, 애들이 겁먹어서 되려 도망칠 거 같은데…….’
적당히 하라고 말리려 연무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네! 명심하겠습니다!”””
……우렁찬 함성 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
뭐지, 애들은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네.
“이제부터 소천검법부터 다시 잡아 주겠다. 각오가 된 이부터 앞으로 나오라!”
금표의 말에 사제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말릴까 말까 고민을 하다 이내 몸을 돌렸다.
과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보단 나으니까.
녀석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뭐.
나는 곧장 대장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래 태을문 건물에 담벼락을 허물고 확장하여 만든 커다란 대장간.
장도원이 원할 땐 언제든 장사를 할 수 있게끔 가판대도 만들어 주었지만 정작 장도원은 스스로 가판대를 다 막아 놓은 상태였다.
“일이 많이 없으신가 봅니다. 이리 쉬고 계시는 걸 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도원이 바닥의 모래를 쥐어 내게 뿌렸다.
나는 재빠르게 태을팔만신보로 피했고.
“아니, 왜 사람한테 모래를 뿌리고 그러십니까.”
“사람? 네가 사람이냐? 사람이면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도 없는 놈이 무슨 사람이야!”
“에이,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노오옹담? 아직 대장간 불도 안 켠 마당에 반년 만에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게 노오옹담이라고?”
근데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마교 놈들이 강호에서 암약하고 있는 걸 아는 상태에서 적광검의 재료들을 다 모았는데, 본래 역사대로 만들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구나 장도원은 전생에서 반년 만에 적광검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뭐, 현생의 그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일부러 그의 눈치를 살피는 척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 강호의 평화를 위해서…….”
“……쯧.”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장도원의 모습에 슬쩍 불안감이 번진다.
혹시 못 만든 건가?
어쨌든 전생에 장도원은 마교에 대한 원한을 담아 십오(十五)신기를 만든 거니까. 아직 원한이 없는 상태라 만들지 못──.
척-
“……!”
내 예상이 무색하게 장도원은 천에 감긴 기다란 것을 내던졌다.
“그 불온한 물건을 어디서 구했는지 묻지 않겠다. 그래도 조심히 사용하는 게 좋을 거다. 분명 인세의 물건은 아닐 테니.”
그가 말하는 불온한 물건이란 혈해옥을 말할 터.
이제 남은 문제는 그것을 전생과 마찬가지로 잘 소화시켰느냐는 건데…….
꿀꺽.
나는 긴장된 심경으로 천을 천천히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