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02화 (302/357)

302. <자신을 보이는 흑염룡(6)>

손자병법에서 이르길,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한 후에 전쟁을 시작한다 했었다.

이 말을 참으로 좋아했지만 현실에서 적용되는 이론은 아니라 생각했다.

무림맹의 등신들은 이걸 실현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와, 이게 되는 거구나.’

솔직히 말해서 은하상단이 짜놓은 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은하상단에서 어떤 방식으로 몇 번에 걸쳐 간절하게 초대했건, 그런 건 이제 다 의미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무사의 호명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내실로 들어가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선물을 건넨다.

그럼 상단주는 선물을 받으며 덕담을 한마디 건네주고.

덕담을 들은 이는 하나같이 마치 귀한 금언(金言)이라도 들은 것마냥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고 더러는 눈물을 흘리기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가 되면 무사가 새로운 사람을 호명한다.

환경이 절로 권위를 만든다.

그러자 상단주가 황제처럼 보였다.

그의 주변에 앉은 이들도, 연회장에 대기하던 이들도.

모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귀주성 낙정검 여문각은 앞으로 나오시오.”

상단 관계자들의 차례가 끝나자 무사들의 차례가 되었다.

“은하상단의 백팔십 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은하상단에 어울릴 만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여 미천한 제 재주로 대신하여도 되겠습니까?”

“허허, 낙정검의 이름이 귀주성을 넘어 이곳까지 쩌렁쩌렁한데 미천하다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벼이 고개를 숙인 무사는 이윽고 무희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검무를 펼치기 시작한다.

은하상단 내에서도 제 재주를 선보이는 자가 있었던지 더러는 은하상단의 독문무공을 펼치는 자들도 있었다.

무사라 해서 도인인 척 초탈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마치 놀잇감이 된 듯 눈요깃거리를 자처하는 듯한 비굴한 태도는 선 넘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진 오라버니.”

고개를 돌리니 왕소소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장 나가요. 이건…… 이건 참석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분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는 왕소소.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니.

‘흐음.’

눈에 들어오는 무인들이 있었다.

구파일방의 정예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명성이 있는 자들, 속가제자로서 명망이 뛰어난 자들.

그런 이들 중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들도 보였다.

‘저들도 나처럼 초대를 받은 것인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있음에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무사의 부름에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앞선 무인이 그랬던 것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돌발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의 무례를 지적할 수 있기는커녕, 되려 자신의 평판을 깎아 먹는 역풍을 맞게 될 것을 알기에.

여기에 더불어 나와 같이 은하상단과의 거래가 엮여있다면 행동에 더욱 제약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오라버니!”

다시금 내 팔을 붙잡고 흔드는 왕소소의 손을 잡고 손등을 두어 번 두들겨 주었다.

“여기서 박차고 나가면 놈들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럼…… 저도 함께 가겠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라. 다 생각이 있으니.”

나는 조용히 연회장과 내실의 구조를 천천히 살폈다.

#

사실 상단주가 궁금하긴 했다.

입구에서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난 이후에 일부러 별채에서도 계속 소동을 일으켰다.

이쯤 되면 상단주가 부르겠거니 하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그렇게 대면을 하게 되면 상단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경고를 주지도 않았다.

애당초 나 따위는 자신이 신경 쓸 존재가 아니라는 듯.

그러곤 예의가 갖춰 무공의 견식을 청하는 자리가 아니라.

‘유랑단처럼 재주를 팔아먹는 판을 깔아 놓으셨다라…….’

잔머리 한번 잘 굴러가네.

내가 밖에서 은하상단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건 결국 사람들은 내가 은하상단에 재주를 팔아먹고 콩고물을 얻어먹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다음은…….”

무사가 명단을 살피다 흠칫 멈춘다.

그러곤 내 쪽을 바라본다.

“다, 다음은 안휘성 태을문의 진소운 소협의 차례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서자 좌·우에 앉은 이들이 오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상단주와 정소군은 내 입이 먼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흑염룡이 벙어리였나?”

좌측에 앉은 이의 말에 내실에 있는 이들이 일제히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관심법을 쓰는 걸지도 모르지.”

“아! 흑도 무림에선 흑미륵이라 불린다지?”

“자네도 조심하게나. 숨겨둔 애첩이 샅샅이 드러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으하하하하!”

주위 사람들의 무시와 비아냥이 어째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긴, 계철영의 밑을 닦을 때. 수도 없이 많이 당해봤던 일이니까.’

그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자제들에게 이런 모욕을 숱하게 당했었다.

부모에 대한 모욕, 사문에 대한 비아냥, 대응할 수 없는 무력감까지.

적에게 향하지 못한 분노는 스스로에게 향하고 자신을 죽인다.

나에겐 힘이 없으니까.

나는 저들에게 대항할 수 없으니까.

“은하상단의 창단 백팔십 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꼿꼿하게 서서 포권을 쥔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이번엔 우측에서 말을 보탠다.

“말로만 축하할 셈인가? 어째 빈손으로 왔을까?”

“에끼, 이 사람아. 태을문이 뭐 대단한 문파라고 선물을 준비했겠어! 설사 준비한다 한들 그게 상단주님께 만족을 드릴 수나 있겠는가? 하하!”

“하긴, 그렇지. 어이, 흑염룡 자네도 다른 이들처럼 재주나 한번 부리고 가지?”

아마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겠지.

내가 굴욕적인 모습을 한번 보이는 걸로 은하상단을 통해 큰 이익을 얻어내는 선택을 하리란 걸.

그러니 이토록 마음껏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 것일 테고.

전생의 나 또한 이런 자리에서라면 그냥 상대가 강요하는 굴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큰 이익을 위해서라도 호구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상대가 어떤 무례를 저질러도 병신 같은 웃음으로 대응하는 건, 내가 받을 수 있는 존중을 스스로 깎아 먹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려면 내가 만만치 않은 놈이란 걸 보여줘야 한다.

“맞습니다. 태을문이 본래 하루 두 끼 먹던 식사가 세끼로 늘었다곤 하나 아직 어려운 점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은하상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요.”

솔직한 내 말에 벙찐 표정을 짓던 인간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하하하하!”

“푸하하하!”

놈들의 웃음은 결국 내가 굴복했다고 생각하여 터져나온 웃음일까? 아니면 태을문이 과거 겨우 두 끼를 먹었다는 사실에 참지 못한 웃음일까?

가장 상석에 선 상단주는 말없이 술잔을 넘기고, 정소군은 득의양양하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건방지던 내 행동이 점잖게 변한 것이 썩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앞선 훌륭한 무사님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도 가진바 재주를 선물로 갈음해도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웃음이 잦아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상단주에게로 향한다.

상단주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치이잉─

그렇게 적광을 천천히 뽑아 들어 대천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슈슈숙─

내공을 쓰지 않는 검법이기에 속도가 느리고 환검도 나타나지 않는다.

앞선 무사들과 달리 느린 검로는 보는 눈이 높아진 이들에게 금방 지루함을 가져다주었고.

“학관 수석이라기에 뭐 대단한 무공을 되찾았나 싶었건만…… 쯧, 그것도 아니네.”

“저런 실력으로도 무림학관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였음 우리 아들도 보낼 걸 그랬어.”

“자네들 모르나? 흑도의 도움을 받아 학관에 입학한 흑염룡 아닌가, 클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난의 말들이 튀어나오고 나는 그에 맞춰 미숙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스걱─

탁자 한쪽을 잘라내며 몸을 일부러 우뚝 멈춰 세웠다.

이윽고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눈치를 살폈다.

“허이구…… 재주나 좀 선보이라 했더니 은하상단 재산을 다 잘라먹네.”

나는 재빨리 등신처럼 행동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서 펼치는 게 처음이라…… 다,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와장창!

그러곤 이번엔 실수인 척 탁자와 음식이 담긴 접시까지 잘라냈다.

“에헤이! 이런 망할 놈이……!”

“대체 뭔 놈의 무사가 검을 이따위로 휘둘러!”

튀어 오른 음식물 때문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사람들의 날 선 비난 사이로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힘을 조절하는 건 처음이라…….”

“힘을 조절했다고?”

머리 위로 언짢음이 가득한 정소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본래 실력을 선보일 수 없다는 건가?”

“그게…… 무인이 아니신 분들도 많으시고. 더구나 아무리 무인이시라 한들 견디기 힘들 수도 있기에…….”

“하아…….”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처구니없다는 한숨을 내뱉는 정소군.

“여기 있는 분들이 고작 무인의 검술을 보고 놀랄 거라 생각한 건가?”

“아, 아닙니까?”

내가 순진무구한 등신처럼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소군이 몸을 부르르 떤다.

“네까짓 게 감히 우릴 무시해?”

정소군이 이를 바드득 갈자 상단주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진 소협은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 보시오.”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오만하게 턱짓을 한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섰던 호위들이 그에게 바짝 붙어 그를 둘러싼다.

‘살기를 뿜어낼 것 정도는 예상했다는 말인가.’

하긴 무인들이 흔히 민간인에게 쓰는 협박 중의 하나가 살기일 테니. 닳고 닳은 그에겐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뭐, 어쨌든 원하던 답은 얻어냈으니까.

음, 그래도 한 번 더 확실하게 확인받는 게 낫겠지?

“정녕…… 다 보여도 괘, 괜찮겠습니까?”

“……그러시게.”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증인으로 삼듯, 일부러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그럼 마음껏 선보여 보겠습니다.”

나는 적광검을 검집에 넣었다가 다시금 천천히 꺼내었다.

이전과 달리 붉은 빛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에, 시선을 돌리고 있던 이들마저 하나둘 집중하기 시작했다.

의념으로 살기를 끌어올리자 귓가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꺄아아아아악!

다른 이들도 똑같이 느낀 건지 다들 웃음을 지우고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짜 태을문의 대천검법입니다.”

촤르르르륵.

검날이 부챗살처럼 펴지며 사방으로 퍼져간다.

나는 꽃봉오리마냥 좁았던 공간부터 시작해 점점 넓은 공간으로 검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날이 사람들의 지척에 다가가기 시작했을 때.

촤아아-

다시 한번 변화를 주어 환검을 마구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리고 그사이 소천검법을 가미하여 탁자와 음식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스걱─

스걱─

“이, 이 무슨!”

“자, 잠깐!”

살기에 바짝 긴장하여 입을 꾸욱 다물고 있던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짓자, 그들의 호위들도 상단주의 호위들처럼 앞으로 다가와 자신들의 주인을 보호하려 했다.

뭐, 쓸데없는 짓이지만 말이다.

나는 본격적으로 살기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금·은·동 형제들이 행공을 쓰고 있을 때에도 바짝 긴장했을 정도의 살기.

마교의 마인들이 흩뿌렸던 거칠거칠한 살기를.

“끄으으윽!”

“우웩!”

“머, 멈춰!”

처음에 선보인 실수와 종전의 의도된 실수가 연결되자, 관람자들의 목과 머리를 오가는 환검들은 그들에게 완벽한 위협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정소군 정도라면 환검과 진검을 구분할 수 있겠지만, 평생 책만 읽은 이들이 환검과 진검을 구분할 수 있을 리 만무하잖아, 안 그래?

촤르르르르륵!

나는 더욱 살기를 끌어올리고 환검을 더 과감하게 펼쳤다.

중간중간 탁자와 접시, 술잔을 잘라 먹는 것도 놓치지 않았고.

더구나 이곳은 사방이 막힌 내실.

내가 뿜어낸 살기가 흘러갈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좁은 공간 속에서 한 치만 움직여도 목이 잘려나갈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몸을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주인을 보호하려던 호위들도 마찬가지.

“으, 으으…… 제, 제발!”

“그, 그만! 그만!”

“사, 살려주시오!”

그렇게 곡소리가 사방에 퍼질 때.

나는 펼쳐뒀던 대천검법을 모두 회수했다.

착─

적광검이 다시금 검집 안으로 들어가자 멈췄던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

“허어, 허어, 허어.”

“크허헉!”

더러는 바닥에 드러누워 정신이 헤롱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런…… 그래도 힘 조절을 한다고 한 건데. 무리였던 걸까요?”

좌·우의 탁자 밑으로 물기가 번져간다.

그와 함께 퍼지는 지린내.

나는 코를 부여잡았다.

“죄송함미다. 대단한 븅들이 이리 간다미 작을 쥴은 몽르고…….”

나는 상단주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을 적신 그의 오줌 자국을 보며 술잔을 들었다.

그래도 예의상, 코를 막았던 손은 내렸다.

“그래도 재주를 선보였는데, 술 한잔은 대접해 주시겠지요?”

“…….”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단주.

더 이상 참지 못한 정소군이 탕─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따위 짓을 벌여!!”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재주를 선보이시라 해서 재주를 선보였는데…… 혹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솔직히 살기에 압도되어 날 말리지 못한 건 네 잘못이잖아.

“아…… 물론 대단한 분들이시라 해서 과대평가를 했던 것은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정소군을 향해 엷은 조소를 흘려준 후, 상단주의 얼굴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한잔, 주실 거죠?”

“…….”

“가, 감히……! 내 창을 가져와라!!!”

나는 정소군을 지그시 노려봤다.

“선배……. 좋은 자리에서 분위기 망치지 마십시오.”

“뭣들 하느냐! 당장 창을 가져오래두!”

헐레벌떡 다가온 무사가 그에게 은색의 창을 건네었다.

창을 낚아챈 그가 으르렁거린다.

“내 오늘 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 주마!”

금색의 수실이 감긴 은하창을 쥔 정소군이 바닥을 박차고 탁자를 넘어왔다.

나는 한 손에 잔을 쥔 채로 적광검을 뽑아 그가 흩뿌리는 창격을 막아섰다.

살기를 뿜어내며 순식간에 요혈을 찔러 들어오는 은하창.

채채채채챙!

나는 창격을 막아서며 뒤로 물러선 뒤 정소군에게 말했다.

“정 선배,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요. 그만하십시오.”

“닥쳐라! 감히 은하상단에서 이따위 짓을 하고 네놈이 살아 돌아갈 생각을 했던 것이냐!”

가슴을 찔러 들어오는 창날을 몸을 틀어 피함과 동시에 그의 품속에 파고들어 적광검의 검병으로 그의 요혈을 찔러 넣었다.

정소군은 곧장 몸을 뒤로 빼며 탁자를 밟고 뛰어올라 유성처럼 내리꽂힌다.

유성창 정소군의 일절인 벽력유성.

천장까지 치솟은 그가 팔방의 틈 사이를 모두 옥죄며 시퍼런 창기를 쏟아붓는다.

파파파파파팍!

이런 건 본래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대신 나는 적광검에 내공을 잔뜩 불어 넣었다.

상대에게 힘을 과시할 때는 무리하더라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웅.

살기 어린 적광 대신, 금광이 어른거리며 검강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강이 물 샐 틈 없이 쏟아져 내리던 창기를 모조리 부숴버린다.

펑! 펑! 펑! 퍼퍼퍼펑!

자신의 창기가 속절없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정소군도 재빨리 창강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러게, 손을 쓰려면 과감하게 썼어야지.’

이미 적광검이 그의 가슴을 가로지른 후였다.

촤악─

붉은 선혈이 물들어야 할 가슴은 그저 옷가지가 산산이 찢겨 나가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나에게 화살같이 짓쳐들어오던 정소군의 신형은 날아들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벽에 처박혔고.

뻐어억!

“크헉…….”

그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그는 곧장 정신을 잃었다.

나는 유유히 적광검을 어깨에 메고 좌중을 향해 말했다.

“정 선배께서 후배를 빛나게 해주시려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다들 박수 한번 주십시오.”

“…….”

그러나 고요한 실내.

음, 내 목소리가 안 들린 건가?

나는 의념을 끌어올려 살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흐익!”

“크헉!”

“저, 저 미친놈이 또……!”

금방이라도 눈을 까뒤집고 졸도하려는 관리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여.러.분. 박수 한번 주시라니까요. 그게 어렵습니까? 정소군 선배가 무안하지 않습니까.”

짝, 짝짝, 짝짝짝.

그제야 박수 소리가 울리고 나는 살기를 거둬들였다.

내부를 울리는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는 동안, 나는 다시금 상단주 앞에 섰다.

“상단주님, 이리 재주도 선보였는데 정말 술 한 잔 안 주실 겁니까?”

“…….”

핏발 선 그의 눈에 당장에라도 나를 죽이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허, 이 영감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나는 술잔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낮게 읊조렸다.

“만약…… 이 자리가 단순 재주를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정 선배는 검면이 아니라 검날로 맞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태을문은 멸문했겠지.”

“하하, 그러니 상단주님과 제가 서로 예의를 갖추는 거 아니겠습니까.”

“…….”

잠시간 시선을 주고받은 후.

입술을 질끈 문 상단주가 술병을 천천히 들어 술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단숨에 술잔을 들이켠 후 말했다.

“앞으로도 거래 잘 부.탁.드.립.니.다.”

손을 부들부들 떠는 상단주를 뒤로하고 내실 밖으로 나오니.

“…….”

“…….”

연회장의 인원들이 다들 멍한 눈으로 이쪽만 보고 있었다.

음? 이거이거 흥이 깨져버렸잖아?

“뭐야, 왜 즐거운 날에 음악이 끊겨? 여기 책임자 누구야! 책임자 나오라그래!!!”

악공들이 다시금 부리나케 연주를 이어간다.

그래, 이제야 좀 연회 같은 기분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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